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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고양이 복합질환 케이스: 만성 췌장염, 만성 장병증, 지방간, 당뇨

아무래도 블로그에 소개되는 케이스들은 진단과 치료가 깔끔하게 잘 떨어지는 진료들, 혹은 예후가 그리 나쁘지 않은 진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동물병원에서의 진료들이 늘 그렇게 깔끔하게만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해지는 진료들이 더 많죠. 어떤 경우에는 병 자체가 답이 마땅치 않아서 그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비용이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진단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사이다 마신 것처럼 속시원하진 않을 수 있지만, 진단 검사를 하지 못한 케이스가 어떻게 답답해지는지… 그리고 어떤 한계를 갖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환자는 13살의 네바 마스커레이드, 중성화한 암컷 고양이로 보호자는 오늘동물병원의 테크니션 선생님입니다(엄밀하게는 테크니션 선생님의 가족이 키우는 고양이). 최근 상태가 안 좋아지기 전에도 이미 만성 질환으로 2년 정도 전부터 내과 관리를 하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평소 만성적인 구토가 있는 환자라 2년 전에 IBD와 소화기 림프종(LGAL, small cell lymphoma)을 의심하고 진단 검사를 진행했던 케이스인데, 당시 검사에서 만성 췌장염과 함께 만성 장병증(=IBD인지, 소화기 림프종인지 모르겠지만, 장에 만성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 확인되어 약물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검사 중에 조금 결정적일 수 있는 소화기 패널 검사(22년 4월 검사) 결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22년 4월)

정상 범위

Spec fPL

11.2 ug/L

0.0 – 3.5

TLI

93.70 ug/L

12.00 – 82.00

Cobalamin

438 ng/L

276 – 1,425

Folate

16.8 ug/L

8.9 – 19.9​

spec fPL이 5.3을 넘어가면 췌장염이라고 보는데(정상 범위는 3.5까지지만, 3.5부터 5.3까지는 그레이존이라고 봅니다. 최근 IDEXX의 spec fPL 검사는 정상 범위가 4.4까지로 바뀌어서 4.4에서 8.8까지가 그레이존이죠), 초음파에서도 췌장의 모습도 그렇고, 굳이 조직 검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상증상과 fPL, 영상 검사에서의 모습을 고려하면 만성 췌장염이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코발라민의 경우도 정상 범위 내에 있지만, 이렇게 정상 하한에 가까운 값이 나타나면 세포 단위에서는 코발라민이 부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코발라민의 보충이 추천됩니다. (소화기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특히 원위 소장의 소화흡수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고양이의 만성 췌장염은 췌장염만 단독으로 발병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아마도 만성 장병증(chronic enteropathy)과 만성 췌장염이 병발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었습니다(염증이 두개라고 “bi”aditis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이런 만성 장병증 케이스의 경우, 명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소화기 생검이 필요하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테크니션 선생님의 고양이였기 때문에 22년도에도 교과서적인 진단을 우선시해서 개복 생검을 추천했었습니다. 하지만 배를 여는 게 싫은 건 테크니션이라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검 없이 스테로이드 투약과 만성 췌장염에 대증적인 항구토제 처방으로 관리를 하게 됐습니다. 부족한 코발라민도 보충해주고, 정기적으로 소화기 패널 검사를 해서 수치 변화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니터링했죠.

검사 항목

22년 결과

23년 결과

정상 범위

Spec fPL

11.2 ug/L

13.3 (정상 범위 0.0 – 4.4)

0.0 – 3.5

TLI

93.70 ug/L

12.00 – 82.00

Cobalamin

438 ng/L

> 2,000

276 – 1,425

Folate

16.8 ug/L

> 24.0

8.9 – 19.9​

이렇게 관리되던 환자가 갑자기 기력이 쳐지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며, 최근 테크니션 선생님과 함께 출근(?)을 했습니다. (일요일 병원 쉬는 날에 애 상태가 안 좋다고 전화가 왔지만, 츄르 먹는다길래 원장이 월요일에 데리고 오라고 야박하게 얘기함) 월요일 내원 당시에는 의식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무기력해보였고, 신체 검사에서 탈수도 있는 것으로 보였죠. 츄르는 받아먹는데, 식욕이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 날의 혈액 검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ALB

