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부쩍 수의사 선생님들의 블로그 방문과 댓글이 늘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철저하게 먹고사니즘을 위해 만들어진 오늘동물병원 마케팅 블로그인데, 어쩐지 재밌으면서도 보호자 수준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너무 전문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재미는 있으니, 이번 포스팅은 보호자분들보다는 수의사를 위한 포스팅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전문적인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렵다는 이야기). 병원에서 가장 루틴하게 하는 검사인 CBC(Complete Blood Count)의 결과값을 어떻게 뽑아먹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블로그를 봐온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보통 CRP/SAA 같은 급성기 단백질 검사를 좋아하지 않고, 염증 여부의 판단을 CBC를 이용해 하는 걸 더 선호합니다. 빈혈 수치나 혈소판 수치까지 알려주는 CBC가 CRP/SAA에 비해서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가성비 좋은 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CRP/SAA가 알려주는 건, 기껏해야 ‘애가 안 좋구나’ 정도인데, CBC는 그에 비해 조금 더 많은 걸 알려주니까요.
염증의 정도를 평가함에 있어서 CBC를 CRP나 SAA 대신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예전에 강아지 폐렴 케이스를 소개하면서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CBC 검사의 숫자가 아닌 그래프(=Dot-plot이라고 합니다)를 보면서 환자의 염증 정도나 개선 여부를 평가하는 거죠. 당시 포스팅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CBC를 볼 때, 숫자만 보면 하수고, 그래프를 보면 중수, 혈액 도말까지 하면 고수…가 아닐까 싶은데, 저는 중수 정도는 됩니다. (고수는 저와 달리 성실하고 귀차니즘이 없는 사람만 가능한 영역…) CBC를 볼 때 늘 함께 보게 되는 건 Dot-plot입니다. 검사 장비에서 확인하게 되는 이해하기 어려워보이는 그래프를 Dot-plot이라고 하죠.
이번 포스팅은 당시 얘기했던 중수의 영역이 아니라 고수의 영역(?)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Dot-plot을 모르는 초보의 영역에 있는 분들은 일단 강아지 폐렴 케이스에서 dot-plot에 대한 걸 읽고 오셔야 합니다. 혹은 IDEXX에서도 잘 정리해놓은 다이제스트판이 있으니 읽어보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읽고 오셨다는 전제 하에) Dot-plot은 쉽게 생각하면 CBC 장비가 어떻게 백혈구를 구분하느냐에 관한 얘기와 같습니다. Dot-plot은 x축인 세분성(granularity)와 y축의 형광성(fluorescence)를 토대로 백혈구를 종류별로 색 구분을 통해 그래프 위에 뿌려줍니다. (이번 포스팅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니까) 정상 고양이의 Dot-plot을 보죠. (개와 고양이는 정상 dot-plot이 다른데, 이 둘의 정상 그래프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으면, 흡사 방사선 사진 판독할 때처럼 dot-plot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환자가 염증 상태가 되면, 보통 호중구 수치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호중구의 독성 변화(우리는 학교 다닐 때 이걸 좌방이동, left shift라고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가 나타나게 되죠. 호중구는 독성 변화를 겪으면 성숙 호중구가 되기 전의 미성숙 호중구(역시나 학교 다닐 때 이걸 band cell, 혹은 band neutrophil이라고 한다는 걸 배웠죠)가 혈액에서 많아지게 됩니다. CBC 장비는 이런 미성숙 호중구도 호중구로 확인해주지만, 미성숙 호중구는 생긴게 성숙 호중구보다 덜 복잡하고, 세포질의 RNA가 성숙 호중구에 비해 더 많기 때문에 정상인 성숙 호중구에 비해서 그래프 상 조금은 우상단에 점이 찍히게 되죠.
이렇게 그래프의 우상단에 점이 찍히게 되는 게 너무 심해지면(=염증이 심해서 미성숙 호중구의 수가 많아지면) 혈액 검사 장비는 이게 미성숙 호중구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데, 이 때부터는 CBC 검사 장비가 호중구를 호중구라고 하지 못하고 림프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카운팅을 잘못하게 되는 거죠. 그럼 CBC 검사 결과지의 숫자 상으로는 림프구 수가 늘어나고 호중구는 정상으로 확인되면서, 숫자만 보면 심한 염증이 아닌 것처럼 보이죠. 이걸 구분하는 게 중수의 영역입니다. 케이스 포스팅이니 케이스를 한 번 보죠.
