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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

어떤 병을 진단할 때는 반드시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진단이 나야합니다. 그럴 수 없는 케이스들이 있지만, 진단이 명확할수록 치료 방향이 확실해지고, 예후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죠.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케이스는 그렇지 못한 케이스입니다. 블로그에 소개하기가 조금 꺼려지기도 하지만 꽤 흥미롭고, 수의사와 보호자분 모두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케이스인지라 소개해볼까 합니다. 성묘의 범백(Panleukopenia virus) 감염 케이스입니다.

환자는 1살 2개월 정도 된 브리티쉬 숏헤어로 보호자분께서 집에 다른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하셨는데, 그 이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식욕이 떨어지고, 구토를 한다는 히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설사는 하지 않았고, 백신은 어릴 때 다른 병원에서 3차 접종까지 다 했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레스에 의한 식욕 부진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심리적인 요인은 가장 나중에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보호자분과 상의 후 기본적인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외부에서 온 새로운 고양이를 만난 이후 아픈 것이었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백신을 모두 했다고 하셔서, 처음엔 범백 가능성을 낮게 보고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간 수치나 신장 수치 같은 것을 확인하는 생화학 검사는 모두 다 정상 범위 내에 있었고, 환자의 이상은 CBC 검사에서 확인됐습니다. 환자의 CBC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검사 결과

정상 범위

HCT

46.4 %

30.3 – 52.3

WBC

2.24 K/uL

2.87 – 17.02

NEU

0.27 K/uL

2.3 – 10.29

EOS

0.12 K/uL

0.17 – 1.57

LYM

1.68 K/uL

0.92 – 6.88

MONO

0.14 K/uL

0.05 – 0.67

BASO

0.03 K/uL

0.01 – 0.26

PLT

252 K/uL

151 – 600

보통 어딘가 안 좋아서 몸에 염증이 있는 환자들은 WBC(백혈구)나 NEU(Neutrophil, 호중구) 수치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 환자는 특이하게 WBC 수치가 아주 낮았습니다. 특히 호중구 수치는 1uL에 270개 밖에 없는 수준으로 거의 면역결핍 상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보통 호중구 수치가 1,000개(NEU 수치 기준으로 1.0) 미만이면, 기회 감염에 의한 패혈증 리스크가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에, 매우 무서운 상황인거죠.

방사선 검사에서는 특이사항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는 소장쪽의 장간막 림프절이 전반적으로 커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소화기 증상(구토)이 있는 환자였으니, 장간막 림프절이 커진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만, 확실히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보긴 어려웠죠.


일단 백혈구 수치가 특이적으로 매우 낮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백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범백과 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FeLV), 고양이 면역결핍 바이러스(FIV)입니다. 키트 검사로 어렵지 않게 확인을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검사를 합니다. 재밌는 건 이 3가지 병이 키트 검사에서 모두 음성으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키트 검사 결과는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FIV, FeLV, 범백이 모두 음성이었죠.

