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치되는 HCM(Hypertrophic Cardiomyopathy,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알려진 TMT(Transient Myocardial Thickening, 일시적 심근 비대증)는 질환 자체가 드문 것과는 반대로 심장병을 앓는 고양이를 키우는 보호자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진 병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HCM이 예후가 불량하고,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도, 완치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것과는 반대로 TMT 같은 경우 큰 고비(=심인성 폐수종)만 잘 넘기면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심장약을 끊고,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심장병 고양이를 키우는 보호자분들은 우리 아이가 HCM이 아니라 TMT이기를 간절히 바라죠.
하지만 보호자분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TMT는 흔한 병은 아닙니다. 수의사도 TMT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양이 심장 진료를 보기는 하지만, TMT가 왜 생기는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괜히 보호자분에게 기대를 심어드렸다가 (TMT가 아니라는 게 명확해지면) 더 큰 실망을 안기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설명을 잘 하지 않기도 합니다. “HCM인줄 알았는데, TMT였어요!”라는 것 외에는 사실 케이스 리포트로 쓸 내용이 그리 많지 않지만, 조금 짠한 드라마(?)가 있는 케이스라 오늘동물병원에서 관리했던 TMT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환자는 2살(추정) 스코티쉬 폴드로 3-4일 전쯤부터 호흡이 빨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보호자분이 아이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환자의 히스토리가 조금 안타까웠는데, 병원에 환자를 데리고 오신 보호자분은 고양이를 임시 보호 중인 분이었고, 고양이를 맡아주고 있으신지는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서 (다른 분이) 아이를 구조하셨고, 현 보호자분이 입양처가 정해질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고 있으신 상황이었죠. 사람 손을 아주 잘 타는 품종묘였고, TNR 표시는 없지만 중성화가 된 수컷 고양이였기 때문에 아마 버려졌거나, 가출을 한 게 아닐까 싶었죠.
병원에 데리고 오신 보호자분께서도 구조된 손을 잘타는 고양이라는 걸 제외하면, 알고 계신 히스토리가 딱히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만, 호흡곤란이 주증이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하게 된 검사는 흉부 방사선 촬영입니다. 환자의 흉부 방사선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장 크기가 확연하게 크고, 폐에 침윤(=물이 참)도 확인되는 걸 알 수 있죠. 이럴 경우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서 심장에 의해 생긴 폐수종(=심인성 폐수종)이 맞는지 확인해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정도면 방사선 사진 하나만으로도 심인성 폐수종일 거라고 가능성 높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분께 고양이 심장병과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고, 폐수종을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몇 번의 이뇨제 처치만으로 환자의 호흡수는 드라마틱한 개선을 보였고, 환자는 이뇨제가 포함된 심장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임시 보호 중인, 입양처가 정해지지 않은 고양이들이 아프면 수의사 입장에서도 마음이 안 좋은데, 이미 아프다는 걸 알게 되어버리면 입양을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후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기대 수명이 짧을 것으로 예상되고), 투병 중에 적지 않은 의료비가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면 더욱 그렇죠. 다행히 이 케이스는 아이를 임시보호하던 보호자분께서 직접 입양을 하기로 결정하셨고, 아이가 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떠도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폐수종 고비를 넘기고, 재진 때 확인하게 된 환자의 심장 초음파 사진은 이렇습니다(예전에 쓰던 초음파라 화질이 영 좋지 않네요). 좌심방 확장이 뚜렷하고, 심근 두께도 두꺼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죠.
환자는 HCM으로 진단됐고, 장기적으로는 폐수종이 다시 오는 걸 막기 위해서 이뇨제와 항혈전제를 처방받았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이렇게 심장병으로 진단된 케이스에서는 보통 심장초음파 모니터링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서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 정도를 할 뿐 심장초음파 모니터링을 잘 하지 않습니다만, 이 환자의 경우는 처방약을 리필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수의사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나쁜 생각인데) ‘너무 오래 별문제 없이 잘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통 고양이의 심장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나빠지는 병이기 때문에 폐수종 예방을 위해서 이뇨제를 점진적으로 증량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만, 이 환자는 꽤 오랜 기간 이뇨제 증량 없이 호흡수가 아주 안정적으로 잘 유지가 됐습니다. 이렇게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면, 무언가 놓친 게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환자를 살펴보게 되는데, 그래서 이 환자는 심장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다시 본 환자의 심장 초음파는 다음과 같습니다(초음파 바꾸고 나서의 사진이라 화질이 좋습니다).
