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라인 하나 잡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여러번 글을 쓰게 될까 싶었습니다. 라인 잡을 때 쓰는 테이프를 가지고 포스팅을 했던 적도 있고, 어떤 색의 카테터로 라인을 잡아야 하나를 가지고 포스팅을 했던 적도 있죠. 어쩌면 인턴 때보다 원장이 된 지금이 라인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금 더 스탠다드한 방향으로 강아지 고양이의 라인을 잡고 유지하는 것에 관한 얘기입니다. 한국 동물병원의 관행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도 있어서, 약간은 불편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일종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먼저 일반적인 (한국의 방식으로) 라인을 잡는다고 해보죠. 적당한 사이즈의 카테터를 선택해서 (보통은 앞다리에 있는 혈관에) 환자의 정맥 라인을 확보합니다. 카테터가 혈관에 잘 들어가면, 카테터에 헤파린 캡을 장착하고, 빠지지 않게 테이핑을 해줍니다. 그리고 수액을 달아주고자 하면 수액세트를 연결하기 위해 헤파린 캡에 나비침을 꽂아주고, 나비침이 빠지지 않게 역시나 테이프를 이용해서 고정을 해줍니다. 그러면 대충 이런 그림으로 라인이 잡히죠.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카테터, 헤파린캡, 나비침 순서대로 체결
아마 한국에서 임상을 하는 대다수의 수의사나 테크니션들이 여기에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이런 방식으로 라인 잡는 걸 배웠고, 개원을 한 이후에도 쭉 이런 방식으로 정맥 라인을 유지했으니까요(당장 블로그를 뒤져봐도 이렇게 라인 잡아둔 사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 병원이 한가하면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왜 외국에서는 라인 잡을 때 나비침을 쓰지 않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의문의 답은 꽤 쉽고 명확했는데, 나비침은 혈관 라인을 유지할 때 쓰는 의료기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비침은 일회성의 짧은 채혈이나 주사를 위해 사용되는 소모품이지, 오랜 시간 수액을 주기 위해 쓰는 의료기구가 아닙니다. 나비침을 정맥 라인 유지에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 쓰는 건, 굳이 얘기를 하자면 스탠다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낮은 확률이지만) 환자에게 해가 될 가능성도 있고요.
사람의 경우, 정맥 라인을 잡으면 보통 카테터에 곧장 수액 세트(=수액줄)를 연결합니다. 동물처럼 헤파린캡과 나비침을 사용하지 않죠. 이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 때문인데, 사람은 정맥 라인이 잡혀있을 때, 그걸 잡아당기면 안된다는 걸 환자가 압니다. 하지만 동물은 모르죠. 그래서 동물은 수액 세트를 바로 연결하기보다는 중간에 (잡아당겼을 때)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걸 하나 더 둡니다. 한국은 그게 헤파린 캡에 꽂혀있는 나비침이죠. 외국은 보통 T-port라는 걸 씁니다.
정맥 카테터에 T-port를 연결해둔 사진
어떻게 보면 헤파린 캡과 나비침은 T-port를 기존 다른 도구를 이용해 모사한 것처럼 보이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어른의 사정 때문인데, T-port 하나의 가격보다 헤파린 캡과 나비침을 이용해 연결한 게 비용이 더 저렴하죠(나비침과 헤파린캡을 쓰는 것 대비 3배 정도 더 비쌉니다). 이렇게 비용을 절감하는 건 환자의 의료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연결성에 있어서) 동일할지 모르지만, 실제 임상적으로 헤파린 캡과 나비침을 이용하는 건 환자에게 카테터를 통한 혈류 감염의 리스크를 높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CRBSI(Catheter-related Blood Stream Infection, 카테터 관련 혈류 감염증)라고 하는 건데, 나비침을 이용해서 수액 라인을 유지하면 이런 CRBSI의 리스크가 높아지죠.
