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적절한 유도마취제 없이 바로 흡입마취제를 이용하는 것은 환자에게 위험합니다. 흡입마취제만을 이용해서 환자의 마취를 유도하고, 마취를 유지하는 것은 환자의 마취 중 사망률을 높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흥분하고 겁먹은 고양이를 재우려면 많은 양의 마취제를 사용해야하는데, 흡입마취제는 저혈압과 호흡 억압을 부작용으로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 확보(=삽관) 없이 마취제만 사용하는 것은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입니다. 또한 이렇게 흥분하고 겁먹은 상태에서 분비되는 카테콜라민이라고 하는 물질은 심장의 부정맥 가능성을 높여서 역시나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입니다. (고용량을 쓰기 때문에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진들이 마취제와 노출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챔버를 이용해서 환자를 재우는(=마취 유도) 방법을 쓰면, 프로포폴 같은 주사 마취제와 달리 완전히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가 의료진의 관리를 받기도 어려워집니다. 이 사이에 호흡 정지라도 오면 기도 확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위험해지는 것이고요.
저도 과거에 챔버 마취를 하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데, 수의사 입장에서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챔버 안에서 흡입 마취제 특유의 냄새가 나면, 흥분한 고양이들은 더 겁에 질리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마취되는 동안 안에서 겁에 질려 오줌과 똥을 싸는 경우도 많고, 심하게 침을 흘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챔버 마취 대신,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보호자분께서 내원 전에 아이에게 가바펜틴이나 트라조돈 같은 약을 먹이고 오는 방법도 있고, 그런 약을 먹고 왔는데도 어렵다면 근육 진정 주사를 이용해서 마취제의 사용량을 줄이고, 환자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쪽이 더 안전하고,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덜한 방법입니다. (진정 주사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진정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큰 한국의 문화와 달리 진정 주사를 이용해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안전하게만 사용된다면 오히려 적극 권장되는 방법입니다.)
챔버 마취를 경험했던 고양이들은 다른 동물병원을 가더라도 병원 자체에 대한 공포를 기억하고, 더욱 사납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2016년 Mariti의 논문을 보면 동물병원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고양이의 약 34%가 비슷한 다른 상황(병원을 재방문하는 일이라든가, 케이지에 넣어져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 더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챔버 마취의 트라우마가 동물병원을 방문할 때면 고양이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셈이죠. 이렇게 점점 더 다루기 어려워지는 환자들은 정작 필요한 때에 적합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