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예전에 어떤 분이 댓글로 수혈에 관해 다뤄달라는 얘길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케이스가 생기면 오늘동물병원이 어떻게 수혈을 하는지에 대해 소개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게, (수혈 케이스가 거의 없어서) 이제서야 포스팅을 하게 됩니다(최근에 수혈을 한 번 했다는 얘기죠.)

케이스 자체는 강아지 수혈이었지만, 조금 포괄적으로 강아지와 고양이의 수혈에 대한 얘길 써볼까 합니다. 혈액형부터 시작해서 최근 한국의 동물혈액 수급 상황 같은 것까지 다 포함해서요. 먼저 조금 쉬운 혈액형부터 살펴보죠.

강아지의 혈액형

강아지의 혈액형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에서 혈액형을 A,B,AB,O형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Rh+, Rh-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것처럼 적혈구 표면의 항원을 기준으로 DEA(Dog Erythrocyte Antigen) 방식으로 넘버링을 해서 구분하기도 하고, Dal(달마시안한테 수혈하다 발견되어서 Dal이라고 함)이라는 혈액형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발견되어서 Kai(=발음이 미묘하지만 개…)라고 하는 혈액형 구분법도 있죠.

여러 혈액형 구분법 중에서 임상적으로 수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DEA 타입입니다. DEA는 1,3,5,6,7,8로 구분을 하는데, 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DEA 1형입니다. 병원에서 강아지 혈액형 검사를 한다고 할 때 보는 게 DEA 1이죠.

옛날에는 DEA 1을 구분할 때, DEA 1.1형, DEA 1.2형, DEA negative로 구분했습니다. 앞서 말한 복잡한 다른 분류를 제외하고 수혈을 할 때 중요한 것만 DEA 1만을 기준으로 강아지의 혈액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한거죠. 한국에서 동물혈액은행이 혈액을 판매할 때 이 구분법을 따라 혈액을 판매했던 게 그리 먼 과거가 아닙니다만, 최근에는 이렇게 구분하지 않고, DEA 1+(1 positive)와 DEA 1-(1 negative)형, 2가지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혈액은행에서 판매하던 혈액형 검사 카드를 보면, 1.1, 1.2, negative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있죠.

하지만 DEA 1.2형은 임상적으로 1.1형과 다른 적혈구 항원을 갖는 것이 아니라, 1.1형과 같은 적혈구 항원을 약하게 발현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고, 최근에는 그래서 1.2형을 확인하지 않고, DEA 1+형과 1-형으로 구분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나오는 혈액형 검사 키트들은 1.2형을 확인해주지 않죠. 동물혈액은행도 최근에는 혈액을 DEA 1+형과 1-형으로 판매하고 있고, 혈액형 검사 키트도 1.2형을 구분해주지 않는 최근의 혈액형 검사 카드를 판매합니다.

고양이의 혈액형

고양이의 혈액형은 흡사 사람 같습니다. A형, B형, AB형으로 구분하죠(사람과 달리 O형은 없습니다). A형이 거의 95% 정도, 4-5% 정도가 B형, 나머지 1% 미만이 AB형입니다. 아주 쉽죠. 이 외에 고양이에서는 MiK라는 혈액형 구분법도 있습니다만, 이 혈액형은 검사를 할 수 있는 상업용 키트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고양이는 그래서 수혈 전에 크로스매칭이라는 검사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혈의 종류

수혈은 혈액 제제가 투여되는 걸 얘기하지만, 모든 수혈이 다 똑같은 건 아닙니다. 어떻게 후가공된 혈액을 넣느냐에 따라서 전혈 수혈(Whole blood transfusion)과 성분 수혈(Component transfusion)로 구분할 수 있죠. 환자에게 필요한 게 혈액에서 적혈구인지, 응고인자인지, 알부민인지, 혈소판인지에 따라서 전혈 수혈을 하기도 하고 성분 수혈을 하기도 합니다. 혈액 제제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표로 이쁘게 정리해놓은 게 있는데, 슬쩍 가져와보면 이렇습니다.