왜 나비침을 이용해서 수액 라인을 유지하면 문제가 될 소인이 높아질까요? 이는 정맥 라인을 유지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답이 있습니다. 수의학에서는 이런 게 없지만, 사람은 이런 게 있습니다. INS(Infusion Nurses Society)라는 곳에서 환자에게 주사를 할 때 라인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주사를 해야하는지 임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죠. 이 가이드라인을 따를 때 가장 중요하게 유념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환자의 정맥 라인이 늘 폐쇄되어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Closed system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외부에서 감염이 라인 안으로 유입되면 안되니까) 매우 중요한 개념이죠.
이 개념을 기준으로 볼 때, 헤파린 캡에 꽂힌 나비침은 열려 있는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꽂혀 있는 나비침의 바늘 주변으로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상태가 되고, 바늘이 꽂힌 구멍을 통해 세균이 카테터 내부로 들어가기 쉬운 상태라고 보죠. 동시에 나비침의 끝이 금속이니 강아지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헤파린 캡 안에서 바늘이 흔들리면, 그 진동이 카테터를 타고 혈관 벽에 전달되어 정맥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나비침이 빠졌을 때, 바늘 때문에 환자나 의료진이 찔릴 수 있다는 것(needlestick injury)도 이런 방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라고 보죠.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기존의 한국 방식은 정맥 라인을 외부 환경에 노출해놓은 상태라고 보는 셈입니다.
T-port는 그렇지 않습니다. 카테터와 루어락(돌려서 너트와 볼트처럼 체결하는 방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closed system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이렇게 카테터에 연결된 T-port는 나비침의 필요성을 없애주고, 환자의 정맥이 닫힌 시스템 상에서 수액에 연결될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인 나비침 방식과 비교했을 때, CRBSI의 리스크를 줄여주고, 금속 바늘이 흔들리면서 생기는 물리적인 자극의 가능성도 줄여주죠.
나비침을 이용한 방식이 약간은 구시대적인 지양해야하는 방식이라면, T-port를 이용하는 건 그래도 환자의 혈관을 열어두지는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죠. 최근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INS와 CDC 모두 바늘을 사용하지 않는(=needless) 방식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T-port는 헤파린 캡과 마찬가지로 카테터에 직결되는 부분에 고무캡이 있죠.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주사를 하고자 할 때는 여기에 주사 바늘을 찔러서 약을 주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바늘을 이용해 고무캡을 뚫는 행위는 더는 스탠다드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헤파린 캡과 T-Port에 달린 고무캡(노란 부분)
이걸 스탠다드라고 하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코어링 현상 때문입니다. 이전에 필터 니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코어링에 관한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어링은 바늘이 고무캡을 뚫으면서 작은 고무 조각을 바늘 내부로 밀어넣는 현상을 얘기합니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고무 조각이 수액을 타고 강아지나 고양이의 혈관으로 들어가 색전증이나 염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죠. 같은 고무캡을 여러 번 찌를수록 큰 파편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또한 반복적인 주사 행위가 고무캡의 자가 폐쇄 기능을 상실한다고 봅니다. 고무캡은 (나비침이 찔려 있는 상태만 아니라면) 폐쇄된 상태라고 간주하는데, 여러번 찌를수록 고무가 해지면서 열린 상태가 된다고 보는거죠.
이런 고무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의료계에서 스탠다드로 쓰이는 것이 니들리스 커넥터(needless connector)입니다.
INS의 Infusion Therapy, Standard of Practice에 나오는 내용
니들리스 커넥터는 바늘이 고무캡을 뚫는 방식이 아니라, 주사기가 결합될 때 내부의 실리콘 밸브가 뒤로 밀려나며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덕분에 고무 파편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고, 반복적인 주사에도 커넥터가 손상될 가능성이 적죠. 또한 표면 자체가 (니들에 의한 손상을 받지 않으니) 계속 평평한 상태라 알코올 솜으로 닦았을 때 소독 효과가 일반 고무캡에 비해서 더 좋다고 봅니다.
그럼 이제 스탠다드를 따르기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죠. 하나는 closed system을 달성하기 위해 나비침을 버리고 T-port를 써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바늘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니들리스 커넥터를 써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INS는 유리 앰플에서 주사제를 뽑았을 때 혼입될 수 있는 유리조각이 환자의 정맥 내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필터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습니다. T-port, 니들리스 커넥터, 필터가 스탠다드를 따르기 위해 필요하죠.
