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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복합질환 케이스: RCM, 방광종양, 담관간염, 소화기 침습성 질환

가끔 병원으로 오는 문의 전화 중에 그런 걸 물어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 원장님 고양이 잘 보시나요?” 못 본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잘 본다고 대답하긴 민망한 질문이죠. 한편으로는 대뜸 실력(?)을 물어본다는 점에서 (수의사 입장에서 생각할 때) 꽤 무례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냥 고양이를 많이 보기는 한다고 답해드리게 됩니다. 최근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 많아졌지만, 과거에는 강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보니, 강아지에 관한 경험은 많지만, 고양이 진료는 많이 보지 못한 수의사들도 많았죠. 그래서 고양이 전문 병원이라고 고양이 진료를 특화 진료로 내세우는 병원들도 생기게 됐고요.

이번에 소개할 케이스는 사실 그런 고양이에 관한 경험이 조금 중요할 수 있는 케이스입니다. 어떤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확진을 낸 게 아니라 흔히 합리적 추측(educated guess)이라고 하는 셈을 통해 이 병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찾아간 진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확진이 아니다보니 사실 속이 시원하지도 않고, 무언가 찝찝함을 남기면서, 반박의 여지 또한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 소개하는 게 맞나 싶은 케이스이기도 하죠. 병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를 가지고 있는 환자라 병에 따라 필요한 약들을 하나하나 고려하게 되는 심화 내과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환자는 16살의 중성화한 암컷 페르시안으로 식욕부진을 주증으로 내원했습니다. 보호자분께서는 아이가 츄르 정도만 받아먹고, 사료를 거의 안 먹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타원에서 관리를 받고 있는 환자로 히스토리가 꽤 특이했는데, 최근에 혈뇨를 봐서 방광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초음파 상에서 방광에 종양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길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지난 여름쯤에는 신장 수치가 올라갔다는 얘기도 들으셨다고 하셨죠. 이전 병원에서 방광에 있는 게 악성 종양인지 방광염에 의한 폴립(polyp)인지 좀 애매하다는 얘길 했는데, 아이가 밥을 잘 안 먹기도 했고, 겸사겸사 방광에 있는 종괴에 대한 소견도 들을겸 오늘동물병원을 찾으셨습니다.

16살의 아주 마른 고양이였는데, 잘 못 먹어서인지 기력도 떨어졌지만, 신체 검사 상에서 황달이 확인됐습니다. 피부가 노랗게 변한 심한 황달은 아니었지만, 상공막(눈의 흰자 부분)이 살짝 노랗게 보이는 게 황달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호자분께 전신 스크리닝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환자는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를 모두 진행했습니다.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Hct

32.7 %

30.3 – 52.3

Hgb

9.6 g/dL

9.8 – 16.2

WBC

11.15 K/uL

2.87 – 17.02

NEU

7.06 K/uL

2.3 – 10.29

LYM

2.29 K/uL

0.92 – 6.88

MONO

▲ 1.23 K/uL

0.05 – 0.67

EOS

0.54 K /uL

0.17 – 1.57

BASO

0.03 K/uL

0.01 – 0.26

PLT

249 K/uL

151 – 600

CBC(전혈구 검사) 상에서는 특이할만한 점은 없었습니다. 환자가 신체 검사 상에서 탈수가 있었던 반면 Hct(빈혈 수치)가 정상으로 확인되는 걸 봤을 때, 탈수가 교정되면 경미한 빈혈이 나타날 수 있겠구나 싶은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었죠. Hct는 빈혈이 있으면 내려가는 수치고, 탈수가 있으면 올라가는 수치인데, 헤모글로빈 수치가 경미하게 낮은 반면, 신체 검사 상에서 탈수가 있는데, Hct는 정상 수치이니, 빈혈과 탈수가 모두 있다고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서 특이할만한 점은 생화학 검사에서 나왔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ALB

