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 말 중에 “Life is about quality, not quant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사람의 일생을 두고 많이 인용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강아지 고양이 진료를 볼 때도 자주 되새기게 되는 말입니다. 특히 고양이들의 경우, (10살 이상을 senior로 구분하는 AAFP 생애주기 가이드라인이 무색하게) 18-19살의 묘르신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면서, 오래 사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고양이다운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대부분의 강아지 고양이들이 삶의 질보다는 수명의 문제 때문에 동물병원에 오게 되지만, 보호자가 놓칠 수 있는 강아지 고양이의 삶의 질에 관한 부분을 수의사가 먼저 챙겨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삶의 질에 관한 문제를 떠올리면,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만성적인 통증에 관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스피스 관리에 관한 척도이지만) 강아지 고양이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HHHHHMM criteria를 봐도 통증은 제일 먼저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죠. 만성 통증은 강아지 고양이를 죽게 만드는 문제는 아니라서 보호자들이 쉽게 간과하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는 보호자들이 눈치빠르게 아픈 걸 알아채주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걸 힘겹게 만드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강아지 고양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문제 중에 하나가 관절염입니다. 진단이 된 이후에는 강아지나 고양이 모두 관리 방법이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관절염에 의한 통증으로 나타나는 임상 증상이나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다른 면이 있다 보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양이의 관절염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관절염 관리를 하고 있는 고양이 환자들은 너무 많아서, 특정 환자를 언급하기보다는 여러 환자들의 증상이나 사진을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환자는 14살 코리안 숏헤어입니다. 아이가 집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병원을 찾아주셨죠. 환자가 불편해하는 곳의 방사선 사진을 보면 이렇습니다.
무릎 관절 내에 정상적이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석회침착 음영이 하얗게 확인되죠(정식명칭으로는 synovial chondromatosis, 활막성 연골종증이라고 합니다). 보통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환자들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방사선 상의 변화입니다. 이런 환자를 보게 되면 굳이 관절낭 검사 같은 상위 진단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나이나 임상 증상, 방사선 사진 같은 것들을 토대로 퇴행성 관절염이 있다고 어렵지 않게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더 심한 모습으로 관절염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다리를 불편해하는 12살의 스코티쉬 폴드 환자의 방사선 사진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 환자도 관절 주변으로 석회침착(synovial chondromatosis)이 확인되지만, 그보다 앞에 혹처럼 둥글게 튀어나온 게 확인되죠. (늘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 환자의 경우는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앞다리에 활액 낭종(synovial cyst)이 생긴 케이스입니다. 저 혹 같은 것에 초음파를 대보면, 안에 액체가 차 있다는 낭종이라는 걸 알 수 있죠. 활막성 연골종증(synovial chondromatosis)나 활액낭종(synovial cyst)나 그 자체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병 같은 것이지만, 보통은 관절염에 의해 2차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라고 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관절염의 증상이라고 보고, 눈에 보이는 활막성 연골종증이나 활액낭종이 아닌 1차 원인인 관절염을 치료하는 식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늘 이렇게 방사선에서 퇴행성 관절염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방사선에서 특별한 이상이 확인되지 않는데, 만성적으로 통증이 있는 듯한 임상증상을 보였다면, 그걸 토대로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내리게 되기도 하죠. 고양이는 통증을 숨기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런 환자처럼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문진을 통해서 평소 고양이가 만성 통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보게 됩니다.
고양이가 관절염에 의한 만성 통증을 겪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고양이의 통증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지표가 있습니다만, 병원에서 자주 사용하는 Feline grimace scale(=고양이 얼굴 표정을 보고 통증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수술 후의 급성 통증을 평가하기엔 나쁘지 않지만, 만성 통증에서는 적용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서, 보통 평상시의 행동 양상을 보고 통증을 평가하게 됩니다. 통증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 2020년 JFMS에서 언급된 Feline MiPSC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조금 더 쉽고 직관적으로 보자면 (관절염약에 진심인) 조에티스에서 만든 체크리스트(영어만 있음. 조에티스 코리아는 일안함)를 토대로 우리집 고양이가 평소 관절염 때문에 만성 통증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해당되는 사항이 있다면, 고양이가 만성 통증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볼 수 있는 거죠.
