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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B1 단계 심장병, 피모벤단을 미리 먹이면 안되나요?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되는 보호자분들의 질문이 있습니다. 강아지 심장병 환자 보호자분들이 물어보시는 건데, “B1 단계에서 피모벤단을 먹이면 좋다던데, 미리 먹일 필요는 없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진료를 보다보면, 심장 전문이라고 하는 동물병원에서 그렇게 처방한 걸 직접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비슷한 얘길 들으시고, “우리 애도 B1이라는데, 미리 먹일 필요는 없을까요?”라고 물어보시는 거죠. B2에서 그런 것처럼, B1에서도 피모벤단이 환자의 폐수종 발생 시점을 지연시켜주고, 환자를 더 오래 살게 해주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에비던스가 빵빵한 주제가 아닙니다만, 호기심을 풀어볼겸 간단하게만 한 번 살펴보죠.

먼저 심장에 대한 배경지식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이번에도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의 심장병 단계 구분을 (이전 포스팅에 썼던 걸) 복붙해보겠습니다.

  • ACVIM Stage A: 심장병은 없지만, 심장병 고위험군. MMVD 호발품종인 나이든 말티즈나 킹찰스 스파니엘 같은 경우 심장병이 없어도 Stage A라고 구분합니다.

  • ACVIM Stage B1: 심장병이 있지만, 아직 심장의 리모델링이 진행되지 않은 단계. 심장이 커지지 않은 단계.

  • ACVIM Stage B2: 심장병이 있고, 심장의 리모델링이 진행되어서 심장이 일정 수준 이상 커진 단계.

  • ACVIM Stage C: 심장병으로 인해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이 온 단계. 쉽게 생각해서 폐에 물이 찬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ACVIM Stage D: 울혈성 심부전을 관리하기 위해서 약을 먹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물 차는 게 재발하는 단계.

그러니까 B1단계란 심장병이 있지만(=청진기로 심잡음이 들리지만), 아직 심장이 커지지는 않은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ACVIM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심장약의 투약이 추천되는 시기가 B2 단계부터이니,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심장약 투약을 추천하지 않고, 정기적인 모니터링만 추천하는 단계입니다.

식이적인 관리도, 약물적인 관리도 추천하지 않는 단계가 B1 단계입니다. 하지만 B2 단계부터는 강심제인 피모벤단을 먹이면 폐수종의 발생 시점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근거(EPIC study라는 유명한 논문이 있습니다)가 있기 때문에, 보호자분들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어차피 폐수종 발생 시점을 지연시켜주는 약이라면, 조금 더 일찍부터 먹기 시작하면 안될까?”라는 질문이죠. 혹은 수의사들에 따라서는 “피모벤단이라는 약 자체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약이니, 걍 일찍부터 먹이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겸사겸사 병원 매출에 도움도 되고, 환자에게 케어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도 보호자분에게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 피모벤단이 B2 단계에서 도움이 된다는 EPIC study가 나온 이후, B1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수의사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관련 논문도 없지 않습니다. B1 단계에서 피모벤단을 먹였을 때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논문이죠. 같은 저자들이 쓴 논문이 2개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B1 단계에서 피모벤단을 먹였더니, 환자가 운동 후에 락테이트가 조금 더 낮게 나왔다는 얘기고, 다른 하나는 proBNP 수치가 피모벤단을 먹은 그룹에서 조금 더 낮게 나오더라는 논문입니다.

논문을 살펴보면, 피모벤단을 먹은 그룹과 먹지 않은 그룹 모두 운동을 시키기 전후의 지표들을 비교했습니다. 피모벤단을 먹고 90일차와 180일차에 똑같은 검사를 해서 차이를 비교해본 거죠. 먼저 논문에서도 인정하는 건 90일과 180일차에 피모벤단을 먹은 그룹과 먹지 않은 그룹 사이의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락테이트(한국말로는 젖산입니다. 운동 후에 올라갈 수 있죠)가 올라가는 정도가 피모벤단을 먹은 그룹에서 낮게 나왔고, 운동 후의 proBNP 수치도 낮게 나왔으니 B1에서도 피모벤단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얘길 하죠.

이 두 논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면, 먼저 운동 후의 락테이트 수치와 proBNP 수치가 어떤 임상적인 의의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EPIC study가 유명해진 건, B2에서 피모벤단을 먹였을 때, 정말 폐수종을 지연시켜주더라는 임상적인 의의가 있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B1에서 피모벤단을 먹이고자 한다면, EPIC study처럼 B1에서 피모벤단을 먹였더니, B2나 C로의 진행을 늦춰주더라, 혹은 환자가 더 오래 살더라는 결론이 있어야 하죠. 만약 운동 상태에서 심장의 부담을 줄여주더라는 결론이라면, 굳이 B1의 심장환자에서만 먹일 필요는 또 뭘까요? 그냥 심장병과 상관없이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먹이면 안되는 걸까요?