3.2 g/dl

2.3 -3.9

ALKP

88 U/L

14 -111

ALT

▲ 164 U/L

12 – 130

BUN

▲ 79 mg/dl

16 – 36

Ca

10 mg/dl

7.8 – 11.3

CHOL

▲ 249 mg/dl

65 – 225

CREA

▲ 4.4 mg/dl​

0.8 – 2.4

GGT

0 U/L

0 – 4

GLOB

▲ 5.5 g/dl

2.8 – 5.1

GLU

▲ 552 mg/dl​

74 – 159

PHOS

7.3 mg/dl

3.1 – 7.5

TBIL

▲ 1 mg/dl​

0 – 0.9

TP

8.6 g/dl

5.7 – 8.9

total T4

1.1 ug/dl

0.8 – 4.7

일단 눈에 확 띄는 것 중 하나는 혈당(GLU)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 중인 환자이기도 했지만, 만성 췌장염이 있는 환자이니 만성 췌장염의 합병증으로 당뇨가 왔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죠. 콜레스테롤(CHOL) 수치가 높아진 건 아무래도 당뇨에 의해 2차적으로 고지혈증이 생겨서 그렇겠구나…라고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당뇨 외에도 크레아티닌(CRE) 수치와 BUN 수치가 올라간 건 걱정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평소 신부전을 관리하고 있는 환자는 아니어서 탈수 때문에 신장 수치가 올라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령묘이기 때문에 신부전이 겹쳐서 터진 게 아닌가도 생각했어야 하니까요. 신장 수치 외에도 문제가 된 것 중 하나는 간수치입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ALT 수치가 약간 높아져 있었고, 아주 미약하지만 황달(TBIL 상승)도 있어 보였죠. 과체중 고양이였고, (츄르를 먹긴 했지만) 식욕이 좋지 않았다는 히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방간이 온 건 아닌지, 혹은 기존에 만성 장병증을 관리하던 환자니까 췌장염과 만성 장병증에 추가적으로 담관간염이 터져서 세동이염 상태가 된 건 아닌지까지도 고민을 했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봐야했던 건 혈액가스 검사입니다. 당뇨 환자가 밥을 잘 안 먹고 기력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왔다면, 기계적으로 떠올려야 하는 것이 케톤산증(DKA)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Cl

▼ 100 mmol/L

112 – 129

K

▼ 2.6 mmol/L

3.5 – 5.8

Na

▼ 145 mmol/L

150 – 165

PCO2

▲ 43 mmHg

34 – 38

pH

7.34

7.24 – 7.4

AnGap

27 mmol/L

HCO3

▼ 21.3 mmol/L

22 – 24

TCO2

▼ 22.7 mmol/L

27 – 31

당뇨 때문에 나트륨 수치도 조금 떨어진 것”처럼” 보이고(=pseudohyponatremia라고 합니다), 저칼륨혈증도 확인됩니다만, 다행히 pH 자체는 심한 산증 상태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상태가 안좋긴 하지만, 최악은 아니구나…라고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었죠. (야박하게 월요일에 데리고 오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부분)

케톤산증은 아니었지만, 일단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은 맞으니, 입원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탈수를 교정하기 위해 수액이 들어가야했고, 탈수가 어느 정도 교정된 이후에는 인슐린을 줘서 혈당도 관리를 해줘야했죠. 인슐린으로 당뇨를 관리할 때 당 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스테로이드도 중단했습니다. 스테로이드는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당뇨 환자에서 스테로이드를 주면 당 관리가 잘 안됩니다(못하는 건 아니지만, 잘 안됩니다). 스테로이드 투약이 조직 검사를 통한 확진이 아니라 소화기 패널 검사나 히스토리를 통해 어느 정도는 가진단에 기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명확한 다른 진단(=당뇨)이 있다면, 일단 환자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약을 중단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죠.