고양이가 다리를 절뚝거리는 정도가 되려면 정말 많이 아파야 보게 되는 증상이고, 보통의 관절염 고양이들은 아주 미묘한 증상만을 보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높은 곳을 잘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든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힘들어한다든가, 장난감을 잘 쫓아가지 못한다든가, 갑작스레 화장실 사용 습관이 달라진다든가 하면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게 아닌가를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임상증상과 나이, 환자의 체형, 방사선 사진 등을 보면 환자에게 관절염이 있을 것이다 아니다가 대략 가늠이 되죠. 예컨대 12살의 뚱냥이가 평소 높은 곳을 잘 안 올라간다면 방사선 촬영 없이도 관절염을 디폴트로 깔고가도 될 정도라고 할까요. 굳이 뚱냥이가 아니더라도 나이 많은(12살 이상) 고양이의 90% 정도가 방사선 사진에서 퇴행성 관절 질환의 징후를 보인다고 하니, 이게 얼마나 흔한 병인지 알만하죠.
수의학이 발전하고, 동시에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관절염에 대한 인식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 병이 관리만 가능할뿐 치료가 안되는 병이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관절염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관절염에 의해 나타나는 통증을 치료하는 식으로 병을 관리하게 되죠. 그래서 치료는 통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통증을 관리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약을 이용한 방법(pharmacologic treatment)이 있고, 약이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치료(non-pharmacologic treatment)가 있습니다. 2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해야 효과적인 통증 관리가 가능한데, 이런 걸 통증 관리의 multimodal management라고 합니다.
약이 아닌 방법은 말하긴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방법들입니다. 관절염 환자에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 중 하나가 체중 관리인데, 체중 관리는 약이 아닌 치료 방법에 속합니다. 관절에 가해지는 체중의 부하를 줄인다는 개념도 있지만, 지방 자체는 몸에서 가장 커다란 내분비 기관 중 하나입니다. 지방에서는 pro-inflammatory cytokine이 분비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은 염증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체중 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관절염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통증을 줄여줄 수 있죠. 이런 얘기는 강아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실제 강아지에서의 논문을 보면 지면 반력기(force plate) 상에서 체중 감량을 한 강아지가 더 나은 보행상태와 균형 감각을 보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귀엽다는 이유로 어릴 때 뚱냥이로 키우면 나이가 들어서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한달까요.
체중은 먹는 걸 조절해서 빼야하지만, 운동을 병행한다면 어떨까요? 운동으로 살을 빼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쉽지 않지만, 살 빼는 쪽이 아니라 운동을 통한 통증 관리를 고려하면 도움이 됩니다. 고양이가 아파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운동 제한을 시켜서 무리하지 않게 해줘야겠지만, 약이나 체중 감량을 통해 어느 정도 통증이 관리된 상황이라면 가벼운 운동은 도움이 됩니다. 통증 관리의 중요한 이론 중에 하나가 gateway control theory인데, 이 이론을 토대로 보면 통각(nociceptor)외에 운동이 다른 기전들을 활성화시키게 됩니다. 몸의 여러 감각들이 운동을 통해 더 활성화되면서 뇌에서 이런 감각들을 느끼기 위해 통증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개념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정도로 통증이 컨트롤된 이후에는 가벼운 운동(집에서의 사냥 놀이라든가, 장난감을 이용한 놀이)을 통해서 통증을 경감시키려는 추가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약은 아니지만, 보조제는 어떨가요? 보조제 중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오메가3가 있습니다. 2012년 JVIM에 올라온 리뷰 논문을 보면 오메가3가 그나마 실제 통증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얘길하죠(강아지의 얘기이긴 하지만, 이런 근거로 고양이에서도 오메가3를 추천하곤 합니다)
흔히 관절염 보조제로 많이 먹이는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틴 같은 것들도 에비던스는 다소 엇갈리곤 합니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논문도 있고, 먹이나 안 먹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논문도 있는데, 관절염에서는 통증 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탄탄하진 않더라도 약간의 에비던스가 있다면, 먹이는 쪽을 추천드리곤 하죠.
이 외에 집에서 보호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환경적인 요인들을 개선시켜주기도 합니다. 밥그릇이나 물그릇을 너무 멀리 두지 않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밥과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높은 곳에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같은 걸 만들어두기도 합니다. 관절염이 있는 고양이들은 침대 정도의 낮은 높이도 올라오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에 강아지들에게서 하듯 계단을 설치해주기도 하죠. 화장실 문턱이 높다면 문턱이 낮은 화장실을 써서, 대소변을 볼 때 힘들어하지 않게 해주기도 합니다. 화장실의 크기를 키워서 화장실 안에서 몸을 움직일 때 불편하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요.
