
임상을 시작한지 2년차 즈음에 당시 일하던 병원의 윗년차 선생님을 따라 세미나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수의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던진 얘기를 지나가듯 들었는데, “내과는 잘해도 티가 안”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외과는 수술을 잘하면,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소문이 나기도 하고, 보호자분들의 만족도도 높아지지만, 내과는 잘하든 잘하지 않든 보호자분들이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게, 내과를 잘하는 병원은 여러모로 만족도가 높기 어렵습니다. 수술은 수술만 잘 끝나면 짜잔~하고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이 보호자분들 눈에도 보이지만, 내과는 대부분의 질환들이 장기 관리를 요하는 것들이고, 장기 관리의 끝이란 (그 과정이 어쨌든) 결국 환자의 사망이니 보호자분들이 만족하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게 수의학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분야에 공통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는데)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실력을 평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의사가 잘하는지 아닌지는 같은 수의사가 아니고서는 판단하기가 어렵죠. 제가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간다면, 그 의사 선생님이 잘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전문가의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누가 더 잘하는 전문가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 결국에는 나한테 친절하고 어쩐지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을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걸 구분할 수 있으면 그 서비스를 제공받지 않고, 직접 전문가가 되면 됩니다.)
그래서 내과로 티가 난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과정이 나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만성 질환에서) 결과가 좋기는 쉽지 않고, 그 과정조차도 비전문가의 눈으로 전문가가 잘하는지 아닌지 평가한다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부전을 앓고 있다면, 애초의 내과 관리 목적 자체가 신부전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환자의 삶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지, 신부전 자체를 완치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으로 치료가 진행됐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환자가 건강해져서 만족한다라는 개념이 있기는 어렵죠. A 병원에서 이러이러한 관리를 했지만, 같은 환자를 B 병원에서 관리했다면, 더 오래살았을지, 살아있는 동안 삶의 질이 더 좋았을지를 비교하는 게 (많은 케이스를 다루는 수의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디가 더 잘하는 병원인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애초에 과목 이름이 안에 있는 걸 다룬다는 내과(Internal medicine)이니 밖에서 보는 외과(外科)와 달리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워 티가 나기 힘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선 내과에서의 차이가 환자에게 어떤 차이를 주는지를 아주 간략하게 쓱쓱 훑어보는 일을 해볼까 합니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모두 하고, 약까지 처방받아서 내과 관리를 하고 있는 케이스들이었는데, 무언가의 이유(블로그를 보고 찾아오시거나, 이사 때문에 병원을 옮기시거나 등등) 때문에 오늘동물병원을 찾은 환자들입니다. 똑같은 증상, 똑같은 검사 결과, 똑같은 환자를 가지고 약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게 환자와 보호자분에게 어떤 차이를 주는지 조금은 티가 나게 써본 거죠. (하나의 완결된 케이스는 아니지만, 같은 질환, 같은 환자를 어떻게 다르게 관리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한 포스팅을 약간은 시리즈물처럼 써볼까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강아지의 폐동맥 협착증입니다.
