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계의 오래된 격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면, 말을 생각해야지, 얼룩말을 떠올려서는 안된다.“는 격언입니다. 환자의 임상증상을 보고, 진단을 내기 위해서 아주 드물고 희귀한 가능성을 가정하기보다는 좀 더 흔하고 보편적인 진단을 찾아서 치료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불필요한 가정이나 논리적인 비약을 해서는 안된다는 오컴의 면도날과도 비슷한 말이죠.
이번에 소개할 케이스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얄궂게도, 말발굽 소리에 말을 떠올리다가 얼룩말을 놓칠뻔했던 이야기입니다. 제목에 써있는 노카르디아증이라는 병이 얼룩말인 셈인데, 흔하지 않은 병이다 보니 처음부터 감별진단 목록으로 고려하지 못하다가 진단 검사 과정에서 확인이 된 케이스입니다. 흔한 병은 아니지만, 교과서대로 진료를 보고, 추측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주는 케이스다 보니 블로그에도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환자는 1살 8개월된 중성화한 암컷 고양이로 첫 내원 사유는 식욕 부진이었습니다. 밥을 아예 안 먹는 건 아닌데, 츄르 같이 맛있는 간식만 소량 먹을뿐 거의 밥을 잘 안 먹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히스토리가 특이한 아이였는데, 3달 전쯤에는 마당냥이로 살다가 최근에 아프기 시작하면서 실내생활을 하게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당냥이로 살 때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당시 수술 부위 피부가 잘 붙지 않아서 재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재수술 이후에 피부에 염증이 심하게 재발해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배에 있는 피부와 피하 지방, 복벽 일부를 들어내는 큰 수술을 3개월 전에 했었습니다. 이후 3개월 동안 별 문제 없이 회복을 했는데, 1달 전쯤부터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했고, 최근에 수술을 했던 부위 피부에 염증이 다시 재발했습니다. 보호자분께선 수술한 병원에 다시 내원을 하셨었고, 저온화상인 것 같다는 얘길 들으셨습니다. 집 어딘가의 바닥이 뜨끈한 부분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화상이 생긴 것 같다는 얘기였죠.
첫 내원 시 환자의 배 피부 사진은 사진과 같았습니다.
1살 8개월짜리가 밥을 안 먹는다면, 수의사들이 떠올리는 감별진단 목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병은 한없이 많지만, 1살 8개월짜리가 신부전 같은 만성 노령성 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낮으니까요. 어쨌든 식욕 부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MDB(Minimum Database) 검사가 필요했고, 환자는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CBC 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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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검사 결과 |
정상 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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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T |
40.1 % |
30.3 – 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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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C |
▲ 64.2 K/uL |
3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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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
16.88 K/uL |
2.87 – 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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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 |
▲ 11.44 K/uL |
2.3 –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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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S |
0.48 K/uL |
0.17 – 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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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M |
3.83 K/uL |
0.92 – 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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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
▲ 1.11 K/uL |
0.05 – 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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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O |
0.02 K/uL |
0.01 – 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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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T |
402 K/uL |
151 – 600 |
호중구(NEU) 수치가 다소 증가해 있었고, 몸 안에 염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염증이 아주 심한 건 아닌듯 보였지만, 몸 어딘가에 분명 염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각 장기의 기능을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생화학 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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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결과 |
정상 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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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 |
2.9 g/dL |
2.2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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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KP |
22 U/L |
14 –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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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
23 U/L |
12 –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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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 |
▼ 12 mg/dL |
16 –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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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
10 mg/dL |
7.8 –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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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L |
103 mg/dL |
65 –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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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 |
1.5 mg/dL |
0.8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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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T |
0 U/L |
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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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 |
▲ 5.8 g/dL |
2.8 –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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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U |
▲ 161 mg/dL |
