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취는 언제나 긴장됩니다. 특히 동물의 마취는 사람의 마취보다 리스크가 조금 더 높은 편이고, 동물은 사람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참아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스케일링 같은 걸 할 때도 전신마취가 필요하죠. 그렇다보니 마취를 어떻게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병원 자랑도 할겸, 오늘동물병원에서 어떤 식으로 마취를 하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보통 마취학(Anesthesiology)에 대해 얘기를 할 때는, 마취만 단독으로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고 반드시 진통(Analgesia)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합니다. 그만큼 이 둘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죠. 사람에서도 마취과라고 하기보다는 마취통증의학과라고 얘기하죠. 그래서 마취를 잘하는 병원이란 동시에 통증 관리를 잘하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마취제는 의식을 잃게 만들면서 심폐기능(심장과 호흡기)을 억압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마취제의 사용량을 최대한 줄여서 환자를 마취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취제를 적게 사용하려면 통증 관리가 아주 잘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환자가 마취에서 잘 깼으니, 마취가 잘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닌거죠.
보호자분들이 보시기에는 테이블 데스(=마취 중 사망)가 일어나지 않으면 마취가 안전하게 잘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이 전문 지식 없이는 확인하실 수 없는 부분이고, 수의사가 (방대한 내용 때문에) 모두 얘기해드리기도 어려운 부분이다보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를 못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취 중 환기 상태(=숨을 얼마나 잘 쉬는지)나 혈압에 대해서 제대로 케어되지 않으면, 어찌저찌 환자가 잘 깨어난다 하더라도 마취로 인한 합병증이 나타날 수도 있고, 눈에 띄지 않게 환자가 데미지를 받기도 하죠.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마취를 해야하는 환자가 생기면 모든 마취 환자에 대해서 마취 전 체크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보호자분과 환자에게는 어쩌다 한 번 혹은 평생에 한 번 있는 마취일 수 있지만, 동물병원 의료진에게는 많을 땐 하루에도 여러번 하는 일이다보니, 관성에 젖어 확인해야하는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취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마취 전 체크리스트의 작성은 매우 권장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오늘동물병원은 실제에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들을 여럿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마취 전에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환자의 사망률과 합병증 발생률을 줄인다는 논문
사람에서의 논문이지만, 2009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올라온 논문을 보면,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 환자의 사망률을 1.5%에서 0.8%로 줄일 수 있고, 마취로 인한 합병증 발생률을 11.0%에서 7.0%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다소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귀차니즘을 감수해서 더 안전한 마취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합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모든 마취 환자에서 사용하고 있는 마취 전 체크리스트
이렇게 사람이 실수하지 않으려고 해도, 때로는 기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GE 호흡마취기는 마취기 자체에 셀프 테스트 기능이 있어서, 기계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오늘동물병원은 매일 아침 셀프 테스트를 해서 장비에 에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호흡마취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셀프 테스트
호흡 마취를 하는 경우에는 기도 확보를 하기 위해서 삽관을 하게 되는데, 삽관을 위해서는 환자를 재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삽관을 위한 마취를 마취유도라고 합니다. 보통 주사마취제를 이용해서 진행하게 되죠. 이 때 사용하는 주사마취제는 환자에 따라, 어떤 수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대부분은 프로포폴이라는 주사제를 사용하지만, 심장이 많이 안 좋은 환자에서는 좀 더 심혈관계 억압을 덜 하는 에토미데이트라는 약을 쓰기도 하죠. 주사마취제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도 어떤 수술이냐에 따라 상황에 맞게 다른 것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중성화 수술을 한다면 프로포폴을 마취유도제로 사용하되, 통증 관리를 위해서 하이드로몰폰이라는 아편류(Opioid)의 진통제를 함께 사용합니다. 적지않은 병원에서 하이드로몰폰이 마약류 진통제라는 이유 때문에 관리가 까다로우니, 관리가 조금 덜 까다로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부토파놀을 사용한다든가, 혹은 어떤 경우엔 향정이나 마약류 관리를 하지 않기 위해 아편류 없이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환자에게 결코 좋은 일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오늘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
진통이 잘 되지 않아 수술하고나서 환자가 아파하는 것도 문제지만, 진통이 충분히 되지 않으면 환자를 마취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마취제가 필요합니다. 그게 주사마취제든 호흡마취제든 마취제의 사용량이 늘어나면 심폐기능이 더 많이 억압될 수 있죠. 많은 동물병원에서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호흡마취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호흡마취제는 (마취제의 종류에 상관없이) 혈압을 떨어뜨리고, 호흡을 억압하는 부작용이 있는데, 보통 사용량이 늘어나면 부작용도 같이 늘어납니다. 진통을 충분히 잘하면 마취제를 적게 사용해도 환자를 잠들어있게 유지할 수 있고,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도 마취제의 부작용에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워지죠.
