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소개/먹는 약 줄여보기: 강아지 복합
케이스

먹는 약 줄여보기: 강아지 복합 질환(특발성 발작 외)

똑같은 질환과 똑같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수의사에 따라 어떻게 약 처방이 달라질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나름의 시리즈물인 “먹는약 줄여보기” 세번째 편입니다. 블로그를 뒤져보니 두번째 편을 작년 5월에 썼더군요. 진료를 보는 수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케이스들이 꽤 흥미로운데, 사실 이렇게 포스팅까지 쓸만한 약 줄이는 케이스들이 그리 많지 않은 탓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볼 환자는 다양한 병원들을 다니면서 이미 대부분의 진단 검사를 해서 환자의 상태에 관해 거의 모든 진단이 나와있는 케이스였습니다. 환자는 13살의 중성화한 암컷 포메라니안인데, 어떤 질환이 있는가를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1. 특발성 발작 (국소적인 발작 증상을 보임. MRI까지 촬영해서 진단)

  2. IVDD(통칭 디스크, Intervertebral Disk Disease, MRI로 진단)

  3. IBD(염증성 장질환, Inflammatory Bowel Disease, 조직검사를 한 건 아니고, 스테로이드 약물 반응을 토대로 가진단)

  4. PSOM(Primary Secretory Otitis Media, 원발성 분비성 중이염, MRI로 확인하고, 배양 검사까지 해서 정석대로 진단)

이 외에도 노령견이다보니 이런저런 잡다한(?) 질환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크게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해한다고 생각되는 병은 위에 언급된 4가지였습니다. 약 줄이기 포스팅이니, 처음 이 환자가 오늘동물병원을 내원했을 때 먹고 있었던 약들을 쭉 나열해보죠.

  • 페노바비탈

  • 조니사마이드

  • 레베티라세탐

  • 가바펜틴

  • 아만타딘

  • 메토카르바몰

  • SAMe

  • UDCA

  • 실리마린

  • 프레드니솔론(PDS)

  • 베스타제

  • 에스오메프라졸

  • 파모티딘

  • 세레니아(환자 상태를 보고 필요할 때만 복용)

종류로만 일단 14가지였는데, 오늘동물병원에 내원했을 때 먹고 있던 약이 이랬고, 그 이전에는 모사프리드나 머타자핀 같은 약을 먹었던 적도, 바쏘드 같은 약이라고 하기 조금 민망한 보조제들도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보호자분은 오늘동물병원을 검색해서 찾아오셨다기보다는, 먼 곳에 있는 기존 병원으로 내원이 쉽지 않으니, 처방 내역을 가지고 가까운 오늘동물병원에서 동일한 약을 처방받고자 내원하신 케이스였죠. 페노바비탈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간혹 동네 병원에서는 처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페노바비탈 처방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오신 경우였습니다. 보호자분의 생각과 다르게 오늘동물병원은 처방을 보고 동일하게 약만 처방해드리지는 않아서, 처방을 바꾸겠다는 얘기에 처음엔 조금 당황하신듯 싶었으나, 설명을 듣고 다행히 오늘동물병원의 처방 방침을 잘 이해해주셨습니다.

약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환자의 증상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고 갈 필요가 있을듯 싶습니다. 환자는 전신적인 대발작보다는 약간 틱 증상 같은 국소적인 발작 증상을 보이면서, 목 부분을 아파한다는 히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식욕이 조금 떨어질 때가 있고, 간헐적인 구토 증상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소화기 증상이니, 크게 보자면 환자는 신경계 증상(발작과 목 통증)과 소화기 증상을 가지고 있었죠. 증상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이 환자의 신경계 증상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환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왜 나타나는가를 여러 질환이 아니라 하나의 질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었죠.

  • 특발성 발작: 발작을 유발할 수 있음.

  • IVDD: 목 통증을 유발할 수 있음.

  • PSOM: 목 통증과 발작을 모두 유발할 수 있음.

