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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 보조제, 췌장염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얼마 전에 췌장염의 진단 검사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췌장염으로 이미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서 어떤 치료를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중에서도 보호자분들이 집에서 먹이시는 췌장 효소제에 대해서요. 딱 잘라 제품명을 말하기는 조금 껄끄럽지만, 국내에서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효소제로 나오는 제품은 (제가 알기로는) 벳플러스의 라이펙스나, 시그니처 바이에서 나오는 d/a 알파 같은 제품들이 있습니다(몇 개 없죠). 흔히 동물병원에서 췌장염으로 진단된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투약을 추천하는 보조제들이죠. 그래서 cPL이나 fPL 수치가 높은 아이를 키우시는 보호자분들은 이 보조제들을 챙겨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췌장염은 췌장에 염증이 생겼다는 얘기고, 췌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테니 췌장에서 분비되는 효소를 보조적으로 챙겨준다는 건 얼핏 보기엔 상당히 직관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치료법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이죠. 실제 췌장염의 치료에서 췌장효소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논란이 있다는 표현보다는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췌장효소제를 써야하는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닙니다. 흔하지 않은 병이지만, EPI(Exocrine Pancreatic Insufficiency, 외분비성 췌장기능 부전증)가 있는 경우에는 치료제로 췌장효소제를 사용합니다. EPI는 췌장에서 소화 효소가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병이기 때문에 소화 효소 부족으로 지방변을 본다든가, 설사를 지속적으로 한다든가 하는 임상 증상을 보입니다. EPI는 TLI(Trypsin-like Immunoreactivity)라는 검사를 해서 진단하는 병이고, 환자가 만성적인 설사를 하거나 번들번들거리는 지방변을 본다든가 하는 증상이 있으면, TLI 검사를 통해 진단 후, 환자에게 췌장효소제를 보충해줍니다. 이 때 먹이게 되는 ‘치료약’이 라이펙스 같은 췌장효소제입니다.

췌장염은 똑같이 췌장에 문제가 생긴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EPI와는 다른 병입니다. EPI는 흔하지 않은 반면, 췌장염은 동물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수의사들은 어쩌다가 췌장염 환자에게 췌장효소제를 먹이라고 하게 된 걸까요?

수의학 치료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이 경우도 사람에서의 치료법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에서 만성 췌장염이 있을 경우, 췌장효소제를 먹으면 통증이 감소한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죠. 사람에서 만성 췌장염을 치료할 때, 어떤 방법들을 쓰는지 정리해둔 Uptodate의 자료를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췌장효소제가 일부 환자에서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사용되고, 장용정(enteric-coated capsule)은 효과가 있었는데, 장용정이 아니면(non-enteric-coated tablet)이면 효과가 조금 미심쩍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에서도 확실하게 췌장효소제를 먹는 게 좋다고 얘기하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가 되죠.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염에서 수의사가 췌장효소제를 추천하는 건 사람에서의 이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에 가깝습니다. 췌장염은 딱히 이렇다할 치료약이 없는 병이고, 식이 조절이나 수화 상태 개선, 통증에 대한 진통 등 대증적인 치료들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다보니 “췌장염을 치료하는 약” 같은 건 없고, 수의사도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보게 되죠. 그 중에 하나가 사람에서의 내용을 가지고 온 췌장효소제인 셈입니다.

실제로 강아지 고양이의 췌장염(급성과 만성 모두)에서 췌장효소제가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어떤 논문이 있기보다는 학회에서 췌장염과 관련된 강의가 있으면 이런 얘기들이 언급되곤 하죠. 2015년 Ontario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 학회에서 “강아지 췌장염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업데이트(Update on the Diagnosis and Management of Canine Pancreatitis, 유료링크)” 강의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경구 췌장 효소제가 사람의 만성 췌장염에서 통증을 경감시켜준다는 얘기가 있다. 강아지의 경우, protease-mediated negative feedback system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게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다소 낮다.”라고 적혀 있죠.

이런 얘기는 강아지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도 그렇습니다. 2015년 학회에서만 하는 얘기도 아니고, 비교적 최근에 열린 학회에서도 계속해서 똑같은 얘길하죠.

제 경우도 과거 초보 수의사 시절에는 췌장효소제를 췌장염 환자에게 처방했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췌장효소제를 처방하지 않습니다. 췌장효소제들이 밑져야 본전으로 먹이기에는 가격이 사악하다는 문제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췌장효소제가 (어쨌든 효소다보니) 혀에 궤양을 유발한다든가 하는 케이스들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몹시 드문 케이스입니다).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을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치료법이 비싸지 않아서 보호자분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 치료법이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췌장효소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치료법이기는 하지만, 사악한 가격 때문에 그 치료법을 보호자분에게 권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라이펙스는 캡슐을 열어서 밥 위에 뿌려 급여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EPI에서 그렇게 먹여도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웃긴 건 사람에서 췌장염의 통증 경감을 위해서는 라이펙스의 급여 방법과는 반대로 장용제(캡슐채)로 처방해야 그나마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길합니다. 만약 밥 위에 뿌려서 급여를 한다면, (사람에서의 근거를 외삽한다는 전제 하에) 실제로는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죠.

23/03/04 업데이트) 댓글을 남겨주신 보호자분께서 라이펙스는 캡슐이 장용제가 아니고 캡슐 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Enteric coated granule(장까지 멀쩡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립)이라고 정정해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라 관련 내용을 정정합니다. 이런 경우 효소제가 장까지 도달하니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도 함께 주셨는데, 라이펙스의 장용정 코팅과는 별개로 췌장효소제의 급여가 개와 고양이 모두 최근의 췌장염 치료에서는 추천되지 않습니다.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의 고양이 췌장염 가이드라인을 보면, 관련 내용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이 되고 있고요(강이지에서도 본문에 언급됐듯 컨센서스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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