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병원의 블로그라는 것이 아무래도 ‘이런 진료 케이스를 성공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했습니다’를 자랑하고 홍보하는 곳이다보니, 흥미로운 케이스라 하더라도 블로그에 올리기는 조금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진단과 치료가 모두 잘 되었어도 예후가 너무 불량하면 블로그에 글을 쓰기는 어렵죠. 학술 자료라면 예후가 극히 불량한 것도 정보가 될 수 있지만, 블로그는 학술 자료와는 다르니까요. 환자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쓰지는 않지만, 불량한 예후에 마음 아파하실 환자의 실제 보호자분을 위해서라도 블로그의 자료로 아주 불량한 예후의 케이스가 쓰이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준에서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암은 동물병원 블로그의 포스팅이 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암은 예후가 매우 불량하기 때문이죠.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에 생긴 종양은 대부분 악성 종양이고, 전이도 매우 잘 되는 공격적인 종양입니다. 통증도 심한 것으로 유명하고, 진단 시점에 이미 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문헌에 따라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진단 시점에서 이미 30-81%의 환자가 전이 케이스로 확인되기 때문에 제대로된 치료를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진단과 동시에 호스피스 치료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주 드문 종양이지만, 일단 생기면 이런 특징들 때문에 치명적이죠. 조금 오래된 논문이고, 환자의 수도 적지만, 악성 췌장 종양이 생긴 고양이 8마리를 살펴본 논문을 보면, 8마리 모두가 진단 후 7일 이내에 안락사를 하거나, 사망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병의 특징에도 췌장암에 대한 블로그 케이스 포스팅을 할 수 있는 건, 이번에 소개할 환자가 운이 정말 좋은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11살의 중성화한 암컷 코숏입니다. 최근들어 구토가 잦아지고, 먹는 양이 줄면서, 체중이 많이 빠졌다는 히스토리로 보호자분께서 오늘동물병원을 찾아주셨습니다. 원인을 알기 위해 기본적인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영상 검사를 진행했고, 이상한 점은 영상 검사에서 확인됐습니다. 뱃속에 뭔지 모를 커다란 덩어리가 있었고, 소장의 장벽이 다소 두껍게 확인되는 부분이 있었죠.


소장벽이 두껍게 확인되는 걸 다소 부차적인 문제라고 보면, 가장 주목해야할 건 복강 내 종양이었습니다. 초음파 검사에서 소장과의 연속성은 확인되지 않았고, 어느 장기의 유래인지가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는데(방광 거의 바로 앞), 사이즈가 꽤 컸습니다. 위치 상으로 림프절의 가능성이 가장 높을 거라고 생각되어서 고양이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림프종이 아닐까 의심하고, 세침 검사(FNA)를 진행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INTERPRETATION:
Consistent with neuroendocrine/endocrine epithelial neoplasia, please see comments
COMMENTS:
I cannot confirm aspiration of lymph node as there are only few lymphocytes but this could represent a lymph node nearly effaced by metastatic neoplasia.
Findings are suggestive of a neuroendocrine/endocrine epithelial tumor. Considerations include a carcinoid (primary or metastatic) or other metastatic tumor to this site including a pancreatic endocrine tumor (insulinoma or other), pheochromocytoma, carotid body tumor, thyroid adenocarcinoma, or anal sac adenocarcinoma. Discerning benign from malignant neuroendocrine/endocrine tumors is not possible based on cytology alone. Biopsy with histopathology is recommended for further assessment. Evaluation for evidence of metastasis (or a primary tumor which has metastasized to this site) is also recommended.
CYTOPATHOLOGIC DESCRIPTION:
2 smears are assessed. There are moderate to high numbers of neoplastic cells usually present in cohesive-appearing clumps which rarely exhibit acinar-like or palisading arrangements. Most of the cells have a bare nuclei morphology and are seen overlying a purple to blue cytoplasmic background with minimal nuclear streaming. The nuclei are round to occasionally ovoid and are usually about the size of a neutrophil. Rare karyomegalic cells are seen. The chromatin pattern is coarse to coarsely stippled with inconspicuous nucleoli. Low numbers of intact cells with similar appearing nuclei are present. These cells are round to polygonal and associated with scant to small amounts of purple to blue cytoplasm sometimes with few cytoplasmic vacuoles. There are low numbers of variably sized lymphocytes. There is moderate hemodilution. Leukocytes are likely otherwise present in numbers consistent with blood. No infectious agents are identified.