앞서 언급한 약 이외의 방법들이 보호자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약을 이용한 통증 관리를 하게 됩니다. 관절염 통증 관리의 약물 중 가장 첫번째로 언급되는 약은 NSAID(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입니다. NSAID 중에 고양이에서 FDA의 사용허가를 받은 약은 멜록시캄과 로베나콕십(Onsior)이 있는데, 한국은 로베나콕십이 유통되지 않아(일해라 엘랑코) 보통 멜록시캄을 처방하게 되죠.
NSAID의 문제는 통증을 꽤나 효과적으로 관리해주지만, 장기간 복용할 경우 간이나 신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수의사들은 항상 NSAID를 처방할 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복용 중에도 모니터링을 하게 되죠. 관절염이 12살 이상 고양이의 90%에서 있다는 얘기는 실제로 나이가 들어서 NSAID를 먹어야 하는 환자도 전체 고양이의 90% 가까이 된다는 얘기인데, 그런 약에 부작용이 있다는 건 꽤나 겁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NSAID를 언제 어떻게 처방하고, 어떤 식으로 모니터링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 같은 것들이 나오곤 하죠.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올해(2024년) 4월에 나온 ISFM과 AAFP의 가이드라인입니다.
고양이의 통증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케이스에서 NSAID를 처방해야하는지, NSAID를 처방한다면 얼마나 자주 신장이나 간수치를 평가해야하는지 같은 것들을 얘기하죠(정해진 건 없지만,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에 혈액 검사를 하면서 먹이라고 합니다). 수의사가 NSAID를 처방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에 대한 얘기를 미리하면(당연히 해야하는 겁니다만), 보통 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은 고양이가 당장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심각해보이지 않는다면 약 처방을 피하고자 하십니다. 부작용이 있는 약이라는 것도 무섭고, 그냥 높은 곳을 조금 덜 올라가고, 잘 안 움직이는 것 뿐인데, 약까지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일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삶이란 얼마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묘생이라고 다를 건 딱히 없습니다.
관절염은 퇴행성 질환이나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이가 든 고양이들은 신부전 같은 만성 질환을 이미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신장에 대한 걱정 때문에 통증 관리를 포기하게 되는 케이스들이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조차 초기 신부전(1기나 2기 신부전)에서는 부작용이 아주 두드러지지는 않아서 조심스럽게 쓴다면 괜찮더라… 같은 논문들이 이미 나와있죠. (보통은 이런 논문과 상관없이 수의사와 보호자 모두가 지레 겁부터 먹고 아프게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NSAID 외에 다른 약이 없는 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한 가바펜틴이나 아만타딘 같은 약들도 있죠. 이런 약들은 NSAID처럼 당장의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는 미미하지만(사실 에비던스도 미미),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증이 점점 악화되는 것(pain amplification이라고 합니다)을 막아준다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절염은 신경병증성 통증(neuropathic pain, 신경계통의 변화에 의해 유발되는 통증)의 요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관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개념으로 처방하게 됩니다. 통증은 약을 처방할 때도 여러가지 다양한 약을 사용한 multimodal approach를 적용하는 거죠.
최근에는 (국내엔 출시되지 않았지만) 단클론항체를 이용한 부작용이 거의 없는 주사제도 출시가 되어서 약물적인 관리는 앞으로도 조금씩 더 수월해질 전망입니다. 물론 단클론항체를 이용한 이런 주사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만성 통증 관리란 하나의 방법을 이용한 게 아니라 여러가지 방법을 총동원하는 식으로 케어해야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전히 NSAID와 다른 약물들, 혹은 약물 이외의 방법들을 계속 함께 사용해야겠지만요.
20살까지 사는 고양이는 보호자에겐 축복이지만, 고양이에게도 20살의 삶이 축복인가는 고양이를 보호자가 어떻게 케어해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니까요. 수의사나 보호자나 통증을 느끼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동물의 통증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말 못하는 고양이의 아픔을 보호자와 수의사가 미리 알아채고 관리해줄 때, 20살의 삶이 고양이게도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을테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