2.8 g/dL

2.3 – 3.9

ALKP

219 U/L

14 – 111

ALT

598 U/L​

12 – 130

BUN

30 mg/dL

16 – 36

Ca

8.9 mg/dL

7.8 – 11.3

CHOL

200 mg/dL

65 – 225

CREA

2.3 mg/dL

0.8 – 2.4

GGT

6 U/L

0 – 4

GLOB

5.4 g/dL

2.8 – 5.1

GLU

118 mg/dL

71- 159

PHOS

4.1 mg/dL

3.1 – 7.5

TBIL

▲ 3.1 mg/dL

0 – 0.9

TP

8.2 g/dL

5.7 – 8.9

ALKP, ALT, GGT, T.Bil 모두 간이랑 관련된 혈액 수치들인데, 전반적으로 다 높게 확인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Total Bilirubin(TBIL, 황달 수치) 수치가 높은 걸로 봐서 신체 검사 상에서 의심됐던 황달도 정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이 경우 황달까지 나타났기 때문에 간 자체의 문제가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나이든 고양이에서 간수치(보통 ALT) 수치를 높일 수 있는 갑상선기능항진증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습니다. 환자의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Total T4

1.1 ug/dL

0.8 – 4.7

갑상선 수치가 정상이니, 갑상선기능항진증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갈 수 있습니다. 영상 검사는 어떨까요? 영상 검사를 할 때는 아무래도 간수치가 높은 환자이니, 간을 위주로 보게 됩니다. 방광에 종양이 의심된다는 히스토리가 있으니 방광 종양도 봐야할테고요.


간 자체(=간 실질)의 특이사항은 확인되지 않지만, 담낭벽이 두꺼워져있는 것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비장은 매끈하지 않고, 벌집 모양처럼 우둘투둘한 질감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honeycomb sign). 방광의 배쪽면으로 종괴가 확인되고, 소장의 장벽이 전반적으로 다 두꺼워져 있는 것도 확인됩니다. 혈액 검사에서는 간만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초음파에서는 간담도계 외에도 문제가 더 있겠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렇게 병이 여러개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는 병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교통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일단 제일 먼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방광 종양입니다. 방광 내에 무언가 자란난 혹 같은 게 있다는 건 초음파에서 아주 명확하게 보이니까요.

보호자분께서는 환자의 방광 종괴에 대해 이전 병원에서 “염증에 의한 폴립일 수도 있고, 종양일 수도 있다”라고 얘기를 들으셨습니다. 폴립보다는 모양이 종양스럽지만, 위치가 일반적으로 방광 종양이 생기는 위치는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방광 종양의 경우,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라면 (고양이서는 강아지보다 방광 종양이 드물다는 점 외에도) 잘 생기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 있습니다. 강아지의 경우 방광 삼각 부위(방광의 등쪽면, 요관이 개구하는 부위)에 종양이 잘 생기는가 하면, 고양이의 경우는 이 환자의 초음파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방광 몸통의 중간 부위(mid-body)나 방광의 앞쪽(apex)에 생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한 고양이는 강아지 같은 만성적인 세균성 방광염이 생기는 경우가 드물어서 결석이나 염증에 의한 만성적인 자극이 선행되는 염증성 폴립이 생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강아지를 떠올린다면, 염증성 폴립의 가능성을 조금 더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고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방광 내 저 위치에 저런 종괴가 있다면, 단연 종양을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고양이의 방광 종양도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TCC/UC(Transitional Cell Carcinoma/Urothelial Carcinoma)가 가장 흔합니다. 다른 종양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조직 검사로만 확인이 가능할테니) 일단은 TCC/UC일 거라고 간주하는 것이 맞습니다.