고양이에서 호중구 감소증(neutropenia)를 유발할 수 있는 병으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위에 언급된 3가지 병입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세균 감염에 의한 내독소혈증(Endotoxemia), 종양이나 골수의 이상, 백혈병, 항암제에 의한 골수 억압 반응 같은 것들도 감별진단 목록으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검사나 히스토리에서 그런 걸 의심할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소화기 증상을 보이고, 장간막 림프절이 커져있고, 백혈구 감소증이 있는데, 전염병을 옮길만한 고양이랑 최근에 만난적이 있다면, 키트 검사가 음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범백인 건 아닐까요? 실제로 병원에서 루틴하게 하는 범백 키트 검사는 양성이 뜨면 매우 높은 가능성으로 정말 범백이라고 볼 수 있지만(특이도 94-100%), 음성이 뜬다 하더라도 범백이 아니라고 단정지어 얘기하긴 어렵습니다(민감도 50-80%). 수의사가 키트 검사 음성에도 불구하고, 범백을 의심한다면 그 다음에 하게 되는 검사는 PCR 검사입니다.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도 아이가 범백으로 의심될만한 임상증상과 혈액 검사 결과를 보여주고, PCR 검사에서 양성이 뜨면, 범백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환자가 내원했던 시기가 설 연휴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PCR 검사는 외부 의뢰 검사로 진행되는데, 설 연휴 기간 외부 의뢰를 받는 실험실들이 모두 일을 하지 않아서 PCR 검사를 의뢰할 수 없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환자는 진단이 나지 않은 채로 더 안 좋아지거나, 이미 좋아져서 검사를 할 필요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결국 보호자분에게 다른 질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되, 범백이라고 가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블로그에 이 케이스를 소개하기가 조금 꺼려졌던 이유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백신을 모두 접종한 성묘가 범백에 걸릴 수 있었던 걸까요? 고양이 종합 백신은 범백을 꽤 잘 예방해주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있을 법한 일을 토대로 쓴 소설에 가깝습니다만, 어떻게 돌파 감염(?)이 생길 수 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백신을 제대로 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관한 얘기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병원이 고양이 백신을 할 때, 3주 간격으로 총 3번의 종합백신(FvRCP, 범백/허피스/칼리시를 예방합니다)를 주사합니다. 그래서 3차 접종까지 다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어떤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관행처럼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실제 AAFP/AAHA의 고양이 백신 가이드라인는 기초접종의 횟수를 정해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원칙은 생후 6주령에 첫 접종을 시작해서, 16-18주령이 되는 시기까지 일정한 간격(보통 2-4주 간격)으로 반복 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모체이행항체 때문입니다. 새끼 고양이가 태어났을 때, 어미 고양이의 초유를 먹고 받게 되는 항체가 있는데, 이걸 모체이행항체라고 합니다. 이 모체이행항체는 새끼 고양이가 어릴 때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보호해주지만,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일도 합니다. 모체이행항체가 없어져야 백신을 통해 새끼 고양이가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 모체이행항체가 없어지는 시기는 개체마다 달라서,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16-18주령까지 반복 접종을 해서 항체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계적으로 3차 접종을 하기로 했는데, 아이가 7주령 정도에 1차 접종을 했다면, 3주 간격으로 7주-10주-13주에 접종을 하게 됩니다. 운이 좋아서 13주령 이전에 모체이행항체가 없어졌다면, 백신을 통해 항체가 생길 수 있지만, 만약 모체이행항체가 그 이후에 없어졌다면,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음에도 항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백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AAFP(미국고양이수의사회)와 AAHA(미국동물병원협회)는 2020년 가이드라인에서 16-18주령에 기초 접종이 끝나면 6개월령에 부스터샷을 한 번 더 주사하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의 연구에서 1/3 정도의 새끼 고양이들이 16주령에 접종을 해도 (모체이행항체가 아직 없어지지 않아서) 항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20주령이 됐을 때도 모체이행항체가 없어지지 안아서 백신에 의한 항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제대로 16-18주령 사이에 기초 접종을 종료해도(=마지막 종합 백신을 맞아도), 항체가 생기지 않을 수 있으니, 거기에 대한 보험으로 생후 6개월령이 됐을 때 부스터샷을 맞추라는 거죠. 이는 WSAVA(세계소동물수의사회)의 백신 가이드라인 권고사항과 일치합니다.

여기에 운 나쁘게 펫샵의 농간이 겹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법적으로 펫샵에서 동물을 판매할 때는 생후 2개월령이 지난 개체만 판매가 가능한데, 좀 더 작은 아이들이 상품가치가 높다는 점 때문에 아이들의 생일을 속여 파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생후 1개월이 갓 지난 고양이인데, 2개월령이라고 속여 분양을 하는 거죠. 실제로 병원에서 어린 고양이들 진료를 볼 때면, 500g도 안 나가는 아이가 2개월 혹은 3개월령이라는 얘길 듣고 분양 받아오시는 경우들을 봅니다(보통 1개월령의 고양이는 1파운드, 즉 450g 정도는 나가야 정상적인 체중이라고 보고, 2개월령은 2파운드(900g), 3개월령은 3파운드(1.35kg) 정도는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이용해서 역으로 체중을 보고 대략적인 개월 수를 추측하기도 하죠)

