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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토스피라, 접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병원 인스타그램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강아지 렙토스피라를 접종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한국의 수의사에게 늘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최근 광주전남 지역에서 강아지의 렙토스피라증 발생 보고가 있었던지라 렙토스피라 백신을 해야되는 게 아니냐며 보호자분이 먼저 물어오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은 그동안 렙토스피라 접종을 굳이 진행하지 않았는데, 최근 발병 보고가 있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최근 렙토스피라 접종에 대한 권고가 달라진 부분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걸 (인스타스레드에 썼던 것보다) 조금 더 구구절절 자세하게 써볼까 합니다. 렙토스피라 접종은 국제적인 권고 사항과 한국적인 상황이 겹치면서 조금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진료실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내용을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블로그에 써보는 거죠.

먼저 렙토스피라증 자체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하자면, 오염된 물이나 흙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는 세균성 질환으로 감염이 되는 경우 급성 신부전과 간부전을 유발할 수 있는 치사율이 꽤 높은 질환입니다. 문헌에 따라 다른 얘기를 하지만, 대략 50-90% 정도의 치사율을 갖는 병이 아니냐는 말을 하죠. 사람에게도 감염이 될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나서 치료를 하기보다는 예방을 하는 게 더 나은 병입니다.

백신 가이드라인이라면, WSAVA(세계 소동물 수의사회)와 AAHA(미국 동물병원 협회)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이 두 단체 또한 렙토스피라를 예방할 수 있다면 예방하라고 권고합니다. WSAVA의 2024년 백신 가이드라인을 보면, endemic(풍토병)이라면 렙토 백신을 권장한다고 말하죠.

한국은 렙토스피라가 발생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권고사항을 그대로 따르면 한국에서 크는 강아지들도 렙토스피라 백신 접종을 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그 지역에서 렙토스피라증이 발병한다면, 필수 백신(core vaccine)으로 구분하라고 얘기하니까요)

좀 더 북미에 한정된 얘기를 가이드라인으로 내는 AAHA의 경우에는 2022년 백신 가이드라인에서 렙토스피라를 non-core(=비필수) 백신으로 구분했었는데, 최근에 가이드라인을 옆그레이드하면서 렙토스피라를 아무래도 core(=필수) 백신으로 생각하는 게 맞겠다고 말을 바꿉니다.

그러니 어느 쪽 가이드라인을 보더라도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렙토스피라까지 필수 백신이라고 보고 예방을 해주는 게 맞는 일입니다. 문제는 한국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한국에서 렙토스피라를 예방하기 위한 렙토 백신 제품이 몇 가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렙토를 예방하고자 백신 접종을 한다면, 옵션은 2가지가 있습니다. 조에티스사에서 나오는 5종 종합백신(DHPPL)을 접종하거나, 중앙백신에서 나오는 5종 종합백신을 접종하는 거죠. 이걸 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방해주는 렙토스피라의

항원형(serovar)의 종류

항원형 개수

조에티스 5종 종합백신(DHPPL)

Leptospira Canicola

Leptospira Grippotyphosa

Leptospira Icterohaemorrhagiae

Leptospira Pomona

4개

중앙백신 5종 종합백신(DHPPL)

Leptospira Canicola

Leptospira Icterohaemorrhagiae

2개

예전에는 중앙백신에서 항원형 개수가 2개인 렙토스피라 단독 백신을 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더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더군요(홈페이지에서 제품소개가 사라졌습니다). 둘 중에 어떤 백신을 더 추천하냐하면 당연히 조금 더 많은 항원형을 예방해주는 조에티스의 렙토스피라 백신을 더 추천합니다. 항원형을 여러개 커버해주지 못하면, 다른 항원형의 렙토스피라에 감염되었을 때, 제대로 보호를 해주지 못하거나, 부분적인 면역반응만 나타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항원형을 포괄하는 4 serovar의 렙토 백신을 추천하는 거죠. (그래서 중앙백신의 렙토 단독 백신이 여전히 유통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렙토 백신을 한다면 조에티스의 5종 종합 백신을 접종하는 게 낫습니다.)

문제는 조에티스사의 이 백신이 렙토스피라만 단독으로 예방해주는 백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5종 종합백신은 이름 그대로 총 5가지를 예방해줍니다. 강아지의 파보 바이러스, 2형 아데노 바이러스, 홍역 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렙토스피라. 이렇게 총 5가지를 예방해주죠. 이 중에서 논코어 백신으로 구분이 되고, 다른 기관지염 백신을 통해서도 보강 접종이 가능한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파보, 아데노, 홍역 바이러스는 코어 백신으로 분류되나, 보강 접종 간격으로 3년이 추천됩니다.

