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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이 아닌 법적인 이야기, 광견병 접종에 관한 호기심

수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접종이 뭘까요? (수의사에 따라 답이 갈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저같은 경우는 광견병 접종을 가장 싫어합니다. (보통 가벼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접종 후에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다른 백신보다 많고, 고양이 같은 경우는 접종 부위에서 암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어쩐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안하고 싶은 접종이죠. 하지만 한국은 광견병 발생 국가이고, 법적으로 광견병 접종을 의무로 강제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한국에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모두 광견병 접종을 해야만 합니다. 12주령 이상의 강아지 고양이에서 1회 접종한 후, 1년 간격으로 보강 접종을 해서 항체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의 동물병원에서 권고하는 부분이죠. 오늘동물병원도 통상 1년 간격의 보강 접종이 법적인 의무 사항이라고 알고 있어서 보호자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호기심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습니다. (병원이 몹시 한가했기 때문인데…) 광견병 접종 자체가 법적인 강제 사항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냥 법령 근거가 어디에 박혀있는지 보고 싶었죠. 간혹 어떤 병원에서는 광견병 접종은 안 해도 된다고 들었다며 보호자분들이 말씀하시는 경우들이 있는데, 혹시 알고 보니 법 같은 건 없어서 그게 사실인 건 아닐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만약 법적으로 강제되는 게 없다면, 광견병 접종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요? WSAVA(세계소동물수의사회)의 백신 가이드라인을 보면 어떤 식으로 접종을 하는 게 권장되는지 내용이 나옵니다.

광견병 발생 국가라면 필수 백신(Core vaccine)으로 강아지와 고양이 모두에서 법적인 강제 사항이 아니더라도 백신 접종이 추천된다는 얘기가 나오죠. 한국의 경우는 2014년 이후로 국내에서 동물의 광견병 발생 보고는 없지만, 어쨌든 광견병 발생 국가이기 때문에 필수 백신으로 접종이 추천됩니다. 광견병 전염 리스크가 높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오늘동물병원이 위치한 서울 시내의 경우엔 광견병 전염 리스크가 높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한강에서도 야생 너구리가 확인된다는 얘기들이 있으니, 가능성을 아예 0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광견병의 보강 접종 간격은 (법적인 강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WSAVA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 모두 (해당 지역의 법령에 따라 접종해야하지만 따로 법적인 강제가 없다면) 12주령 이상에서 1회 접종하고, 1년 후에 한 번 더 보강 접종,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제품의 면역 유효 기간에 따라 접종하라고 말합니다. 백신 제품에서 보강 접종 간격을 권고하는대로 따르라는 거죠.

광견병 백신은 제품에 따라 국내에서 나오는 중앙백신의 캐니샷 알브이 에프는 1년 간격 보강 접종을 해야한다고 나와 있고, 해외 제품들(베링거 래비신, 조에티스 디펜서 3)은 3년 간격 보강 접종이 가능하다고 제품 부표에 적혀 있습니다. 버박에서 나오는 래비겐 모노 같은 경우는 국내 허가시엔 1년 간격 보강 접종으로 허가를 받아서 부표에 1년 간격 보강 접종이라고 나오지만, 해외 자료를 보면 3년 간격 접종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MSD에서 나오는 노비박 래비스도 3년 간격 접종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법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광견병 접종도 종합백신(강아지의 DHPPi나 고양이의 FvRCP) 접종하듯이 1살 때 한 번 보강 접종을 하고, 그 이후에 3년 간격으로 접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거죠. 접종 횟수를 줄이면서도 항체는 유지할 수 있게 하니, 야생 너구리를 만나도 안심할 수 있고, 여러번 접종하지 않아도 되니까 부작용 리스크도 줄일 수 있습니다.


수의학적인 내용을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법적인 내용을 살펴보죠. 법적인 부분은 당연히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병원이 한가해서) 나름 열심히 찾아본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광견병 접종이 정말 의무 접종이 맞는가를 보면,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20조 3항을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지자체장이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개나 고양이가 건물 밖을 배회하는 것을 보면, 동물을 억류하거나 살처분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죠. 또한 같은 법 15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나 지자체장이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예방접종 방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동물의 소유자에게 예방 접종을 명령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보통 봄이나 가을철에 시청이나 구청에서 광견병 접종 지원 사업을 하는 게 가축전염병예방법 15조에 근거한다고 하니, 광견병은 의무 접종이 맞습니다. (접종 안 하면 살처분…ㄷㄷ)

그럼 보강 접종 간격을 강제하는 건 어느 법령에 있을까요? 이 부분은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에 직접 질의를 해봤습니다(역시나 병원이 한가하니 공무원을 괴롭히게 됩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광견병 보강 접종 간격을 1년으로 강제하는 법령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문의했고, 이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귀하의 제출하신 민원의 내용은 광견병 예방백신 접종 의무 사항 여부 및 백신 접종 간격에 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귀하의 민원에 대한 검토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광견병 예방접종은 평시에는 권고사항이나, 광견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해당 시군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 제15조에 따라 예방접종 실시 명령조치 시에는 의무사항에 해당되며, 이 경우 명령에 따른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제 60조 및 동법 시행령 제16조 별표3 규정에 의거하여 과태료 처분이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 한편, 광견병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법정 가축전염병이자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인수공통 감염병에 해당되며, 광견병 예방을 위해 우리 부는 매년 예방접종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광견병 예방접종은 백신의 종류에 따라 보강접종기간이 1년 또는 3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접종 간격은 해당 제품의 백신 부표(제품 표시사항)에 따르면 됩니다.

민원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답변

알려져 있는 내용과는 달리 보강 접종 기간을 강제하는 법령 같은 건 없다는 얘기죠. 예방접종 자체가 평시엔 권고사항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해당 시군의 예방접종 실시 명령 조치 시에는 의무사항이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통상 봄가을철의 광견병 접종 사업이 가축전염병예방법 제 15조에 기반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게 그냥 지원만 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겠죠. 검색을 해보면 간혹 지자체에 따라서는 보강 접종 간격을 명령에 명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보강 접종 간격은 백신 제품의 표시 사항을 따르면 된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2020년 인천 강화군의 광견병 접종 명령 고시를 보면 여기엔 1년 간격 보강 접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천 강화군에 살면서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면 광견병 보강 접종을 1년 간격으로 해야된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동물병원이 위치한 서울 성동구는 다행히 보강 접종 간격에 대한 얘기는 없네요.


광견병의 보강 접종 관격에 관해서라면, 사실 AAHA나 WSAVA의 백신 가이드라인에도 법과 현실의 간극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최근의 광견병 백신들은 거의 대부분 3년 정도의 면역 유효 기간을 가지고 있는데, 법이 이런 변화를 따라오지 못해서 여전히 옛날처럼 1년 간격을 강제하는 곳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죠. (그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법을 따라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아마 한국도 과거 1년 간격 접종을 했어야만 했던 시절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1년 간격이 법적인 강제 사항이라고 알려져 있는듯 싶은데, (제가 괴롭힌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분의 대답에 의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수의사들이 일하는 병원의 프로토콜에 맞춰서 접종을 진행하고, 보강 접종 간격을 안내합니다. 제가 1년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도 임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법이 그렇다는 얘길 전해들은 탓이죠. 오늘동물병원은 이제라도 조금 더 정확한 내용을 알았으니, 광견병 접종을 3년 간격으로 진행할 계획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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