문제는 간수치였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간수치 상승이 뜻하는 건 그냥 간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 정도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 케이스도 그렇습니다. 간수치가 올라간 걸 보면 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 문제가 정확히 뭔지(=진단명이 뭔지)는 알 수 없었죠. 일단 봐야했던 건 초음파입니다. 간에 문제가 있는데, (이 케이스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종양 같은 게 있지는 않은지를 봐야했죠.


전반적으로 간이 정상보다 하얗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 종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간이 왜 하얗게 보이는 걸까요? 깝깝한 얘기지만, 초음파에서 간이 하얗게 보인다는 얘기는 간이 전체적으로 (diffuse하게) 안 좋다는 얘기일뿐 진단명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당뇨나 췌장염 때문에 2차적으로 간이 하얗게 보이는 걸 수도 있고, 혹은 담관간염 같은 간질환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림프종 때문에 간이 하얗게 보일 수도 있죠. 그러니까 초음파가 알려주는 정보란, 그냥 덩어리지어 보이는 간 종양은 아니구나… 정도까지를 알려줍니다.

어쨌든 간에 대해서는 감별진단 목록을 세워두되, 당장 어떤 적극적인 처치를 하지는 않은채, 다른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수치 변화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니터링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한 얘기를 하자면, 진단이 나오지 않았으니 간에 대해서는 처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정확하겠네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감별진단 목록이 있으면, 가능성 있는 질환을 추려놓고,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 처치들을 해볼 수는 있죠. 이 환자의 간에 대한 감별진단 목록은 뭐가 있을까요? 앞서 얘기한 것들입니다. 1) 지방간, 2) 공포성 간병변(vacuolar hepatopathy) 3) 세균성(neutorphilic) 담관간염, 4) 면역매개성(lymphocytic) 담관간염, 5) 림프종(diffuse한 종양), 6) 그 외 잘 모르는 희귀질환을 고려해볼 수 있었죠. 간수치가 올라갔는데, 초음파에서 간이 전반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질환들 중에서 흔한 걸 리스트업하는 겁니다. 이 질환들은 어떻게 진단을 해야할까요? 각각의 감별진단 목록에 대한 진단 방법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 지방간: 간 FNA(세침검사)

  • 공포성 간병변: 간 FNA(세침검사)

  • 세균성 담관간염: 간 생검 및 담즙 배양 검사(혹은 간 조직 배양 검사)

  • 면역매개성 담관간염: 간 생검 및 담즙 배양 검사(혹은 간 조직 배양 검사)

  • 림프종: 간 FNA(세침 검사)

  • 그 외 잘 모르는 희귀질환: 간 생검

결국 간을 FNA(세침검사)하거나, 조직 검사해야한다는 얘기인데, 보통의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나 히스토리, 혹은 나이 등을 고려해서 이런 감별진단 목록 중에서 우선 순위를 세웁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었다는 히스토리가 있고, 뚱냥이가 아니라면 지방간은 일단 목록에서 가능성이 낮은 후순위로 밀리는 식이죠. 어린 고양이가 급성으로 간 질환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났다면, 세균성 담관간염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의사들은 환자의 나이나 품종, 성별(=signalment라고 합니다), 문진 내용을 토대로 감별진단 목록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을 합니다. 수의사들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일은 경우에 따라서는 진단 검사 없이 가진단을 토대로 바로 환자를 치료로 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하죠.

헌데 이 환자는 이게 전혀 안되더군요. 식욕이 좋지 않았다는 히스토리가 있는 뚱냥이니 지방간도 가능하고, 만성 췌장염이 뚜렷하게 있는 환자이니 공포성 간병변(vacuolar hepatopathy)에 의한 2차적인 간수치 상승도 가능했습니다. 만성 장병증이 기저 질환으로 있는 환자이니 담관간염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놔야했죠. 가능성이 있는 질환들에 대한 치료 옵션도 한 번 살펴보죠.