헌데 앞서 가이드라인에 언급이 된 것처럼 렙토는 1년 간격 보강 접종을 권고하죠. 그럼 종합백신에 렙토가 하나 더 끼어들어갔다는 것만으로 한국에서 렙토스피라에 대한 항체를 강아지 일생에 걸쳐 유지하고자 한다면 1년에 한 번씩 DHPPL 접종을 해야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른 것들은 3년에 한 번 해도 되는데, 렙토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접종을 해야하는 문제가 생기는 셈이죠.

렙토스피라 백신이 특별히 더 부작용이 심한 접종이냐 하면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렙토스피라 백신이 특별히 더 부작용이 많다는 통계 같은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렙토 백신은 면역증강제(adjuvant)가 들어있는 사독 백신(killed vaccine)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부작용 리스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길 하기도 하고, 렙토 단독 백신으로의 부작용과 다른 백신과 함께 섞인 종합백신으로의 부작용은 다른 수 밖에 없지 않냐는 얘길 하기도 하죠.

물론 이런 문제는 렙토스피라만 예방해주는 단독 백신이 있다면 쉽게 해결됩니다. 3년에 한 번 파보, 아데노, 홍역에 대한 예방 접종이 필요할 때는 5종 종합 백신을 맞고, 파보, 아데노, 홍역을 안 맞아도 되는 해에는 렙토 단독 백신으로 보강 접종을 하면 깔끔한 교통 정리가 가능하죠.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한국에는 이런 백신 제품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렙토 백신을 얘기할 때, 한국적인 특수함이라는 말을 꺼낸 건 이런 백신이 외국에는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렙토 백신 자체를 판매하지 않는 베링거 인겔하임의 경우, 최근에 (부작용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면역증강제를 없앤) 렙토스피라 4가 단독백신을 출시했고, 한국에서는 종합백신으로만 렙토 백신을 판매는 조에티스는 미국에선 4가 렙토스피라 단독 백신을 함께 판매하고 있죠. (베링거도 신제품 외에 기존에 판매 중인 렙토 단독백신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출시를 안 하고 있습니다.) MSD도 4가 렙토스피라 단독백신이 있죠. 이런 제품들이 한국에만 없습니다.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전염병이고, 국내에 발생 보고까지 있고, 국제적으로도 필수 백신으로 접종하는 것이 권고되나, 백신 제품의 옵션이 없어서 접종을 하는게 이득인지, 안하는 게 이득인지, 한국에 사는 수의사들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백신은 백신 접종의 리스크와 백신 접종의 베네핏을 고려해서 리스크/베네핏 계산에서 베네핏이 충분히 크다고 생각될 때 접종을 합니다. 하지만 단독 백신이 없다는 첫번째 이유와 별개로 한국에는 렙토스피라가 그렇게까지 많이 발생하는 병이 아니라는 두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렙토스피라가 국내 발생 보고가 있으나, 그렇게까지 자주 보게 되는 흔한 병이 아니라는 점, 렙토스피라 접종을 한다면 불필요하게 다른 접종을 강아지에게 강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한국에서 렙토스피라 예방을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는 다행히 서울에 위치해 있고, 서울은 렙토스피라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이라 여전히 렙토 접종을 보호자분께 선택사항으로 드릴 여지가 있지만, 발생 보고가 있다는 광주전남 지역은 선택사항으로 드리기도 쉽지가 않을듯 싶네요. 물론 서울이라고 렙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이런 내용에 대해 보호자가 충분히 인지하고 접종을 한다면, 그걸 굳이 접종하지 말라고 말릴 수의사는 없습니다. 수의사의 고민은 종합백신을 반드시 해야되는 접종이라고 보호자분에게 얘기할 때, 렙토를 은근슬쩍 끼워넣어도 되느냐 아니냐에 있죠. 오늘동물병원 같은 경우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렙토 접종을 보호자분이 원한다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그동안 재고를 두지 않았던 5종 종합 백신을 병원에 재고로 두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렙토스피라 접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마 수의사가 내리기보다는 렙토 단독 백신을 판매하는 조에티스나 베링거, MSD, 중앙백신 같은 곳에서 답을 내줄듯 싶습니다. (현재는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듯 싶지만, 언젠간 한국에서도 렙토 단독 백신을 출시해주겠죠.) 그 때가 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렙토스피라를 1년에 한 번씩 보강 접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을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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