황달은 왜 생겼을까요? 황달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쉽게 해부학적인 위치를 기준으로 간 이전의 문제(Pre-hepatic), 간의 문제(Hepatic), 간 이후의 문제(post-hepatic)으로 구분할 수 있죠. 이 환자의 경우 용혈성 빈혈 같은 게 있는 환자는 아니니 간 이전의 문제는 가능성이 떨어지고, 간의 문제이거나 간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간 이후의 문제라면 담석이나, 췌장염에 의한 담도 폐색 때문에 담즙이 배출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경우인데, 이 환자의 경우 검사 결과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떨어졌습니다. 간의 문제라고 보고 황달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죠.

고양이에게서 간에 생기는 가장 흔한 질환은 뭘까요?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문제는 지방간입니다. 식욕부진이 지속된 고양이는 지방간에 걸릴 수 있는데, 지방간이 생기면 간수치가 올라가고 황달이 나타납니다. 2순위는 담관간염(cholangiohepatitis)입니다. 담관간염이 있는 환자들도 간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황달이 나타날 수 있죠. 가장 흔한 원인이 지방간이니 지방간에 대한 고려부터 해볼 수 있습니다. 지방간은 거의 반드시 식욕부진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먼저 환자가 장기간 식욕부진이 있었느냐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건 해답을 찾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보호자분한테 여쭤보면 되니까요. 보호자분께서는 많이는 아니지만 어제까지는 밥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내원 당일에도 츄르를 조금 먹었다고 했고요. 그럼 지방간 가능성은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실제로 지방간 환자들은 초음파 검사 상에서 간이 주변의 지방(=낫인대) 대비 하얗게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환자의 경우 초음파 상에서 간이 하얗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방간일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담관간염은 어떨까요? 지방간이 아니라면 담관간염의 가능성은 확연히 높아집니다. 실제 담낭벽이 두꺼워져있는 게 확인되기도 했고요. 담관간염은 크게 4가지 카테고리로 구분됩니다. WSAVA International Liver Standardization Group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1) Neutrophilic cholangitis, acute and chronic forms

2) Lymphocytic cholangitis

3) Cholangitis associated with liver flukes

4) Lymphocytic portal hepatitis

4번째 Lymphocytic protal hepatitis는 노령성 변화에 가까운 것으로 치료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1번부터 3번까지를 고려해볼 수 있는데, liver fluke는 갑흡충을 얘기하는데, 소위 민물고기를 회로 먹고 문제가 된다는 얘기를 할 때 나오는 기생충입니다. 고양이가 민물고기 회를 즐기는 게 아니라면 가능성이 높지는 않죠. 따라서 고양이의 담관간염은 세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1번(neutrophilic cholangitis)나 면역매개성에 의해 발생하는 2번(lymphocytic cholangitis)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번은 세균이 문제이니 항생제로 치료(급성은 항생제, 만성은 스테로이드와 항생제)하고, 2번은 면역이 문제이니 스테로이드로 치료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는 식욕이 떨어진 이유가 비교적 명확했는데, 아마도 간 질환이 문제가 되어서 황달이 나타나고 식욕이 떨어졌을 것이었기 때문에 간에 대한 치료가 (방광 종양보다도) 급선무였습니다. 항생제를 쓸지, 스테로이드를 쓸지 고민을 해야된다는 얘기였죠. 스테로이드가 경우에 따라서는 면역을 억압해서 세균 증식을 촉진시켜버리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몹시 까다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소화기 장벽이 두꺼워진 문제랑 비장의 벌집 모양(honeycomb sign)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소화기 장벽이 두꺼워지는 건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소화기 침습성 질환(GI Infiltrative disease)입니다. IBD나 소화기 림프종(EATL type 2)를 고려해야한다는 얘기죠. 비장의 honeycomb sign은 특별한 병변 없이 정상적인 고양이에서 관찰되는 경우도 있지만, 림포마 같은 종양이 있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방광 내에 종양이 있고, 소화기도 종양성 변화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니, 저런 게 보이는게 썩 좋은 건 아니죠.

