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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전 금식과 마취 전 금식, 몇 시간이나 해야할까요?

식탐이 많은 아이들 중에는 밥을 안 주면 줄 때까지 보호자를 쫓아다니면서 밥 달라고 보채거나, 밥을 줄 때까지 계속 보호자를 못살게 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고양이는 츄르를 안 주면 줄 때까지 보호자분 머리를 때린다고 하더군요. 이런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밥을 굶겨야 하는 때가 있으니, 건강 검진을 하는 날과 마취를 해야하는 날이 바로 그 날입니다. 사람에서도 건강검진이나 마취 전에는 금식을 안내받기 때문에 금식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별 의문을 표하시지 않고, 어떤 경우엔 먼저 금식시켜야 하냐고 물어보시기도 합니다만, 의외로 수의사들 사이에서는 딱 이렇다할 합의점이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금식을 꼭 해야하느냐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고, 몇 시간이나 금식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논란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걍 재미삼아 한 번 관련 근거가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건강 검진 전 금식

건강 검진 전에 금식을 안내받는 경우들이 많습니다만, 어떤 병원 같은 경우에는 건강 검진 전 금식을 안내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금식 없이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하죠. 또 어떤 병원 같은 경우는 12시간을 금식해야한다고 하지만, 어떤 병원 같은 경우는 6시간 정도만 금식해도 된다고 얘기합니다.

건강 검진 전 금식에 관해서는 이렇다할 합의점이 사실 없습니다. 건강 검진 전에 금식을 안내하는 이유는 혈액 검사 때문입니다. 사료를 먹고 오면 지질혈증(lipemia)이 생기면서 혈장의 색이 뿌옇게 변하는데, 혈장의 색이 뿌옇게 변하면, 혈액 검사 장비가 정확한 수치를 뽑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에서도 그래서 건강 검진 전에 금식을 안내하죠. 실제로 사람에서는 가볍게 식사를 하는 것이 혈액 검사 수치를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CBC(전혈구검사) 뿐만 아니라 생화학 검사 수치도 식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죠.

사람의 경우, 당뇨 진단을 위해 공복 혈당을 확인한다든가, 고지혈증을 확인한다든가 하는 부분 때문에 금식이 권고됩니다. 동물의 경우는 이런 연구가 없습니다만, 지질혈증이 혈액 수치를 튀게 만들 수 있다는 건 동물에서도 동일하죠. 그래서 건강검진 전에 금식을 권합니다. 금식 시간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 이 또한 정해진 건 없습니다. 병원에 따라 얘기가 다른 건 그래서입니다. 식후 고지혈증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최소 12시간의 금식을 권고합니다만, 12시간은 식탐 많은 강아지 고양이가 견디기엔 생각보다 꽤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혈장이 너무 뿌옇게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고 보고, 아침만 금식시키고 데리고 오시라고 하는 경우도 있죠.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수의사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건강검진에서의 금식을 절대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식사가 혈액 검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영향을 받는다한들 그게 엄청난 차이는 아니라서, 진단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고, 병이 있는 아이를 병이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를 통해서나, 경험적으로나 수치가 변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임상적으로 크게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고 보는거죠. 그래서 가능하면 금식이 추천되지만, 금식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예정된 건강검진을 미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취 전 금식

반면 마취 전 금식을 안해도 된다고 말하는 수의사는 없습니다. 마취 전 금식을 하는 이유는 오연성 폐렴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마취 중에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가 구토를 했다가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가버리면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런 폐렴을 오연성 폐렴이라고 합니다. 마취를 위해서 사용하는 약물(오피오이드나 메데토미딘) 중에는 구토를 유발하는 약들이 있고, 때문에 금식을 통해 마취 전에는 위 내에 음식물이 들어있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토를 하지 않도록 마취 전에 항구토제를 주사하곤 하지만, 항구토제는 위식도 역류(gastroesophageal reflux)를 줄여주지는 않아서 어떤 주사 처치를 하느냐에 상관없이 마취 전 금식은 중요합니다. 특히 단두종(불독, 퍼그, 시츄, 페르시안, 엑조틱처럼 주둥이가 짧은 품종들)은 위식도 역류의 리스크가 좀 더 높은 편이기 때문에 더욱 금식을 중요하게 보죠.

그럼 몇 시간이나 금식을 해야할까요? 얼마나 금식을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합의된 내용이 없습니다만, 이럴 땐 수의학이 늘 그렇듯 사람에서의 내용을 따릅니다. 사람에서는 마취 전 금식과 관련된 몇 가지 가이드라인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미국마취학회의 가이드라인입니다. 2017년에 업데이트된 미국마취학회(ASA, American Society of Anesthesiologists)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합니다.

  • 마취 2시간 이전에 clear liquid 중단

  • 마취 4시간 이전에 breast milk 중단

  • 마취 6시간 이전에 nonhuman milk, formula, light meal 중단

  • 마취 8시간 이전에 fatty meal, fried food, meat 중단

동물도 그래서 최소 8시간 동안의 마취 전 금식을 추천합니다. 마취 들어가기 2시간 전에는 물 마시는 것도 중단을 하죠. 한 밤에 수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 8시간의 금식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대부분의 병원이 수술 전날 밤 12시부터는 먹을 것을 주시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보호자분의 이해와 편의를 위해 이렇게 합니다. 8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수술이 오후 2시에 시작된다면, 당일 아침 6시까지는 뭘 먹어도 되는 거지만, 새벽에 밥을 치우기는 조금 어렵기 때문에 그냥 전날 밤에 먹을 것을 치워주시라고 말씀드리죠. 마시는 물은 병원에서 2시간을 못 마시게 할 수 있으니, 보호자분께는 자유롭게 물을 주시라고 안내드리고요.)

최근에는 가이드라인과 달리 수술하기 4시간 전에 소량의 음식(light meal)을 주는 것이 오히려 위식도 역류를 줄일 수 있으니, 주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논문들이 나왔습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 다소 상반되는 에비던스들이 있어서, 통상적으로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안내를 합니다.

2016년 JAAHA에 올라온 논문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마취 3시간 전에 가볍게 음식을 주면, 전날 밤부터 굶기 시작한 강아지보다 위식도 역류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논문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 올라온 다른 논문을 보면 마취 3시간 전에 가볍게 음식을 준게 오히려 위식도 역류 가능성을 높였다는 상반되는 얘기를 하죠.

그래서 아직까지는 마취 전엔 최소 8시간 이상의 금식을 권고합니다. 4개월령 이전으로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저혈당의 위험이 있는 아주 어린 환자나, 인슐리노마(insulinoma, 인슐린을 분비하는 종양이 있는 환자)가 있어서 역시나 공복이 길어지면 위험한 환자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마취 전 2-4시간으로 공복 시간을 짧게 가져가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환자에서는 8시간 이상의 금식, 2시간 이전부터는 금수를 권고하죠.

먹는 낙으로 살아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굶긴다는 건 어쩐지 마음 아픈 일입니다만, 그게 검사의 정확도와 환자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면 하루 정도는 감수할만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금식을 지키는 게 좋다는 에비던스들은 명확히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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