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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좌심방 파열에 의한 심낭 압전

타성에 젖은 진료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루틴에서 벗어난 케이스를 보게 되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런 루틴에서 벗어난 강아지 심장 환자에 관한 얘기입니다.

흔히 강아지 심장병에 대한 설명을 보호자분께 드릴 때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제가 꼭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심장은 물풍선 같은 장기라는 비유요. 심장병(MMVD)이 있는 강아지들은 시간이 지나면, 체액량이 증가하면서(있어보이게 얘기하면 preload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심장이 점점 커지게 되는데, 이걸 물풍선에 비유합니다. 물을 많이 넣을수록 물풍선이 더 커지는 것처럼, 체액량이 늘어나고, 심장 내부의 압력이 올라갈수록 심장도 점점 커지게 된다고요. 심장과 물풍선은 B2 단계(=심장이 커지기만 한 단계)까지는 그럭저럭 비슷하게 커지기만 하다가, C 단계(=폐수종이 생긴 단계)가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 때는 심장이 물풍선과 달라진다고 얘기하죠. 진료실에서의 멘트를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물풍선은 점점 커지다가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순간이 되면 빵하고 터져버리지만, 심장은 물풍선처럼 터지지는 않고, 가해지는 압력이 폐로 전달되어서 폐에 물이 차게 된다”고요.

거의 대부분의 심장병 환자가 그렇습니다. 심장이 터지는 일은 없고, 압력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버리면 폐수종이 발생하죠. 하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고, 심장이 물풍선처럼 터져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할 케이스입니다.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니, 이런 경우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환자는 12살의 푸들로 심장병(MMVD)을 꾸준히 관리해왔던 환자입니다. 1년 넘게 강심제(피모벤단)을 먹고 있었고, 심장이 정말 컸지만, 폐수종을 겪었던 적은 없는 ACVIM Stage B2의 환자였죠. 이 환자의 보호자분이 어느날 갑자기 병원으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산책 중에 아이가 갑자기 기절을 했다고요.

심장 환자의 기절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환자처럼 심장이 정말 커서 언제든지 폐수종이 될 수 있겠다 싶은 환자의 경우, 가장 우선적인 가능성은 초기 폐수종 상황에서의 기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보호자분의 댁이 오늘동물병원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집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응급 상황을 넘기신 이후에 오늘동물병원으로 와주십사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보호자분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집 근처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을 했더니, 폐수종은 아닌 것 같고, 심낭수가 찬 것처럼 심장이 커져 있다는 얘길 들으셨다고 하셨죠. 심장병이 있는 환자가 갑자기 심낭수가 차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원래도 심장이 어마어마하게 컸던 환자라 심낭수처럼 보이는 건가 싶었습니다.

아. 심낭수가 뭔가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군요. 심장은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있는데, 이 막을 심장막(pericardium)이라고 합니다. 심장은 이 심장막 안의 공간(=심낭, pericardial sac)안에서 박동을 하죠. 정상적으로는 이 심낭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소량의 액체만이 있습니다만, 심장과 심장막 사이의 공간(=심낭)에 무언가 액체가 눈에 보이게 차는 것을 심낭수(pericardial effusion)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있으면 방사선 상에서는 심낭수와 심장의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심장 전체가 흡사 엄청 커진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전체적인 심장의 실루엣이 커진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방사선 검사에서 심낭수가 의심이 되면 정말 심낭수가 맞는지(혹은 그냥 심장이 엄청나게 큰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심장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는데, 심장 초음파로 확인을 하기 위해서 보호자분께서는 곧바로 아이를 데리고 오늘동물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오자마자 방사선 촬영을 다시 해봤고, 환자의 방사선 사진은 이렇습니다.

평소에도 심장이 컸던 환자인 건 맞지만, 이 날의 방사선 사진은 약간 심장이 전체적으로 동그랗게 보이죠. 심낭은 심장을 감싸고 있으니까, 심낭에 물이 차면 심장 전체의 실루엣이 공처럼 이렇게 둥글게 커지게 됩니다. 심장 초음파는 어떨까요?

심근과 심장막 사이에 (초음파에서는 검게 보이는) 액체가 차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심낭수가 찼던 게 맞는거죠.

일반적으로 강아지 심장병(MMVD)에서 이렇게 심낭수가 차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심장병보다는 심장의 종양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더 흔하죠. 이 환자의 경우도, MMVD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종양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처음에는 심장 종양에 대한 고려를 했습니다만, 초음파 검사에서 종양은 의심되지 않았습니다. 왜 갑자기 심낭수가 찼을까에 대한 답은 환자의 좌심방 사이즈에 있습니다.

먼저 환자의 심장초음파 사진을 조금 더 보죠.

왼쪽 사진을 보면, 심낭 안에 하얗게 무언가 뭉쳐져 있는 게 확인이 됩니다(화살표로 표시된 부분). 이건 혈전입니다(흔히 말하는 피떡). 출혈이 있을 경우에 보게 되는 것으로, 이 심낭수의 원인이 출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죠. 동시에 우측 사진을 보면, 피모벤단을 먹을 정도로 상당히 컸던 환자의 좌심방 크기가 대동맥 직경과 비교했을 때 그리 크지 않게 확인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장이 이유없이 갑작스레 작아지는 경우는 없으니, 무언가 이상한 일이죠. 그럼 여기에 약간의 추측(있어보이게 얘기하면 educated guess)이 뿌려집니다.