제대로 16-18주 사이에 종료를 하는 것을 계획하고 접종 스케쥴을 짠다 하더라도, 이런 농간이 겹치면 실제로는 16-18주령보다 빠르게 접종이 종료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호자분은 펫샵에서 하라는대로,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접종을 다 했는데, 정작 아이는 항체를 가지고 있지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가이드라인이 아닌 과거의 가이드라인대로 마지막 접종 후 1년이 됐을 때 보강접종을 하는 경우에는 보강 접종을 맞기 전까지 전염병에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오늘동물병원은 16-18주령에 접종이 종료되도록 아이에 따라서 접종 스케쥴을 모두 다르게 짭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구조된 새끼 고양이들은 6주령에 첫 접종을 해서 6-10-14-18주로 총 4회에 걸쳐 종합백신을 접종하고, 어쩌다 늦게 접종을 시작해서 3개월령에 첫 내원을 한 고양이들은 12-16주로 2회에 걸쳐 종합백신을 접종합니다.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서 나이가 의심된다면, 보호자분과 상의 후에 20주령까지 접종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앞서 언급한 이런 문제 때문에 백신도 기계적으로 프로토콜화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쨌든 이 환자의 내원 시기는 1년 2개월령으로 기초 접종은 3차까지 했지만, 보강 접종은 아직 하지 않은 범백 항체가 없을 수도 있는 시기였습니다. 보호자분 말씀으로는 처음 입양했을 때도 다른 아이보다 많이 작았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이런 시나리오를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치료

환자는 백혈구 감소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되, 범백을 가장 가능성 높은 질환이라고 보고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범백의 대표적인 임상증상이라는 설사가 없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범백 환자들은 (비슷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강아지 파보 환자들과 달리 혈액성 설사를 하는 경우는 적고, 설사에 앞서 구토가 선행되는 일이 있곤 합니다.

범백 바이러스 자체를 사멸시킬 수 있는 치료는 없기 때문에 환자가 범백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supportive care를 해줍니다. 탈수가 있다면 수액을 주고, 백혈구 수치가 감소해서 패혈증이나 다른 세균에 기회 감염이 되지 않도록 광범위 항생제로 감염 예방을 해줍니다. 환자는 식욕이 아예 없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통원 치료를 진행했는데, 그 기간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2주동안 지속되는 항생제(Cefovecin)를 주사하고, 대증적으로 환자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항구토제와 위장관 보호제 같은 것들을 처방했습니다. 통원하는 동안 탈수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 집에서 피하수액을 할 수 있도록 했고요. (범백 환자의 통원 치료에 관한 직접적인 논문은 없습니다만, 비슷한 질환인 강아지 파보 환자의 통원 치료에 관해서는 관련 논문이 있습니다. 강아지 파보 환자의 경우, 통원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에 입원 치료랑 비교했을 때, 예후가 크게 나쁘지 않다는 논문이 있는데, 그에 준한 내용을 고양이에 적용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치료 진행후 환자는 점차 식욕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약을 먹은 이후 구토는 없어졌지만, 흑변을 봤습니다. 흑변은 상부위장관에 소화기 출혈이 있는 경우, 볼 수 있는 것으로 범백이 출혈성 장염을 유발한다는 걸 고려하면, 범백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거죠. 환자의 백혈구 수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개선이 됐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첫 내원시 결과

치료 2일차

치료 7일차

정상 범위

WBC

2.24 K/uL

4.28 K/uL

5.8 K/uL

2.87 – 17.02

NEU

0.27 K/uL

0.28 K/uL

1.68 K/uL

2.3 – 10.29

EOS

0.12 K/uL

0.19 K/uL

1.24 K/uL

0.17 – 1.57

LYM

1.68 K/uL

3.56

2.51

0.92 – 6.88

MONO

0.14 K/uL

0.23

0.26

0.05 – 0.67

BASO

0.03 K/uL

0.02

0.01 – 0.26

둘째날까지는 호중구(NEU) 수치가 1.0(1,000개) 미만으로 기회 감염의 리스크가 매우 높은 위험한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임상증상의 개선과 함께 수치가 늘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1,000개를 넘으면 항생제를 굳이 지속할 필요는 보통 없어집니다. WBC(총 백혈구 수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나는 걸 볼 수 있고요. 환자는 식욕도 정상으로 회복되고, 구토나 설사 같은 소화기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예방 접종은 어느 병원이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료인데, 일괄적으로 프로토콜에 맞추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교훈이 있는 케이스였습니다. 이 환자는 앞으로 범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허피스나 칼리시 같은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백신도 다시 진행할 것을 추천드렸습니다. (보통 이렇게 16주령 이상에서 접종을 하는 경우에는 굳이 3차 접종을 다시 하지 않고, 2번만 접종을 하면 충분합니다) 가진단에 근거를 두고 치료를 진행해야하는데다가, 설이라는 연휴가 끼면서 관리도 쉽지 않았던 케이스였는데, 어쨌든 해피엔딩이어서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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