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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마이신? 시롤리무스? 고양이 HCM 신약에 관해서

“불치병”이라는 말은 어쩐지 늘 무섭게 들립니다. 어떤 불치병은 완치가 어려울 뿐 수명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수명에 영향을 주는 병이 불치병이라면 그건 때론 시한부선고가 되기 때문에 무서울 수 밖에 없죠. 고양이의 비대성심근병증(HCM, Hypertrophic Cardiomyopathy)은 기대수명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불치병 중에 하나입니다. 현재로선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는 얘기죠. 특히 HCM이 무서운 건, 치료를 할 수 있는 약도 없지만, 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런 병이 전체 고양이의 15% 정도에게서 확인된다고 하니 더 안타깝죠. 그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최근 희망이 될 법한 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TriviumVet이라고 하는 제약사에서 HCM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Felycin-CA1)을 개발했고, 미국의 FDA가 이 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할 기회를 주기 위해 조건부 허가(conditional apporoval)를 내줬다는 소식이죠.

발빠른 보호자분들이라면 이미 이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고, 어떤 병원의 경우엔 이미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건너건너 들었습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약이 대충 어떤 약인지, 실제 현시점에서 수의사들이 이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FDA에게 조건부 허가를 받은 약은 Felycin-CA1이라는 제품으로 라파마이신(Rapamycin)이라는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약을 시롤리무스(Sirolimus)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라파마이신은 약이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라파 누이)의 토양 속 세균(Streptomyces hygroscopicus)으로부터 발견되어 붙은 이름입니다. “라파” 누이의 Streptomyces에서 나온 약이라 (항생제가 아닙니다만, Streptomyces에서 나온 항생제들이 그런 것처럼) -mycin이라는 접미어를 갖죠. 반면 시롤리무스(Sirolimus)는 실제 이 성분이 약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국제 단체(WHO)에서 정한 공인명입니다. 사람에서는 이 약이 면역억제제로 쓰이는데, 실제 임상에서 약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시롤리무스라는 이름이 붙은거죠.

이 약이 HCM의 치료제로 주목을 받고, FDA의 조건부 허가까지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RAPACAT trial이라는 논문이 배경에 있습니다.

복잡한 논문의 이런저런 얘기를 짧게 풀어쓰자면 이렇습니다. 이 실험은 총 43마리의 무증상 HCM 고양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고양이들은 크게 3그룹으로 나뉘었는데, 플라시보(대조군), 저용량의 신약을 먹은 그룹, 고용량의 신약을 먹은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6개월 동안 이 세 그룹의 고양이들을 심장초음파로 모니터링했고, HCM의 특징 중 하나인 두꺼운 심근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더 두꺼워지는지를 살폈죠. 그랬더니 세 그룹 중에 플라시보와 고용량의 신약을 투약한 그룹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저용량의 신약을 먹은 그룹의 심근이 더 덜 두꺼웠다는 게 이 논문의 결론입니다.

그동안 치료약이 전무하다고 생각했던 질병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신약이 실제로 논문과 같은 결과를 내는지 조금 더 많은 수의 HCM 고양이 환자들에게 투약해볼 수 있도록 FDA에서는 조건부 허가를 내준 거고요.

새로운 신약이 앞으로 검증해야 될 부분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하는 건, FDA의 조건부 허가가 약의 효능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FDA는 사람약에서는 조건부 허가라는 걸 해주지 않습니다. 동물약에서만 이런 과정이 있죠. 조건부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Felicyn-CA1의 경우엔 HCM이 치명적일 수 있는 병이고, 이 병이 고양이라는 major species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RAPACAT trial을 조금 더 광범위한 n수로 검증해볼 수 있도록 조건부 허가가 이루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실제 조건부 허가가 유효한 기간 동안 논문의 결과가 유의미하게 재현될 것인지는 지켜보면 알 수 있겠죠.