이첨판의 변성으로 좌심방으로의 혈액 역류 때문에, 좌심방에 가해지는 압력이 원래 상당히 높았던 환자인데 그게 폐수종이 아니라 심장을 파열시킨게 아닌가 싶은거죠(무섭게 얘기하면 심장이 터진 겁니다). 심장은 피를 펌핑하는 장기인데, 펌프에 구멍이 뚫렸으니, 혈액이 밖으로 새어나왔을 것이고, 그게 심낭 안에 고이게 된 겁니다. 출혈이니까 혈전이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고, 원래는 좌심방 안에 있어야 하는 혈액이 심낭 밖으로 새어나왔으니, 물풍선 안의 물이 빠져나오고 물풍선(=좌심방)이 작아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보호자분께 늘 “심장은 물풍선처럼 터지지는 않고요”라고 설명을 드리는데, 이 경우는 심장이 물풍선처럼 터져버린 거죠. (극히 드문 케이스이긴 합니다)


이렇게 심장이 물풍선처럼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표현이 조금 과격하니, 좌심방이 파열되면 어떻게 될까요.. 정도로 수정하죠). 일단 빠져나온 혈액이 심낭 안에 고이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좌심방에 걸리는 압력은 심낭이 나눠갖게 됐으니, 당장의 폐수종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듭니다만, 심낭은 심장처럼 커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약간 잘 안 늘어나는 막을 상상하면 됩니다), 심낭수에 의한 압력을 안쪽의 심장이 직접적으로 받게 됩니다.

심장은 4개의 방으로 구분이 됩니다만(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 이 중에서 심장 내부의 압력이 가장 낮은 곳은 우심방입니다. 그래서 심낭수가 차면서 압력이 높아지면, 내부에서 버텨줄 압력이 가장 적은 우심방이 가장 먼저 쪼그라들게 되죠. 이렇게 우심방이 쪼그라들면, 정상적으로 우심방 안에 혈액이 차기 어렵게 되고, 우심방의 혈액은 다시 우심실에서 폐로, 폐의 혈액은 다시 좌심방과 좌심실로 순환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전신으로 혈액이 잘 돌지 않게 됩니다. 펌프의 한 곳(예컨대 제일 취약한 물탱크인 우심방)이 찌그러지는 셈이 되죠.

전신으로 혈액이 돌지 않으면, 당연히 임상 증상이 나타납니다. 보호자분들이 쉽게 보게 되는 건 이 환자처럼 기절하는 모습이죠. 병원에서 수의사들이 보는 건 우심방으로 혈액이 들어가지 못하니, 정체 현상이 일어나면서 간정맥 울혈이 나타난다든가, 복수가 차는 모습(흡사 우심부전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 펌프가 찌그러진 상태로 펌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심낭 압전(cardiac tamponade)이라고 합니다. 심낭수를 제거해서 다시 펌프를 펴주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하게 되죠(=응급 상황이라는 얘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낭수를 제거해줘야 합니다. 조금 무서운 일이지만, 심낭에 바늘을 찔러넣어서(=심막은 뚫고, 심장은 뚫지 않는 선까지 바늘을 밀어넣어서) 안에 있는 심낭수를 다 뽑아줘야 하죠. 자칫 바늘이 심장을 건드리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시술을 필요로 합니다. (환자가 움직이면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보통은 주사로 진정을 시켜놓고 합니다.)

이렇게 심낭수 천자(pericardiocentesis)를 해서 심낭 내부의 압력을 해소해주고, 찌그러진 펌프를 펴주면 그 때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죠. 이 환자도 바로 심낭수 천자를 진행했고, 환자에게 뽑아낸 심낭수를 보면 이렇습니다.

(심낭수는 종양의 경우에도 빨갛게 혈액장액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환자는 예상했던 것처럼 그냥 혈액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심낭수를 제거하고 나니, (아마도 작게 뚫렸던 좌심방의 파열 부위가 막히니) 좌심방도 다시 커져있는 걸 볼 수 있죠.


심장병이 이렇게 되는 경우가 몹시 드물다 보니, 보호자분께 심장병에 관한 설명을 드릴 때는 이런 상황을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만, 논문을 보면 이런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심장이 터진다니 얘기만 들으면 바로 급사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의외로 예후가 아주 최악은 아니라는 데이터도 있죠.

2014년 JAAHA에 올라온 논문을 보면 이런 환자들이 예전에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예후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더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소개하는 환자처럼 과거 폐수종을 겪었던 적이 없는 환자라면 좌심방 파열이 있다 하더라도 (폐수종을 겪고 좌심방 파열까지 겪은 환자에 비해서) 예후가 조금 더 좋더라는 얘기가 있죠. 특히 2019년 ECVIM-CA(유럽 소동물 수의내과학회)의 발표 자료(유료 링크)를 보면, 이렇게 좌심방 파열이 있고, 첫 일주일을 별문제 없이 환자가 견뎌준다면, 기대 예후는 생각만큼 그리 나쁘지 않다는 얘기도 합니다. (최근 비슷한 결론으로 나온 논문이 있다는 댓글이 달려서 덧붙입니다. 급성기 사망률이 꽤 높지만, 그 시기만 잘 버텨주면 꽤 오래살더라는 논문입니다.)


다행히 이 케이스에서 소개한 환자는 일주일을 기특하게 별문제 없이 견뎌줬고, 현재는 일반적인 강아지 심장 환자와 동일하게 내과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아이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보니, 보호자분께는 그날의 기억이 악몽으로 남으셨겠지만, 빠르게 병원으로 옮겨서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고 위험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죠. 아마 보호자분께서 제 때 병원에 데리고 오시지 못했다면, 상상하기 싫은 상황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모든 환자가 이 케이스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수의사 입장에서는 어쨌든 바늘 하나로 환자에게 다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심낭수 천자 같은 응급 진료가 매력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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