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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수치가 올랐다고요? CRP와 SAA에 관해 생각해볼 점들

수의사의 진료 스타일에 따라, 혹은 가지고 있는 경험에 따라 편이 갈릴 수 있는, 다소 논쟁이 될만한 주제를 하나 건드려볼까 합니다. 급성기 단백질(APP, Acute Phase Protein)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수의사가 아니더라도, 병원을 조금 다녀본 보호자라면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검사죠. 강아지에서는 CRP, 고양이에서는 SAA를 검사하는데, 보통 급성기 염증 상태에 있을 때 올라가는 수치라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라고 많이 얘기하곤 합니다.

급성기 단백질(Acute Phase Protein)에 CRP와 SAA만 있는 건 아니지만, CRP와 SAA는 실제 상업적으로 검사가 어렵지 않게 가능하고, 원내 검사가 가능한 장비까지 있다보니, 한국에서 가장 루틴하게 보는 급성기 단백질이라면 이 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서 각각 다른 검사를 하는 이유는 급성기 단백질이 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검사 자체가 종에 특이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아지의 메이저 급성기 단백질은 CRP와 SAA이고, 고양이에서는 SAA만 메이저하다고 보죠.

그래서 강아지냐 고양이냐에 따라 검사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보통은 둘다 염증 수치라는 이름으로 얘기되곤 합니다. 염증이 있으면 올라가는 수치(이런 걸 positive APP라고 합니다)라고 보죠. 잘 활용한다면 유용할 수 있는 검사들이긴 합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 딴지를 걸고자하는 건 이런 급성기 단백질들을 스크리닝 검사(=MDB 검사)로 활용하는 것이 괜찮은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급성기 단백질의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급성기 단백질은 몸이 염증 상태에 빠지면 수치 변화를 보입니다만, 어떤 이유 때문에 몸이 염증 상태가 됐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조금 있어보이게 말하자면, 민감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특이적인(specific) 지표는 아니라는 얘기죠. 어떤 강아지가 CRP가 올라가 있다면, 이 환자가 염증 상태일 거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췌장염 때문에 CRP가 올라갔는지, 폐렴 때문에 올라갔는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조금 없어보이게 말하자면, CRP나 SAA는 환자가 아프다는 걸 알려줄 뿐, 왜 아픈지는 안 알려주죠.

이런 급성기 단백질의 특징은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내원한 환자의 MDB(minimum database) 검사를 하고자 할 때 별다른 효용을 더해주지 않습니다. 이미 아파서 병원에 온 환자에게 혈액 검사를 했는데, CRP나 SAA가 높다면, 아파서 병원에 온 게 맞다는 확인 정도를 한 번 더 해주는 셈이니까요. 병원에서 MDB 검사를 통해 알고자 하는 건 “왜 아픈지”에 대한 부분이지 “아프냐 아니냐”를 알기 위한 게 아닙니다.

물론 간혹 정말 “아프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 검사를 해야될 때가 있습니다. 어딘가 안 좋아보이긴 하는데, 이게 정말 심각한 건지 아닌지를 알고자 할 때는 CRP나 SAA가 도움이 되죠.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다른 MDB 검사(CBC, 생화학 검사, 소변 검사)를 다 하고 나서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MDB라기보다는 보완적인 역할의 상위진단 검사로 해야하는 검사라는 얘기입니다.


오늘동물병원에는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다가 기존 자료를 가지고 내원해서 상담을 받고 가시는 보호자분들이 종종 있는데, 얼마 전에 그런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강아지가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고,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했는데 지속적으로 염증 수치가 높다는 히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받아본 자료에는 환자의 CRP가 지속적으로 높게 확인됐는데, 병원에 입원해서 매일 CRP를 반복적으로 측정하면서 수치 변화를 확인했더군요. 급성기 단백질은 환자의 예후와 치료 반응을 평가할 때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는 검사이니 매일 CRP를 반복적으로 측정한 게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환자의 진단이 나오지 않았는데 CRP만 반복적으로 측정했다는 게 문제인거죠. 이런 식의 진료는 딴지를 걸 여지가 많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단이 나오지 않으면 치료도 할 수 없습니다. 진단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치료는 어디까지는 증상을 쫓는 대증적인 치료일 수 밖에 없죠.

슬픈 얘기지만, 다른 수치는 괜찮은데, CRP나 SAA가 높아서 병원에 입원하고, 그저 수액을 맞으면서 수치가 떨어지는지 보게 되는 케이스를 간혹 접합니다. 혹은 CRP가 높으니까 (세균 감염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입원해서 항생제를 맞게 되는 케이스들도 보게 되죠. CRP가 높으니까 입원해서 항생제를 계속 맞다가 입원 기간 중에 CRP가 잘 떨어지지 않으면, (그럼 우리 항생제는 쓸만큼 써봤으니) 스테로이드를 한 번 써보죠…로 귀결되는 케이스도 가끔 보게 됩니다. 급성기 단백질은 감별 진단 목록을 얼추 둘이나 셋 정도로 추려놓은 상황에서 진단을 조금 명확하게 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진단이 명확한 상황에서 환자의 치료 반응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 검사들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CRP나 SAA가 높으니 일단 (뭘 해야할진 모르지만) 치료부터 합시다…가 되는 셈이랄까요.