71- 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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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S |
5.1 mg/dL |
3.1 –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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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IL |
0.3 mg/dL |
0 –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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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 |
8.7 g/dL |
5.7 –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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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
156 mmol/L |
150 – 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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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3.3 mmol/L |
3.5 –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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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
113 mmol/L |
112 – 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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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
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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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 수치가 낮은 거나, GLU(혈당) 수치가 조금 높은 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GLOB(글로불린) 수치가 높은 건 조금 찝찝한 부분이었습니다. 글로불린은 만성적인 염증이 있거나, 종양이 있는 경우에 올라가곤 하는데, 어린 고양이니 종양 가능성은 낮은 편이었고, 만성적인 염증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고양이에서 글로불린 수치가 올라가는 가장 흔한 케이스는 FIP(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인데, 이 환자의 경우는 복막염에 대한 가능성을 고려하되, 수술 후 피부 유합 부전이나 피부에 생긴 염증병변을 생각하면, 오래된 피부 문제 때문에 글로불린이 높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당냥이였다는 히스토리가 있어서, FeLV(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와 FIV(고양이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이 있지는 않은지, 키트 검사도 진행했으나, 키트 검사 상에서는 FeLV와 FIV가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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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항목 |
검사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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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le FeLV |
negat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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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le FIV |
negat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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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le HW |
negative |
특이사항은 영상 검사에서 확인됐습니다. 방사선 검사에도 피부 상처가 있는 복부쪽의 음영이 다소 지저분하고, 덩어리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초음파에서는 그게 좀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초음파에서는 그 외에 다른 특이사항도 확인이 됐는데, 복강 내에 소량의 복수가 있었고, 장벽이 전반적으로 비후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방광 앞쪽으로는 복벽에서 시작된 종괴가 있었고, 흉골 쪽으로도 복벽에 붙어있는 종괴가 확인됐습니다. 환자의 초음파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강 내에 이런 종괴가 확인된다면, 제일 먼저 해봐야 하는 검사는 FNA(세침흡인) 검사입니다. 주사 바늘을 종괴에 찔러서 세포학 검사를 해보는 거죠. 환자의 세포학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수의 호중구와 단핵구가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종양이 아닌 염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화농성육아종성 염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좀 이상했던 것은 세포학 사진에서 퇴행성 호중구(첫번째 사진의 11시 방향 화살표)가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퇴행성 호중구는 세균 감염을 시사하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이 케이스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세균이 있는 것 같긴한데, 이게 세균 때문에 이렇게 육아종성 병변이 생긴 건지, 아니면 피부가 열려있으니까, 2차적인 세균 감염 때문에 퇴행성 호중구가 보이는 건지 애매해졌기 때문입니다. 단순 세균 감염이 복벽에 침습적으로 육아종을 만들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었고, 이전에 타원에서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는데, 재발을 한 것도 조금 이상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FIP(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알부민(ALB)을 글로불린(GLOB)으로 나눈 값을 A/G ratio라고 하는데, 이게 0.4 미만이면 FIP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환자는 0.4까지는 아니었지만, 0.5 정도로 꽤나 근접한 값을 보여줬고, 습식 복막염이 있는 환자처럼 복강 내에 복수도 차 있었습니다. 소장의 장벽 비후를 보면, 단순 세균 감염으로 육아종이 생기고, 복수가 차고, 소화기에 이상까지 보이는 경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죠. (보통 피부 병변으로 식욕부진까지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한 몫합니다.) FIP는 혈관옆 화농성육아종성 병변(perivascular pyogranulomatous lesion)을 특징으로 하는데, 복벽에 생기는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겠지만, 소화기에서 비슷한 병변을 유발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FIP가 3살 미만에서 잘 생기는 병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아무래도 이 케이스의 ‘말’은 FIP인 것 같았죠.
FIP인지 아닌지 진단을 명확하게 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육아종을 제거해서 조직 검사를 보내보거나, 복수를 뽑아서 RT-PCR 검사를 해보면 됩니다. 퇴행성 호중구를 봤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배양 검사도 추천이 됩니다. 하지만 육아종을 제거하려면 수술이 필요했고, 복수는 너무 소량이라 뽑기가 어려웠습니다. 보호자분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드렸고, 보호자분께서는 이미 몇 달 사이에 타원에서 3번의 수술을 한 아이라 수술 없이 내과적인 접근을 우선시 하길 원하셨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질환(=말)은 FIP라고 생각됐기에, 최근 FIP의 치료에 사용하는 GS-441524를 시험삼아 주사해보기로 했습니다. (GS-441524를 주사했을 때, 환자의 임상증상이 개선되면 역으로 FIP라고 생각하기로 한 거죠) GS-441524는 상대적으로 신약이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리스크를 가지고 올지 알 수 없지만, 보호자분과 상의 후 이런 리스크 요인을 감수하고 약물 트라이얼을 진행했습니다.
GS-441524를 시작하고, 4일 정도 됐을 때 보호자분께서 다시 병원에 내원하셨습니다. 식욕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기는한데, 드라마틱하진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보호자분께서 아이의 입원 치료를 원하셨는데, 보호자분께서 낮 시간에 집에 계시지 않다보니 아이 상태를 모니터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유셨습니다. 식욕이 떨어져서 탈수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있고, 보호자분 뜻대로 입원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이 날 확인됩니다. 배 쪽에 ‘저온화상’으로 알고 있었던 피부 병변이 늘어난 것입니다.