PSOM은 단두종에서 주로 생기는 중이염으로 왜 생기는지 잘 모르지만, 감염이 원인이 아닌데 생기는 중이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킹찰스 스파니엘이나 보스턴 테리어, 프렌치 불독, 퍼그 같은 품종에서 잘 생기죠. 이 질환이 흥미로운 건 사실 PSOM 하나만으로도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신경 증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특발성 발작 같은 경우는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들이 다 배제가 된 후에 “특발성”이라고 진단을 내리게 되는 부분이니,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환자가 PSOM 때문에 발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딱 잘라 특발성 발작이라고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전신적인 대발작을 하는 환자에서 발작의 원인을 PSOM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국소적인 발작(focal seziure)이라면 PSOM이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가 어려우니까요.

디스크(IVDD) 같은 경우는 MRI에서 디스크 탈출이 확인됐으니 IVDD가 목 통증의 원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PSOM도 목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목 통증의 원인은 IVDD일 수도, PSOM일 수도 있는 거죠(혹은 둘 다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국소적인 발작 증상이나 목 통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PSOM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PSOM을 치료해보고 증상이 남아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PSOM은 고막절개술(myringotomy)를 이용해 중이 내의 점액을 제거해서 치료가 가능한 질환입니다. 반복적인 마취와 고막절개술이 필요할 수 있지만, 어쨌든 약이 아니라 물리적인 제거 시술을 통해 치료하는 질환이죠. 예후도 나름 좋은 편에 속하고요.

그래서 사실 이 환자에게 제일 먼저 추천이 됐던 부분은 고막절개술을 통해 PSOM을 치료하는 것이었습니다. PSOM을 치료하고 발작이나 통증 증상이 사라진다면, 소화기 질환 때문에 먹는 약들을 제외하고 다른 약들을 다 끊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호자분께서 이미 PSOM 치료를 위해 몇 년 전에 고막절개술을 한 번 했었는데, 한 번에 완전히 낫지 않았고, 현재는 환자의 나이 때문에 반복적인 마취 가능성이 꺼려진다고 하셔서, PSOM이 동일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호자분이 인지를 하시되, 일단은 특발성 발작과 IVDD가 증상의 원인이라고 보고 약물적인 관리를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호자분과의 상담은 몹시 중요하데, 첫번째는 잘 낫지 않았을 때 수의사에게도 도망갈 구멍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두번째는 약물 반응이 좋지 않을 때 다른 방향으로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는 옵션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PSOM이라는 복병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서 이 환자의 먹는 약 줄이기는 특발성 발작과 IVDD, IBD를 토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환자가 먹는 약들이 어떤 질환 때문에 먹는지 카테고리를 구분해 보죠.

특발성 발작

페노바비탈, 조니사마이드, 레베티라세탐, 가바펜틴

IVDD(디스크)

가바펜틴, 아만타딘, 메토카르바몰

IBD(염증성 장 질환)

프레드니솔론(PDS)

위장약 및 간보호제

SAMe, UDCA, 실리마린, 베스타제, 에스오메프라졸, 파모티딘, 세레니아

이 질환들 중에서 IBD는 가진단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약물 관리가 프레드니솔론 단일 약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약을 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위장약으로 처방된 베스타제, 에스오메프라졸, 파모티딘, 세레니아 같은 약들이 소화기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IBD 환자에서 가장 결정적인 약을 고르자면 아무래도 스테로이드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프레드니솔론은 변경 없이 기존에 처방되던 용량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특발성 발작은 어떨까요? 사실 특발성 발작과 관련된 항경련제들이 보호자분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부분이었는데, 그건 레베티라세탐이라는 약이 하루 3번의 투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도 하루 3번 약 챙겨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강아지 약을 하루 3번 먹이는 건 더욱이나 쉬운 일이 아니죠. 다행히 이 부분은 약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꽤 많았습니다.

예전에 특발성 발작에 대한 케이스 포스팅을 올리면서, 항경련제 처방은 monotherapy(단일 약물로 발작을 관리)가 중요한 원칙이라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항경련제를 여러 종류 먹이는 것은 단일 약물로 발작이 충분히 컨트롤되지 않았을 때 뿐이죠. 이 환자의 이전 진료 기록을 보면, 처음 발작 증상을 봤을 때부터 여러 종류의 항경련제를 동시에 처방받았고, 약의 용량 조절도 혈중 약물 농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환자의 임상 증상을 토대로 이루어졌더군요. 이런 경우라면 약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습니다.