  • 지방간: 강급과 간 보조제

  • 공포성 간병변: 치료 필요하지 않음

  • 세균성 담관간염: 항생제

  • 면역매개성 담관간염: 스테로이드

  • 림프종: 항암제

  • 그 외 잘 모르는 희귀질환: 보통 치료 방법 없음

치료제들을 고려해봤을 때 당뇨가 터진 환자에서 일단 별 문제 없이 쓸 수 있고, 향후 검사를 하고자 할 때 진단을 방해하지 않는 옵션은 지방간에 대한 치료 뿐입니다. 면역매개성 담관간염을 고려하고 스테로이드를 투약하기에는 환자의 당뇨가 잘 관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세균성 담관간염을 고려해서 항생제를 투약하면, 향후 담낭 천자나 간생검을 해서 배양 검사를 보냈을 때 세균 배양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죠. 항암제의 경우 어떤 진단 없이 쓴다는 건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는 항암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어처구니 없는 일에 가깝고요.

항생제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생각보다 적지 않은 수의) 수의사들이 어떤 명확한 진단 없이 이런 케이스에서 항생제를 투약하곤 합니다. 국밥말아주듯 2-3종의 항생제를 환자에게 투약하고 개선을 보이는지 확인하죠. 여기에는 항생제가 환자에게 큰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있습니다만, 이런 치료적인 접근법은 2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감염에 대한 명확한 증거 없이 항생제를 투약하는 게 최근의 antibiotic stewardship(=항생제를 적재적소에 가능한 최소한으로만 쓰자는 태도)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공중보건학 차원에서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 세균의 항생제 내성을 키운다는 측면이죠.

두번째는 첫번째 이유보다 조금 더 실질적인데, 이런 항생제 밑밥깔기가 환자의 진단과 예후 판단을 망쳐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아모크라(아목시실린/클라불란산), 마보플록사신, 메트로니다졸을 국밥처럼 말아서 환자에게 주사한다고 해보죠. 이렇게 항생제를 줬을 때 환자의 예후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될 겁니다. 좋아지거나, 혹은 좋아지지 않거나로요. 좋아지는 케이스라면 항생제 반응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어떤 항생제가 환자를 좋아지게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케이스라면 당뇨가 관리되면서 간수치가 떨어진건지, 항생제가 환자를 낫게 만든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죠. 어쨌든 좋아진다면, 좋든 싫든 뭐가 환자를 나아지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했던 걸 최대한 길게 유지하는 식의 산탄 처방을 하게 됩니다. 바람직하지 않죠. 좋아지지 않는 경우는 조금 더 끔찍한 경우의 수가 생깁니다. 이 경우에는 항생제를 투약했음에도 좋아지지 않았으니 세균이 아니었나봐…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처음의 애매한 진단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1) 세균이 있는데, 국밥 조합이 세균을 사멸시키지 못한 케이스의 가능성(=항생제 내성)이 있고, 2) 세균 감염 케이스가 아닌 경우도 있죠. 결국 세균 문제인지 아닌지를 항생제 투약 트라이얼을 통해서 알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환자에게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었던 치료는 결과적으로 지방간에 대한 치료와 당뇨에 대한 관리 정도가 남습니다. 콧줄(비식도관)을 달고 유동식을 강급하면서 혈당 관리를 하는 거죠(지방간이 아니어도 일단 먹여야 하니, DKA가 아니더라도 당뇨 환자가 안 먹으면 강급이 필요합니다). 수액 치료를 하면서 탈수를 교정하고, 신장 수치가 개선되는지 보는 것도 당연히 해줘야 합니다. 실제로 입원 기간 동안 수액을 줘서 신장 수치가 개선되는 걸 보고, 콧줄을 장착해서 강급을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입원기간 동안 간수치와 신장수치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검사 항목