대충 정리해보면, 방금 채혈한 신선한 혈액을 Fresh whole blood(신선 전혈)라고 합니다. 이렇게 채혈해놓은 걸 냉장고에 넣어서 24시간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stored whole blood가 됩니다. 신선한 전혈에 있는 혈소판은 채혈 후 8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응고 인자들도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경우, 병원에서 공혈견이나 공혈묘를 이용해 채혈하자마자 수혈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stored whole blood를 사용하게 되죠. 보통 동물혈액은행 같은 곳을 통해 혈액을 구매해서 수혈하게 되니까요.

농축 적혈구(Packed red blood cell)은 성분 수혈을 할 때 쓰는 혈액제제로 말그대로 적혈구가 부족한 환자에게 쓰기 적합한 것입니다. 채혈한 혈액을 원심분리하면 적혈구는 가라앉고, 혈장은 상층액으로 위에 뜨게 되는데, 가라앉은 적혈구를 모아놓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가라앉은 적혈구를 제외하고 위에 뜬 혈장을 분리해서 얼린 게 FFP(Fresh Frozen Plasma, 신선동결혈장)입니다. FFP에는 이런저런 응고인자들과 알부민이 들어있죠. 전혈의 경우 24시간만 지나도 신선(fresh)하다는 표현을 쓸 수 없지만, 혈장 같은 경우는 잘 얼려놓기만 하면 12달까지도 신선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12달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Fresh Frozen Plasma가 아니라, 그냥 Frozen Plasma가 되죠. 이렇게 12달이 지난 혈장에는 응고인자 중에 5번과 8번 인자가 없어진다고 봅니다. 응고 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쓰기엔 조금 부적절할 수 있죠.)

Cryoprecipitate는 낮은 온도에서 잘 안 녹는 것들을 원심분리해서 분리해낸 것들입니다. 몇몇 응고인자들이 들어있어서, 응고인자를 보충해주기 좋죠. 이 때 원심분리를 해서 침전된 게 아니라 상층액으로 떠오른 것들을 Cryosupernatant(표에서는 Cryoprecipitate-poor plasma라고 쓰여있음)라고 하는데, 역시나 몇몇 응고인자들과 알부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Cryoprecipitate나 Cryosupernatant 모두 구할 수 없는데, 사실상 신선동결혈장(FFP)를 원심분리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수혈해야하는 응고장애 환자들에서는 그냥 FFP를 써버립니다. 공부할 때 재미는 있는데, 쓸 일은 보통 없다는 얘기죠.

이 외에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 중엔 강아지 알부민 수혈제제(한국에서 알부민 수혈했다는 얘기는 human albumin을 강아지한테 수혈했다는 얘기입니다)나 Lyophilized platelet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특수성

전혈 수혈과 성분 수혈 중에 뭐가 더 나은가는 케이스에 따라서 꽤나 논란이 생기기도 하는 주제입니다만, 출혈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면 보통 필요에 따라 성분 수혈을 선호하곤 합니다. 특히나 동물병원 수혈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빈혈 환자의 수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문제는 현재(24년 1월) 한국에서 성분 수혈이 어렵다는 부분이죠.

앞서 언급한 Cryoprecipitate 같은 경우는 애초에도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혈액제제였습니다만, 통상 성분 수혈로 많이 썼던 농축적혈구(pRBC)와 신선동결혈장(FFP) 같은 경우도 현재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동물용 의약품을 관리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전혈을 제외한 다른 혈액제제(전혈이나 농축 적혈구)가 후가공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용 의약품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고, 혈액제제를 판매하던 곳(동물혈액은행이나 건국대 동물병원 헌혈센터)에서 성분 헌혈에 필요한 농축 적혈구나 혈장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동물용의약품제조업 허가를 받아서 혈액 제제별로 별도의 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22년 말즈음부터 규제상의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수혈을 하고자 한다면 전혈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농축적혈구와 신선동결혈장의 유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간 다시 유통되겠지…라고 생각한게 벌써 1년이 넘어버렸네요.

