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질환, 똑같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수의사에 따라 처방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나름의 시리즈물인) 먹는 약 줄여보기 두번째 편입니다. 아무래도 실제 케이스 얘기를 하다보니 자주 쓰기가 쉽지 않네요. 이번 환자는 고양이 심장병 환자입니다. 7살의 중성화한 수컷 코랏으로 히스토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1년 전쯤 집 근처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했는데, 심장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으셨습니다. 심장이 안 좋다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심장을 조금 더 잘 본다는 병원을 찾아가서 진료를 보셨고, 당시에는 항혈전제 정도만 복용하면 될 것 같다고 얘길 들으셨습니다. 이후 항혈전제만 먹이면서 관리를 했었는데, 최근에 정기 검진에서 방사선 상 폐수종이 의심된다며 이뇨제 주사를 맞고 이뇨제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뇨제 복용 이후에도 방사선에서 확인된 폐 병변이 개선이 없어 이뇨제를 계속 먹이는 게 맞나 싶어 보호자분께서 상담을 위해 오늘동물병원을 찾아주셨습니다. 먹는 약을 어떻게 줄이느냐를 보는 포스팅이니, 오늘동물병원에 첫 내원을 했을 당시 환자가 먹고 있던 약이 어떤 약이었는지 먼저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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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모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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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로세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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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로노락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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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피도그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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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시사이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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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플록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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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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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토클로프로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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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모티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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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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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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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롬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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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틸시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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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린
약만 먹어도 배부르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종류로만 총 14가지 약을 먹고 있었죠. 심장 진료를 보는 병원과 보호자분 집과의 거리가 멀어서 처방 내역을 토대로 집 근처 병원에서 약을 받아 먹이고 있으셨는데, 이 병원에서 하나, 저 병원에서 하나씩 약을 쌓아가다보니 14개라는 말도 안되는 갯수의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 약을 대충 카테고리로 구분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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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약 |
피모벤단, 푸르세마이드, 스피로노락톤, 클로피도그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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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
독시사이클린, 마보플록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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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염약 |
브롬헥신, 아세틸시스테인, 테오필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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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약 및 기타 |
세레니아, 메토클로프로마이드, 파모티딘, 베스타제,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
이렇게 구분해놓고 보면 이 환자는 약만 놓고 봤을 때 (위장약 및 기타약들을 제외하고 보자면) 심장병이 있고, 무언가 세균성 감염이 있으면서 기관지쪽의 문제가 있는 환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항생제랑 기관지염약을 한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세균성 기관지염이 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심장약에는 이뇨제인 푸로세마이드가 처방되어 있으니, 폐수종이 있었던 환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약만 놓고 보면 몹시 복잡해보이는 환자인데, 심장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죠.
처음 이 보호자분이 심장 쪽 평가를 했을 당시(=항혈전제인 클로피도그렐을 처방받았을 때, 대충 1년 전)의 차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일부만 발췌).
LA 15.5mm, LA/Ao 1.6, end diastolic LV wall thickness 4.6-7.9mm
HCM ACVIM Stage B1
어려운 심장초음파 용어가 나오니, 쉽게 풀어쓰자면, 이완기 말의 심근 두께가 6mm를 넘어가는 부분이 확인되니 비대성 심근병증(HCM)이라고 진단 가능한데, 좌심방의 직경(LA 15.5mm)이나 LA:Ao ratio 같은 지표를 볼 때는 좌심방 비대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Stage B1의 환자라는 얘기입니다. 보호자분께서는 이 당시 상담 후 클로피도그렐(항혈전제)를 처방받아서 먹이셨다고 했는데, 고양이의 심근병증에 대한 ACVIM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에서는 뚜렷한 좌심방 비대가 확인되는 Stage B2의 환자가 아니라면 클로피도그렐 투약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폐수종이 확인됐다는 최근의 차트에선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1년이 지났고, 폐수종이 발생했을 정도니 아마 심장이 더 커졌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겠죠. 헌데 차트에는 좌심방의 직경이 15mm에서 16mm로 커졌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뇨제를 투약해야할 정도의 폐수종이 방사선에서 확인됐는데, 그런 것치고는 겨우 1mm 증가한 것이니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죠. 실제로는 좌심방의 직경이 몇 mm나 되어야 크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면, 좌심방이 얼마나 커져야 B1이 아니라 B2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강아지의 경우는 MMVD에서 Stage B1과 B2를 나누는 기준이 대략적으로 있죠. LA:Ao ratio가 1.6 이상이어야 하고, LVIDDn이 1.7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는 고양이에서는 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냥 좌심방이 크면 폐수종과 혈전색전증(FATE)의 가능성이 높아지니 B2라고 얘기합니다. 크다는 게 얼마나 큰 걸 얘기하는지 알려주지 않죠.
