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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챔버 마취, 단호하게 거부하세요

모든 고양이가 사람에게 다 친화적인 것은 아닙니다. 보호자님이 집에서조차 손대지 못하는 고양이도 있고, 평상시엔 안 그렇다가도 병원만 오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는 의료진들끼리는 호냥이(호랑이 + 고양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의료진들이 자기 몸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다가, 몸에 손이 닿으면 돌변하는 고양이도 있고, 의료진들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먼저 선빵을 날리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고양이의 성격과 상관없이 사납거나 예민한 고양이들도 당연히 의료 서비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알기 위해서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치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입을 벌려봐야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는 숙련된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아이를 잘 잡아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순한 검사에서 마취까지 필요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만, 그래도 때로는 진정을 하고 검사나 처치를 해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런 사납고 예민한 고양이의 진정 마취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진정 마취 중에서도 챔버 마취에 대한 얘기입니다. 손댈 수 없는 사나운 고양이를 아크릴 박스로 만든 챔버 안에 넣어놓고, 흡입 마취제를 챔버 안에 틀어놓은 채로 마취시켜서 재워버리는 걸 챔버 마취라고 합니다. 때로는 보호자분이 아이를 데리고 온 케이지를 아이와 함께 챔버 안에 그대로 넣어놓은 채로 마취제를 틀어놓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만 챔버 안에 넣어놓고 마취제를 틀어놓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챔버 안에서 아이가 마취제를 흡입하면서 잠든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수의사 일(임상)을 오래 한 선생님들 중에는 이런 방법을 선호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환자의 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도 마취를 할 수 있다보니, 호냥이를 상대할 때는 꽤 편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이런 챔버 마취는 이제 어느 곳에서도 추천하지 않는 진정 마취 방법입니다.

2018년 AAFP 고양이 마취 가이드라인에서는 챔버 마취(chamber induction)에 대해서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나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흥분해 있는 고양이를 챔버 마취로 재우려면 흡입마취제를 상당히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경우 흡입마취제의 심혈관계 억압이 너무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2020년 AAHA의 개 고양이 마취 가이드라인에서도 챔버를 이용해 마취 유도를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유도마취제 없이 바로 흡입마취제를 이용하는 것은 환자에게 위험합니다. 흡입마취제만을 이용해서 환자의 마취를 유도하고, 마취를 유지하는 것은 환자의 마취 중 사망률을 높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흥분하고 겁먹은 고양이를 재우려면 많은 양의 마취제를 사용해야하는데, 흡입마취제는 저혈압과 호흡 억압을 부작용으로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 확보(=삽관) 없이 마취제만 사용하는 것은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입니다. 또한 이렇게 흥분하고 겁먹은 상태에서 분비되는 카테콜라민이라고 하는 물질은 심장의 부정맥 가능성을 높여서 역시나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입니다. (고용량을 쓰기 때문에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진들이 마취제와 노출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챔버를 이용해서 환자를 재우는(=마취 유도) 방법을 쓰면, 프로포폴 같은 주사 마취제와 달리 완전히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가 의료진의 관리를 받기도 어려워집니다. 이 사이에 호흡 정지라도 오면 기도 확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위험해지는 것이고요.

저도 과거에 챔버 마취를 하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데, 수의사 입장에서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챔버 안에서 흡입 마취제 특유의 냄새가 나면, 흥분한 고양이들은 더 겁에 질리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마취되는 동안 안에서 겁에 질려 오줌과 똥을 싸는 경우도 많고, 심하게 침을 흘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챔버 마취 대신,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보호자분께서 내원 전에 아이에게 가바펜틴이나 트라조돈 같은 약을 먹이고 오는 방법도 있고, 그런 약을 먹고 왔는데도 어렵다면 근육 진정 주사를 이용해서 마취제의 사용량을 줄이고, 환자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쪽이 더 안전하고,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덜한 방법입니다. (진정 주사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진정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큰 한국의 문화와 달리 진정 주사를 이용해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안전하게만 사용된다면 오히려 적극 권장되는 방법입니다.)

챔버 마취를 경험했던 고양이들은 다른 동물병원을 가더라도 병원 자체에 대한 공포를 기억하고, 더욱 사납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2016년 Mariti의 논문을 보면 동물병원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고양이의 약 34%가 비슷한 다른 상황(병원을 재방문하는 일이라든가, 케이지에 넣어져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 더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챔버 마취의 트라우마가 동물병원을 방문할 때면 고양이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셈이죠. 이렇게 점점 더 다루기 어려워지는 환자들은 정작 필요한 때에 적합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은 챔버 마취에 반대합니다. 동물병원을 내원하는 모든 환자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FearFree 기준으로도 챔버 마취는 지양되어야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챔버 마취는 환자에게 위험합니다.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안전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이 문을 연 이래 단 한 마리도 챔버 마취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챔버 마취가 환자를 위해서 최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챔버 자체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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