페노바비탈, 조니사마이드, 레베티라세탐 중에서 어떤 약물을 하나의 약물로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해 보호자분과 상담이 이루어졌고, 장기 관리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유지가 가능한 페노바비탈을 최종적으로 남겨놓을 약물로 결정했습니다. IBD에 의한 식욕부진이 임상증상으로 있었던 환자였기에, 페노바비탈의 식탐을 늘리는 부작용을 활용해서 향후 스테로이드를 중단할 가능성까지 고려해 선택했죠.

항경련제를 줄이는 과정에서 다시 발작을 하는 건 보호자분과 수의사 모두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은 점진적으로 줄여나갔습니다. 처음에는 페노바비탈과 레베티라세탐을 남겨두되, 조니사마이드를 중단했고, 조니사마이드를 중단한 상황에서 페노바비탈의 혈중 농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니터링해나갔습니다. 레베티라세탐을 남겨둔 건 페노바비탈의 혈중 농도가 충분히 높지 않은 상황에서 레베티라세탐까지 한 번에 끊었다가 발작을 다시 할 상황을 걱정해서였죠. 어쨌든 약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작 재발의 리스크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가능하면 안 할 수 있도록 해야하니까요. 조니사마이드를 중단하고, 기존에 처방받던 용량대로 페노바비탈을 먹인 후 2주차(=steady state가 됐을 때라고 하죠)가 됐을 때, 환자의 페노바비탈 혈중 농도는 다음과 같습니다(다행히 2주 동안은 레베티라세탐 덕분인지 발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항목

조니사마이드 중단 후 2주차의 결과

치료 농도

Phenobarbital

19.7 mcg/mL

15 – 45 mcg/mL

(이상적인 수준 20-30 mcg/mL)

치료 농도 안에 들어가 있는 수치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리 높지는 않은 수치가 나왔죠. 이상적으로는 30mcg/mL에 혈중 농도를 맞춰놓는 게 페노바비탈의 부작용 리스크를 줄이면서 발작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보니, 약을 조금 더 증량하는 게 어떨까 싶었죠. 처음 먹던 용량이 2.5mg/kg이었는데, 이걸 3.8mg/kg으로 증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주 후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항목

조니사마이드 중단 후 2주차의 결과

페노바비탈 증량 후 2주차

치료 농도

Phenobarbital

19.7 mcg/mL

20.1 mcg/mL

15 – 45 mcg/mL

(이상적인 수준 20-30 mcg/mL)

약을 충분히 증량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미미한 정도만 혈중 농도가 올라갔습니다. 조니사마이드와 페노바비탈은 서로의 약물 대사에 영향을 주는 약이기 때문에 중단한 조니사마이드의 영향일 수도 있고, 다른 게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 번 더 증량을 해봄직한 여지가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5.6mg/kg으로 페노바비탈을 한 번 더 증량했고, 증량 후 2주차가 됐을 때 또 한 번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항목

조니사마이드 중단 후 2주차의 결과

페노바비탈 증량 후 2주차

한 번 더 페노바비탈 증량하고 2주차

치료 농도

Phenobarbital

19.7 mcg/mL

20.1 mcg/mL

32.5 mcg/mL

15 – 45 mcg/mL

(이상적인 수준 20-30 mcg/mL)

아주 살짝 수치가 높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죠. 페노바비탈을 아주 조금만 감량하기로 하고, 페노바비탈의 용량을 최종적으로 정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이제 레베티라세탐을 끊어보는 시도를 할 수 있었죠. 발작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농도에 페노바비탈을 맞춰놨으니, 이 상태에서 레베티라세탐을 중단하고 발작을 하는지 살펴보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보호자분께서는 처음에 레베티라세탐을 중단하는 걸 조금 겁내셨으나, 다행히 어떤 식으로 발작 관리가 이루어져야하는지 잘 이해를 해주셨고, 레베티라세탐까지 중단을 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는데, 환자는 레베티라세탐 중단 이후에도 발작 없이 페노바비탈만으로 발작을 하지 않고 잘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 일단 이 과정에서 조니사마이드와 레베티라세탐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이 몹시 비싼 약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많은 의료비가 절감된 셈이죠.


발작약에도 속해 있고, 디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진통제에도 속해있는 가바펜틴은 어떨까요? 가바펜틴은 약하지만 항경련제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고, 디스크 같은 질환에서 보게 되는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죠. 어느 쪽이든 효과가 결정적인 약이 되기는 어렵지만, 부가적으로 메인 약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가바펜틴은 끊기보다는 유지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죠.