Felycin-CA1이 넘어야 하는 산은 결과의 재현 외에도 또 있습니다. RAPACAT trial이 알려주는 건 심근 두께가 더 두꺼워지지 않게 해줬다는 점인데, 실제 이게 환자의 기대수명을 늘려주느냐는 별개의 얘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근두께는 그다지 두꺼워지지 않았는데, 심근이 두꺼워지지 않은 상태로 똑같이 폐수종이 터지고, 환자가 사망한다면 이 약은 임상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심근이 두꺼울수록, 더 안 좋을 것이다’라는 건 직관적인 생각이지만, 수의사들은 그리 두껍지 않은 심근 두께에서도 수축력 문제 때문에 폐수종이 터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는 고양이 HCM에서 지표를 개선시켜주지만 기대수명은 늘려주지 않는 약을 하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아테놀롤이 그렇죠. 좌심실유출로폐색(LVOTO)이 심한 HCM 고양이에서 아테놀롤을 먹이면 심장초음파 상에서 LVOTO를 줄여주지만, 그게 환자를 더 오래 살게 해주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Felycin-CA1은 조건부 허가 기간 동안, 실제 이 약이 환자의 기대수명을 유의미하게 늘려주거나, (강아지의 피모벤단이 그런 것처럼)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춰준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이런 얘기까지도 가능합니다. RAPACAT trial은 무증상의 HCM 고양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실험입니다. ACVIM 단계 구분을 기준으로 보자면, B 단계의 환자들을 가지고 한 얘기죠. 하지만 (강아지의 피모벤단 투약에서 여러번 논의했던 것처럼) 실제 B 단계의 환자 중에서 이 약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기준도 필요합니다. 상당수의 HCM 고양이들은 평생을 무증상 HCM으로 살다가 HCM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 중에 어떤 환자들이 Felycin-CA1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아직 정확한 가격을 알기는 어렵지만, 약값이 비싸거나, 부작용의 리스크가 생각보다 큰 편이라면 약을 투약하기에 앞서 리스크/베네핏(혹은 코스트/베네핏)에 대한 계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베네핏이 정확히 있는지, 리스크는 얼마나 큰지에 대한 부분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논문의 supplement를 보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가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n수가 너무 작죠.)


RAPACAT trial과 FDA의 조건부 허가를 토대로 한국에서 이 약을 HCM 고양이에게 먹여보는 건 어떨까요?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세게 말한다면, (개인적 의견입니다만) 적어도 한국의 수의사가 권해서는 안되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이 약의 정식 출시(혹은 정식 허가) 이전에 이 약을 고양이에게 먹이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Felycin-CA1의 효능이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한국에서 이 약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난관입니다. 한국에서 시롤리무스를 처방하고자 한다면, FDA의 조건부 허가를 받은 Felycin-CA1이 아니라 사람에서 처방되는 라파뮨이라는 약을 처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파뮨과 Felycin-CA1은 동일하게 시롤리무스라는 성분을 갖지만, 서로 다른 약입니다. Felycin-CA1이 천천히 약이 방출되도록 하는 서방정(delayed release tablet)이라면, 한국에서 처방가능한 라파뮨은 그런 서방정 제제가 아닙니다. 동일 성분이지만, 환자에게 약의 작용 기간이 다르고, 작용 기간이 다르니 동일 용량을 먹여도 동일한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조금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면 RAPACAT trial에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는 0.3mg/kg으로 약을 먹였을 때, Felycin-CA1은 그게 꽤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고양이에게 흡수되지만, 라파뮨은 한 방에 흡수된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동일 용량으로 투약을 해도 다른 약물 혈중 농도를 갖는다는 얘기인데(이런 걸 있어보이게 얘기하면 약동학이 다르다고 합니다), 이는 시롤리무스의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실제 Felycin-CA1은 당뇨병성 케톤산증(DKA)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이는 이 약이 기전상 당 불내성(glucose intolerance)를 유발하고, 간에서의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에서 DKA를 부작용으로 갖는 고양이는 저용량을 투약받은 그룹에서 나타났지만, RAPACAT trial에서 약의 효과가 용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서방정과 동일한 혈중 농도를 유지하기 힘든 라파뮨은 성분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약이라고 봐야할 정도죠.

약의 얼리어답터가 되고자 한다면, 보통은 막연한 베네핏을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있을법한 부작용을 감수해야하는 건데, 그냥 성분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도해보기에는 라파뮨 투약 시에 어떤 일이 생길지를 알 수 없는 거죠(RAPACAT trial은 Felycin-CA1을 실험한거지, 라파뮨을 실험한 논문이 아니니까요.)


물론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소식은 설렙니다. 한 때 똑같이 불치병이라고 했던 FIP(고양이 전염성 복막염)가 이제는 정복 가능한 병이 된 것처럼 HCM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현 시점에서는 아직은 갈 길이 아주 먼 것 같지만, 조건부 허가까지도 받은 HCM 치료약이 여태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예전에 언급했던 마바캄텐과 마찬가지로) 미래가 기대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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