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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인슐린,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까요?

당뇨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보호자들은 인슐린 사용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FDA 승인을 받은 벡사글리플로진이나 벨라글리플로진 같은 약들 덕에 고양이에서 인슐린 없이 케어를 하는 방법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강아지 고양이의 당뇨에서 인슐린은 가장 주된 치료 방법입니다.

다른 약이 그렇듯 인슐린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유통기한이 지난 인슐린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건 상식입니다만, 유통기한 내의 개봉한(=한 번이라도 약병에 주사 바늘을 찌른) 인슐린은 개봉 후 얼마까지 사용이 가능할까요? 대충 정해진 답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논란이 있다는 건 재밌는 일입니다. 동물용 인슐린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용 인슐린을 동물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논란은 수의학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강아지 고양이 당뇨 환자들이 사망하게 되는 원인 1위는 뭘까요? 한국은 그런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당뇨 강아지 고양이의 진단 1년 이내 사망 원인 1위는 안락사라고 합니다. 대략 20-30% 정도의 강아지 고양이가 진단 시점 기준 1년 이내에 안락사를 당한다고 하죠. 병발한 다른 질환에 의한 것도 안락사의 이유가 되지만, 그만큼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치료 비용입니다.

한국의 경우, 의료 비용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저렴한 편이고(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실이지만, 한국은 사람 병원비 뿐만 아니라 동물병원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가에 속합니다), 사실 인슐린 비용도 다른 병을 관리하는 비용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이 들진 않지만, 어쨌든 이런 통계가 있기 때문에 수의사들도 의료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비용 때문에 안락사 당하는 강아지 고양이의 비율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당뇨의 경우, 가장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인슐린입니다. 어떤 인슐린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만, 인슐린 한 병으로 얼마나 오래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비용이 달라질 수 있죠. 개봉 후의 인슐린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사람에서 기준으로 삼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권고사항, 인슐린 제조사의 권고사항, 그리고 미국당뇨학회(ADA,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의 권고사항입니다. 실제 인슐린의 라벨에 적혀 있는 제조사의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흔히 한국 동물병원에서 쓰는 것들 위주로 정리).

제조사

제품명

개봉 후 폐기 권고

개봉한 인슐린의 보관 방법

사노피 아벤티스

란투스

개봉 후 28일 폐기

상온 혹은 냉장 보관

노보노디스크

레버미어

개봉 후 42일 폐기

상온 혹은 냉장 보관

일라이 릴리

휴물린N

개봉 후 28일 폐기

냉장 보관이 선호되지만,

상온 보관도 가능

일라이 릴리

휴물린R

개봉 후 28일 폐기

냉장 보관이 선호되지만,

상온 보관도 가능

머크(MSD)

캐니슐린

개봉 후 28일 폐기

냉장 보관

베링거 인겔하임

ProZinc

10mL짜리는 개봉 후 60일

20mL짜리는 개봉 후 80일

냉장 보관

재밌는 건, ADA에서는 인슐린 개봉 후 폐기 권고 시점을 1달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1달이 지나면 인슐린의 효능(efficacy)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28일과 1달은 큰 차이가 없는 비슷한 기간 같지만, 이걸 1년으로 생각해보면 재밌는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28일에 한 번씩, 사용하던 인슐린을 버리고, 새 인슐린을 사용한다면 1년에 총 13바이알의 인슐린이 필요합니다. 고양이에서 많이 쓰는 란투스를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의 chewy.com 가격 기준으로 대략 10mL 란투스 한 병에 한화 40만원(23년 12월 환율 기준) 정도이니, 1년에 총 520만원 정도의 인슐린 비용이 들죠. 하지만 28일이 아닌, 한 달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란투스 12바이알이 필요하니, 1년에 대략 40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한국에서는 동물병원에서 란투스 10mL 한 병이 대략 10만원 근방으로 훨씬 더 저렴합니다.)

란투스가 아닌 다른 인슐린으로 생각해도 1년에 대략 8% 정도의 비용을 아낄 수 있죠. 여기까지가 보통 사람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입니다만, 동물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10mL 인슐린 한 병이면 동물은 체중이 사람보다 적게 나가니, 주사량으로만 따졌을 때 더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란투스를 한 번 주사할 때 4유닛 정도 주사하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고 치죠. 란투스는 1mL에 100유닛이 있는 U-100 인슐린이기 때문에 10mL이면 총 1,000유닛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 주사를 해야하니, 하루 총 8유닛을 주사한다고 하면, 10mL 한 병으로 대략 125일, 얼추 4개월을 쓸 수 있습니다. 권고대로 대략 한 달을 쓰고 폐기한다고 치면, 나머지 3달치의 인슐린을 그냥 버리게 되는거죠. 반면, 만약 4개월에 한 병을 쓸 수 있다면, 실제 인슐린 비용은 제조사 권고 기준 28일로 했을 때 520만원이던게, 120만원 정도로 굉장히 줄어들게 됩니다.