저온 화상이 맞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지기만 해야 하는데, 피부 병변이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피부에 뚫린 구멍이 2개였던 게 4일 사이에 3개가 된거죠. 이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온화상이 아니라는 건 명확해보였고, 피부 상처 아래쪽의 염증이 피부에 영향을 줘서 그런건가 싶었죠.
FIP가 ‘말’인 것 같으니 FIP라고 가진단을 내리고 신약의 약물 반응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약물 반응은 생각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았고(보통 신약 치료 2-3일이 지나면, 열이 내리고 식욕이 돌아옵니다만, 이 환자는 그런 개선이 더뎠습니다), 피부 병변이 점점 더 악화되는 모습이었기에 보호자분께 진단을 확진까지 내는 게 추천된다고 설명드렸습니다. 피부 아래에 생긴 육아종을 제거해서 치료적인 목적을 갖되, 떼어낸 육아종을 조직 검사해서 확진을 내는 거죠. FIP로 진단이 나온다면 안타깝지만 신약이 듣지 않는 환자인 거고, 다른 진단이 나온다면 거기에 맞춰 치료를 하면 됩니다. 다행히 보호자분께서 수술을 시켜주시기로 동의하셨습니다. 환자는 피부 아래쪽에 복벽을 포함하는 염증성 육아종 2곳을 제거하고, (장벽 비후를 고려해서) 탐색적 개복술로 복강 내에 다른 이상이 있지 않은지 확인하고, 식욕부진이 있었기 때문에 식도관까지 장착하기로 했습니다. 배양 검사나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1주에서 2주 정도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진단이 명확해지기 전에 환자를 먹여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영상 검사에서 확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벽에 침습적인 육아종이 낫인대의 지방(falciform fat)에도 있었고, 소장의 색이 다소 창백했습니다. 장간막 림프절이 커져있었고요. 복부쪽에는 복벽에 육아종이 침습적으로 퍼져있었고, 방광 앞쪽에도 유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때도 감별진단 목록에서 1번은 FIP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고양이에서 이런 화농성 육아종성 병변을 유발하는 병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FIP 말고 다른 병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환자는 식도관까지 장착하고 마취에서 잘 회복했습니다.
수술 중에는 개복을 했기 때문에 아주 소량의 복수더라도 어렵지 않게 채취가 가능했는데, 복수도 복수 성상 검사(fluid analysis)를 합니다. 복수의 세포학 검사를 보면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복수에서도 다수의 호중구와 단핵구가 관찰됐는데, 이런 복수를 exduate라고 합니다. FIP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복수였죠. 다만 이상했던 건 이 때도 퇴행성 호중구가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FIP는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다수의 호중구만 확인될 뿐 퇴행성 호중구를 보기는 조금 어려운데, 이 환자의 복수에서는 퇴행성 호중구가 일부 확인됐습니다. 조직 검사와 배양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확진이 나오기까지는 이제 시간싸움이었는데, 그래서 2주 동안의 기간 동안 환자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수술 이후에는 여전히 FIP를 가장 가능성이 높은 ‘말’로 보고 GS-441524를 유지하되, ‘얼룩말’일 수 있는 septic peritonitis(세균성 복막염) 가능성을 고려해서 항생제를 추가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 환자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리면 애써 검사를 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식도관으로 영양 공급을 지속했고요.
며칠 후 복수 세균 배양 검사 결과가 나왔고,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캡쳐 사진은 세균 배양 검사 결과와 항생제 감수성 검사가 함께 나오지만, 실제로는 세균 배양 검사 결과가 먼저 나오고, 4-5일 후에 항생제 감수성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만약 처음 예상했던대로 FIP였다면, 배양 검사 결과는 음성이 나왔어야 합니다. 하지만 캡쳐 사진에서 보다시피, Nocardia africana라는 세균이 복수에서 검출됐습니다. 세균성 복막염(septic peritonitis)이 있었다는 얘기고, 원인균이 Nocardia(노카르디아)라는 세균이었던 거죠.
피부학 교과서 뒤져보면 구석탱이 어딘가에 나오는 병으로 노카르디아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카르디아에 감염된 케이스를 얘기하는 건데, 노카르디아는 화농성의 육아종을 유발할 수 있는 세균으로 국소적으로 감염이 되기도 하고, 파종성(disseminated)으로 감염이 되기도 합니다. 개와 고양이 모두에게 감염될 수 있지만, 드문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건조하고, 먼지가 많고, 바람이 많이 부는 미국 남서부나 호주의 일부 지역에서나 감염 보고가 있습니다. 2006년 고양이에서 노카르디아증 감염에 대해 살펴본 논문을 보면, 호주에서도 14년 동안 겨우 총 17마리의 감염 케이스가 있었다고 하죠. 말발굽 소리의 주인공이 말이 아니라 얼룩말이었던 셈입니다.