입원 1일차

입원 2일차

입원 3일차

입원 4일차

정상 범위

ALB

3.2 g/dl

2.6

2.6

2.5

2.3 -3.9

ALKP

88 U/L

77

128

134

14 -111

ALT

▲ 164 U/L

239

240

268

12 – 130

AST

347 U/L

272

250

0 – 48

BUN

▲ 79 mg/dl

79

44

23

16 – 36

CREA

▲ 4.4 mg/dl​

4

2.4

1.6

0.8 – 2.4

GGT

0 U/L

0

0

0

0 – 4

PHOS

7.3 mg/dl

5.2

3.8

4.1

3.1 – 7.5

TBIL

▲ 1 mg/dl​

0.6

0.7

0.5

0 – 0.9

환자의 수화 상태나 전해질이 어느 정도 교정된 상태에서는 간에 대한 진단 검사를 위해 보호자인 테크니션 선생님께 간 생검을 추천했죠. 헌데 여기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평소 만성 장병증이 의심되던 환자이니 향후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고자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복 후 장생검과 간생검을 모두 하는 쪽을 얘기했는데, 보호자인 테크니션 선생님의 가족 회의에서 개복을 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거죠. 환자 상태가 안 좋고, 나이도 많은데, 개복한다고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으니 마취나 개복을 안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보호자에 의해 수의사의 손발이 묶이게 되면, 그 다음부터 진료는 아주 답답해집니다. 진단 검사가 아니라 추측과 추론에 의해 치료 방향을 정해야하기 때문이죠. 추측과 추론에 의한 치료는 치료 반응을 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환자들에서 시간은 보통 환자의 편이 아닙니다. 시간이 환자와 보호자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는, 뒤늦게 진단 검사를 하고자 해도 검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케이스의 경우, 수의사의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앞서 설명했던 이유들 때문에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투약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환자한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지방간에 대한 치료를 우선시했습니다. 집에서 강급을 하면서 인슐린을 투여했고, 퇴원 후 일주일차가 됐을 때 간수치를 다시 한 번 검사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퇴원 후 일주일차엔 간수치가 정상으로 확인됐습니다. 별다른 걸 하지 않았는데도 간수치가 정상이 됐다는 얘기이니, 지방간이거나 다른 질환에 의한 2차적인 간수치 상승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지만, 여전히 담관간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는 둬야 하는 상황이었죠. 간수치가 개선되긴 했지만 환자의 자발 식욕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자발 식욕이 떨어질만한 요인이 (정체불명의) 간질환, (역시나 정체불명의) 만성 장병증, 만성 췌장염… 이렇게 3개나 되는 환자였기 때문에, 이 때엔 간질환에 대한 감별보다는 어떻게든 환자를 먹여야 했습니다. 콧줄은 장기간 장착해둘 수 없으니, 좋든 싫든 전신 마취를 하고 식도관 장착을 고려해야했죠.

검사 항목

입원 4일차(퇴원날)

퇴원 1주일 후

정상 범위

ALB

2.5 g/dL

2.7

2.3 -3.9

ALKP

134 U/L

80

14 -111

ALT

268 U/L

47

12 – 130

AST

250 U/L

36

0 – 48

GGT

0 U/L

0

0 – 4

TBIL

0.5 mg/dL

0.4

0 – 0.9

다행히 수의사의 손발을 묶어놨던 보호자가 이 때엔 식도관 장착을 원했습니다(수의사의 손발을 묶어놓고, 일단 환자를 살려달라는 얘기). 마취 시간이 그리 길지 않고, 어쨌든 먹여야 한다는 데에는 수의사와 보호자가 모두 동의했으니, 식도관을 달아서 부족한 자발식욕을 강급으로 보충하기로 했죠. 이 때 보호자와 타협을 하고 제시했던 게 담낭 천자와 간 FNA입니다. 간 FNA로는 담관간염을 진단할 수 없지만, 림프종 같은 종양의 가능성을 배제해줄 거고, 담낭 천자를 하면 항생제 투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췌장염이 그동안 얼마나 나빠진 건지 알기 위해서 fPL 검사도 다시 해보자고 했죠. 먼저 fPL 결과는 이렇습니다.