유리 앰플을 사용할 때 필터를 권고하는 INS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기존에도 필터 니들을 사용했습니다만, T-port나 니들리스 커넥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걸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는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일단 필요한 건 니들리스 커넥터가 달린 채 나오는 T-port였습니다. 아래와 같은 제품이죠.
Needless connector가 달려 있는 T-port
이런 제품을 쓰면 카테터 직접 주사를 할 때도 바늘이 고무캡을 찌르지 않도록 할 수 있죠. 앞서 얘기한 코어링에 의한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이는 카테터에 직접 주사를 쏘지 않고, 수액줄에 주사를 찌를 때도 동일합니다. 흔히 많이 쓰는 y-site(아래 사진의 동그라미표)에 주사를 찌르면 고무캡을 뚫을 수 밖에 없는데, y-site를 쓰지 않고, 3-way를 통해 주사를 줄 수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쓰는 수액 세트를 보면 이렇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수액 세트
필터가 달려있고, y-site와 3-way가 모두 있죠. 여기서 y-site를 사용하지 않고, 3-way에 Q-syte라는 제품을 달아서 씁니다. 이렇게 하면 수액 라인에 직접 주사를 줄 때도 바늘없는 방식으로 주사를 줄 수 있죠.
Q-syte라는 needless connector. 우측은 실제 3-way에 Q-syte가 3-way에 체결된 모습
주사 부위 소독에 대한 부분도 curos라는 제품을 이용해 해결합니다. 헤파린 캡이나 y-site는 직접 알콜솜을 이용해 닦아줘야지만 주사 부위를 소독할 수 있는데, 이렇게 루어락 방식으로 체결되는 니들리스 커넥터를 쓰면 평소 사용하지 않을 때는 큐로스로 늘 소독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Curos라는 알콜 소독 캡.
물론 이렇게 스탠다드를 따라가면 소모품 비용이 상당히 많이 늘어납니다. Needless connector가 달려있는 T-port는 꽤나 비싸서, 나비침 방식에 비해서는 소모품 비용이 대략 6배 가량 늘어나죠. 게다가 이런 식으로 루어락 방식을 지향하면 주사기도 기존 주사기보다 비싼 루어락 방식을 쓰는 게 낫기 때문에 주사기 비용도 늘어납니다(루어락이 흔한 밀어서 끼워넣는 루어슬립 방식 주사기보다 비쌉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주사기까지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이렇게 바꾸는 일이 익숙함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몹시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 동물병원에서 오래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나비침을 꽂아둔 헤파린 캡에 구멍을 통해 나온 피 때문에 피가 떡져있거나, 라인 플러싱을 할 때, 바늘 구멍 주변으로 수액이 새어나오는 걸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나비침 방식이 closed system이 아니고, 정맥을 외부에 열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증거죠.
루어락 방식이 루어슬립 방식에 비해 더 비싸다보니 (사람 의료에서 비용 문제 때문에 잘 쓰이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한국은 루어락으로 병원의 주사 시스템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용을 감수하고 병원의 세팅을 바꾸려고 해도, 루어락 제품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일례를 들자면, 수액줄을 T-port에 루어락으로 체결하고 싶어서 끝자락이 루어락 방식으로 된 수액 세트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국내에서는 주문 제작이 아니면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모든 주사 시스템을 루어락으로 바꾸면 당장 주사기 가격이 1.5배가 되는데, 동물병원 또한 사업체이다보니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 입장에서는 비용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고요.
하지만 스탠다드가 점점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면, 언제까지 비용을 핑계로 고집을 부리기란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의료비 상승은 불가피하겠지만, 더 좋은 것은 늘 공짜로 오지는 않으니까요. 정맥 라인이나 수액 세트 같은 것들은 보호자의 선택이 아니라 병원에서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것들입니다. 일반 보호자가 어떤 수액 세트 제품이 있고, 어떤 것이 추천되는지를 알기란 어렵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병원에 이런 제품을 써달라고 요구하기란 불가능하고요. 그렇다보니 병원이 먼저 문제 의식을 가지고 바뀌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동물병원은 여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조금 더 스탠다드에 가까워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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