뚜렷하게 확인됐던 좌심방 확장이 사라지고, 심근 두께가 두껍게 확인되는 부분도 사라졌습니다. 이뇨제를 투약중인 환자이니 좌심방 크기가 줄어드는 건 장기간의 투약 때문인가 싶을 수 있지만, 심근 두께가 사라진 건 이해하기 어려웠죠. 이뇨제를 고용량으로 처방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좌심방이 작아진 것도 잘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었고요. 앞서 얘기했듯, 심장이 나빠졌어야 하는데, 좋아졌다는 게 수의사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환자는 심장약을 완전히 중단해보기로 했습니다. 약을 중단하고 1달 정도가 됐을 때, 한 번 더 심장 상태를 봤는데, 그 때도 심장은 건강한 심장으로 보였죠.
이렇게 HCM이었던 것처럼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고 정상 심장으로 돌아오는 병이 있습니다. 2018년 JVIM에서 언급된 TMT(Transient Myocardial Thickening, 일시적 심근 비대증)이라는 병입니다.
보통 어린 고양이에서 antecedent event(=선행하는 사건)이 있을 때 나타나곤 하는 병으로 정확히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다시 정상 심장으로 돌아온다는 것만 알려져있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TMT가 생기기 전에 선행하는 이벤트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선행 사건으로는 마취가 있습니다. 어린 고양이에서 잘 나타나기 때문인지 중성화 수술 이후에 TMT로 인해 폐수종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고, 교통 사고 같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만한 일도 선행 사건으로 고려됐습니다. 병치레(폐렴이나 복통, 교상 등)도 선행 사건으로 간주됐죠.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을 가정해볼 수 있지만, 논문에서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감정적이거나 신체적인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체내에 카테콜라민이 급격하게 많이 분비되면서 심근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가정이죠. 사람에서는 (카테콜라민이 부신에서 나오니까) 부신에 생기는 종양인 갈색세포종 같은 게 있을 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도 있고, 스트레스에 의한 심근병증도 과한 교감신경 항진 때문이라는 언급이 있으니, 고양이도 이렇지 않을까…라는 추측인 셈입니다.
그래서 동물병원에서 TMT를 강력하게 의심하고 보호자분에게 향후 심장 초음파 팔로우업(보통 진단 후 3개월차에 팔로우업)을 해보자고 하는 경우는, 나이가 어리고, 선행 이벤트가 있었던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가장 강력하게 의심하는 경우는 마취 후 폐수종이 생긴 경우죠. 이 케이스의 경우에는 나이는 어렸지만, 구조냥이라 정확한 나이는 아니었고, 선행이벤트는 딱히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마취를 하거나 크게 아팠던 적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TMT를 의심해보지 못했죠. (왜 안 나빠지지…라는 나쁜 생각을 하는 수의사의 소뒷걸음질로 알게 된 TMT랄까요.)
돌이켜보면, 이 환자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아마 버려진 것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낯선 곳에서 보호자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던 게 아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준 셈이죠. 어린 고양이에게 익숙했던 안락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여러가지로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다행히, 환자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이었던 잠깐의 길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지금은 심장병도 사라지고 좋은 보호자분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호자분도 처음에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입양을 결정하셨지만, 병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 정말 좋아하셨고요. 죽을 고비(=폐수종)을 넘겼지만, 이것이야말로 묘생 역전이랄까요.
+사족)
이런 부분 때문에 고양이 마취는 수의사들도 겁이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취 전에 proBNP나 심장 초음파 같은 검사를 통해서 심장병이 없다는 걸 알고 마취를 하더라도, 마취 후에는 없던 심장병이 갑자기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이니까요. 오늘동물병원의 경우는 이런 부분 때문에 마취하는 고양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합니다. TMT의 선행 이벤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전신 마취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면, 마취 후 폐수종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죠. 마취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항불안제(=고양이의 경우 가바펜틴)을 적극 활용합니다(요즘엔 거의 의무처럼 마취 전 환자에서 가바펜틴을 처방합니다). 금식의 경우도, 예전과 달리 가능하다면 금식 시간을 줄여서 공복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도록 하죠. 집에서부터 마취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근에는 더 적극적으로 적용한달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