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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전에 소독을 하지 않았다고요?

주사 전 소독은 보호자분 입장에서 꽤나 신경 쓰일 수 있는 주제일 것 같습니다. 주사를 맞을 때, 처치실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보호자분 앞에서 아이가 주사를 맞는 경우엔 특히 그렇습니다. 수의사 입장에서는 주사하는 간단한 일까지 소독과 관련한 내용을 보호자분께 하나하나 다 설명드리긴 어렵고, 보호자 입장에서는 수의사가 하는대로 지켜만봐야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소독을 하면 하는가보다 싶지만, 안하면 위생 개념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 병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에서는 주사 전에 항상 알콜 스왑으로 주사 부위를 소독하는게 일반적이고, 대부분의 보호자분들께서는 그러니 동물도 당연히 소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동물에서는 주사 전에 알콜 스왑으로 주사 부위를 소독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명확한 에비던스는 없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주사 부위를 알콜로 소독하는 것이 감염의 리스크를 줄여주지 않는다는 에비던스들이 조금 더 많아서, 굳이 알콜 소독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수의사들도 보호자분들의 인식 때문에 그냥 보여주기용으로 알콜 소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 경우에는 알콜 소독을 하면 알콜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알콜을 묻힐 때 환자들이 차가워서 놀라거나 알콜 냄새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 알콜 소독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피하수액을 하시는 경우에도 따로 소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최근에는 사람에서도 알콜 소독을 하는 것이 피부에 상재하는 세균의 수는 줄여줄지 몰라도, 감염의 리스크는 줄이지 않는다는 논문 근거가 더 많아져 매일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당뇨 환자들에서 굳이 알콜 스왑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죠. 사람에서 백신을 주사하기 전에 알콜 소독을 하는 게 주사 부위 감염 리스크를 줄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보호자분들이 강아지 고양이의 주사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기회는 예방 접종을 할 때입니다. 재밌는 건 백신을 주사할 때는 보여주기 식의 알콜 소독을 하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백신 주사 시에 주사 부위에 알콜 소독을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내용이 있습니다. WSAVA(World Small Animal Veterinary Association, 세계 소동물 수의사회)에서 권고하는 백신 가이드라인에서는 백신 주사 전에 알콜 소독을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실려있습니다.

백신 주사 부위에 알콜 같은 것으로 소독을 하는 경우, MLV 백신(Modified Live Vaccine, 약독화 백신)의 효과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사 전에 소독을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덧붙이는 말로 소독이 실제 주사부위 감염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 같은 베네핏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얘기도 하고요. 한국에서 주사하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종합백신들이 MLV 백신이라는 걸 감안하면, 적어도 백신 주사를 할 때는 알콜 소독을 안 하는 수의사가 소독을 하는 수의사에 비해서 더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고 있는 거죠.

물론 제 경우에도 간혹 주사 전에 알콜 소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심장사상충 성충 치료제인 이미티사이드를 주사할 때인데, 이 때도 사실 주사 부위 털을 밀거나, 알콜 소독을 하는 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이미티사이드 자체가 주사 부위의 부종과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꽤 있어, 그 부분을 좀 더 확실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털을 밉니다(털을 밀고 나서 알콜 소독을 하는 건 잘린 털을 깨끗이 닦는다는 느낌에 가깝고요). (차트에 기록을 하기는 하지만,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에 주사를 놨는지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주사에 관한 얘기고, 장착한 채 며칠을 두는 정맥 카테터는 얘기가 다릅니다. 그 경우에는 털도 밀고, 알콜 소독도 합니다. 카테터를 통해 세균 감염이 되는 걸 CR-BSI(Catheter related blood stream infection)이라고 하는데, 일회성으로 주사를 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독을 철저하게 하려고 합니다.

정맥 카테터는 3일에 한 번 바꿔야만 하는지?

(피부 소독과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카테터 얘기가 나왔으니 한가지 더 사족을 붙여보자면, 간혹 입원 환자를 케어하다보면 보호자분께서 카테터 교체가 이루어졌는지 여쭤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3일에 한 번은 정맥 카테터를 새로 장착해야한다는 얘길 어디선가 듣고 물어보시는 거죠(의료진들 사이에서나 나오는 얘길 어디서 들으신건지 좀 궁금하긴 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정맥 라인을 잡아둔 경우, 72-96시간(3-4일)에 한 번은 카테터를 새로 장착해야 한다는 얘기가 미신처럼 의학계에 구전되어 왔습니다. 사람에서의 얘기를 동물에서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강아지 고양이 환자도 카테터를 3일에 한 번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교체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있는 거죠.

하지만 3일에 한 번 바꿔야만 한다는 건 근거가 있는 얘긴 아닙니다. 최근에는 반대로 정맥 카테터 장착 부위에 별 문제가 없다면, 잦은 교체를 하지 않는 쪽을 더 권장합니다. 이 얘기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가를 살펴본 코크란 리뷰가 있습니다.

코크란 리뷰의 결론은 3일에 한번씩 교체하는 것이 특별히 CR-BSI(카테터에 의한 혈행 감염)나 혈전정맥염(thrombophlebitis)의 가능성을 낮춰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맥 라인을 새로 잡으려면 바늘을 또 찔러야 하니 불필요한 통증만 유발하는 셈이죠. 동물은 거기에 보정을 해야하니 스트레스까지 가중시키게 됩니다.

물론 라인이 막힌다거나, 라인을 장착한 부위가 붓는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교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냥 3일이 지났으니 당연스레 교체를 하는 건 최근에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얘기가 조금 더 많은 편입니다.

환자에게 더 중요한 얘기가 훨씬 많은데, 이런 것들을 보호자분에게 모두 설명드리면서 진료를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질문을 하시는 경우엔 대답을 해드리지만, 어떤 경우에는 물어보지 않고 보호자분께서 마음 속으로만 안좋게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보호자분과 의료진 사이에 신뢰가 깨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요. (그래서 블로그에 구구절절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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