진통의 중요성은 단순히 마약류(몰핀이나 하이드로몰폰, 펜타닐 같은 약)를 사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진통은 “multimodal analgesic”이라는 개념이 중요한데, 한가지 진통 방법만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각 진통제의 부작용을 다시 한 번 줄이는 걸 얘기합니다. 아편류(opioid)는 상대적으로 심혈관계 억압 부작용이 적은 약에 속하지만, 아편류에만 진통을 의존하지 않고, 리도카인이나 케타민 같은 다른 진통제를 수액으로 넣어준다든지(Ketamine/Lidocaine CRI), 수술을 할 때 국소마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수술 부위의 통증을 줄인다든지 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NSAID를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오늘동물병원의 경우는 모든 수술에서 이렇게 진통에 최선을 다합니다. 환자가 아프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 마취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 아편류 진통제, 2) 리도카인과 케타민을 이용한 수액 진통, 3) 국소 마취, 4) NSAID가 대부분의 환자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되고, 환자에 따라 특정 진통제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으로 부족한 진통을 보완해주죠. 예를 들어, 신부전이 있는 환자들은 NSAID를 진통제로 쓰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하이드로몰폰 대신 수술 중에 좀 더 진통제의 투약량을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펜타닐 CRI 같은 걸 활용한다든가 하는 식이죠. (술후에는 퇴원약으로 NSAID를 주지 않고, 펜타닐 패치를 붙이고 간다든가 하는 식으로도 대응합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주사제가 많아지게 되면, 잘못된 주사제가 환자에게 투약되는 실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해 어떤 병원들은 마취 프로토콜을 환자에 맞게 바꾸기보다는 일괄적인 프로토콜을 적용하는 곳들도 있죠. 오늘동물병원은 그게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신 사진처럼 뽑아놓은 다양한 주사제를 미리 라벨링해둡니다. 잘못된 주사제가 환자에게 투약되지 않도록 해두는 안전장치인 거죠.
주사 라벨링
환자가 잠들고 나면, 삽관을 진행해서 기도를 확보합니다. 기도 삽관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 번 포스팅을 했던 적이 있는데, 기도 삽관으로 인해 환자의 기도가 손상되지 않도록 벌룬의 압력을 측정할 수 있는 커프 마노미터(cuff manometer)를 사용합니다. (일전에는 디지털로 숫자가 표시되는 걸 사용했는데, 다른 동물병원에선 사용하지 않아 유통사가 국내에서 단종을 시키는 바람에 최근에는 아래 사진같은 도구를 사용합니다. 수요가 없다는 얘기는 그만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신경쓰는 병원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삽관 튜브의 커프를 부풀리는 cuff manometer
삽관을 하고, 호흡 마취기에 환자를 연결하고 나서부터 중요한 건 마취 모니터링입니다. 마취 모니터링은 여러가지를 보게 되는데, 심전도(ECG), 산소포화도(SpO2), 체온, 혈압, EtCO2(호기말 이산화탄소), 혈압, 호흡수 같은 것들을 모니터링합니다. 이 때 환자에게 주렁주렁 이러저러한 선들이 달리게 되죠.