담관간염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소화기 장벽이 두꺼워져 있다고 하면, (췌장염이 없으니) Triaditis(세동이염, 염증이 3개)까지는 아니더라도 Biaditis(염증이 2개)까지는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그게 IBD인지 소화기 림프종인지는 조직 검사만이 정답을 알려주겠지만요.


여기까지 추론이 되면 해야되는 검사들이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방광 종양은 위치상으로 외과적인 절제가 가능한 부위이니 수술을 해서 종양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제거한 종양으로 조직 검사를 의뢰해서 진단을 명확하게 하는 게 추천됩니다. 진단이 확실해지면, 추후에 항암 치료까지 할지말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담관간염에서 1번 세균성인지, 2번 면역매개성인지를 구분하는 건 오로지 조직 검사로만 가능합니다. 방광 종양을 수술할 때 간 조직을 일부 떼어내서 배양 검사와 조직 검사를 모두 의뢰하면 정확히 어떤 타입의 담관간염인지 확진이 나오겠죠. (혹은 담관간염이 아니라 다른 간 질환이라 하더라도 조직 검사가 답을 내려줄 겁니다)

소화기도 똑같습니다. IBD나 소화기 림프종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장 생검을 하면 어떤 질환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줄 거고, 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감별 진단 목록들이 정말 맞는지 확인해주는 검사는 조직 검사이고, 이 환자는 교과서적으로 개복 수술을 피할 수 없는 환자입니다.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진단 검사(예를 들면 보호자분들이 많이 물어보시는 세침흡인 검사)는 옵션이 아닙니다.


물론 조직 검사가 답이니 당장 개복을 하는 것이 추천된다고 해서, 모든 환자에서 개복이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보호자분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의지와 환자에 대한 고려, 비용적인 부분 모두를 고려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죠. 이 환자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일단 나이가 16살로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여러가지 병 때문에 황달도 있고, 기력이 떨어진 상태이다 보니 마취 위험성이 낮은 편은 아니죠. 또한 방광 종양의 경우, 대부분 악성 종양이니 기대 예후가 그렇게 좋지도 않습니다. 방광 종양이 있는 환자의 기대수명(MST)는 대략 5달 정도로, 길다고 보기는 어렵죠. 수술을 해서 종양을 상당수 제거한다면 기대수명 자체가 늘어나지만, 소화기가 림프종으로 진단된다면 이 또한 기대수명을 깎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통상 EATL type 2(=LGAL, Low Grade Alimentary Lymphoma)의 경우, 적절한 약물 치료가 이루어지면 2년 정도를 기대수명이라고 봅니다.)

최악의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약물 반응성이 나쁘지 않은 담관간염이나 소화기 림프종이 환자를 사망하게 할 가능성보다는 방광 종양이 환자의 기대수명을 깎아먹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면 기대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보호자분의 수술 의지와 항암치료 의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보호자분과의 심도깊은 상담이 필요한 부분이죠. 보호자분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령묘라 수술을 견디지 못한다면,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도 하셨고, 이미 오래 산 아이기 때문에 기대수명을 늘리는 쪽의 치료보다는 조직 검사 같은 침습적인 검사를 피하면서 환자의 삶의 질을 컨트롤하는 호스피스 쪽을 더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항암 치료 또한 환자가 힘들어할 가능성이 있다면, 무리해서 하길 원하지 않는다 하셨고요.


수의사 입장에서는 이럴 때가 사실 제일 힘든 부분입니다. 충분한 자원을 토대로 교과서와 동일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을 때는 교과서대로 하니까, 고민할 게 많지 않습니다. 다음 과정은 보통 정해져있기 마련이고, 진단이 명확하면 치료법과 예후도 명확해지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앞서 언급한 감별진단 목록을 토대로 합리적인 추측(educated guess)을 하고, 적합하다 싶은 약을 처방해야하죠.