검사 항목

22년 결과

23년 결과

24년 결과

정상 범위

Spec fPL

11.2 ug/L (정상 범위 0.0 – 3.5)

13.3

> 50.0

0.0 – 4.4

실험실에 의뢰한 검사인데도 장비가 측정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섰다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발 식욕이 떨어지는 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죠. (오히려 자발 식욕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한 결과였습니다.) 담즙 배양 검사 결과는 어땠을까요?

다행히 세균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세균성 담관간염이라는 감별진단 목록 하나를 배제하고 갈 수 있다는 얘기였죠. 항생제 투약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세침 검사 결과입니다.

INTERPRETATION:

-Lipidosis

-Mild plasmacytic inflammation

COMMENTS:

Hepatic lipidosis is confirmed with the marked infiltration of lipidic vacuoles within the hepatocytes. Lipidosis is often secondary to prolonged anorexia, which itself can be secondary to another problem.

Mild inflammatory infiltrates within the liver remain somewhat difficult to confirm on cytology. But because plasma cells are not found in the peripheral blood, this supports at minimum chronic inflammation in the liver. There may also be a minimal suppurative component in this case (active inflammation).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inflammation within the liver also reflects inflammation within nearby organs like the intestinal tract and the pancreas (ex: triaditis). An emerging plasma cell tumor cannot be completely ruled out but would be expected to yield much higher numbers of plasma cells at this time considering the long-term clinical history.

CYTOPATHOLOGIC DESCRIPTION:

The slide is of high nucleated cellularity and consists mainly of hepatocytes present both in clusters and individually. They have abundant granular blue gray staining cytoplasm and most show moderate to marked intracytoplasmic lipid accumulation/vacuolization. Rarely, plasma cells are intertwined with the hepatocytes, with rare non-degenerative neutrophils. The background consists of purple staining tissue fluid and of peripheral blood with proportional numbers of WBCs and platelets. No microorganisms noted.

IDEXX 세포학 검사 결과

한줄 요약하자면, 세포학 검사에서는 지방간이라고 생각되나, 세포학으로는 염증(=담관간염)을 확인하기 어려우니, 필요하다면 조직검사를 하라는 얘기죠. 일단 이렇게 결과가 나오면 처음 생각했던 감별진단 목록 가운데에서 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감별 진단 목록을 검사 결과를 토대로 줄을 세우면 이렇습니다.

  1. 지방간

  2. 공포성 간병변

  3. 면역매개성 담관간염

  4. 세균성 담관간염

  5. 림프종(혹은 diffuse한 종양성 변화)