다만 오늘동물병원에서는 약간의 엣지(?)를 주기 위해 이 약을 프리가발린이라는 비슷한 약으로 변경했습니다. 프리가발린은 가바펜틴과 구조적으로 거의 유사한 약입니다만, 가바펜틴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둘다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약동학(pharmacokinetic)에 있습니다. 프리가발린이 가바펜틴에 비해 경구제로 썼을 때 조금 더 생체이용률(bioavailability)이 좋고, 반감기도 길어서 몸에 오랜 기간 남아있죠. 이 케이스에서 프리가발린을 가바펜틴에 우선한 건 진통제로의 작용보다는 항경련제로의 작용 때문입니다. 프리가발린이 가바펜틴보다 더 우월한 항경련제라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가바펜틴은 약 용량을 증량해도, 몸에서의 약물 농도가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논문을 보면, 가바펜틴은 일정 수준 이상 용량을 늘리면 생체이용률이 60%에서 47% 정도로 떨어지는 문제가 있는데, 그래서 용량을 늘려도 효과가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을 수 있죠. 반면 프리가발린은 용량을 늘리면, 혈중 농도가 그에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약 용량을 증량할 때 효과도 비례해서 늘어날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는 건 다양한 약을 조합해서 쓰게 되는 통증 관리에서는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있지만, 항경련제로 쓸 때는 장점이 됩니다. 페노바비탈 하나로만 발작을 관리하기로 했고, 프리가발린이 항경련제로는 지푸라기일 수 있지만, 약 용량을 늘렸을 때 적어도 두꺼운 지푸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디스크의 진통제로 쓴 다른 약들은 어떨까요? 먼저 아만타딘 같은 경우는 딱 가바펜틴 정도의 에비던스를 가지고 있지만, 만성 통증을 관리할 때 오늘동물병원에서도 즐겨 처방하는 약입니다. 신경병성 통증을 관리할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에비던스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큰 부작용이 있지는 않은 약이라 NSAID 같은 효과 좋은 진통제를 처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찾게 되는 약이죠. 이 환자의 경우는 IBD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먹고 있는 중이었으니, NSAID를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때 만성 통증 관리를 위해서 가바펜틴(프리가발린)이나 아만타딘 같은 약들은 나쁘지 않은 옵션이 되죠. (강아지와 고양이에서는 스테로이드와 NSAID를 병용하면, 위장관 궤양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습니다.)

메토카르바몰은 어떨까요? 메토카르바몰은 진통제라기보다는 근이완제로 사용하는 약입니다. 디스크 질환에서 메토카르바몰의 효능은 꽤나 애매한데, 통증을 관리하는 효과는 없는 반면, 통증 때문에 근육이 경직되면 그래도 근이완제를 주는 게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해주지 않겠냐고 하는 수의사도 있고, 근이완제를 주면 근육이 척추를 잡아주는 역할이 떨어지니까, 디스크 탈출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고 하는 수의사도 있죠. 실제 어떤 논문을 토대로 메토카르바몰이 효과적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수의사의 선호에 따라 처방하게 되는 약이라는 거죠. 오늘동물병원 같은 경우는 근이완 효과가 필요하다 생각되는 경우에는 원내에서 근이완 효과를 내는 주사제(벤조 계열의 주사제들)를 사용하고, 장기간 메토카르바몰 같은 근이완제를 처방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디스크 환자들에게 근육 경직은 통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근이완제를 이용해서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되, 장기적으로는 통증 관리를 해서 근이완제의 필요성을 없애는 쪽의 치료를 한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게다가 근이완은 굳이 약이 아니더라도 마사지나 온찜질 같은 비약물적인 방법으로도 접근이 가능한 부분이 있어, 굳이 약을 장기간 먹일 이유가 크지 않죠. 경험적으로 이런 처방이 크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큰 이득이 되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장기 처방을 선호하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 잘못된 처방은 아니지만, 빼도 괜찮은 처방이랄까요.


마지막 카테고리인 위장약 및 간보호제를 다시 한 번 리스트업해보죠.