수혈 전 검사

어쨌든 이런 배경 지식을 가지고 수혈을 시작해보도록 하죠. 소개할 환자는 타원에서 IMHA(면역매개성 용혈성 빈혈)로 진단을 받고, 며칠 전쯤에 수혈을 한 번 받았던 6살짜리 강아지였습니다. IMHA는 초반에 효과적으로 면역억압이 되어서 더이상 용혈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반복적인 수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환자는 2번째 수혈이 필요한 환자였죠.

빈혈 환자에서 수혈을 한다면 빈혈 수치가 어느 정도나 되어야 할까요? 이건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서 수혈이 필요한지를 평가하게 되죠.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빈혈이 급성이냐 만성이냐에 따라서 수혈이 필요한 수치를 다르게 봅니다. 통상적으로 급성 빈혈에서는 Hct 10-15 정도를 기준으로 보고, 만성 빈혈에서는 8-12 정도까지 수혈 없이 버티죠. (하지만 이것도 수의사가 어디까지 쫄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

수혈을 보수적으로 하는 것과 공격적으로 하는 것 사이에 어떤 것이 더 예후가 좋은가에 대해서는 사람에서의 연구가 있습니다. 1999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올라온 TRICC trial이라는 논문입니다.

동물에서는 빈혈을 평가할 때, Hct(혹은 PCV)를 토대로 빈혈이 심각도를 평가하는 반면, 사람은 헤모글로빈(Hgb) 수치를 토대로 평가합니다. 이 논문은 Hgb 7(대략 PCV 21과 비슷)인 환자랑 Hgb 10(=PCV 30)인 환자를 두고, 조금 더 빠르게 수혈을 들어가는 것(liberal strategy)와 보수적으로 수혈이 들어가는 것(restrictive strategy) 사이에서 어느 쪽이 예후가 더 좋은가를 살펴봤죠. 결론은 수혈을 보수적으로 하는 게 더 낫다는 거였습니다. 수혈은 어쨌든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몸 안에 혈액이 많은 게 무작정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죠. 동물에서도 수혈을 할 때는 이런 사람의 기준들을 외삽해서 (어떤 기준선이 되는 Hct 수치를 참조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수혈을 최대한 늦게 하는 식으로 환자를 관리합니다. (이런 기준을 따라가다보니 오늘동물병원은 수혈을 잘 안 합니다.)

이 케이스의 환자는 어느 정도 선에서 수혈을 했을까요?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항목

결과

정상 범위

RBC

▼ 1.72 M/uL

5.65 – 8.87

Hct

▼ 10.5 %

37.3 – 61.7

Hgb

▼ 3.3 g/dL

13.1 – 20.5

MCV

▼ 61 fL

61.6 – 73.5

MCH

▼ 19.2 pg

21.2 – 25.9

MCHC

▼ 31.4 g/dL

32 – 37.9

전날 검사를 했을 때는 Hct가 15.1%였는데, 하루 만에 10.5%까지 떨어졌죠. 똑같은 추세로 떨어진다면 내일은 환자가 많이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이런 경우 보수적으로 조금 더 기다리는 건 안될 일이죠. 이런 식으로 환자의 빈혈이 악화되는 속도와 이 환자가 이미 빈혈 상태에 적응한 만성 빈혈 환자인지의 여부, 현재의 빈혈 상태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수혈 라인을 정하게 됩니다.