오늘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취 모니터링기. GE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취를 하는데 마취 모니터링을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가자면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요하게 보느냐가 중요할 수 있는데, 모니터링 지표 중 중요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EtCO2입니다. EtCO2는 호기 말(숨을 내뱉는 막바지 순간)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나오느냐를 측정해줍니다. 이 수치가 높아지면 환자가 숨을 충분히 잘 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저환기, hypoventilation이라고 합니다)이고, 이 수치가 낮아지면 환자가 숨을 너무 과하게 쉬고 있다는 얘기(과환기, hyperventilation라고 합니다)입니다. 환자의 환기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고, 이걸 모니터링하지 않으면 환자가 환기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심전도가 없으면 여차할 때, 청전기라도 대서 심박수를 알 수 있지만, EtCO2는 그렇지 않죠. (의외로 호흡마취를 한다고 광고하는데, EtCO2 모니터링은 하지 않는 병원이 꽤 많습니다.)
호흡마취를 하는데 EtCO2를 보지 않는 건 최근의 수의학 기준으로는 제대로된 마취 모니터링을 한다고 보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에는 EtCO2와 환자의 폐 내에 걸리는 압력, 숨을 쉴 때마다 환자에게 산소가 얼마나 들어갔다 나오는지(=tidal volume), 폐활량이 어떻게 되는지(spirometry) 같은 것들을 별도의 모니터로 모니터합니다(그래서 오늘동물병원은 마취 모니터링 화면이 2개입니다)
환자의 호흡 상태만 모니터링해주는 별도의 모니터링기.
이렇게 다양한 모니터링기를 보면서,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리면(심박이 느려지거나, 저환기 상태가 되거나, 혈압이 낮아지거나 등등) 바로바로 개입을 합니다. 호흡 마취제 때문에 혹은 마취 유도제 때문에 숨을 쉬지 않거나, 저환기 상태가 되면 마취기에 달려있는 벤틸레이터를 이용해서 양압 환기를 해주고, 심박이 느려져서, 심박출량(cardiac output)이 떨어질 것 같으면 글라이코파이롤레이트 같은 약물을 사용하죠. 이런 상황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하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오늘동물병원은 마취 전에 응급 약물을 얼마나 주사해야하는지 미리 계산해서 프린트해 놓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늦지 않게 대응할 수 있게 합니다. 상황이 터지고, 약물 용량을 계산하고 이러면 그 땐 이미 한박자 늦은 거니까요(이 계산이 의외로 복잡해서 암산이 불가능합니다).
저혈압 상황에서 사용하는 응급약물이나 진통제 중에서는 CRI(Constant Rate Infusion, 일정 속도로 약물을 주사하는 것)를 해야하는 것들이 있어서, 수술방에는 항상 언제든지 CRI를 할 수 있도록 입원실과는 별도로 시린지 펌프(주사기를 일정 속도로 눌러주는 장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취 중에 저혈압일 때 가장 쉽게 영향을 받는 장기가 신장인데, (건강한 환자를 마취할 때도 중요하지만) 신부전 환자를 마취할 때 이런 마취 모니터링이 얼마나 타이트하게 되느냐는 수술 후에 환자가 얼마나 회복이 잘되느냐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취 중에는 언제나 환자의 이상을 빠르게 발견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죠.
오늘동물병원의 수술방 장비들(화살표가 시린지 펌프)
마취 중 테이블 데스가 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서, 마취를 안전하게 한다는 것은 이런 개념을 모두 포괄합니다. 장비도 준비되어야 하지만, 마취와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의 마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필요합니다. 사람은 언젠가 실수한다는 걸 전제하고, 실수를 막기 위한 장치들을 준비해두는 것도 중요하죠. 오늘동물병원은 그런 방면에서 보호자분들께 보여지지 않는 곳까지 더 안전한 마취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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