  • SAMe

  • UDCA

  • 실리마린

  • 베스타제

  • 에스오메프라졸

  • 파모티딘

  • 세레니아

이걸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SAMe, UDCA, 실리마린은 간보조제에 해당하고, 나머지 약들은 위장약에 해당합니다. 이 중에서 (이미 이전 병원 마지막 처방에서 구토가 없다고 생각되어 중단한) 세레니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약들을 살펴보죠.

제일 먼저 쉽게 제낄 수 있는 건 베스타제입니다. 이전의 약 줄이기 포스팅에서도 했던 얘기이지만, 소화효소제는 쓸모가 거의 없는 약에 가깝습니다. 그 때 했던 얘기를 그대로 옮겨보죠.

베스타제는 어떨까요? 베스타제는 비오디아스타제와 셀룰라제, 리파아제를 성분으로 하는 소화효소제입니다. 어떤 병에 쓰는 약이 아니고, 그냥 소화효소제를 합쳐놔서 속쓰리지 말라고 주는 약에 가깝죠. 소화효소제를 추가로 더 먹는다고 소화 효소 분비 기능에 별 문제가 없는 강아지 고양이가 속이 덜 쓰릴까는 아마 영영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처방이 추천되지는 않지만) 같은 목적으로 처방되는 파모티딘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약리 효과가 명확한 반면, 베스타제는 그런 것마저도 없습니다. 최근에는 제스타제라고 동물용으로 나오는 동일 성분의 약품도 있던데, 약이지만 적응증이 없는 약이랄까요. 가끔 타병원 처방에서 이런 약을 보게 되면, 아무런 고민없이 그냥 빼버리게 됩니다. 약을 빼도 환자에게 1도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99.9%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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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오메프라졸과 파모티딘 같은 제산제는 어떨까요? 제산제를 루틴하게 속 쓰리지 말라고 처방하는 것이 썩 추천되지 않는다는 건 역시나 이전 포스팅에서 했던 얘기입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볼만한 건 파모티딘을 에스오메프라졸(Proton Pump Inhibitor라는 계통에 속하는 제산제, 흔히 PPI라고 얘기함)과 함께 처방하는 건 어떤 근거가 있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디테일하게 약을 처방하는 선생님들 중에는 그런 처방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PPI가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4-5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니 그 시간 동안 위산 분비를 억제하기 위해 파모티딘을 함께 섞어서 처방하다가 PPI가 최대 효과를 낼 때쯤에는 파모티딘을 빼버리는 식의 처방을 하는 거죠.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식의 치고 빠지는(?) 처방을 하거나 파모티딘과 PPI를 동시에 처방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2018년 공개된 ACVIM 위장관 보호제 사용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에서는 파모티딘이 속하는 H2 Blocker 계통의 약물과 에스오메프라졸이 속하는 PPI를 함께 처방하지 말라는 얘길 하죠. 둘을 조합하는 게 별 도움이 된다는 에비던스가 없거니와, 동시에 H2 blocker가 PPI의 효능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2018년 ACVIM 위장관 보호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한 줄 요약하자면 “필요할 땐 다른 약 말고 PPI를 처방하는 게 정답이고, 쓸데없는 곳에 위장관 보호제 좀 처방하지 말아라”에 가까운데, 그래서 가이드라인을 따라 오늘동물병원은 늘 타성에 젖은 위장관 보호제 사용을 경계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지막은 간 보조제입니다. 보호자분들 사이에서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혹은 간독성이 있는 페노바비탈 같은 약을 먹으면 간보조제를 반드시 같이 먹여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건너건너 들은적이 있습니다. 스테로이드를 처방했는데, 간보호제를 처방하지 않는 병원이면 거르라는 얘기가 있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죠. 정말 그럴까요? 스테로이드 처방을 할 때 간보조제를 함께 처방하는 건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어느정도는 관성을 따르는 처방입니다만, 실제 간보조제가 스테로이드나 페노바비탈에 의한 간 손상을 예방해주거나 보호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에비던스가 아주 희박합니다.

논문을 한 번 보죠.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주 루틴하게 스테로이드에 기계적으로 뒤따르는 간보조제(SAMe, 실리마린, UDCA) 처방을 보게 되는데, 관련된 논문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나마 하나 찾을 수 있는 것 중에 2005년 고용량 스테로이드 처방에서 SAMe가 실질적인 부작용 경감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얘기가 있죠.