한 달을 넘어가면 인슐린에 어떤 문제가 생기길래, 왜 제조사와 ADA에서는 개봉 후 한 달이 지난 인슐린을 폐기하라고 할까요? 2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슐린의 효능이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개봉 후에는 고무마개에 뚫린 바늘 구멍을 타고 인슐린에 세균 감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균에 오염된 인슐린을 환자에게 주사했다가는 감염이 유발될테고, 당뇨 환자에게 감염은 아무래도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수의사들이 경험적으로 한 달이 지난 인슐린의 효능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실제 개봉 후 한 달이 지난 인슐린으로도 당 관리가 잘 되는 환자들을 여럿보게 되니까요. 어느 정도 기한까지 인슐린의 효능이 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제조사에서는 그걸 확인해줄 동기가 전혀 없고(인슐린을 많이 팔아야 하는 제조사 입장에서 인슐린을 바닥까지 긁어쓴다는 건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동물에서도 사람 인슐린을 가져다 쓸뿐 어떤 가이드가 있지 않습니다. 2018년 AAHA(미국동물병원협회)의 당뇨 가이드라인을 보면, 관련 언급이 있긴하지만 정확히 언제까지는 괜찮다…는 얘긴 없죠.

“인슐린의 색이 변하거나, 뭉치거나, 점도가 변한 게 아니라면, 사용 기한을 넘겨 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동시에 “제조사의 권고에 따라 사용 기한이 지나면 폐기”가 추천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 줄 요약하면, 사용 기한 넘겨서 써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걸 아는데, 그게 언제까지 안전한지는 잘 모르겠고, 가능하면 제조사 권고 사항을 따르는게 제일 좋지 않겠냐는 거죠.

물론 이 포스팅은 제조사 권고 사항을 어디까지 넘길 수 있느냐는 얘기이기 때문에 다른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인슐린이 오염되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재밌는 논문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2023년) 8월에 JSAP(Journal of Small Animal Practice)에 올라온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개봉한 인슐린의 효능을 제쳐두고, 세균에 오염되는 걸 어느 정도 기간까지 안전한지 확인해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꽤나 놀라운데, 개봉 후 6개월까지는 (적절하게만 쓴다면) 세균 오염이 되지 않더라는 얘기가 나오죠. 6개월이면 대략 180일이니 총 360번이나 고무마개를 바늘로 찌른건데, 그래도 세균 감염은 없더라는 얘길 합니다. 물론 인슐린에 포함된 보존제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란투스랑 프로징크(ProZinc)에 한정지은 얘기이긴 합니다.

효능은 어떨까요? 이 논문에서 언급하는 얘길 보면, 휴물린N을 만드는 일라이 릴리에서는 상온 보관시 1달에 1% 미만의 효능 감소가 있고, 냉장 보관시에는 1달에 0.1% 미만의 효능 감소가 있다는 얘길합니다. 보관 상태에 따라 효능이 떨어지는 속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어쨌든 개봉 후 효능이 조금씩 떨어지긴 한다는 거죠. 하지만 단순 계산해서 냉장 보관시 3달 동안 0.3% 미만의 효능이 감소하는 정도라면 실제 혈당을 관리하는 임상적인 관점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또 애매한 부분입니다. 효능이 조금 떨어진다한들 그게 미미하다면, 실질적인 혈당 관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로 유지될 수 있을테니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의사마다, 동물병원마다 인슐린의 사용 기한을 권고하는 게 모두 다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제조사의 권고를 따르고, 약간의 위험(효능 감소나 감염 리스크)조차 감수하고 싶지 않은 수의사라면 28일(혹은 1달) 후에는 인슐린을 새로 처방받으러 오라고 할 테고, 약간은 널널한 스타일로 적당히 비용적인 부분을 감안하는 수의사라면 조금 더 긴 기간을 권고하게 됩니다. 전문의들의 경우도 1달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3달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죠.

오늘동물병원의 경우에는, 가능하면 1달에 한 번은 인슐린을 새로 처방 받아가시라고 말씀드리지만, 그걸 칼같이 지키지는 않습니다. 6달은 너무 긴게 아닌가 싶어 권고하지 않지만, 3달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나 싶다고 말씀을 드릴 때도 있죠(한국인은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니까요). 줏대 없어 보이지만, 안그래도 보호자분의 헌신이 빡빡하게 필요한 당뇨 관리에서 조금은 널널해도 괜찮은 부분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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