환자는 10살의 중성화한 암컷 푸들로 폐동맥 협착증(Pulmonary stenosis) 관리를 위해 오늘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폐동맥 협착증(PS, Pulmonary stenosis)은 선천적인 질환으로 심장에서 폐로 나가는 동맥(=폐동맥)의 판막(pulmonary valve)이 좁아져있는 병을 얘기합니다. 환자의 경우 나이가 꽤 많은 상태로 오늘동물병원을 찾았는데, 이미 6년 전에(=대략 환자 나이 5살경)에 폐동맥 협착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풍선 판막성형술(balloon valvuloplasty)을 받은 이력이 있었습니다. 풍선 판막성형술(벌룬으로 좁아진 판막을 벌려주는 시술)을 받은 이후에도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는데, 보호자분이 이사 때문에 오늘동물병원에서 약을 받고자 아이를 데리고 내원하신 케이스였습니다. 약을 먹은지 6년 가까이 됐고, 이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다 떨어져서 새로 처방을 받고자 오신 경우였죠. 환자의 처방 내역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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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놀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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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로노락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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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데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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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톡시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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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모티딘
이렇게 타원에서 기존에 먹던 약을 동일하게 처방받기 위해 내원하시는 경우라 하더라도, 오늘동물병원은 이 약을 환자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재평가를 합니다. 다섯 가지 약 중에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파모티딘(Famotidine)
첫번째로 제일 쉬운 약은 파모티딘이 될 것 같습니다. 파모티딘은 제산제입니다. 위산의 분비를 줄여주는 약이죠. 원칙대로라면 상부 위장관 출혈이 있는 환자에서 소화기의 회복을 돕기 위해 쓰는 약입니다만, 상당수의 경우 약 많이 먹고 속쓰리지 말라고 수의사들이 다른 약과 함께 처방하곤 합니다. 파모티딘을 먹으면 다른 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위장관 자극이 덜해질까요? 그런 에비던스 같은 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2020년 IVECCS(세계 응급 수의학회)에서의 강연 프로시딩을 보면, 이런 식으로 약처방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오곤 하죠(유료 링크).
최근의 경향에서 파모티딘은 먹는 약으로 처방할 때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제산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위 내의 pH가 일정 수준 이상까지 몇 시간 이상 올라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therapeutic criteria)이 있는데, 그 기준을 달성하는 제산제는 동물에서는 PPI(proton pump inhibitor, 오메프라졸 같은 약들) 뿐이라고 봅니다. 파모티딘이 상부 위장관 출혈을 치료하고자 할 때 쓸 수 있는 약인데, 정말 상부 위장관 출혈이 있으면 파모티딘보다는 오메프라졸을 쓰라는 얘기와 같죠.
파모티딘의 효과가 그리 썩 좋지 않음에도 어쨌든 파모티딘은 약이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할 수 없는데, 이런류의 제산제들이 단기적인 부작용을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런 약을 장기적으로 먹었을 때는 경우에 따라 부작용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동물에서 보고된 바는 없는듯 싶지만, 사람에서는 장기 복용 시 폐렴이 리스크를 높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파모티딘의 경우, 효과가 그리 좋지도 않은데, 장기간 먹었을 경우는 그 좋지 않은 효과마저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고, 사람에서의 폐렴 리스크 얘기도 있으니, 약 먹고 속쓰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이 합리화되기가 쉽지 않은 약이죠. 그러니 일단 처방에서 빼는 게 낫지 않겠나 싶죠.
펜톡시필린(Pentoxifylline)
비슷한 의미의 약으로 펜톡시필린도 있습니다. 펜톡시필린은 말초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여주는 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효과가 드라마틱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피부 질환에서 펜톡시필린이 치료약으로 지시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통상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이니 겸사겸사 혈액순환이 좋아지면, “좋은 게 좋은거지”라는 마인드로 많이 처방되는 약이죠. 심지어는 처방이 지시되는 피부 질환에서도 드라마틱한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약이라 어떤 질환의 치료에 메인 약물로 처방되지는 않고, 보조적인 (저는 이런 약을 지푸라기 같은 약이라고 합니다) 용도로 처방되는 약입니다. 심장 질환에서는 지시되지 않는 약이죠.