어쨌든 수혈이 필요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는 혈액형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미 첫번째 수혈을 받을 때, DEA 1+형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환자였습니다만, 이렇게 병원을 옮기게 되는 경우 (오늘동물병원의 경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한 번 더 혈액형 검사를 했습니다(이런 경우, 보통 보호자분께 비용 청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환자의 혈액형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Control에 라인이 찐하게 찍힌 것과 달리 DEA1에는 아주 흐릿한 라인만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미 DEA 1+형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도 DEA 1+라고 봅니다. 아마 옛날이었다면 DEA 1.2형으로 구분이 됐을 수도 있고, 혹은 빈혈이 워낙 심한 상태(Hct 10.5)라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쓰는 혈액형 검사 키트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물혈액은행에서 판매하는 카드 방식의 RapidVet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에 보이는 Alvedia 제품입니다. 방식이 조금 다른데, 래피드벳 제품은 Card agglutination test라고 얘기하고, 알베디아 제품은 Immunochromatographic assay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병원에서 사용 중인 알베디아 제품을 더 선호하는데, 카드 응집 방식(card agglutination test)은 이미 혈액에 자가응집이 있는 경우, 검사 결과가 다소 모호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환자처럼 IMHA 때문에 수혈을 하는 경우에는 IMHA 자체가 혈액이 자가응집 되는 병이기 때문에 혈액형 검사를 했을 때, 결과 판독이 애매하게 나올 수 있죠.

이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혈액 제제는 뭘까요? IMHA의 경우, 적혈구가 깨지면서 빈혈이 나타나는 병이기 때문에 적혈구를 보충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환자에게 혈장이나 혈소판, 응고인자 같은 건 딱히 필요하지 않죠. 그래서 가장 추천되는 혈액 제제는 농축 적혈구입니다. 농축 적혈구를 쓴다면, 적은 양의 혈액 제제만으로도 충분히 Hct 수치를 올릴 수 있죠.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농축 적혈구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차선으로 어쩔 수 없이 이 환자는 전혈 수혈을 진행했습니다.

수혈을 얼마나 해야할까요? 이건 계산식이 있습니다. 환자의 현재 빈혈 수치와 수혈되는 혈액의 Hct 수치를 알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Hct 수치를 올릴지를 잡아두고, 필요한 혈액량을 계산할 수 있죠. 이 환자를 위해 동물혈액은행에서 구입한 DEA 1+형 전혈의 Hct는 43.1%였고, 환자의 현재 Hct 수치가 10.5%니까, 목표치만 잡으면 필요 혈액량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선을 목표치로 잡을 거냐는 질환에 따라 다른데, 이 환자 같은 IMHA 환자에서는 (이 부분은 논란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Hct 30% 정도를 목표로 잡습니다. (30%을 넘어버리면 재생 반응이 떨어지는 반면, 너무 낮게 잡으면 면역억압이 될 때까지 시간이 벌지 못하고, 금방 또 재차 수혈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환자도 그렇게 30% 정도를 목표로 잡으려 했습니다만, 2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14kg 정도 되는 큰 강아지라 보호자분의 비용 부담이 문제가 됐고, 다른 하나는 성분 수혈이 아니라 전혈 수혈이다 보니 수혈량이 너무 많아진다는 부분이었습니다. Hct 30%를 목표로 잡고 수혈을 하려면 전혈 총 590mL이 필요했는데, 통상 4시간 안에 수혈이 끝나야 하니까, 시간당 수혈 속도가 147mL/hr가 되어야 했죠. 14.5kg의 강아지 유지 수액 속도 41mL/hr 정도이니 대략 3.5배 정도 혈액이 빠르게 들어가야한다는 얘기인데, 굳이 그런 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수혈했다가 폐에 물차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목표 Hct 수치를 25%로 잡고 수혈을 진행했죠. 그렇게 계산할 경우에는 대략 400mL 정도의 전혈이 필요합니다. 4시간에 다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시간당 100mL/hr 정도니까 유지 2.5배 정도의 속도로 수혈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나이가 어린 급성의 빈혈 환자이니 2.5배 정도면 해볼만 했죠. (만약 이상적인 상황에서 농축 적혈구를 이용했다면, 통상 농축 적혈구의 Hct를 70%라고 보니까, 목표 Hct 30%를 잡았을 때, 수혈량은 364mL이 됩니다. 수혈 속도가 91mL/hr 정도로 유지 2배 정도니까,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한 수혈을 하게 되죠. 이럴 때 성분 수혈을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아쉽습니다.)