그럼 이런 가이드라인 말고, 통상적으로 누구나 크다고 인정할만한(=수의사에 상관없이 Stage B2라고 인정할만한) 좌심방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2021년 JFMS에 올라온 리뷰 논문에 이런 언급이 대략적으로 나옵니다.
LA:Ao ratio 기준으로 1.8-2.0 이상이면 누구나 심장이 커졌다고 얘기할만하고, 좌심방 직경을 기준으로는 18-19mm 이상이어야 심장이 커졌다고 할만하다 얘기하죠. 강아지의 기준을 그대로 고양이에게 적용해서 LA:Ao ratio 1.6을 기준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데, 통상적으로 정상 고양이의 LA:Ao ratio를 1.6 미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A:Ao ratio 기준으로 1.6부터 1.8까지 사이는 약간의 gray zone이 되죠. 이런 경우에는 진료를 보는 수의사가 심장초음파 상의 다른 지표를 보고 주관적으로 B1(폐수종 저위험군)과 B2(폐수종 고위험군)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기준으로 보자면, 케이스의 이 환자는 여전히 B1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폐수종은 심장 초음파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니 폐가 안 좋았다면, 운 나쁘게 좌심방이 커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폐수종이 터지면서 C가 됐을 수도 있겠지만, 심장이 크지 않은데, 갑작스레 폐수종이 (때마침 시기도 좋게 정기 검진일에) 터졌을 가능성은 몹시 낮다고 볼 수 있죠. 폐수종이 의심된다는 환자의 폐 사진은 어땠을까요?
폐가 지저분해보이는 건 맞는데, 통상적으로 많이 보게 되는 폐수종 사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방사선 사진으로 폐를 판독하는 패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복잡한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긴 조금 어려우니 바로 결론으로 가자면) 이 사진처럼 보이는 폐 패턴을 기관지 패턴(Bronchial pattern)이라고 합니다. 흔히 기관지의 안쪽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 볼 수 있는 패턴입니다. 폐수종은 폐포 내에 물이 차는 병을 얘기하니 이런 기관지 패턴이 아니라 폐포 패턴(alveolar pattern)이나 간질 패턴(intersitial pattern)을 보입니다. 폐포 패턴과 기관지 패턴을 비교해보면 이렇습니다.
둘다 폐가 정상보다 하얗게 보이지만 어디가 하얗게 보이느냐가 다르죠. 폐포 패턴은 폐 위에 누가 하얀색 페인트를 엎은 느낌이라면, 기관지 패턴은 기관지 모양을 따라 붓으로 하얀 점과 선을 찍은 것 같은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 내용들을 토대로 보면, 이 환자는 HCM이 있지만, 아직은 B1인 것으로 보이고, 심장병과는 별개의 만성적인 하부 호흡기 질환(chronic lower respiratory disease)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폐수종으로 착각하고 환자에게 이뇨제를 준다면, 호흡기 질환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불필요한 이뇨제를 처방해서 환자의 기대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죠.
고양이의 만성 하부 호흡기 질환에는 어떤 감별진단 목록이 있을까요? 생각보다 그리 많은 병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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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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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기관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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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사상충 감염(Heartworm associated respiratory disease,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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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충(Aelurostrongyl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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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코플라즈마(Mycoplasma)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BAL(Bronchoalveolar lavage, 전신마취하고 기관지 안쪽에 물 쐈다가 회수하는 검사)를 하지만, 통상 그렇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히스토리를 토대로 감별진단 목록을 추립니다. 폐충은 국내에서 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발라준 환자에서는 가능성이 더 낮아집니다. 마이코플라즈마는 (이 환자의 경우) 이미 독시사이클린이라는 마이코플라즈마를 치료해주는 항생제를 먹여서 별 반응이 없었으니 가능성이 낮습니다. 심장사상충 예방을 아예 안 했던 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심장사상충 감염도 가능성이 낮았죠(나중에 검사를 해서 사상충 감염은 아니라는 확인을 하긴 합니다.) 결국 천식이거나 만성 기관지염이겠거나…로 귀결이 되죠(실제로 이 두 질환이 고양이의 만성 하부 호흡기계 질환 중에서는 가장 흔하고요.)