먼저, 기대수명을 늘릴 수 있는 치료를 하지 않기로 보호자분과 얘기가 됐으니, 방광 종양을 과감하게 포기하게 됩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옵션으로 두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약은 NSAIDs입니다. 방광 종양(TCC)이 있는 환자에서 NSAIDs는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고, 기대수명을 늘려줄 수 있는 옵션이죠. 장기 복용시 부작용이 없는 약은 아니지만, 방광 종양이라는 커다란 병 앞에서는 속된 말로 깔아두고 갈 수 있는 약이죠.

호스피스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요? 일단 환자가 먹어야 합니다. 밥을 먹어야 삶의 질도 있는거죠. 이 환자의 경우는 간 질환에 대한 해결이 급선무였습니다. 다행히 지방간은 가능성이 떨어져 보이고, 담관간염 같긴한데, 어떤 타입이냐에 따라 항생제를 줄지 스테로이드를 줄지 결정을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는 히스토리를 보는데, 증상이 급성으로 나타났는지, 만성으로 나타났는지를 봅니다. 급성이라면 세균성의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시험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해볼 수 있지만, 만성이라면 면역매개성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스테로이드를 처방하죠. 이 환자의 경우는 식욕이 떨어진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급성인지 만성인지에 대한 히스토리를 보호자분께서 정확히 모르셨습니다. 어떤 약을 처방할지는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얻었는데, 이전 병원에서 방광염이라고 항생제를 먹였었다는 히스토리가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게 어떤 항생제든) 이미 항생제를 오랜 기간 먹다고 온 환자에게서 세균성 담관간염의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아보였고, 면역매개성 담관간염(lymphocytic cholangitis)가 보통 노령묘에게 나타난다는 점도 항생제보다는 스테로이드에 손을 뻗게 만든 이유가 됐습니다. 물론 스테로이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세균 감염인 경우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보호자분과 상의가 됐습니다. 생검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험적으로 약을 투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있을 법한 가능성에 대해서 모두 상담이 필요하죠.

일단 간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처방을 선택하면, 그 이후부터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방광 종양의 경우 NSAIDs를 고려해볼 수 있지만, 동물에서 스테로이드 NSAIDs의 병용 투약은 금기입니다. 위장관 궤양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기대수명에 대한 고려 없이 호스피스 쪽을 선택했으니, 방광 종양은 무시하고 가기로 했죠. 언젠가 환자가 방광 종양 때문에 사망하겠지만, 방광 종양으로 인한 문제가 몇 달 후에 터질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식욕 부진은 당장 내일과 내일모레를 걱정해야되는 문제이니까요. 환자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약은 스테로이드이니, 이 경우라면 NSAIDs는 포기하게 됩니다.

소화기랑 비장은 어떨까요? 최악의 경우, IBD이거나 소화기 림포마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다행히 이 두 질환의 치료약도 스테로이드입니다.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스테로이드가 이 경우에는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해가 될 가능성은 낮겠다고 생각할 수 있죠. 초음파 상으로 최악의 경우 비장에 림프종이 전이됐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항암 치료를 옵션으로 두지 않는다면, 먹어야할 약은 스테로이드에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실제로 고려해야될 부분은 더 많았습니다. 보호자분께서 이전 병원의 처방 내역을 모르시는 상황이었고, 검사 내역도 당장 받아오실 수 없는 상황이셨기 때문에 이전 병원에서 먹던 약과 환자에게 처방될 약이 병용하면 안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죠. 만약 이전 병원에서 간질환이나 소화기 질환에 대한 고려 없이 방광 종양을 우선시해서 NSAIDs를 먹였다면, 휴약 기간 없이 스테로이드를 처방했을 때 위장관 궤양이 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를 했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휴약 기간이 조금 애매했는데, 당장 약 안 먹으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제산제를 함께 주면서 스테로이드를 처방했습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해 식욕촉진제나 항구토제 같은 것들을 처방받고 3일 후, 환자가 다시 내원했습니다. 호스피스 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식욕이었기 때문에 간수치가 개선을 보였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내원 당시 결과