환자는 7살의 코숏 고양이로 항문낭염 때문에 내원했습니다. 항문낭염만 있는 게 아니라 식욕이 떨어졌다는 히스토리가 함께 있었죠. 일반적으로 항문낭염은 식욕 부진을 유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다른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MDB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생화학 검사와 영상 검사 모두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CBC는 어땠을까요? 처음 내원 당시의 CBC에서 백혈구(WBC) 관련 수치들만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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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결과 |
정상 범위 |
|
BAND |
Suspected |
|
|
WBC |
15.07 K/uL |
2.87 – 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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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 |
8.52 K/uL |
2.30 – 10.29 |
|
LYM |
5.03 K/uL |
0.92 – 6.88 |
|
MONO |
0.61 K/uL |
0.05 – 0.67 |
|
EOS |
0.85 K/uL |
0.17 – 1.57 |
|
BASO |
0.06 K/uL |
0.01 – 0.26 |
숫자만 보면 정상 범위에서 튀는 것 없이 모두 깨끗한 상태입니다만, Dot-plot을 보면 조금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 환자의 Dot-plot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상 Dot-plot에서는 파란색 림프구의 영역과 보라색 호중구의 영역이 겹치지 않지만, 이 환자는 보라색 호중구가 림프구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각을 지며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이죠. 숫자 상으로는 이쁜 정상 고양이의 CBC지만, 실제로 호중구의 일부가 독성 변화를 보인 좌방 이동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CBC 장비도 바보는 아니라서 Band cell의 의심된다고 띄워주죠. 아마 이 환자의 SAA를 봤다면, 정상 범위보다 올라가 있는 게 확인됐을 겁니다만 굳이 비싼 SAA 검사를 하지 않아도 환자가 염증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죠.
항문낭염 외에 염증을 유발할만한 다른 원인을 찾지 못해서, 환자는 일반적인 항문낭염에 맞춰서 항생제 처방을 받아갔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식욕이 더 떨어진 것 같다고 보호자분께서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 때 다시 본 CBC 결과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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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첫째날 결과 |
둘째날 결과 |
정상 범위 |
|
BAND |
Suspected |
Suspected |
|
|
WBC |
15.07 K/uL |
12.90 |
2.87 – 17.02 |
|
NEU |
8.52 K/uL |
▼ 0.51 |
2.30 – 10.29 |
|
LYM |
5.03 K/uL |
▲ 9.82 |
0.92 – 6.88 |
|
MONO |
0.61 K/uL |
▲ 2.49 |
0.05 – 0.67 |
|
EOS |
0.85 K/uL |
▼ 0.05 |
0.17 – 1.57 |
|
BASO |
0.06 K/uL |
0.03 |
0.01 – 0.26 |
패혈증인가 싶을 정도로 호중구 수치가 아주 낮게 확인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Dot-plot을 보면 어떨까요?
역시나 좌방 이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숫자에서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파란색 점(=림프구)이 진하게 찍힌 걸 볼 수 있죠. 이러면 기계가 판독을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독성 변화를 겪은 미성숙 호중구를 림프구로 잘못 카운팅하면서 림프구의 숫자가 실제보다 과대 평가됐고, 호중구의 숫자는 실제보다 과소 평가됐다고 추측할 수 있죠. 패혈증 같은 무서운 생각까지 하지 않고, 처음의 치료 계획을 밀고 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환자는 이 날 염증이 있던 항문낭이 파열되면서 상당량의 농이 몸 밖으로 빠져나왔고, 식욕 부진으로 인한 경미한 탈수를 수액으로 교정하는 선의 치료 정도를 추가로 더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기에 다음날 환자의 식욕 부진이 개선되는지 보호자분께 전화 상으로 여쭤봤고, (다행히 식욕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 이틀 후, 실제 장비의 미스카운팅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CBC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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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첫째날 결과 |
둘째날 결과 |
넷째날 결과 |
정상 범위 |
|
BAND |
Suspected |
Suspected |
Suspected |
|
|
WBC |
15.07 K/uL |
12.90 |
▲ 21.15 |
2.87 – 17.02 |
|
NEU |
8.52 K/uL |
▼ 0.51 |
▲ 13.19 |
2.30 – 10.29 |
|
LYM |
5.03 K/uL |
▲ 9.82 |
5.59 |
0.92 – 6.88 |
|
MONO |
0.61 K/uL |
▲ 2.49 |
▲ 0.95 |
0.05 – 0.67 |
|
EOS |
0.85 K/uL |
▼ 0.05 |
1.32 |
0.17 – 1.57 |
|
BASO |
0.06 K/uL |
0.03 |
0.10 |
0.01 – 0.26 |
당연히 dot-plot도 봐야겠죠?