천식과 만성 기관지염 중에 어떤 질환이냐는 BAL을 하지 않으면 감별이 안됩니다만… 다행히 둘 다 치료제로 스테로이드를 쓰기 때문에 (예후는 다르지만) 보통 감별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하곤 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 이미 꽤나 만성화된 기관지 병변을 방사선에서 보여주니 아마도 천식일 가능성이 (보통 나이든 환자에서 나타나는 만성 기관지염보다는) 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가면 이 환자가 HCM ACVIM Stage B1의 환자이면서 동시에 (아마도) 천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럼 환자가 먹고 있는 약에서 상당 부분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Stage B1의 HCM 환자는 심장약 투약이 지시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심장약 그룹인 피모벤단, 푸로세마이드, 스피로노락톤, 클로피도그렐을 빼버릴 수 있습니다. 향후 B2로 진행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인(대략 1년 간격) 심장 초음파 모니터링은 필요하겠지만, 현재 복용 중인 심장약 중 어떤 약도 사실은 먹을 필요가 없죠.
항생제 그룹은 어떨까요? 이건 아마도 기관지염을 의심했지만, 세균성 가능성을 고려해 처방한 게 아닐까 싶은데, 고양이 기관지염에서 세균성이 원인인 경우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이코플라즈마 같은 질환을 배제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빼버려도 괜찮은 약이죠.
실제로 상담 후 이 환자는 먹고 있던 모든 14가지 약을 중단하고 오늘동물병원에 다시 내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폐수종이 생겨서 호흡이 빨라지거나 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환자에게 필요했던 유일한 약은 14가지 약 중에는 없고, 천식과 만성 기관지염에서 처방되는 스테로이드였는데, 그래서 오늘동물병원에선 심장초음파 검사와 사상충 검사 정도를 하고 스테로이드를 처방 받아갔죠. 스테로이드도 먹는 약 대신 흡입 치료를 통해 하기로 했으니, 먹는 약은 완전히 다 끊은 셈이 되어버립니다. 이제 약 대신 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거죠.
케이스 자체에 대한 얘기는 재밌는 부분이 조금 더 있지만, (포스팅이 길어질테니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약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합니다. 이 환자가 처방받았던 기관지염약과 기타 잡다한 약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는 이런 약을 직접 처방하는 수의사들이 재밌어할만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네요.
기관지염약
기관지염약 중에 테오필린은 루틴하게 많이 사용하는 약이니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브롬헥신과 아세틸시스테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둘 다 진해거담제로 사용하는 약인데, 한국 임상에서 둘 모두 많이 처방되는 약이나, 재밌는 건 이 둘 모두 약의 효능에 대한 에비던스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에비던스에 대한 얘길 해볼까 합니다.
먼저 브롬헥신의 경우는, 이 약이 미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약이라는 게 에비던스를 부족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미국인들이란 미국에 없으면 지구상에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죠. 수의학에서는 특히 그렇고요. 브롬헥신은 호주와 영국쪽에서는 동물용으로 허가가 되어 있지만, 미국에서는 애초에 약을 구할 수가 없으니, 이 약이 정말 진해거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많지 않습니다. 보통은 써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더라는 경험적인 얘기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실제 어떤 논문으로 효능을 확인해본 데이터는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가 거의 대부분 미국쪽에서 쓰여지다보니 영국이랑 호주에선 이런 것도 쓴다더라 정도의 코멘트일뿐, 이 약 없이 치료를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냥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데, 언제 써야 하는지를 콕 찝어 얘기하긴 어렵고,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약은 아니야” 정도의 포지션이랄까요. (그래서 오늘동물병원은 이 약을 쓰지 않습니다.)
아세틸시스테인은 조금 더 웃깁니다. 아세틸시스테인은 진해거담 목적 외에도 쓰이는 곳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이 이 약을 가지고 있죠. 재밌는 건 약전을 찾아보면 진해거담을 목적으로 쓸 때 어느 정도의 용량으로 약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겁니다. 아세틸시스테인이 거담제(=가래를 녹이는 약)로 가장 확실한 효과를 보이는 건 네뷸라이저를 이용해 기도에 직접적으로 약이 전달되게 하는 건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네뷸라이저로 아세틸시스테인을 기도에 직접 작용하게 만들면, 부작용으로 기관지연축(bronchospasm)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즘에는 아세틸시스테인을 네뷸라이저를 할 때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그냥 생리식염수만 쓰라고 하죠).