노카르디아증은 크게 3가지 타입으로 구분합니다.
– 폐 노카르디아증(Pulmonary Nocardiosis): 호흡기를 통해 노카르디아가 감염됐을 경우 나타납니다.
– 전신성 노카르디아증(Systemic Nocardiosis): 보통 폐 노카르디아증이 진행되면 전신성(혹은 파종성) 노카르디아증이 됩니다. 인접하지 않은 병변이 둘 이상이면 전신성 노카르디아증으로 구분합니다.
– 피부/피하 노카르디아증(Cutaneous/Subcutaneous Nocardiosis): 상처에 노카르디아가 감염되면서 나타납니다. 농양(Abscess)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피하에 육아종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양이에서 가장 흔한 타입입니다.
이 환자의 경우 피부 노카르디아증에서 볼 수 있는 육아종성 병변이 뚜렷했고, 히스토리로도 중성화 이후 유합 부전이 있었던 상처를 통해 환경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복강 내의 복수에서 노카르디아가 확인됐기 때문에 구분상으로는 전신성 노카르디아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자의 피부에 갑작스레 구멍이 뚫리는 일은 저온화상이 아니라 노카르디아증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draining tract이 생긴 겁니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좀 더 시일이 지난 후에 나온 조직 검사 결과도 노카르디아증이라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처음 조직 검사를 미국으로 의뢰할 때는 FIP 가능성이 높아보이니, 그 부분을 확인해달라고 얘기했는데, 노카르디아가 배양에서 확인된 것을 본 이후에는 배양 검사 결과를 고려해서 조직 검사 결과를 판독해달라고 전달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MICROSCOPIC DESCRIPTION: Haired skin and subcutis: Examined are multiple sections of haired skin and subcutis. There are multifocal to coalescing inflammatory foci, with large numbers of neutrophils and macrophages centered on bacterial colonies. There are occasional suture granulomas.
MICROSCOPIC INTERPRETATION: Haired skin and subcutis, abdominal wall: Marked pyogranulomatous dermatitis and panniculitis with abundant intralesional bacteria, extends to margins
COMMENTS: All samples demonstrate marked suppurative and granulomatous inflammation centered on prominent bacterial colonies. Histologic findings support bacterial infection as the etiologic cause. Findings may be compatible with nocardiosis, but morphology based on the H and E sections is not specific. Correlation with complete culture results is recommended. There is no histologic evidence of neoplasia. Given the abundant intralesional bacteria, FIP is considered unlikely to be the etiology for these lesions.
IDEXX 조직 검사 결과
수술에서 떼어낸 염증 조직 2개를 의뢰했고, 둘 모두에서 intralesional bacteria(병변 내의 세균)이 검출됐습니다. 함께 가능성을 확인해달라고 얘기한 FIP는 가능성이 낮다(unlikely)라고 대답을 들었고요. 환자에게 노카르디아증이라고 확진을 내릴 수 있었고, 그 동안 FIP 가능성을 고려해서 주사하던 FIP 치료약(GS-441524)은 중단했습니다.
치료는 항생제를 메인으로 합니다. 노카르디아는 보통 설폰아마이드(Sulfonamide) 계통의 항생제가 잘 듣는다고 알려져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배양 검사 결과입니다. 실제 이 환자에게서 검출된 노카르디아는 설폰아마이드 계통의 Trimethoprim/Sulfamethoxazole에 저항성을 보이는 것으로 결과가 나와서 설폰아마이드 계통의 항생제 대신 독시사이클린을 처방했습니다. 당장 식욕이 없고, 컨디션이 떨어진다는 걸 감안해서 독시사이클린에 추가로 다른 계통의 약인 클린다마이신도 처방했고요. 좀 더 수월하게 처방 가능한 세팔로스포린 계통의 항생제들이 있었지만, 같은 계통의 항생제에서도 다소 엇갈리는 배양 검사 결과(세팔렉신은 감수성이 있는데, 같은 1세대 세팔로스포린인 세파졸린은 저항성을 갖는다든가 하는 엇갈린 결과) 때문에 세팔로스포린 대신 다른 계통의 항생제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약 2주 정도의 기간 동안은 수술 부위도 잘 아물고, 새로운 피부 염증이 생기지 않은채로 환자도 조금씩 활력을 찾아갔습니다. 헌데, 항생제 치료 3주차 정도가 됐을 때, 수술한 부위에 염증이 다시 재발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생제를 모두 써도 치료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세균답게 예상했던것보다 빠르게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됐습니다. 배양 검사를 토대로 항생제를 선택해야했기 때문에 항생제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습니다. 항생제의 계통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나의 계통에서 저항성이 있다고 뜨는 항생제가 있으면 그 계통에 있는 항생제의 상당수는 동일하게 내성이 있다고 평가하게 되는데, 이런 걸 교차내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교차 내성이 의심되는 항생제를 제외하고 남는 항생제는 아미카신과 메로페넴이었습니다.