3일 후

정상 범위

ALKP

219 U/L

119

14 – 111

ALT

598 U/L​

308

12 – 130

GGT

6 U/L

0

0 – 4

TBIL

▲ 3.1 mg/dL

0.9

0 – 0.9

TP

8.2 g/dL

8.1

5.7 – 8.9

다행히 추측이 잘 들어맞은 덕에 간수치가 개선을 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달은 사라졌고, 보호자분께서 식욕도 좋아졌다고 하셨습니다. 3일만이긴 하지만, 수화 상태가 좋아진 덕인지 체중도 3.15kg에서 3.24kg으로 늘었죠. 약처방을 유지하고, 일주일 후에 한 번 더 체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내원 당시 결과

3일 후

10일 후

정상 범위

ALKP

219 U/L

119

56

14 – 111

ALT

598 U/L​

308

119

12 – 130

GGT

6 U/L

3

0

0 – 4

TBIL

▲ 3.1 mg/dL

0.9

0.2

0 – 0.9

TP

8.2 g/dL

8.1

6.8

5.7 – 8.9

ALKP나 ALT 같은 간수치도 완전히 개선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분께서 밥도 잘 먹고 체중이 많이 늘었다면서 좋아하셨는데, 이 날 환자의 체중은 3.89kg였습니다. 보호자분이 좋아하셨고, 밥도 잘 먹고, 수치도 좋아졌다니 기분 좋은 일이지만, 어쩐지 찝찝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밥을 잘 먹고, 컨디션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3.15kg이었던 환자가 10일만에 3.89kg으로 740g씩이나 살이 찔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60kg 정도 나가는 성인이 10일만에 14kg 정도가 찐 것과 비슷한건데… 이런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죠.

신체 검사 상에서 (보호자분께서는 잘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지만) 배가 빵빵하다는 느낌이 들어 복수가 찬 건 아닐까 싶어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고, 실제로 환자의 복강 내에서 복수가 확인됐습니다.

복수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복강 내에 종양(그게 방광이든 소화기든, 비장이든)이 있는 환자이니 종양이 감별진단 목록의 1순위였고, 간이 망가진 환자이니, 간문맥 고혈압 같은 것도 감별진단 목록으로 고려해볼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이상했던 건 복수의 양에 비해 체중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는 점이었는데, 흉수까지 찬 건 아닐까 싶어 방사선 사진을 촬영했고, 환자의 방사선 사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복강의 선예도가 떨어지는 건 복수 때문이었지만, 흉강 내에도 흉수가 찼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흉수와 복수를 모두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환자의 경우 방사선 사진 촬영에서 심장이 커보이는 게 확인됐고, 심장 초음파를 통해 심장병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초진 때도 방사선 사진을 찍었는데, 당시에는 탈수 때문에 심장이 그렇게 커보이지 않았었고, 스테로이드가 이런 식으로 폐수종이 생기는 걸 앞당겨 버리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스테로이드는 폐수종의 리스크를 높이는 약입니다.) 환자의 심장 초음파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근벽이 6mm를 넘지는 않는데, 양심방(좌심방과 우심방)이 모두 크게 확장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제한성 심근병증(Restrictive Cardiomyopathy)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심이 크니 울혈성 심부전이 오면, 복수가 찰 수 있고, 좌심이 문제가 있으니 흉수가 차는 것도 가능했죠(이런걸 양쪽 심장이 모두 망가졌다고 해서 양심부전이라고 합니다.)

호스피스 치료를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기대수명이 길지 않다고 판단해 스테로이드 용량을 줄이는 걸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없이,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꽤 장기간 유지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불쑥 심장병이 나타나 버리면 얘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스테로이드 용량을 줄여서 물이 차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죠. 물론 물을 빼주는 가장 최우선적인 치료는 이뇨제가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뇨제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스테로이드의 사용량도 줄이는 게 추천되죠.