동물혈액은행에 필요한 양의 혈액을 주문하고 혈액이 병원에 도착하면, 해야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크로스매칭이라고 하는 검사죠. 태어나서 한 번도 수혈을 받지 않았던 강아지는 자연발생한 항체가 없기 때문에 크로스매칭 없이 그냥 수혈을 해도 괜찮습니다만, 한번이라도 수혈을 받았던 적이 있는 강아지라면 크로스매칭 검사가 필요합니다. 고양이의 경우에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수혈을 받은적이 있든, 있지 않든 수혈 전에는 반드시 크로스매칭 검사를 해야하죠. 이런 수혈과 관련한 부분을 정해주는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수혈 부작용과 관련된 부분들을 살펴보고, 예방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해준 AVHTM(Association of Veterinary Hematology and Transfusion Medicine)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총 3편으로 나왔는데, 2편에서 수혈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얘기하죠. 여길 보면, 최근의 수혈이 4일 이전이라면 반드시 강아지에서도 크로스매칭 검사를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도 그래서 크로스매칭을 했습니다. 크로스매칭은 직접 원심분리해가면서 현미경으로 응집 반응을 확인해보는 조금은 고전적인 방법이 있기는 한데, 오늘동물병원에서는 상업 키트를 이용한 검사를 합니다. 이런 키트 검사는 수혈 받는 환자의 항체를 수혈되는 혈액(공혈견의 혈액)의 적혈구(=항원)와 섞어서 응집이나 용혈이 나타나는지를 봅니다(Major crossmatching을 본다고 합니다). 환자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XM이라고 표시된 부분이 저렇게 하얗게 보이면 수혈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혈액형이 같은 경우라 하더라도 수혈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앞서 언급했듯이 강아지와 고양이의 혈액형은 검사로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분류도 있기 때문에 안전한 수혈을 위해서는 이런 검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혈 시작

이 다음은 수혈입니다. 그냥 혈관 라인을 잡고 혈액을 수액주듯이 주는 게 수혈이지만, 수혈은 수액과는 약간 다른 세팅이 필요합니다. 먼저 하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만, 수혈은 수액을 주듯이 인퓨전 펌프를 쓸 수 없습니다. 정맥 라인으로 뭔가를 밀어넣고자 할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직접 손으로 슈팅하는 게 아니라면, 수액줄에 연결해서 쓰는 인퓨전 펌프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고, 주사기를 밀어주는 장비인 시린지 펌프를 사용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중력의 힘을 빌려서 그냥 방울방울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죠.

인퓨전 펌프나 시린지 펌프를 사용하면 환자에게 들어가는 혈액의 속도를 일정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수혈에서는 이런 장비를 쓰는 것이 그다지 추천되지 않습니다. 특히 인퓨전 펌프(좌측 사진)는 사용을 피하라고 할 정도죠. 앞서 얘기한 AVHTM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점이 적혀 있습니다.

사진에 있는 오늘동물병원의 인퓨전 펌프는 한국에서 (동물병원이든 사람병원이든) 루틴하게 많이 사용되는 제품인데, 이 제품은 peristaltic infusion pump라고 해서 이 펌프를 사용하면 수혈되어야 하는 적혈구에 손상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인퓨전 펌프를 사용하면,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70% 정도의 세포만 깨지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FDA에서 수혈용으로도 허가를 받은 인퓨전 펌프가 있다고는 하는데, 보통은 인퓨전 펌프를 수혈에 사용하는 걸 권하지 않죠. 같은 이유 때문에 시린지 펌프도 사용이 추천되는 건 아닙니다만, 시린지 펌프의 경우 고양이에서 소량을 수혈할 때는 쓸만하다는 논문이 있었던지라 AVHTM은 고양이 수혈, 혹은 소량의 수혈에 한해서 시린지 펌프를 오케이하고 있습니다.