먹는 약으로는 전혀 효과가 없냐하면 그런 건 또 아닐듯 싶은 게 사람에서는 아세틸시스테인을 경구제로 먹을 때 거담효과가 있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효과가 뚜렷하냐 하면, COPD(Chronic Pulmonary Obstructive Disease, 만성 폐쇄성 폐질환)에서 임상적인 이득이 명확하지 않아서 루틴하게 추천되는 약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유료 링크) 그래보이지도 않죠.
이런 약들은 참 계륵 같은 약입니다. 어느 정도의 용량으로 써야 효과가 있는지 알기가 어렵고, 정말 효과가 있는지도 조금 애매하면서, 조금 더 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면 처방을 해보고는 싶은데, 사실은 이런 약이 없어도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는… 그런 약이죠. 오늘동물병원의 경우에는 돈 드는 계륵은 처방하지 말자는 주의라 보통 이런 약은 처방하지 않지만, 개별 약가에 대해 일일히 청구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동물병원에서는 수의사가 약간의 효과를 기대하고 처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약입니다. (사이즈가 커서 약의 양을 늘리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사람에서의 용량을 외삽했을 때, 경구용 아세틸시스테인으로 거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용량을 처방해야합니다. 문헌에 따라서는 100mg/kg 정도까지 처방하라는데, 통상 그렇게 처방하는 건 또 너무 고용량인 것 같고 약 양이 더 많아지는 문제가 있으니, 어설픈 용량을 처방해버리죠. (이 케이스의 경우에는 30mg/kg으로 처방됐더군요)
아세틸시스테인의 경우 주사제는 쓸 일이 종종 있지만, 이렇게 거담효과를 노리고 처방하는 게 아니라면 경구제는 처방할 일이 거의 없는 약입니다. 고양이 지방간에서 항산화 효과를 노리고 쓰거나, 아세트아미노펜 중독에서 사용할 때는 보통 주사제를 사용하죠. 그래서 오늘동물병원의 경우에는 아세틸시스테인 경구제가 약제실에 없습니다(브롬헥신도 없고요).
잡다한 약(위장관 보호제와 소염제)
통상적으로 약 먹을 때 속쓰리지 말라고 넣어주는 약들에 대해서는 최근에 처방을 추천하지 않는 추세라는 걸 이전 포스팅에서도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잡다한 약들이 이 환자의 경우에는 꽤나 많이 처방됐는데, 한 번 더 옮겨서 적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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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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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토클로프로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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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모티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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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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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속쓰리지 말라고 넣어주는 파모티딘은 실제로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길 했었으니 생략하고, 세레니아와 메토클로프로마이드를 보죠. 둘 모두 항구토제로 쓰는 약입니다만, 최근에는 세레니아의 항구토 효과가 워낙 좋다보니 메토클로프로마이드는 거의 쓰지 않는 약에 가깝습니다. 실제 구토를 해서 구토 억제가 필요한 환자라면 고가약물이더라도 세레니아를 처방하는 걸 선호하고, 구토를 하지 않는 환자라면 이런 약들을 처방할 필요가 없죠. 세레니아에는 없는 위장관 운동성 항진 효과를 누리기 위해 이 둘을 겹쳐 처방한다고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만, 메토클로프로마이드는 먹는 약으로 처방할 경우 위장관운동 항진 효과는 크지 않다고 봅니다. 2016년 JVECC에 올라온 위장관 운동성 저하 문제를 겪는 환자들에 대한 리뷰 논문을 보면 이런 부분이 언급됩니다.
반감기가 3-4시간 정도로 짧은 약이기 때문에 제대로 쓰려면 입원시켜놓고 CRI(Constant Rate Infusion, 동일 속도로 계속 주사제를 투약하는 방법)로 쓰거나, 하루 4번 정도 약을 먹여야 한다고 얘기가 나오죠. 논문에서는 위장관 운동 항진을 위한 목적보다는 항구토제로 보고 처방하라는데, 항구토제에는 세레니아라는 더 효과적인 약이 있으니,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는 약이죠.