논문의 결론을 보면, SAMe가 스테로이드로 인한 산화적인 손상을 일부 경감시켜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스테로이드에 의한 간의 임상병리학적인 변화나 조직학적인 변화를 막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길 합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면, 디테일하게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SAMe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큰 틀에서는 SAMe를 먹으나 안 먹으나 별 차이 없더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고민이 됩니다. 도움이 된다는 명확한 에비던스가 없다면, 굳이 조제약의 양을 늘리고, 비용을 늘리게 되는 이런 간보조제들을 처방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죠. 간보호제를 스테로이드와 함께 처방하지 않은 병원이 걸러져야 할 일이 아니라 간보호제를 스테로이드에 기계적으로 붙여서 처방하는 병원에서 왜 같이 처방을 했는지 해명을 해야되는 일이 되는 겁니다.

오늘동물병원은 이런 이유로 스테로이드를 처방한다고, 혹은 페노바비탈을 처방한다고 간보호제를 기계적으로 붙여 처방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된다는 에비던스가 명확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니까요. 다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UDCA는 담즙분비를 원활하게 하는 “처방약”이니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처방하지 않겠지만, SAMe나 실리마린은 통상 보조제로 판매되는 것들이죠. 대부분의 간 보조제에는 SAMe와 실리마린의 주요 활성 성분인 실리빈이 들어있습니다. 흔히 많이 판매되는 데나마린, 새밀린, 사메탑, 젠토닐 같은 보조제들이 다 그렇죠.

이런 보조제는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비싸다는 게 문제지만, 먹이는 게 크게 처방약의 약효를 저해하지도 않고, 환자에게 해가 될 일도 없죠.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줄여준다는 근거가 빈약한 반면, 먹어서 도움이 될 가능성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니, 오늘동물병원의 경우는 이런 간 보조제를 먹이느냐 마느냐를 보호자분이 선택하실 수 있게 합니다. 약 먹이는 게 힘들고, 비용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안 먹인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고,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챙겨주고 싶다면 먹이시라고 말씀드리죠.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느쪽으로 보더라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보호자분에게 투약 여부를 결정하실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약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다시 한 번 처음 먹었던 약들을 보고, 제외한 약들에 줄을 그어보죠.

  • 페노바비탈

  • 조니사마이드

  • 레베티라세탐

  • 가바펜틴 > 프리가발린으로 변경

  • 아만타딘

  • 메토카르바몰

  • SAMe

  • UDCA

  • 실리마린

  • 프레드니솔론(PDS)

  • 베스타제

  • 에스오메프라졸

  • 파모티딘

  • 세레니아(환자 상태를 보고 필요할 때만 복용)

총 14가지의 약 중에서 4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10가지의 약을 모두 빼버렸습니다. 비싼 약들(조니사마이드, 레베티라세탐, SAMe, 에스오메프라졸, 세레니아)이 다 빠졌으니, 약값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고, 하루 3번 투약이 필요한 레베티라세탐이 빠졌으니, 하루 2번으로 투약 횟수를 줄일 수도 있게 됐습니다. 강아지 약 먹이느라 사라졌던 보호자분의 사회생활이 생겼고, 환자도 매번 양 많은 약을 어렵게 먹지 않아도 괜찮아졌죠. 약을 줄였지만, 환자는 발작을 하지도, 그렇다고 통증을 더 느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발작을 한다거나, 통증을 느꼈을 때, 프리가발린의 용량 변경을 옵션으로 둔다든가, 다른 항경련제를 덧붙인다든가 하는 옵션까지 열어둘 수 있게 됐죠.

약을 안 먹던 강아지 고양이를 두고, 앞으로 꾸준히 약을 먹여야 한다고 보호자분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약을 먹이고 싶지 않은 건 모든 보호자분들의 마음이 다 똑같죠. 하지만 수의사 입장에선 사실 약을 먹여야 한다고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약을 끊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기존에 먹던 약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은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면, 괜히 약을 바꾸거나 끊었다가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이 약에 쉽게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으시죠. 수의사 입장에서도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기도 하고요. 이 케이스의 경우에는 환자의 임상증상이 잘 관리가 안돼서 처방을 바꿨다기보다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어서 처방을 바꾼 것에 가깝습니다. 보호자분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수의사의 설득을 충분히 이해하신 덕에 이렇게 할 수 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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