사람에서는 최근 인퓨전 펌프로 수혈을 해도 별 문제 없더라는 얘기가 나오곤 있습니다만, 동물의 혈액이 그래도 괜찮은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고, AVHTM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게 안전하다고 보기 때문에 굳이 적혈구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인퓨전 펌프를 수혈에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환자처럼 400mL 가량의 다량의 혈액을 수혈해야 하는 환자에서는 기껏해야 50mL 주사기 정도가 장착되는 시린지 펌프를 쓸 수는 없습니다. 중력을 이용해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방법을 사용해야하죠. 중력을 이용한 방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수혈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병원이 이런 경우, 보통 년차가 낮은 인턴(혹은 테크니션) 한 명을 옆에 붙여놓고, 분당 몇 방울이나 떨어지는지를 확인하게 하죠. 그리고 수액줄에 달린 조절기를 통해 분당 떨어지는 방울수를 컨트롤하게 합니다.

수혈이 시작되면 초반의 첫 15-30분 정도는 혈액을 천천히 줍니다. 이 시간동안 환자의 바이탈(심박, 호흡수, 체온 등등)을 측정해서 수혈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지 확인하는 거죠. 초반 15-30분 정도 별 문제가 없었다면, 수혈 속도를 빠르게 바꿉니다. 혈액은 상온에서 세균이 빠르게 자라날 수 있는 배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혈액을 통해 감염을 막기 위해서 수혈은 가급적 4시간 안에 완료되는 걸 목표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게 속도인지라 사실 중력을 이용해 수혈을 하는 건 속도를 면밀하게 조절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갖죠.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이걸 (원장의) 장비병으로 해결합니다. 혈액이 떨어지는 수액 라인에 장착해서 떨어지는 방울수를 실시간으로 측정해서 들어가는 수혈 속도를 계산해주는 장비를 이용하죠.

이 장비를 이용하면, 강아지가 팔을 굽히거나, 자세를 바꿀 때 속도가 달라지는 걸 바로바로 확인해서 적절한 속도로 조절해줄 수 있습니다. 4시간 내내 사람이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죠(보통 4시간 내내 사람이 붙어있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수혈이 아니면 동물병원에서는 인퓨전 펌프의 존재 때문에 필요없는 장비지만, 어쨌든 동물병원에서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니까요.)

또 하나 수혈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필터입니다. 일전에도 필터와 관련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수혈을 할 때는 필터가 있어야 합니다. 중력에 의존해서 방울방울 혈액을 수혈할 때는 수혈 세트라고 하는 전용 수액줄이 필요하고, 시린지 펌프를 이용해 소량의 수혈을 할 때는 Hemonate 필터라고 하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수혈 중에 생길 수 있는 혈괴(clot) 같은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혈 세트는 170-260um 크기의 필터를 필요로 하고, 시린지 펌프를 이용해서 수혈을 할 때는 주사기 앞에 18um의 필터를 달아야만 하죠(이걸 달지 않고 수혈을 하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수혈세트는 동물혈액은행에서 혈액을 구매하면 보통 하나가 딸려오지만, 18um짜리 헤모네이트 필터는 병원에 구비해 둬야만 시린지 펌프로 수혈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혈 속도와 필터만 중요한 건 아닙니다. 혈액형 검사, 크로스매칭, 환자의 빈혈 상태와 심혈관계 상태 등을 통해 수혈이 안전할거라는 걸 대략 알고 진행하지는 않지만, 실제 수혈 중에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혈 중에는 항상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해서 수혈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이런 수혈 모니터링 차트를 이용해서 수의사나 테크니션이 환자가 수혈 받는 내내 상태를 보죠. 이 환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지만, 수혈 중에 체온이 오른다거나, 갑작스레 호흡이 빨라진다거나 하는 부작용이 있진 않은지 살피는 겁니다.

수혈 부작용?

수혈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AVHTM의 가이드라인은 수혈을 하는 방법론에 대한 얘기라기보다는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고,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입니다.