펜톡시필린은 사진에서 보듯이 사이즈가 작지 않은 약인데, 심지어 서방정(서서히 약이 방출되게 만들어진 알약)이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갈아서 처방하면 안되는 약입니다. 갈아서 처방하면 약효가 하루 두 번의 투약으로는 유지가 되기 쉽지 않고, 크기가 큰 편이라 약의 부피를 늘려서 투약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푸라기 같은 약인 것치고는 조금 잡기 불편한 지푸라기랄까요.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one)
스피로노락톤은 어떨까요? 스피로노락톤은 이뇨제로 사용되는 약입니다만, 통상적으로 이뇨제라고 얘기하는 푸로세마이드와는 달리 이뇨제로서는 아주 미약한 효과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의학에서는 이뇨제의 효과를 기대하고 쓴다기보다는 최근에는 RAAS라고 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너무 복잡한 기초생리에 대한 얘기라 간단하게만 얘기하자면, 체내에는 RAAS(Renin-Angiotensin-Aldosterone System, 레닌 안지오텐신 알도스테론 시스템)이라는 기전이 있습니다. 체내의 혈압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탈수를 보상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인데, 어떤 질환들의 경우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걸 막는 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심장병입니다. RAAS를 억제하는 약에는 여러가지고 있고, 스피로노락톤은 그런 약 중 하나인 셈이죠. 만약 이뇨제로 썼다면,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고, RAAS를 차단하는 용도로 썼다면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론적인 얘기라 경우에 따라서는 처방에서 빼버리는 것도 가능한 약입니다.
조금 더 복잡하게 풀어보자면, RAAS를 차단하기 위해 보통 퍼스트 초이스로 쓰이는 약은 ACEI(-프릴로 이름이 끝나는 약들)인데, 이 환자의 경우는 특이하게 ACEI를 먹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통상 스피로노락톤의 투약이 추천되는 경우는 이뇨제로서의 기능이 아주 미미한 수준(=이뇨제로는 효과를 기대하면 안되는 수준)이라 ACEI를 먹였는데, RAAS가 충분히 억압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입니다. (수의학 고급 과정인데, 이런 현상을 RAAS escape, 혹은 RAAS breakthrough라고 합니다) 스피로노락톤은 이런 RAAS breakthrough를 감안해 처방하는 약에 가깝죠.
실데나필(Sildenafil)
실데나필은 이 케이스에서의 처방이 조금 재밌는 약입니다. 실데나필은 통상 폐동맥 고혈압이 있는 경우, 환자가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실신같은 임상 증상을 보일 때 처방하는 약입니다. 실데나필은 수축된 폐동맥을 이완시켜서 폐동맥 고혈압의 임상 증상을 개선시켜주죠(=기절하던 애를 기절하지 않게 해줍니다). 폐동맥 협착증의 임상 증상도 흡사 폐동맥 고혈압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게 되는데, 아마 이전 병원에서는 그래서 처방한 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밌는 점은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의 수축 때문에 나타나는 병이고, 폐동맥 협착증은 판막의 구조적인 변화 때문에 나타나는 병이라는 부분입니다. 어느쪽이든 심장이 폐로 혈액을 뿜어내는 걸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결과가 비슷한 반면 원인은 다른 셈이죠.
실데나필은 폐동맥을 이완시켜주는 약이지, 좁아진 판막을 벌려주는 약이 아니라 폐동맥 협착증에서는 (증상이 비슷하고 심장 초음파 상에서 비슷한 지표들이 있다 하더라도) 지시되는 약이 아닙니다. 애초에 진단이 폐동맥 협착증으로 명확했던 상황이라면 먹을 필요가 전혀 없던 약이었던 거죠. 게다가 현재 먹고 있는 약들 중에서 가장 비싼 약이기도 합니다. (실데나필의 또 다른 이름은 비아그라인데, 이 약이 사람에서 쓰이는 다른 용도가 있다보니, 제네릭이 많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약값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죠)
그러면 벌써 환자가 먹는 약 다섯가지 중에 4가지가 사실은 필요 없거나, 안 먹어도 되는 약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조금 허탈해지는 부분이 있죠.
아테놀롤(Atenolol)
마지막 아테놀롤의 경우는 실제 폐동맥 협착증이 있는 환자에서 처방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약입니다. 폐동맥 협착증은 구조적으로 판막이 좁아지는 병이니 약으로 병 자체를 해결하긴 조금 어려운데 그래도 무언가 하나 약이 지시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게 바로 아테놀롤이죠.