  6. 그 외 잘 모르는 희귀 질환

줄 그어서 지워놓은 것들은 얼추 배제가 되는 것들이죠. 면역매개성 담관간염은 간 생검을 하지 않았으니 여전히 완전히 배제가 어렵습니다만, 강급과 당뇨 관리 이후에 간 수치가 정상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조금 낮아집니다. (테크니션 선생님은 그래도 환자가 밥을 아예 안 먹진 않았다며 지방간은 아닐것 같다고 했지만, 검사 결과상으로는 지방간이 1순위…) 어쨌든 이렇게만 감별진단 목록이 추려져도 그럭저럭 어떻게 치료해야겠다는 우선순위는 나옵니다. 운이 좋게 잘 풀린 덕분이지만, 여기까지 보면 이게 딱히 고구마 먹은 진료일 일이 있나 싶죠. (운이 좋게 풀렸다고 표현한 이유는 운이 나빠서 1순위가 담관간염이었다면, 진단 검사를 하지 않기로했던 1주일 전의 선택이 환자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버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의사가 생각하기에 이 진료는 이상과는 꽤나 거리가 멉니다. 환자를 위한 최선이었냐하면 그렇지 못하죠.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결과(=minimum database, MDB 검사)를 토대로 추론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는데, 그 시나리오에 맞는 추가적인 진단검사(=조직 검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담낭 천자로 감염에 대한 부분이 배제된 상황에서 이 환자의 예후를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는 스테로이드 투약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부분이 남습니다. 진단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추측만으로 당뇨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약하기는 꽤나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 환자의 경우 스테로이드 투약을 추천할 수 없었습니다만, 만약 진단 검사가 이루어져서 환자가 스테로이드를 필요로 한다는 게 명확해져서, 스테로이드 투약이 합리화된다면, 환자의 상태를 더 나아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죠. (스테로이드 투약의 당위성이 명확진다면, 당뇨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스테로이드를 준다고 당뇨 관리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겁니다. 환자는 밝혀진 것만 봤을 때 만성 췌장염이 심하게 있고, 만성 장병증이 의심됩니다. 간은 지방간처럼 보이지만, 만성 장병증과 만성 췌장염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세동이염으로 면역매개성 담관간염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렵습니다. 이 환자가 애초 수의사가 의도했던 대로 개복을 통해 생검을 할 수 있었다면, 면역매개성 담관간염이 있는지, 혹은 만성 장병증의 원인이 IBD인지, 항암제까지 필요한 소화기 림프종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갈 수 있죠.

생검을 통해 담관간염이나 IBD, 혹은 소화기 림프종(LGAL, Low grade alimentary lymphoma)이 확인된다면, 당뇨가 있다 하더라도 환자의 예후를 개선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 처방이 합리화될 수 있습니다. 소화기 림프종으로 확인이 된다면 클로람부실 같은 항암제에 대한 옵션도 열어둘 수 있습니다. 아니면 조직 검사를 통해 담관간염을 배제하고, IBD나 소화기 림프종을 진단했다면, 당뇨를 감안해서 스테로이드를 배제하고, 클로람부실 단독으로 환자의 예후를 증진시키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죠. 보호자가 좋은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면 개복을 하기는 싫다고 했지만, 오히려 반대로 개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후에 대한 판단도, 좋은 예후를 장담할 수도 없게 됐달까요. 수의사의 손발을 묶어놓는 진료란 이런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수의사의 손발을 묶어놓는다면, 초진으로 온 밥 안 먹는 나이 많은 환자의 보호자가 “검사는 안해도 되니까, 그냥 약만 주세요(혹은 영양수액 놔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차라리 쉽습니다. “검사 안 하시면, 약 안드릴 거에요”라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호자가 ‘이 정도 선까지는 괜찮지만, 이 이상은 싫어요’라고 진단 검사의 한계를 정해두면, 수의사는 진료를 포기하기 어려워지고, 보호자도 (일단은 어느 정도는 검사를 했으니까)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저는 이걸 수의사와 보호자가 함께 걷는 가시밭길이라고 얘기하고, 보통의 경우 저는 못된 수의사이기 때문에 가시밭길은 보호자분 혼자 걸으라고 차갑게 얘기합니다만) 보호자가 병원 직원이거나, 수의사가 생각하기에도 이 이상의 진단 검사(보통은 마취나 칼 대는 게 필요한 침습적인 진단 검사)를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좋든 싫든 맨발로 보호자분과 함께 가시밭길을 걷게 되죠.

IBD에 대한 케이스 포스팅을 쓸 때, 장생검을 옵션으로 두되, 스테로이드 트라이얼을 해보는 꼼수가 있다… 정도의 얘기를 했었는데, 꼼수가 꼼수일 수 밖에 없는 건 꼼수를 쓸 수 없는 경우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환자처럼 병이 여러가지 있고, 각 질환의 치료가 다른 질환의 치료를 방해하면, 명확한 진단은 더욱 중요해지죠. 확정 진단을 토대로 질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뭔지를 알려면 기본적인 환자의 상태 파악이 최대한 명확해야하니까요. 교과서는 현실과 다르다고 하지만, 교과서에 하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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