가볍게는 수혈 중에 열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FNHTR(Febilre Non-Hemolytic Transfusion Reactions)라고 하는데, 보통 심각한 다른 문제가 배제된다면 그냥 무시하고 수혈을 해도 괜찮죠. 조금 무서운 수혈 부작용 쪽으로 가면 TRALI, TACO, TRIM 같은 말들이 나옵니다. TRIM(Transfusion-related Immunemodulation)은 수혈 이후에 면역억압이 되는 현상을 얘기하는데, 사람에서나 보고가 있을 뿐 동물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지만, TRALI나 TACO는 동물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수혈 부작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름이 재밌는데, TRALI는 Transfusion Related Acute Lung Injury의 약자입니다. 수혈 이후에 갑작스레 수혈에 의한 면역 반응 때문에 비심인성 폐수종이 생기는 경우를 얘기하죠. 환자는 갑작스런 호흡 곤란을 겪고, 통상 수혈 6시간 이내에 증상을 나타냅니다. 문헌에 따르면 강아지에서 3.7% 정도의 부작용 발생률이 언급됐을 뿐, 고양이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고양이라고 딱히 나타내지 않을 명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 수혈을 할 때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죠.

TACO는 Transfusion associated Circulatory Overload의 약자로 수혈에 의한 면역반응과는 별개로 다량의 혈액이 한 번에 환자에게 투여되면서 체액량 증가 때문에 나타나는 폐수종을 얘기합니다. 체액량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기 때문에 이뇨제로 치료하죠. 동물에서는 아주 치명적인 면역거부반응을 제외하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만성 빈혈 환자의 경우 (일전에 설명했던 것처럼) 빈혈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심장병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도 심장 크기가 커지곤 하는데, 이런 환자에게 4시간이라는 수혈 타임 프레임을 맞추기 위해 빠른 속도로 혈액을 주게 되면 쉽게 체액 과부하(volume overload) 상태가 되곤 합니다. 이 케이스에서 Hct 30%를 목표로 잡을 경우 수혈 속도가 부담스러워진다는 얘길 했었는데, 이런 부분을 우려하게 되는거죠(통상 어린 나이의 심장병이 없는 급성 빈혈 케이스에서 수혈 속도가 조금 빠르다 한들 체액 과부하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돌다리는 두들겨보라고 만들어놓은 다리니까요.)

이 외에도 AVHTM에서 얘기하는 수혈 부작용은 여러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수혈 이후에 부종이나 발적 같은 알러지 반응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혈액이 굳지 않게 사용하는 항응고제 때문에 생기는 저칼슘혈증이나 stored whole blood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고암모니아혈증 같은 것들도 언급하고 있죠.

보통의 경우, 수혈은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만 환자가 죽지 않는” 치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수의사와 보호자가 모두 알고 있되,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죠. 만약 수혈을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환자는 높은 확률로 수혈이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혈은 대부분의 경우, 수혈이 필요한 상황(예컨대 빈혈)을 유발하는 원인을 해결하는 치료라기보다는 당장의 위급한 상황(=사망 가능성)을 벗어나기 위한 치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저 질환을 해결할 수 없다면, 수혈은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죠.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에서 암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수술이나 항암 치료)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암에 의한 빈혈을 수혈로 해결한다 한들 의미는 없습니다. 안타깝고 잔인한 얘기지만, 이런 환자에서 수혈을 하는 건 아이를 하루라도 더 붙들고자 하는 보호자의 욕심이고, 소중한 혈액의 낭비일 뿐이죠.

수혈은 사실 어렵지 않은 치료이지만, 공부할수록 재밌는 게 많은 분야(수의사 선생님들이라면 최근 핫한 TEG-guided transfusion 같은 얘길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고, 환자의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개선된다는 점 때문에 수혈 이후가 보람차기도 한 술기입니다.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필요하다고 했을 때 안할 수 없는 치료이니, 안그래도 안 좋은 아이 상태 때문에 겁이 나는데, 이런저런 부작용 얘기까지 들으면 막연하게 겁이 더 많이 나게 되는 치료이기도 합니다. 수혈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잘 준비해서 정해진 검사들을 진행하고, 세심하게 환자를 살필 수 있다면, 수혈은 때론 요단강에서 발장구치는 환자의 목덜미를 붙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치료입니다. 너무 겁낼 필요만은 없는 치료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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