이뇨제와 혈전 생성을 예방하기 위한 약이 추가로 처방됐고, 스테로이드를 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도 심장약과 함께 동시에 투약이 됐습니다. 다행히 이뇨제 투약 이후 폐수종은 어렵지 않게 해소가 됐습니다.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터진다고 이후에는 이뇨제 투약으로 인해 신장수치가 크게 올라가면서 식욕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고, 처음에 masking 됐다고 생각됐던 빈혈이 나타나면서 조혈주사까지 맞게 됐는데, 어쨌든 환자는 그럭저럭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검사 항목

내원 당시 결과

10일 후(RCM 진단)

17일 후(RCM 진단 7일후)

31일 후(RCM 진단 21일 후)

정상 범위

Hct

32.7 %

22.3

22.4

25.5

30.3 – 52.3

BUN

30 mg/dL

60

60

16 – 36

CRE

2.3 mg/dL​

2.3

2.1

0.8-2.4

Phos

4.1 mg/dL

3.5

3.2

3.1 – 7.5

이뇨제 용량을 조절하고, 스테로이드 용량을 감량하고, 그 외에 부가적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약들을 추가해서 환자가 어떻게든 좀 더 남은 기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약을 썼습니다. 방광 종양 자체를 애써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기대수명은 방광 종양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기간 동안은 맛있는 캔도 먹고, 보호자분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셈이죠.


실제 이 환자의 경우, (나중에 전달받은) 이전 병원에서의 진료 기록을 보면 2019년(대략 3년 전)부터 간 수치 중 하나인 ALT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았던 게 확인됐습니다. 강아지에서는 노령견에서 ALT 수치가 경미하게 상승한 게 크게 대수로울 일 없는 일이지만, 고양이의 경우 ALT의 반감기가 짧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ALT 수치가 올라가 있다면, 간질환의 가능성을 적극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아지와는 다른 고양이의 특징 중 하나죠. 이미 스테로이드 반응성이 있다는 것으로 lymphocytic cholangitis 혹은 chronic neutrophilic cholangitis의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지만, 3년 정도 전부터 만성화된 간질환이라는 걸 이 기록을 통해서 한 번 더 재확인하게 된 셈이니, 합리적 추론이 비교적 정답에 가까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 셈입니다.


수의사라면 누구나 이런 진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확진이 나지 않고, 추론에 근거해야하는 진료는 끊임없이 찝찝함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 케이스처럼 운이 좋아서 추론이 잘 들어맞는 경우도 있지만, 약물 반응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추론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해야되고, 그 사이에 환자가 안 좋아지는 것까지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좋아할래야 좋아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직 검사가 침습적이라서 보호자분이 결정내리기 어려운 검사라는 건 알지만, 늘상 조직검사를 하자고 말씀드리는 건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조직 검사는 진단의 끝판왕 같은 거니까요)

실제로 추론을 통해 방광 종양이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TCC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뿐, 조직 검사를 하면 뜬금없이 완전히 다른 종양이라고 나올 수도 있죠. 소화기도 소화기 림프종이나 IBD를 높은 가능성으로 볼 뿐 뜬금없는 다른 질환일 수도 있습니다. 담관간염도 약물 반응이 있기는 하지만, 이게 lymphocytic cholangitis인지, chronic neutrophilic cholangitis인지 조직 검사를 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고양이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나, 강아지와는 다른 고양이에서의 특징 같은 걸 알고, 이 정보들을 토대로 추론을 해서 그게 잘 들어맞았을 때는 어디가서 고양이 진료를 못 보진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은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고생하는 병을 무려 4개씩이나 가지고 있지만, 환자가 잘 견뎌주는 걸 보면 그래도 이렇게라도 진료 보고 좋아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

+) 다 쓰고 보니, 수의사가 아니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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