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철분 보조제, 꼭 필요한가요?
블로그

철분 보조제, 꼭 필요한가요?

보조제 얘기를 꽤 여러번 했던 것 같은데, 철분 보조제에 대한 얘기를 해본 적이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보호자분들이 간혹 빈혈이 걱정되는 환자를 케어하는 경우, 철분 보조제를 구해서 먹이신다는 걸 종종 듣기는 하지만, 애초에 오늘동물병원을 찾은 보호자분들께 직접 철분 보조제를 권한적도 없고, 경구제를 처방하지 않아서 제 머릿 속에서 잊혀져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댓글로 어떤 분이 질문을 주셨던 적이 있어서 (시간이 좀 많이 지나기는 했습니다만) 늦게나마 철분제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철분제가 필요한 경우는 사실 굉장히 단순합니다. 체내에서 철분이 부족한 경우에 철분을 보충하는 것이 지시되죠. 대표적인 것이 철 결핍성 빈혈입니다. 철 결핍성 빈혈은 크게 3가지 원인 때문에 나타납니다. 1) 부적절한 영양 공급 때문에 철분 섭취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우, 2) 만성적인 실혈로 인해 철분을 소실한 경우, 3) 철의 항상성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헵시딘(Hepcidin)이 체내에서 염증에 의해 증가하면서 항상성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철 결핍성 빈혈이라는 게 명확한 경우에는 먹는 형태이든, 주사 형태이든 철분의 보충이 필요하죠. 최근에는 다들 상업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영양 공급에 의한 철 결핍성 빈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2번이나 3번의 경우에서 보통 철분 보충을 고려하게 됩니다만… 실제 보호자분들이 철분 보조제를 먹이게 되는 가장 흔한 경우는 만성 신부전 환자의 빈혈 케이스입니다.

만성 신부전 환자의 빈혈은 왜 나타나나요?

만성 신부전 환자의 빈혈은 꽤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납니다. 신장이 정상 기능을 하지 않으니 체내에 요독소가 쌓이면서 소화기에서 (임상증상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미세한 출혈을 유발한다는 얘기도 있고, 신장에서 만들어지는 조혈인자(erythropoietin)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해서 피를 만드는 조혈 작용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혹은 신부전 때문에 염증 상태에서 헵시딘 농도가 올라가면서 철분의 항상성 조절을 망가뜨린다는 얘기도 하죠.

이런 요인들 중 신부전 환자의 빈혈을 유발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 건 조혈인자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일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신부전 환자에서 빈혈이 나타나면 보통은 피가 만들어지지 않는 비재생성 빈혈이 나타나고, 치료는 부족한 조혈인자를 조혈 주사(DPO)로 보충해주는 식으로 진행하죠.

철분 보충은 언제부터 필요한가요?

철분 보충은 보통 빈혈이 나타났을 때부터 시작합니다. 철 결핍성 빈혈이든, 신부전에 의한 빈혈이든 똑같습니다. 빈혈이 확인되면 그 때부터 철분을 보충합니다. 신부전 환자들의 경우, 보통 조혈주사를 시작할 때 철분 보충을 함께 진행하죠. 사람에서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철분 보충을 해주지 않으면 조혈주사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기 때문에 조혈주사의 반응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조혈 주사와 함께 철분 보충을 합니다. 고양이의 얘기를 해보자면, 조혈 주사를 맞은 신부전 고양이들은 체내의 순환 철분량이 줄어드는데, 이게 조혈에 철분이 활용된다는 걸 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를 만들 재료로 철분 보충을 해주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댓글로 질문을 주셨던 분도 그렇고) 보호자분들이 보통 궁금해하는 건 빈혈이 나타나기 전에 사전에 철분 보충을 하는 것이 빈혈의 예방에 도움이 되느냐 입니다.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지만, 통상 빈혈이 나타나기 전에 사전에 철분제를 먹이는 걸 추천하지는 않습니다(이걸 추천하는 건 사람 임산부의 얘기입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는 신부전에서 빈혈이 나타나는 가장 큰 요인은 조혈인자의 부족인데, 철분은 피를 만드는 재료일뿐 그 자체로 조혈작용을 촉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철분이 결핍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충을 해준다한들 신장이 망가지면서 조혈인자가 부족해지는 걸 예방해주지 않는거죠.

두번째 이유는 철분제가 부작용이 없는 밑져야 본전의 보조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상 집에서 강아지 고양이한테 먹일 수 있는 먹는 철분제(경구제)는 약 20%의 환자에서 소화기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변 색이 까맣게 변하기도 하고, 복통이나 변비를 유발할 수 있죠. 신부전 환자들은 보통 질소혈증 때문에 지속적인 메스꺼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경구용 철분제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메스꺼움을 유발한다는 겁니다. 안그래도 메스꺼워서 밥을 잘 안 먹는데, 그걸 가중시킬 수 있는 셈이죠. 과량을 복용시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과량 복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간을 망가뜨릴 수 있기도 합니다. (오늘동물병원은 경구용 철분제를 거의 쓰지 않고, 주사제를 더 선호하는데, 철분제가 필요한 대부분의 환자들이 신부전 환자라서 소화기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먹는 약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신부전에 의한 빈혈이 만성적인 소화기 실혈이나 헵시딘의 항상성 문제 때문에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예방적인 철분제가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지어 얘기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만, 도움이 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은 반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은 꽤 높은 편이기 때문에 실제 빈혈이 나타나고 철분 보충이 명확하게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부터 보충하는 걸 추천하는 거죠.