PATHOLOGIST:
Alyssa Brooker, DVM
Diplomate, 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Pathologists
IDEXX 세포학 검사 결과
결과만 놓고 보면 조금 웃기죠. 제가 ‘림프절인 것 같으니 확인해주세요’라고 했는데, 병리학자가 세포를 보고 “이거 림프절 아니란다”라고 얘기해준 셈이니까요. 병리학자가 의심하는 건 신경내분비 세포 유래의 무언가(neuroendocrine tumor)였습니다. 복강 내에서 신경내분비 세포가 나올 수 있는 장기로는 췌장이나 부신 같은 것들이 있으니 그런게 아닌지 재확인해보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세포학 검사만으로는 양성과 악성을 구분하기 어려우니, 조직 검사를 꼭 하라고 조언도 해줍니다.
췌장이나 부신 유래라 하더라도 처음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림프종이었다면(췌장이나 부신에서도 드물지만 림프종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세포학 검사를 통해 림프종이라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일단은 결과를 통해 림프종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면 종양의 유래를 명확하게 알고, 혹시나 악성일 경우, 수술을 해도 괜찮은지 전이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CT가 추천될 수 있었죠. 보호자분께 세포학 검사 결과에 대해서 설명드렸고, CT를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타원에 의뢰 검사로 진행된 CT 결과는 이렇습니다.



CT를 통해서 초음파에서 본 덩어리가 췌장 유래의 종양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 수 있었죠(이렇게 정답을 알고 초음파를 다시 보면, 췌장과의 연결성을 확인하게 되는 마법…). 추가적으로 다행히 명확한 전이 소견은 CT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간의 결절(nodule)이나 림프절의 경미한 비후는 전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지만, 이게 전이인지, 아니면 정말 CT 소견처럼 양성 병변인지는 조직 검사를 통해서만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종양의 유래를 알게 됐고, 명확한 전이 병변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수술이 추천됐습니다. 이 고양이의 운은 여기서 또 빛을 발하는데, 종양이 때마침 딱 수술하기 좋은 췌장의 좌측 다리(left limb)의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췌장 종양이 췌장의 몸통(body)이나 십이지장과 붙어있는 우측 다리(right limb)에 있으면 수술을 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수술을 하더라도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그렇지 않았죠.
다른 암들이 그렇듯, 췌장 종양도 크게 3가지 치료 옵션을 갖습니다. 수술, 항암(chemotherapy), 방사선 치료(radiation therapy)가 모두 옵션이 될 수 있죠. 이 중 췌장 종양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치료법은 수술입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제한적인 활용만을 갖습니다. 사람에서 하듯이, 젬시타빈(Gemcitabine)이라는 항암제를 보조적인 요법(adjunctive chemotherapy)으로 쓰거나, 카보플라틴처럼 선암종(adenocarcinoma)에 효과적일 수 있는 주사 항암제를 써볼 수 있죠. 최근에는 신경내분비 종양(neuroendocrine tumor)에 효과적이라는 얘기가 있는 토세라닙(=팔라디아)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췌장암은 항암제 반응성이 좋지 않은 종양으로 유명해서 수술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보호자분과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한 얘길 나눴고,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종양의 위치가 나쁘지 않아서 복강경으로 수술을 했죠.
종양의 크기 자체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강경을 이용해 수술하면 절개면이 작고, 환자의 회복이 일반적인 개복 수술에 비해서 더 빠릅니다(실제로 이 환자는 수술 당일에 퇴원했습니다). 떼어낸 종양과 수술 부위 사진은 이렇습니다.


떼어낸 췌장 종양은 당연히 조직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는 이렇습니다.
MICROSCOPIC INTERPRETATION:
Pancreas:
1. Pancreatic adenocarcinoma.
– Mitotic count (per 2.37 sq mm): 2
– Histologic margins: The margins of the neoplasm multifocally abut the regional margin in the examined sections. Excision appears narrowly complete by the tumor margins.
– Vascular invasion: Not observed
2. Necrotizing pancreatitis, marked, multifocal.
3. Atypical lymphoid proliferation.
COMMENTS:
Additional trimmed sections of the pancreas contain features most suggestive of a histologically well-differentiated pancreatic adenocarcinoma (additional information below). It is undetermined whether the described lymphocytic population is inflammatory or a component of small cell lymphoma. Immunohistochemistry is recommended if further investigation is desired (ordering information below). Depending on the results of the immunohistochemistry, subsequent PCR for antigen receptor rearrangement (PARR/clonality) may ultimately be advised for further characterization. In some cases, these advanced diagnostic tests may still yield inconclusive results.
–
Feline pancreatic adenocarcinoma are most commonly solitary masses, but can also occur multifocally or diffusely infiltrate the pancreas. Metastatic disease is present in up to 80% of cats at diagnosis. Extension into the small intestine and distant metastasis to the liver are most frequent with nodal and pulmonary metastasis also common.
–
Immunohistochemistry is available to further differentiate this neoplasm if desired, and can be performed at IDEXX Laboratories for an additional fee. If you wish to pursue immunohistochemistry in this case, please contact Customer Support with the information provided below. Please note, additional immunohistochemical stains may be required if the listed stains are negative.