재밌는 건 이 데이터조차 디테일을 살펴보면 조금 이상하더라는 점입니다. 두번째 논문에 있는 proBNP의 경우, 운동 후에 proBNP 수치가 올라간다는 얘길 하는데, 변화의 정도를 보면, 검사의 변동성을 고려할 때,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수준(정상 범주 내의 변동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입니다. 논문은 피모벤단을 먹이면 180일 후에는 이런 변화가 사라지더라는 얘길 하죠. 역시나 검사 자체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이게 임상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 논문의 락테이트는 조금 더 웃긴데, 90일차에는 피모벤단을 먹인 그룹에서도 운동 후 락테이트의 변화량에 큰 차이가 없고, 180일차에는 락테이트 변화량이 확연히 줄더라는 얘길 합니다. 그래프로는 이렇게 보이죠.

웃긴 건 피모벤단이 매우 빠르게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라는 점입니다. 90일과 180일이라는 임의의 기간과 상관없이 이론적으로 피모벤단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90일차의 결과가 180일차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조금 말이 안되다는 거죠. 조금 더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더 재밌는데, 피모벤단을 먹은 그룹의 180일차 운동 전 락테이트 수치가 0일차의 운동 후 락테이트 수치보다 높게 측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데이터만 놓고 보면, B1에서 피모벤단의 운동 후 락테이트 생성량을 줄여주니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피모벤단을 먹이면 평상시 락테이트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바꿔 말하자면, 이 논문이 알려주는 정보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B1 단계에서 피모벤단을 먹이는 것에 대해 심장 전문의들은 어떤 얘기를 할까요? 어떤 수의사가 B1 단계의 MMVD 환자에게 피모벤단을 먹인다는 얘길 들은 미국의 심장전문의 마크 키틀슨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유료 링크)

저는 B1 단계의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약 제 강아지에게 피모벤단을 먹이고자 한다면 저에게 돈을 아주 많이 줘야 할 겁니다.

제가 B1인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인데, 만약 수의사가 그동안 저에게 피모벤단의 약값을 부담하게 했다면, 저는 수의사가 저에게 피모벤단의 약값을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수의사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야할테고요.

I live with a B1 dog. You would have to pay me a lot to put her on pimobendan.

If I was a client with a B1 dog where a veterinarian had subjected me to the expense of pimobendan, I would expect that veterinarian to reimburse me for the expense of the pimobendan. If unwilling, I would call a lawyer.

VIN.com

피모벤단은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비싼 약이기도 합니다. 만약 5kg의 강아지가 피모벤단을 복용한다고 하면, 오늘동물병원을 기준으로는 1주일에 27,000원 정도의 약값이 나옵니다. 한 달이면 10만원이 넘고, 1년이면 120만원이 넘죠. 병원에 따라서는 약값이 더 비싼 경우도 많으니, 더 큰 의료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B1에서 피모벤단이 임상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의료비를 지출하는 게 (내지는 수의사 입장에서는 보호자분께 청구하는 게) 합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떤 환자들은 B1인 상태로 별다른 약 없이 평생을 살기도 합니다. 심장병이 있는 상태이지만, 사망 원인은 심장이 아닌 다른 문제가 되는 경우죠. 어떤 환자가 심장병으로 사망할지, 심장병으로 사망하지 않을지 알기 어려운 B1 단계에서 피모벤단 처방이 합리화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입니다. 매달 비싼 약값을 지불하면서 아이에게 피모벤단을 먹였지만, 사실은 약 없이도 계속 B1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반대로 그동안의 약값은 뭐였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어떤 병원에서는 심장초음파를 보고, B1이기는 한데 피모벤단 투약을 추천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련 지식이 있는 수의사가 본다면 웃기는 한 편의 코미디인데, 어차피 B1이든 B2든 피모벤단을 처방할거라면, 심장 초음파는 뭐하러 보는 걸까요. B1과 B2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면 청진기와 문진만으로도 B단계라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말이죠. MMVD B1 단계에서도 피모벤단을 처방한다는 얘기는, 청진기로 이첨판의 심잡음이 들리면 피모벤단을 처방한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약 처방을 하겠다면, 심장초음파를 볼 이유가 없다는 얘기와 같은데, 불필요하게 심장초음파도 보고 약까지 처방을 한 거죠. 수의사가 어떤 명확한 기준도 없이,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 해주고자 하는 보호자분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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