여전히 좌방 이동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독성 변화가 심했던 둘째날과 비교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기계가 호중구라고 카운팅해줄 정도의 성숙도는 갖는 호중구라는 걸 알 수 있죠. 수치 상으로는 WBC 수치가 높아졌으니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좌방 이동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니 밥을 다시 먹고 활력이 개선된 환자의 임상 증상과도 혈액 검사가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중수의 영역이라면 고수의 영역은 앞서 얘기했던 혈액 도말을 함께 보는 걸 얘기합니다. 인턴 때 들었던 혈액학 강의에서 CBC란 Complete Blood Count의 약자이니 제대로된 CBC는 늘 장비로 하는 검사 외에도 도말 검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얘길 들었던 적 있습니다. 당시, ‘그 귀찮고 어려운 걸…?’이라고 생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실제 그 강의를 했던 강사마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됐습니다만, 인턴 땐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가 안 하는 걸 남한테 하라고 할 줄은 몰랐…)
실제 교과서가 아닌 현실에서 CBC를 할 때마다 도말 검사를 포함해서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현미경으로 매뉴얼 카운팅을 하지 않기 위해 장비를 쓰는 건데, 장비를 쓰면서도 장비가 옳게 카운팅을 했는지 확인하는 건 조금 바보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도말 검사는 장비가 알려주지 못하는 감염체의 확인이나 적혈구, 백혈구의 형태적인 변화까지 확인해줍니다만, 어쨌든 매번 도말을 하는 건 어쩐지 (귀찮기만 한 게 아니라)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하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고, 실제로 도말이 필요한 경우가 있죠. 앞서 살펴본 케이스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케이스가 그랬습니다.
환자는 5살의 코숏 고양이로 어제부터 밥을 안 먹고, 오후부터 7-8번 정도 구토를 했다는 히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집 근처 병원에서 수액과 항구토제 주사를 맞았지만, 이후에도 설사를 하며 밥을 안 먹었다는 보호자분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걸 힘들어했다는 얘기도 하셨죠. 다른 검사(생화학 검사와 영상 검사)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없었고, CBC와 소변 검사 결과만 조금 이상했습니다(소변 검사에서 세균이 확인되더군요). CBC가 주제인 포스팅이니 CBC 결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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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결과 |
정상 범위 |
|
WBC |
3.22 K/uL |
2.87 – 17.02 |
|
NEU |
▼ 0.06 K/uL |
2.30 –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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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M |
2.08 K/uL |
0.92 – 6.88 |
|
MONO |
▲ 1.04 K/uL |
0.05 – 0.67 |
|
EOS |
▼ 0.03 K/uL |
0.17 – 1.57 |
|
BASO |
0.01 K/uL |
0.01 – 0.26 |
보통 좌방이동이 있으면 band cell이 의심된다고 얘기해주는데, 그런 것도 없고, 심한 호중구 감소증이 확인됩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채혈을 다시 해봤는데, 그래도 똑같이 호중구가 낮게 나오더군요. Dot-plot은 어떨까요?
호중구를 나타내는 보라색 점이 거의 찍히지 않고, (점이 찍히질 않으니) 딱히 좌방이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보통 장비가 미스카운팅을 하면 밴드 셀을 림프구로 카운팅하니까, 앞선 케이스처럼 림프구가 과대평가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이 케이스는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림프구 갯수는 정상 범위 내로 확인되죠.
이러면 이제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합니다. 구토와 설사, 식욕부진은 비특이적인 임상 증상에 가까우니, 진성 호중구감소증의 감별진단 목록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보게 됩니다. ‘면역매개성 호중구감소증인가…? 면역매개성이면 원발인지 속발인지… 속발이면 원발이 감염인지 종양인지? 골수에 문제가 있는건가?’ 등등 아주아주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죠. 호중구 감소증 때문에 어린 고양이에서 잘 안 생기는 세균성 방광염이 터진 건가…? 같은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수의사의 무서운 생각들과는 달리 환자의 활력은 그리 나쁘지 않아보였습니다. 세균성 방광염이 확인됐으니 항생제를 처방하되, 혈액 수치 상 호중구 감소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통상적인 아목시실린 대신 (보험삼아) 아목시실린/클라불란산을 처방했죠. 그리고 혈액 도말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호중구 감소증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고, 정말 호중구 감소증이 맞다면, 환자의 진단과 치료 방향은 완전히 달라져야했으니까요.
