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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는 동물약

수의학 공부를 하다보면, 도대체 언제쯤 한국에서도 이런 약을 쓸 수 있을까 기다리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진통제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범위를 넓혀서 한국에 있었으면 하지만, 없는 약들을 (의식의 흐름이 이끄는대로) 써볼까 합니다.

먼저, 식욕 촉진제입니다. 식욕촉진제에는 다양한 약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이프로헵타딘 같은 약들을 썼지만, 최근 동물에서의 식욕촉진제로 가장 많이 쓰는 약은 머타자핀(상품명 레메론)이라는 약입니다. 한국에도 레메론이 유통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강아지와 고양이의 식욕 촉진제는 보통 레메론이라는 약을 씁니다. 하지만 최신 수의학에서는 식욕 촉진제로 한국과는 조금 다른 약을 선호합니다.

먼저 고양이의 경우, 똑같이 머타자핀이라는 약을 씁니다만, 한국에서 머타자핀이 먹는 약으로 처방되는 것과 달리, 최신 수의학에서는 연고제를 조금 더 추천합니다. 동일한 성분이지만, 연고로 바르는 머타자핀이 혈중에서 약물 농도가 조금 더 오랜시간 높게 유지되고, 부작용도 더 적게 나타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신부전이 있는 고양이들은 결국 식욕촉진제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연고를 사용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식욕을 촉진시킬수 있는 거죠(약 먹이는 스트레스도 조금 줄어들테고요). 하지만 이 연고제가 국내에는 아직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강아지의 식욕 촉진제를 쓸 때는 역시나 비슷하게 머타자핀이라는 약을 용량을 다르게 해서 사용합니다만, 미국에서는 강아지에서 식욕촉진제로 머타자핀을 쓰기보다는 카프로모렐린이라고 하는 다른 약을 씁니다. 개에서 머타자핀의 식욕촉진 효과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 머타자핀이라는 약이 대사되는 정도가 다르고, 약물 농도가 유지되는 시간이 다릅니다. 소형견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라고 보기는 하지만,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하긴 어려운 식욕촉진제인 셈이죠. 그래서 강아지에서는 머타자핀보다는 카프로모렐린이라는 약을 더 선호합니다. Entyce라는 상품명의 약으로 강아지에서 분명한 식욕촉진 효과가 있었다는 데이터가 있는 약입니다. 장기간 사용했을 때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보고가 있고요. 이런 약들은 소량씩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보니, 처방이 일반적이기는 어렵습니다(연고 처방을 했다가, 약 수급이 안되면, 약이 없다고 보호자분에게 말씀드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동물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진료 중 하나인 외이염 진료에 있어서도, 한국에 쓸 수 있는 약이 한정적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약은 클라로라는 약으로 한 번 귀 안에 넣으면 2주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제품인데, 한국은 이런 게 없습니다. (비슷한 제품으로 오서니아라고 하는 약도 있는데, 오서니아와 클라로 모두 국내에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귀를 만지면 너무 아파서 보호자를 물려고 하거나, 사나워서 집에선 연고를 넣을 수 없는 환자들에게 병원에서 연고를 넣어줄 수 있어 꽤 유용한 약입니다만, 한국에선 사용이 어려운 거죠.

2주 동안 지속되는 이런 귀연고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외이염 치료는 몇 가지 있으면 하는 약들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재발성 말라세지아 외이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서 조금 더 강력한 항진균제를 사용하고자 할 때 처방하는 포사텍스(포사코나졸이라는 강력한 항진균제가 들어간 귀연고입니다)라든가, 만성적인 증식성 외이염 환자에서 이도 협착을 해결하고자 할 때 쓰는 시노틱(플루오시놀론이라는 강력한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된 귀연고입니다)도 국내에서는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항암제로 주제를 바꿔보면, 항암제 쪽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약이 없습니다. 화학 요법(chemotherapy)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림프종의 경우, 루틴하게 사용되는 CHOP 프로토콜(빈크리스틴,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독소루비신, PDS를 사용한 항암 치료 프로토콜)은 어렵지 않게 한국에서도 가능하지만, CHOP가 듣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대체 프로토콜(이런 걸 rescue protocol이라고 합니다)은 적용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rescue로 가장 쉽게 손을 뻗는 CCNU(로무스틴)은 국내에 유통이 되지 않아 쓸 수가 없고, 또 다른 rescue로 사용 가능한 MOPP 프로토콜은 M에 해당하는 Mustargen이 국내에 유통되지 않아서 적용이 어렵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약이지만, 타노베아(라박포사딘) 같은 약도 한국에는 아직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림프종을 치료할 때면 쓸 수 있는 무기가 정말 한정적이죠.

고양이 소화기 림프종(EATL type 2)에 사용하는 클로람부실도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 스테로이드 단독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테로이드 반응성이 떨어지면 결국 좀 더 헤비하게 CHOP 프로토콜을 써야만하죠) 강아지 비만세포종을 치료할 때 쓰는 스텔폰타라는 신약도 아직 국내에는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공평하게 말하자면, 대단히 핫한 신약이기 때문에 “아직” 국내에 안 나온 것이긴 합니다). 강아지 비만세포종은 대부분 악성종양이라 외과적으로 크게 절제할 필요가 있는데, 스텔폰타라는 주사제는 비만세포종에 약물을 주사해서 수술 없이 종양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강아지 흑색종(멜라노마) 수술 후에 사용하는 멜라노마 백신 같은 경우도 해외에서는 사용한지 꽤 됐음에도, 아직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이 외에도 고양이 천식 발작이 터졌을 때 응급약으로 쓰는 터부탈린 주사제라든가, 강아지 신부전에서 칼슘 대사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칼시트리올(이건 약이 없다기보다는 소형견에서 적용할 수 있게 약을 조제해주는 컴파운딩 약국이 없다는 문제 때문입니다), 강아지 구토 유발에 사용하는 안약인 클레보(지금은 주사제로 구토를 유발하지만, 최근에 안약을 넣으면 강아지 구토를 유발할 수 있는 제품이 나왔습니다. 정맥 라인을 안 잡아도 되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죠) 같은 약들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더 간편하고 효율적인 약은 그래도 대체제가 있으니 참을 수 있습니다만, 약이 없어서 스탠다드한 치료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항암치료 같은 경우는 보호자분도 안타까워하시지만, 수의사도 안타깝습니다. 사람약을 동물에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국내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죠. 사람에서의 부작용 때문에 어떤 약의 사용이 금지되면, 동물에서는 써도 되는 약이지만, 유통이 안되니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고양이 변비에 사용하는 시사프리드가 대표적이죠. 시사프리드는 사람에서의 부작용 때문에 국내에서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도 사람에서의 부작용은 똑같지만, 동물용 의약품 시장이 크기 때문인지, 시사프리드가 동물에서 처방되곤 하죠.

동물약은 동물약품업체들의 늦장 때문인지 국내 출시가 늦은 편이고, 사람약은 사람에서 금지가 되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필요한 약들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어떤 약들은 비슷한 다른 약으로 대체를 할 수 있지만, 대체가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손놓고 있을 수 밖에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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