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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포도(건포도)의 독성, 20년의 미스테리

강아지나 고양이가 포도를 먹으면 안된다는 건 이제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상식에 가까운 일이지만, 실제 포도가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독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알려진 건 이제 겨우 20년 정도 됐을 뿐입니다. 2001년 JAVMA에 올라온 Gwalteny-Brant의 논문에서 포도나 건포도를 먹은 강아지 중에 급성 신부전이 생기는 경우가 있더라…는 보고가 있었죠. 그 이후로 실제 포도를 먹으면 문제가 된다는 케이스 보고들이 꽤나 많이 있었습니다.

재밌는 건 이런 논문들에서 포도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포도의 어떤 성분이 독성을 유발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죠. 이게 포도와 관련한 미스테리입니다. 많이 먹는만큼 독성을 보이냐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고, 포도에서 껍질이 독성을 보이는건지, 과육인지, 씨앗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포도에 묻어있는 농약이나, 혹은 곰팡이독소 같은 게 문제인가도 확인해봤지만, 그렇지도 않았죠. 알 수 있었던 건 포도를 먹고 급성 신부전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고, 이렇게 증상이 나타나면 적극적인 치료에도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위험하다는 건 (급성 신부전 자체가 무서운 병이니) 너무 당연한 일인데, 어떤 경우엔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어떤 경우엔 증상이 나타나니 포도를 먹고 온 강아지들을 진료보는 수의사들의 접근법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구토 유발만 하는 경우도 있고, 구토 유발을 하고 활성탄까지 먹이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어떤 경우엔 활성탄까지 먹고 병원에 하루이틀 정도 입원시켜놓은 후 수액 주면서 신장 수치 모니터링을 하는 경우도 있죠. (이 중에 과잉진료라고 할만한 건 하나도 없고, 다 합리적일 수 있는 권고되는 치료들입니다.)

실제 2018년 JVECC(응급수의학 저널)에 올라온 논문에서는 포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포도가 독성을 보여서 문제가 되는 케이스가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포도를 먹고 병원에 온 강아지의 6.7%에서 급성 신부전이 확인됐다는 얘기가 있죠. 100마리 중에 6-7마리 정도이니 포도 중독이 아주 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포도나 건포도를 먹고 병원을 찾은 모든 케이스를 살펴보기 때문에 포도 먹고 빨리 가서 구토 유발하고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서의 급성 신부전 발생 빈도를 알려줍니다. 실제로 포도 먹고 병원을 빨리 간 경우 (처치가 빨리 이루어지면) 급성신부전의 발생 빈도가 4.5%지만, 늦게 간 경우엔 빈도가 9% 정도로 올라갑니다. (혹시나 노파심에 얘기하자면, 급성신부전 가능성이 6.7%로 그리 높지 않으니, 병원에 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포도 먹으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는 얘기에 가깝죠.)

논문에서는 어떤 강아지가 중독 증상을 보일지 아닐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포도나 건포도를 먹으면 구토를 유발하고, 48-72시간 정도는 입원해서 정맥 수액을 맞는 게 권고된다는 얘기도 나오죠.

이 정도가 포도에 대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면, 최근의 논문에서는 조금 더 재밌는 얘기가 나옵니다. 포도가 강아지에서 독성을 보이는 이유가 아무래도 포도에 많이 들어있는 타르타르산(tartaric acid) 때문인 것 같다는 얘기죠. 아주 명확하고 깔끔한 얘기냐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20년 미스테리의 해답을 푸는데 실마리를 주는 논문이랄까요.

이 논문은 포도를 먹여보니 급성 신부전이 오더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타르타르산이 많은 타르타르 크림(베이킹 재료)이나 타마린드을 먹은 강아지들이 포도와 비슷하게 급성 신부전을 일으켰고, 부검 결과 포도를 먹은 강아지의 신장과 비슷한 조직학적인 손상이 발견되더라는 얘길 합니다.

타르타르산이 범인이라면, 꽤나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되기는 합니다. 타르타르산은 다른 과일에도 있지만, 포도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이 확인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포도라 하더라도, 품종에 따라서 타르타르산의 함량이 달라지기도 하고, 얼마나 익었는지, 혹은 보관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서도 타르타르산의 함량이 달라집니다.

논문에서는 타르타르산을 없애는 후처리(Detartration)를 하는 포도 주스나 잼, 와인 같은 경우엔 비슷한 신장 독성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범인이 타르타르산이기 때문일 거라고 얘기합니다. 혹은 포도를 익힌 경우 독성을 보이는 빈도가 줄어드는 게, 타르타르산이 열에 변성되기 때문일 거라고도 하죠(몇 도에서 얼마나 익혀야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익힌 것도 주면 안되긴 합니다).

포도를 얼마나 먹었을 때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선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포도의 품종에 따라 (범인일 수 있는) 타르타르산의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먹어야 위험하다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만, 자료들을 살펴보면 20g/kg 정도만 먹어도 급성 신부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얘기하죠. 최근 많이 먹는 샤인머스캣 같은 경우 포도 한 알에 13-15g 정도라고 하니, 5kg 정도 되는 강아지가 6-7알만 먹어도 (운이 나쁘면)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타르타르산이 범인이라면 포도 품종에 따라 더 적은 양만 먹어도 독성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이런 얘기들이 포도 먹은 강아지(+고양이)에 대한 접근법을 다르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타르타르산이 범인일 수는 있지만, 강아지가 먹고 온 포도에 타르타르산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포도를 먹었다면, 그게 한 알이든, 한 송이든, 병원에 가능한 빨리 데리고 가서 구토를 시키고 치료를 해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함량에 대한 정보를 알고 독성 용량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초콜릿과는 접근법이 다릅니다)

물론 애초에 강아지가 포도를 먹지 않게 신경쓰는 것이 제일 중요할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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