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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마지막 작별 인사

어떤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냐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릅니다. 자연스레 집에서 아이를 보내주시길 원하는 보호자분들도 있고, 힘겹게 고생하는 걸 옆에서 보기보다는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병원에서 안락사를 선택하시는 보호자분들도 있습니다. 동물병원에서는 “마지막 치료”라는 의미로 환자의 고통이 관리되지 않거나, 삶의 질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보호자분에게 안락사를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안락사에 관한 약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 치료”도 치료의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에서 안락사의 방법과 약물 사용에 대한 얘기는 AVMA(미국수의학협회)에서 발간하는 가이드라인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약 120페이지 정도의 꽤 긴 가이드라인으로, 이상적인 안락사가 어떤 것인지, 안락사에 사용하는 방법들은 어떤 것인지 같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상적인 안락사는 먼저 의식을 잃고,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심정지나 호흡 정지가 오고, 최종적으로 뇌의 기능이 멈추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이 의식을 잃고, 그 다음에 심정지나 호흡 정지가 와야한다는 점인데,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심정지나 호흡정지가 오면 환자가 통증과 죽음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락사 약물을 주사하면 근육의 마비가 동반되는데, 의식이 소실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육의 마비가 온다면, 그런 약은 안락사 약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안락사 약물은 펜토바비탈이라는 주사제입니다. 펜토바비탈은 일종의 마취제로 이 약을 아주 고용량으로 주사하면 마취를 넘어 무호흡과 심정지가 나타납니다. 기본적으로 마취제이기 때문에 의식 소실이 먼저 나타나서, 단독약물로 안락사를 하고자 할 때는 펜토바비탈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펜토바비탈을 안락사 약물로 사용하는 동물병원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안락사 외에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약인데, 펜토바비탈 자체가 향정신성의약품이라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펜토바비탈을 구하려고 약품상에 물어봤더니, 동물병원에서 쓰는 곳이 없어서 구매가 쉽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흔한 안락사 약물로는 T-61, KCl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T-61, KCl 모두 안락사 약물로 사용될 수 있는 약들이지만, 외국에서 이런 약들 대신에 펜토바비탈을 쓰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 약들의 몇 가지 부작용과 한계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T-61의 경우 미국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는 약입니다. T-61의 경우, 엠부트라마이드, 메보조니움, 테트라카인의 합제인데, 엠부트라마이드가 의식 소실을 유발하고, 메보조니움이 근육 마비를 유발합니다. 하지만 메보조니움의 근육 마비 효과가 엠부트라마이드의 의식 소실 효과보다 앞서서 나타난다는 얘기가 있어서, 비인도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는 약입니다. (아직 캐나다와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 중인 약입니다.)

KCl의 경우엔, 빠르게 정맥 주사를 하는 경우 심정지를 유발하기 때문에 안락사 약물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펜토바비탈이나 T-61과는 달리 의식을 잃게 하는 마취 효과는 전혀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할 수는 없고, 반드시 다른 마취제와 함께 사용해야합니다. 주사 시에 매우 강력한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반드시 수술이 가능한 수준의 마취(surgical plane anesthesia)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의사들이 안락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치료에 대해서는 많이 공부하지만, 죽음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해야 “마지막 치료”라는 안락사를 잘 할 수 있는지 배우지 못합니다. 2020년 VCNA(Veterinary Clinics of North America)에서는 이런 수의학계의 문제를 인식하고, 안락사에 대한 얘기만 언급이 된 때가 있었습니다. 죽음의 병태생리는 어떤지, 안락사 약물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지, 안락사 전에 진정과 마취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것이 다루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CAETA(Companion Animal Euthanasia Training Academy) 같은 학습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해야 환자의 마지막을 잘 할 수 있는지 수의사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늘동물병원은 CAETA를 이수했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고, 삶의 마지막이자 하나의 통과 의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사려깊게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동물병원의 경우, 안락사를 할 때는 모든 과정을 보호자분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안락사 약물의 종류에 상관없이 항상 수술에 준하는 마취 상태로 약물을 주입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마취제로 환자를 의식이 없는 상태로 만들고, T-61을 주사합니다. KCl의 경우, AVMA는 마취제 사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의식이 있는 환자에서는 사용이 용납되지 않는 방법(Unacceptable methods)이라고 얘기합니다. 다만 보조적인 방법(adjunctive methods)으로 전신마취를 한 상태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늘동물병원은 KCl을 안락사 약물로 사용하지 않는데, KCl을 쓴 경우, 환자가 사망하고 나서 약물 작용 때문에 근육 경련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이미 사망한 후이기 때문에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걸 보게되는 보호자분들이 마음 아파하실 것을 고려해 오늘동물병원은 KCl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KCl 사용 시에 나타나는 근육 경련은 마취 여부와는 상관이 없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간혹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안락사가 진행되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안락사는 반드시 인도적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환자가 고통을 느끼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 치료이고, 보호자분이 보시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분 모두를 위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아지 고양이들이 숨을 멈추면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고 얘기합니다. 아름답기만 해야하는 무지개다리가 아프고 힘든 다리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 2021년 7월 19일 업데이트.

펜토바비탈 입고되어서 오늘동물병원은 T-61 대신 펜토바비탈을 안락사에 사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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