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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는 진통제

2022년 한국에 약이 없어서 치료를 못한다는 얘기는 어딘가 비현실적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약품 부족에 시달리는 나라도 아니고, 요즘 같은 때에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약이 있다는 건 어쩐지 납득이 잘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동물약이 있고, 어떤 경우엔 한국의 수의사들이 대신할 수 있는 약들을 찾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약이 없어서 보호자분께 치료가 어렵다고 얘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전 오늘동물병원에서 림프종 환자의 항암 치료를 진행하면서, 보호자분이 의지가 있으셨음에도 약이 없어서 더 효과적으로 치료를 이어가지 못했던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머릿 속으로는 이런 치료를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만할뿐 직접 실행으로 옮기고 싶어도 옮길 수가 없습니다.

항암치료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약이 없어서 효과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항암치료처럼 약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손놓고 안좋아지는 아이를 봐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게는 약이 없어서 아이에게 좀 더 세심한 케어를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조금 많은 부분이라 (수의사로서의 하소연을 겸해) 2개 정도로 포스팅을 나눠서 한국에서는 쓸 수 없는 약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먼저, 진통제에 관한 얘기입니다.

어떤 보호자분들이든 치료에 적극적이시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항상 하시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가 많이 아플까요?” 같은 얘기들입니다. 그만큼 통증은 보호자분들이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부분입니다. 사람은 아프면 아프다고 직접 얘기하지만, 동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아픈지 아닌지, 아프다면 얼마나 아픈지를 제 3자(많은 경우 수의사)가 평가합니다. 그래서 통증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과대평가해서 선제적으로 진통 관리를 하고, 통증이 생길 것 같을 때에는 생기지 않게 미리(pre-emptive) 진통제를 쓰고 합니다.

한국의 동물병원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쓸 수 있는 무기(=약)가 매우 한정적입니다.

최근 업데이트된 2022년 ISFM 고양이 급성 통증 관리에 관한 컨센서스 가이드라인(2022 ISFM Consensus Guidelines on the Management of Acute Pain in Cats)을 보면, 고양이에서 사용이 추천되는 진통제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언급된 약 중, 수술 후 통증이나 췌장염 같은 중환자의 통증 관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opioids)는 한국에서 선택의 폭이 매우 좁습니다. 세계적으로 고양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마약성 진통제라면 부프레놀핀이나 메타돈 같은 약들인데, 한국은 부프레놀핀도 없고, 메타돈도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동물병원에서는 진통 효과는 미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부토파놀 같은 약을 대체해서 쓰거나, (오늘동물병원처럼) 번거롭지만 일정 속도로 지속적으로 주사(CRI)를 하는 펜타닐을 씁니다(향정신성 의약품으로 구분되는 부토파놀에 비해, 마약류인 펜타닐은 중점관리약품이라 취급이 까다롭다는 문제 때문에 많은 병원이 부토파놀 정도까지만 쓰곤 합니다).

부토파놀의 경우, 가이드라인에서는 경증의 통증을 컨트롤하거나 진단 검사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진정 목적으로 사용하는 걸 권장합니다. 채혈을 하거나, 방광 천자를 하거나, 예민한 고양이들의 신체 검사를 하거나 하는 경우에 쓰는 걸 권장하죠. (실제 지속 시간도 1-2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라 수술에 사용하는 진통제로는 부적합한 편이고요).

미국에서 한 때 마약성 진통제(opioids)의 공급 부족 문제가 있었을 때, 한창 유행하던 강의들 중 하나가 Opioid-free analgesia(마약성 진통제 없이 통증 관리하기)였는데, 아예 마약성 진통제 없이 통증을 관리한다기보다는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었고, 그 중 하나가 국소 마취제를 이용한 통증 관리였습니다. 한국에도 리도카인이나 부피바카인 같은 국소마취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 이런 트렌드는 꽤 도움이 됐고, 앞서가는 병원들은 국소 마취를 수술에 적극 활용하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수의사가 통증 관리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동물의 통증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긴 쉽지가 않습니다. 국소 마취제의 경우도, 미국에서 각광받는 노시타(Nocita, Liposomal Bupivacaine)같은 건 한국에서 유통이 되지 않습니다. 노시타는 지속 시간을 늘린 국소 마취제로 일반적인 부피바카인이 4-6시간 정도 지속되는 것과 달리 72시간 정도 국소마취 효과가 유지되어서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주사인데,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엘랑코라는 회사에서 파는 약으로, 엘랑코는 꽤 좋은 약을 많이 파는 회사인데, 한국 지사가 일을 안 하는지, 국내 출시가 아주 늦은 편입니다).

만성 통증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양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NSAID 계통의 약물 중 하나인 로베나콕십(Robenacoxib)은 국내에서 정식 유통되지 않고 있고, 강아지에서 역시나 만성 통증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그라피프란트(Grapiprant)라는 약도 국내에서는 정식 유통되지 않고 있습니다(두 약 모두, 엘랑코의 약들…).

정식으로 출시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강아지와 고양이의 관절염에 의한 통증을 큰 부작용 없이(=NSAID처럼 신장이나 간독성에 관한 걱정 없이)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NGF monoclonal antibody(Nerve Growth Factor에 대한 단클론항체) 주사제도 한국에서 실제 임상에 사용하려면 수년을 기다려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사해서 관절염 통증을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주사제로, 강아지용은 리브렐라, 고양이용은 솔렌시아라는 제품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아지의 관절염에서 통증 관리를 위해 루틴하게 사용하는 Polysulfated glycosaminoglycan(Adequan이라는 상품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이나, 대체제인 Pentosan polysulfate(상품명은 Cartrophen) 같은 약들은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습니다. 처방약이니 직구로도 구할 수가 없죠.

통증 관리는 multimodal analgesic이라고, 하나의 약만을 사용하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서 통증을 여러 측면에서 경감시키는 것을 스탠다드라고 봅니다. 그래서 다양한 무기(=약)를 가지고 있으면, 좀 더 효과적으로 약에 의한 부작용을 줄여가며 환자의 통증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펜타닐이 있으면 메타돈이나 부프레놀핀은 없어도 괜찮지 않냐,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펜타닐은 주사제를 주입하는 걸 중단하면 빠르게 효능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부프레놀핀 같은 주사제는 한 번 주사하면 8시간 정도는 통증 관리 효과가 지속되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하이드로몰폰 같은 마약류는 1회 주사로 6시간 정도 진통 효과가 지속되지만, 고양이에게 주사하는 경우 메스꺼움이나 구토를 유발한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수의사들은 쓸 수 있는 약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아지 고양이들이 한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통증 관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약류에 대한 규제가 철저한 한국의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동물약의 정부 허가가 쉽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유가 무엇이든 피해를 보는 건 말 못하는 강아지 고양이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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