베스타제는 어떨까요? 베스타제는 비오디아스타제와 셀룰라제, 리파아제를 성분으로 하는 소화효소제입니다. 어떤 병에 쓰는 약이 아니고, 그냥 소화효소제를 합쳐놔서 속쓰리지 말라고 주는 약에 가깝죠. 소화효소제를 추가로 더 먹는다고 소화 효소 분비 기능에 별 문제가 없는 강아지 고양이가 속이 덜 쓰릴까는 아마 영영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처방이 추천되지는 않지만) 같은 목적으로 처방되는 파모티딘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약리 효과가 명확한 반면, 베스타제는 그런 것마저도 없습니다. 최근에는 제스타제라고 동물용으로 나오는 동일 성분의 약품도 있던데, 약이지만 적응증이 없는 약이랄까요. 가끔 타병원 처방에서 이런 약을 보게 되면, 아무런 고민없이 그냥 빼버리게 됩니다. 약을 빼도 환자에게 1도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99.9%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언급해볼 약은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입니다. 종종 이 약이 처방되는 걸 볼 때가 있는데,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저는 처방에서 이 약을 보면, 이 약을 쓰는 수의사가 에비던스 기반의 진료보다는 경험적인 것에 의존해서 진료를 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더 나쁘게 말하면 그냥 병원에 있어서는 안되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어디에서도 어느 정도 용량으로 써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염 효과를 노리고, 혹은 염증성 부종의 완화를 목적으로 처방한다고는 하는데, 수의학 교과서 어디에도 이 약을 그렇게 써야 한다고 언급하는 곳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윗년차가 쓰는 걸 보고, 혹은 일하는 병원 원장님이 쓰는 걸 보고 따라서 쓰기 시작하죠. 소염제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는 부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도 아니고, 간이랑 신장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NSAIDs도 아닌데, 어쨌든 소염 효과를 낸다니 어쩐지 별 부담 없이 써봄직하다고 생각이 드니까요.
약전에 없는 약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쁘게 보자면, 다른 수의사가 처방하는 걸 보고 약전조차 한 번 찾아보지 않고 처방했구나…라고 생각하죠. 어쩌다가 이렇게 루틴하게 처방이 이루어지게 된 약인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출처를 찾을 수가 있는데, 사람에서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서 그렇게 쓴다니, 적당히 용량을 줄여서 동물에서도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처방이 시작됐을듯 싶은데, 웃긴 건 사람에서는 이 약을 최근에 “밀가루약”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약사가 얘기하는 효능이 실제로 없는 약이라는 말이죠. 이 약에 대한 2019년의 국내 기사를 보면 재밌는 얘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스트렙토키나제, 스트렙토도르나제’ 성분 의약품은 해외에서 사실상 ‘퇴출’ 절차를 밟아왔다.
건약이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85년 연방관보에 “바리다제(주성분: 스트렙토키나제, 스트렙토도르나제) 제품이 효과가 없으며 향후 임상 조사에서도 이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허가 취소를 권고한다”고 명시했다.
독일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독일의 공신력 있는 의약품 정보 사이트(arnzei-telegramm)는 1991년 “스트렙토키나제는 위장관에서 흡수되지 않으며 스트렙토도르나제는 위장관에서 불활성화되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전 세계 유수 대학에서 약학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책 역시 1975년 “바리다제 경구제의 가치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독일을 포함한 G7 국가 어디에서도 현재 스티렙토키나제·스티렙토도르나제 성분 의약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는 것.
출처 : 팜뉴스(http://www.pharmnews.com)
미국 기준으로는 1985년이니까 거의 40년 전이고, 독일 기준으로는 거의 30년 전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가 나와서 어떤 논문 근거도 거의 없습니다. 혈전용해제로 사용하는 스트렙토키나제 주사제에 대한 얘기가 있을뿐 경구용으로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것들은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얘기라 정보를 찾기도 어렵죠. 한국에서 의사들이 관성으로 사용하던 약이 어쩌다보니 동물병원까지 흘러들어왔고, 2023년에도 그냥 관성으로 사용하는 약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별 효과가 없는 건 당연하죠. 약에서 ‘밀가루’를 조금 뺀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은 더욱 없습니다.
약을 14가지나 먹고 있었는데, 14가지 중에 필요했던 단 하나의 약(=스테로이드)이 없었다는 건 조금 어이없는 일입니다. 기관지염이 폐수종으로 잘못 진단됐다는 점도 있었지만, 별다른 에비던스 없이 관성으로 처방되는 약들이 다수 들어간 것이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이죠. 강아지도 그렇지만, 고양이는 특히 약 먹이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14가지 약 중에 피모벤단이나 아세틸시스테인, 베스타제 같은 약들은 약의 부피를 늘려서(=캡슐약이라면 캡슐의 크기가 아니라 갯수를 늘리는 수준) 투약을 더 어렵게 만들죠. 처방은 진료실 안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하지만, 정작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보호자분들의 몫이다보니, 수의사는 가능하면 투약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처방을 간결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투약을 수월하게 할 수 있어야 약을 좀 더 잘 챙겨줄 수 있고, 그게 결국에는 환자를 더 오래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