노카르디아의 경우, 항생제 치료를 하는 경우 (항생제를 가능한 짧게 사용하는 최근의 임상 트렌드와는 달리) 가능한 긴 시간 항생제를 쓰는 것을 추천합니다. 항생제를 중단한 이후에 재발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죠. 동물에서는 흔한 병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서의 기준을 외삽하곤 하는데, 사람의 경우 노카르디아에 감염되면, 단순 피부 감염에서는 1-3개월, 폐에 감염된 케이스는 6개월, 전신에 감염된 케이스는 12개월 이상의 항생제 치료를 추천합니다. 실제 동물에서 어느 정도나 항생제를 써야하는가는 정해진 게 없는데, 사람에서의 경우를 고려해서 몇 달은 써야겠거니…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보니 아미카신과 메로페넴 중에 조금 더 추천이 되는 항생제는 아무래도 메로페넴이었습니다. 아미카신은 신장에 독성을 보일 수 있는 항생제여서, 장기간 쓰기엔 매우 부담스러운 항생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복용하던 독시사이클린과 클린다마이신에 내성을 보인 시점에서 보호자분이 오셨을 때 병원에 있던 항생제가 아미카신뿐이었고, 메로페넴의 경우 상당히 비싼 주사제이기 때문에 장기간의 치료에서 보호자분의 비용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호자분과 상의 후, 항생제를 아미카신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아미카신으로 항생제를 변경하고, 5일 후에 환자의 피부는 오히려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아미카신에도 세균이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죠. 이 때 남은 옵션은 메로페넴 하나였기 때문에 보호자분과 상의 후, 항생제를 메로페넴으로 변경했습니다. 메로페넴의 경우 주사제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고가 약물에 속합니다. 동물에서 별 부작용은 없지만, 사람에서 필요할 때 써야하는 중요한 항생제(내성균에 써야하는 마지막 보루같은 항생제)이기 때문에 공중보건학 차원에서 동물에서 처방하는 건 그다지 권장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듣는 항생제가 없으면 노카르디아 때문에 환자가 죽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메로페넴에는 약물 반응이 있었습니다. 식욕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환자의 피부에 구멍이 났던 부분도 메워지기 시작했죠. 환자의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호자분과 수의사가 모두 이게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약을 바꿨는데, 효과가 있었던 거죠. 피부가 좋아지면서 환자의 활력이나 식욕도 덩달아 좋아졌습니다. 식도관을 장착한지 약 1달 반만에 식도관을 제거할 수 있었죠. 초음파 상에서나, 수술을 할 때나 장이 두꺼워져 있는게 확인됐었는데, 환자는 실제로 식도관을 제거한 이후에도 설사를 한동안 지속했습니다. 노카르디아 세균에 의한 복막염 때문에 장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하고, 항생제 치료를 지속하면 소화기 상태도 좋아지겠거니 했는데, 다행히 식도관을 제거하고 1달쯤 지나자 설사가 멈췄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멉니다. 항생제 치료를 어느정도까지나 지속할지에 대한 것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쯤 항생제를 중단할지에 대해서도 보호자분과 상의가 필요하고, 항생제를 중단한 이후에도 다시 노카르디아가 재발하지 않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재발한다면 다시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하고, 여기 소개된 과정들을 다 다시 반복해야할 수도 있어 재발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죠.
이 케이스를 보면, 교과서적인 접근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가능성만으로 약을 쓰고, 진단 검사 없이 추측에 의해서만 진료를 보면 안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교과서적으로 접근했을 때, 놓칠 수 있는 병을 놓치지 않게 되고, 환자에게 가장 정확한 진단과 필요한 치료를 해줄 수 있다는 걸 한 번 더 상기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보호자분께서 교과서대로의 진단과 치료를 믿고 따라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아이에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검사와 치료를 선택해주셨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늘 그렇지만, 이런 케이스를 겪을 때면, 수의사는 그저 약간의 조언을 했을 뿐, 아이가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보호자분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