여기에 통상 보호자분들이 먹이는 철분 보조제들이 어떤 제품인가를 고려하면 보조제를 추천하기는 조금 더 어려워집니다. 동물용으로 나온 펫티닉같은 경우 5mL에 철분(Iron) 12.5mg이 들어있는데, 5kg의 강아지나 고양이가 빈혈로 철분 보충이 필요할 때 먹어야 하는 철분의 양은 elemental iron 기준으로 약 25mg(5mg/kg) 정도(조금 적게 봐도 대충 20mg 정도)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면 철분 보충을 위해서 하루에 10mL 정도를 먹여야 한다는 얘기죠. 병원에서 처방하는 훼로맥스액 같은 경우는 5mL에 철 100mg이 들어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1.25mL 정도를 먹이는 거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만, 펫티닉은 먹어야 하는 양이 상당히 많죠(한 병에 120mL짜리니까, 사실 이런 용도로 나온 제품도 아닙니다). 흔히들 먹이시는 모아철같은 경우는 어떨까요. 제조사의 설명대로라면 2캡슐당 철 6mg이 들어있다고 하니, 5kg 정도의 고양이라면 하루에 8캡슐을 먹어야 필요한 양을 아슬아슬하게 보충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하루 1-2캡슐(철 3-6mg) 정도를 먹이시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하는데, 실제 철분 보충이 필요한 고양이에게는 많이 부족한 양이고, 철분 보충이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라면 부작용을 감수해가면서 먹을 필요는 없는 거죠.

철분 주사제

보통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정말 철분 보충이 필요한 경우에는 철분 주사를 합니다. 주사제라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라서 주사부위 통증이나 염증, 혹은 환자가 주사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경구제를 쓰지만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면 훨씬 더 간편한 주사제를 선호하죠. 보통 Iron dextran이라는 주사를 쓰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사를 하니까 크게 부답스럽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먹여야 하는 약이 하나 줄어든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 주사제 비용도 아주 저렴한 편이죠. 저비용 고효율이랄까요. 조혈 주사를 시작하면서 철분제를 주사하니까, DPO 맞으러 왔을 때 철분 주사도 보통 같이 맞게되어서 병원 방문 횟수가 특별히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경구제와 다르게 주사제는 소화기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신부전 환자들이 인흡착제를 먹는 경우들이 꽤 있는데, 인흡착제와 경구용 철분제를 같이 먹이는 경우 소화기에서 흡수가 잘 안되는 문제도 주사제는 피해갈 수 있죠. 조금 더 철분 보충이 많이 필요한 철 결핍성 빈혈이라면 모르겠지만, 신부전에 의한 빈혈에서는 사실 주사제 대신 경구제를 써야 하는 이유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분 주사제가 워낙 저렴하다보니, 경구용 철분 보조제는 불필요하게 의료비를 늘리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훼로맥스 같은 경우에도 주사제보다 비용이 비싸고, 모아철 같은 보조제도 주사제보다 비용이 비싸죠. 보통은 뭐라도 하나 더 아이한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철분제까지 먹이게 되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썩 추천할만한 방법은 아니랄까요.

비슷한 고민이 있으신가요?

아이의 상태가 궁금하시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전화 또는 카카오톡으로 예약·상담을 도와드립니다.

More · 다른 칼럼

이어서 읽어보세요

금보다 비싼 지푸라기, 삼스카(톨밥탄)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약은 꽤 많습니다. 당장 피모벤단만 해도 5mg짜리 한 정의 가격이 금 5mg보다 비싸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런 비싼 약 중에서도 특히 비싸기로 유명한 삼스카(성분명 톨밥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삼스카(성분명 톨밥탄)는 병원마다 청구가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30mg짜리 한 정에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 정도까지 하는 비싼 약입니다. 포스팅을 쓰는 현재의 금값을 기준으로 순금 30mg의 […]

칼럼 읽기

강아지 고양이의 정맥 라인 잡기, 스탠다드를 따라서.

그깟 라인 하나 잡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여러번 글을 쓰게 될까 싶었습니다. 라인 잡을 때 쓰는 테이프를 가지고 포스팅을 했던 적도 있고, 어떤 색의 카테터로 라인을 잡아야 하나를 가지고 포스팅을 했던 적도 있죠. 어쩌면 인턴 때보다 원장이 된 지금이 라인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금 더 스탠다드한 […]

칼럼 읽기

개똥을 약으로 쓰는 경우, 대변 이식(FMT)은 얼마나 효과가 있나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은 어쩌면 현대에 와서 의미가 조금 달라져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개똥을 실제 약으로 쓰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고 있기 때문이죠. 흔히 변이식(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이라고 합니다)이라고 하는 방법이 강아지와 고양이에서 치료 방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건강한 강아지나 고양이의 변을 아픈 환자에게 먹이거나, 항문으로 관장액 밀어넣듯이 대장에 직접 넣어주는 식으로 변이식을 적용합니다. (놀랍게도) 사람에서 먼저 […]

칼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