(For lab use only: IHC antibodies – CD3, Pax5, Pancytokeratin; feline, Block A; US code 6973, Canada code IHC 3)
PATHOLOGIST:
Michael Zinn, DVM
Diplomate, 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Pathologists
IDEXX 조직 검사 결과
예상했던 것처럼 췌장 선암종(=가장 흔한 췌장암)이 확인됐고, 동반되는 괴사성 췌장염(necrotizing pancreatitis)과 비정형적인 림프 증식(atypical lymphoid proliferation)도 함께 확인됐습니다. 비정형적인 림프 증식은 이 케이스에서 추가적으로 생각할거리를 던져줬는데, (부차적인 걸로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처음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됐던 소장벽의 비후를 고려하면) 소화기 림프종(small cell lymphoma)이 췌장으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까지 고민이 필요했죠.
환자는 길냥이 출신으로 성수동에 있는 카페의 꽁밥을 먹고 있는 복 받은 길냥이인데, 그렇다보니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비용적인 부분과 향후 치료를 진행할 때 (카페 업장에서 지내는 아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항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지속적으로 보호자분과 있었습니다. 사실, 비용적인 부분을 감안하지 않아도 괜찮고, 추가적인 항암까지 진행하는 계획이 뚜렷했다면, 아마 수술 계획이 달라졌을 환자였죠. 소장벽 비후와 CT 상에서의 전이 가능성(양성 병변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전이를 배제하지 못하는 간 병변과 림프절 비후가 있었습니다)을 고려해서 작게 째는 복강경 대신 배를 크게 열고, 배를 연 김에 장 생검도 하고, 간 생검, 림프절 생검까지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현실적인 제약은 수술 플랜뿐만 아니라 조직 검사에서 비정형적인 림프 증식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면역조직화학 검사(IHC, Immunohistochemistry)를 추가로 하면, 이게 림프종인지, 아니면 염증 때문인지를 알 수 있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항암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IHC를 할 필요는 (예후 판단 차원 외에) 딱히 없었죠(예후 판단만을 추구하기에는 IHC는 조금 많이 비싼 검사였고요).
IHC를 하지 않았고, 간이나 림프절로의 전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지만, 췌장암 환자가 수술까지 하고, 심지어 수술 후 회복도 수월하게 하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닙니다. 보통 진단과 동시에 호스피스 상담을 하는 게 일반적인 병이니까요. 몇 가지 100퍼센트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있지만, 이 정도 조직 검사 결과만 나온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관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얘기도 해볼 수 있습니다.
전이가 없이 잘 떼어낸 췌장암의 경우, 췌장암이 예후가 아주 불량하다는 걸 감안해서 보조적인 항암 치료까지 해야하느냐에 대한 부분은 이렇다할 데이터가 있지는 않습니다(애초에 췌장 종양은 드물고, 그 중에서도 전이가 되지 않은 케이스는 더 드무니까요). 하지만 참고해볼만 논문이 하나 있긴 합니다. 2018년 JAAHA에 올라온 논문입니다. 전이가 없이 수술을 잘 마친 췌장암 환자들의 수술 이후 예후를 확인해본 논문이죠.


전이가 확인되지 않았고, 췌장암에서 항암 치료의 효과가 명확치 않다고는 해도, 예후가 불량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양이다보니 대부분의 수의사들이 보조적인 항암 치료를 선택했습니다. 9마리 중에서 6마리가 (약의 종류는 각각 다르지만) 항암 치료를 추가적으로 했고, 나머지 3마리 중에서도 1마리는 스테로이드를 먹었죠. 이런 케이스들은 평균 1년 정도를 살았는데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운 데이터지만) 개중에는 추가적인 항암 치료 없이 꽤 오래(755일) 산 케이스도 있죠.
이 환자 같은 경우는 항암을 옵션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항암 없이 모니터링 정도만 하게 되겠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일단 수술까지 했다면, 너무 비관적이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췌장에서 확인된 비정형적인 림프 증식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항암제가 아니더라도 small cell lymphoma 가능성을 고려해 (장벽 비후도 있으니) 스테로이드 정도를 꾸준히 먹이면서 임상 증상을 살피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을테고요.
췌장암에 대해서 수의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상당히 적습니다. 흔하지 않고, 치료까지 가는 경우도 별로 없는데, 데이터라고는 그냥 예후가 몹시 불량하다 정도의 얘기만 있죠. 포스팅을 하기 전 다른 동물병원 블로그에 소개된 내용이 있나 찾아봤는데, 역시나 나쁜 예후와 적은 데이터 때문인지 글이 거의 없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췌장 종양 케이스를 언제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글이 췌장암을 진단받은 강아지 고양이의 보호자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