앞서 고수의 영역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실제 진정한 고수는 혈액 도말을 직접 판독하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고수는 아니기 때문에 혈액 도말 슬라이드를 외부 랩에 의뢰했습니다. ‘나는 그냥 좌방 이동이 심해서 장비가 카운팅을 잘못한 것 같은데, 확인해보고 싶다’고 의뢰서를 써서 보냈죠. 의뢰 검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INTERPRETATION:
WBC: A manual differential count revealed:
Mature neutrophils 39% – 1.26 K/uL (decreased)
Band neutrophils 20% – 0.64 K/uL (increased)
Metamyelocytes 2% – 0.06 K/uL (increased)
Lymphocytes 32% – 1.03 K/uL (normal)
Monocytes 6% – 0.19 K/uL (normal)
Eosinophils 1% – 0.03 K/uL (decreased)
As you suspected, there is a prominent left shift present. The neutrophils are mildly to moderately toxic (Dohle bodies, cytoplasmic evacuation basophilia). Along with the neutrophilia and the prominent left shift, these findings are compatible with a strong source of inflammation or infection. Eosinopenia may be associated with stress/corticosteroid therapy, or could represent normal variation.
RBC: The erythrocytes are morphologically unremarkable.
Platelets: A few platelet clumps are noted. The overall platelet density appears adequate.
PATHOLOGIST: Gary Lee, BVMS, PhD
Diplomate, 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Pathologists
IDEXX 혈액 도말 검사 결과
장비가 호중구감소증이라고 평가했던 것과 달리 도말 검사를 통해서 확인했을 때는 호중구감소증이 아니라 호중구증가증(neutrophilia)이라는 얘길 해줍니다. 호중구가 독성 변화를 보이면서 band neutrophil이 증가했다는 것도 알려주죠. 잠재적인 패혈증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호중구 수치냐 하면 1.26K/uL 정도이니 그렇게 보기도 어렵습니다.
치료 방향이 달라질 일은 없고, 세균성 방광염과 단순한 급성 구토/설사에 준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가 좋아지는지를 살피기만 하면 되죠. 실제로 다음날 보호자분께 연락을 드렸을 때, 내원 당일과 달리 밥을 먹기 시작했고, 활력도 조금 더 나아졌다는 얘길하셨습니다. 세균성 방광염은 증상이 사라지면 재진이 딱히 필요하지 않고, 급성 구토/설사는 대증적인 처치만 되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니, 환자가 다시 병원에 올 일은 없는 셈이죠.
CRP나 SAA는 간편할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두번째 케이스에서 SAA를 봤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백혈구 수치와는 다르게 꽤나 높게 나왔을 걸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게 알려주는 추가적인 정보는 없습니다. CBC에서 호중구감소증이 있는 게 확인이 됐고, SAA가 높게 나왔더라도 이게 패혈증이 진행되는건지, 면역매개성 질환이라 SAA가 높게 나온건지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결국 SAA를 보든 보지 않든, 실제 호중구 감소증을 확인하기 위해 도말 검사가 필요했을 겁니다. 도말 검사를 하게 되면 “니가 했던 SAA는 무쓸모였단다”라는 얘기를 알게 될 뿐인구요.
이 둘 모두 속칭 잡진료(고급지게 표현하면 미세진료)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통상적인 케이스와 달리 식욕 부진이 동반됐지만, 결국 병명(항문낭염, 세균성 방광염 및 급성 구토/설사)을 보면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을뿐 병 자체는 대수로울 게 없는 것들이죠. 이런 진료들이 산으로 가게 되면 보통 무지성 입원 후 수액과 항생제 국밥 세트(베타락탐계 항생제, 퀴놀론, 메트로니다졸)로 보호자에게 꽤나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하면서 치료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보통 CRP와 SAA만 보고 명확한 환자 상태에 대한 평가 없이 그런 치료가 시작되곤 하죠. 보호자 입장에서는 “(병은 뭔지 모르지만) 염증 수치가 높아서 입원”이라는 얘길 듣게 되고요. (오늘동물병원 블로그 본연의 목적인 마케팅에 충실하자면) 오늘동물병원은 그런 진단과 치료를 하지 않기 위해서 CBC를 극한까지 뽑아먹고자 노력하는 편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