아테놀롤은 폐동맥 협착증이 있으면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뿜어내는 게 힘들어지니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우심의 근육이 두꺼워지고 우심이 커지게 되는데, 그럴 경우 심근의 산소 소모량을 줄이고,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관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 처방할 수 있는 약입니다. 단, 늘 처방하는 건 아니고 우심의 심근비대 혹은 우심실의 비대가 명확할 때 처방하는 약이죠. 이 환자의 경우, 풍선 확장술을 했을 당시(대략 6년 전)에는 폐동맥 협착증 때문에 우심비대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아테놀롤의 처방이 환자에게 도움이 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풍선 확장술을 통해 어느 정도 협착을 완화시켜준 상태라면,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환자의 심장이 (아무래도 피를 뿜어내기가 수월해졌으니) 다시 얇아지고, 작아졌을 가능성도 있죠.
그래서 이 환자의 경우, 보호자분과 상의 후 심장 초음파를 보기로 했고, 오늘동물병원에서 본 환자의 심장 초음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심비대는 거의 없는 것에 가깝고, 우심의 심근벽이 다소 두꺼워져있는듯한 주관적인 느낌이 들긴하지만, 유의미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더 엄밀하게는 심실 중격의 벽 두께를 측정해서, 환자의 체중에 맞는 정상 범위와 비교해볼 수 있는데, 이 환자의 경우 5.45kg의 환자로 0.5-0.8cm 사이의 심실 중격 두께가 정상이나 측정시 0.9cm 정도가 나왔으니 조금은 두꺼워져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테놀롤은 폐동맥 협착 때문에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의 압력 차이(pressure gradient)가 많이 나게 되는 경우에도 고려해볼 수 있는 약입니다. 그래서 심장 초음파 상에서는 풍선 판막성형술 이후 현재 환자의 폐동맥 압력 경사를 확인해 봤습니다.
압력 차이는 폐동맥에서의 혈류 속도 측정을 통해서 판단하는데, 환자의 경우 폐동맥 혈류 속도가 정상(보통 1.3m/s 미만)보다 빠르긴 하나 속도가 너무 빠른(보통 3.8m/s 이상이면 심하게 빠르다고 봅니다) 수준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폐동맥 협착증으로 임상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게 아니면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두곤 하죠. 그래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처방 당시의 정확한 심장 상태는 알기 어려우나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아테놀롤도 환자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수의사 선생님들을 위해 조금 더 전문적인 얘기를 하자면, 환자의 소견서에는 처방 내역과 함께 소견서 작성 당시 심전도 검사에서 RBBB(Right bundle branch block, 우각차단)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강아지의 RBBB는 보통 강아지에서 심비대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 당시에는 심장이 어느 정도 컸을 수 있고, 아테놀롤 처방이 합리적인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자는 풍성 판막성형술을 한 이후로 폐동맥 협착증과 관련된 임상증상은 없이 살았습니다. 사실 이게 핵심인데, 임상 증상이 없는 폐동맥 협착증은 보통 치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 이미 그 지점에서 약이 사실은 필요 없을 환자일 가능성이 높겠구나…라고 추측할 수 있죠.
결국 보호자분께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드렸고, 지난 6년간 매일 하루 2번씩 먹어왔던 약을 끊는다는 게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약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약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약이라는 게 지난 시간 동안 낸 약값을 생각하면 허탈할 수도 있습니다만, 보호자분께서 잘 이해를 해주셨고, 환자는 현재 약 없이 별다른 임상증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약을 안 먹게 됐으니, 티가 더 안 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쨌든 같은 질환과 같은 환자를 두고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이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새로운 약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찾고,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약들을 제외하는 과정인 거죠. 이런 과정을 위해서는 질환과 약에 대한 내과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통은 수의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티가 잘 나지 않는다 뿐인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