오늘동물병원은 그래서 CRP나 SAA를 잘 보지 않습니다. 이실직고하자면, SAA는 병원에 검사할 수 있는 장비도 없습니다. 보통 바이오노트사에서 나오는 Vcheck이라는 장비를 많이 쓰는데, 오늘동물병원에서 쓰는 IDEXX사의 장비에서 검사가 가능한 항목들을 제외하면 Vcheck에서만 할 수 있는 검사는 몇 안되고, 그 검사들이 보통 크게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CRP의 경우에는 오늘동물병원에도 검사 가능한 장비(=IDEXX 카탈리스트)가 있어서 가끔 활용하지만, SAA는 왜인지 검사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 수의사들을 위한 사족을 붙이자면, Vcheck은 몹시 계륵같은 장비입니다. 있으면 쓸데가 있겠지만, 없어도 진료를 보는데 별 지장이 없죠. 특히 카탈리스트 같은 장비가 병원에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카탈리스트나 호르몬 검사 장비가 병원에 없다면 유용할 수 있습니다). Vcheck에서 가능한 검사들을 보자면, proBNP를 원내에서 수치로 봐야하는 이유는 딱히 없고, CRP나 SAA 또한 계륵 같은 검사고, cPL이나 fPL은 수치 확인이 되면 좋겠지만, Vcheck의 cPL 정확도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항체가 검사 또한 불필요한 검사에 가깝고, (다른 장비에서는 검사가 어렵고) Vcheck에서 실제 유용하게 활용할만한 검사라면 D-dimer나 SAA 정도인데, 둘 모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진료보는데 별 지장은 없는 검사들이죠.

(장비병 때문에 잠깐 샛길로 빠졌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급성기 단백질의 효용이 그리 높지 않은 반면, 이 검사들의 검사 비용은 꽤 높은 편입니다. 병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숫자 하나를 알기 위해 보통 4-5만원 정도의 적지 않은 수가가 책정되어 있죠. 조금 더 전통적인 염증 수치라고 할만한 WBC(백혈구) 수치를 알려주는 CBC 검사가 빈혈 수치와 혈소판 수치까지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면서 CRP나 SAA보다 저렴하다는 건 어쩐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래서 감히 얘기하건데, CBC를 면밀히 보지 않고, 바로 CRP나 SAA 검사를 하는 건 조금 게으른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혀 효용이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급성기 단백질 검사가 빛을 발하는 때가 있죠. 대표적으로는 의심되는 A와 B 중에 뭐가 더 가능성이 높을지를 감별해줄 때입니다. 2014년 JVIM에 올라온 논문은 급성기 단백질을 임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초를 줍니다.

이 논문에서는 세균성 폐렴이 있는 환자들이 다른 호흡기 질환(세균성 기관지염이나 호산구성 기관지염, 혹은 심인성 폐수종)을 가지고 있는 환자보다 훨씬 더 높은 CRP 수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간혹 흉부 방사선 검사에서 폐침윤이 보이고, 심잡음도 있는데 어쩐지 폐수종인지 폐렴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환자들에서 CRP를 볼 수 있다면, 이 둘을 감별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주는 셈이니 큰 도움이 되죠. (폐수종과 폐렴의 치료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혹은 비슷하게 자궁축농증을 감별하고자 할 때도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초음파에서 자궁에 무언가 액체가 찬 것 같은데, 초음파 소견이 결정적이지 않을 때 CRP를 보면 자궁축농증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자궁수종이나 점액종 때문인지, 혹은 자궁내막증식(Endometrial hyperplasia)인지도 감별해볼 수 있죠. 수술 여부를 결정해주는 부분이니 꽤 유용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다른 검사를 통해서 진단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예후를 판단하기 위해서 쓰기도 합니다. 2017년 JVIM에 올라온 논문을 보면, 세균성 폐렴에서 CRP 수치를 통해 항생제를 중단할 포인트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2008년 JVIM 논문을 보면, SRMA(Steroid-Responsive Meningitis-Arteritis)의 진단과 모니터링(혹은 재발 여부)에 CRP를 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죠.

이런 논문들은 급성기 단백질 검사가 완전 무가치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어떤 진단이 이미 확정되어 있는 상태, 혹은 감별 진단 목록을 거의 추려놓은 상황에서 활용한다는 점이죠.

고양이의 SAA 검사는 CRP보다도 근거 논문의 수가 많이 적은 편인데, 강아지와는 자주 생기는 질환이 다른 편이다보니 아무래도 CRP보다도 활용성이 더 떨어지죠. (그래서인지 오늘동물병원에서는 CRP는 가끔 검사할 때가 있는데, SAA는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강아지의 CRP에 대해 리뷰해놓은 논문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CRP 같은 급성기 단백질은 진단이나 환자 모니터링, 예후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독립적인 지표로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죠. 다른 진단 검사와 보완적인 역할로 기능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급성기 단백질 검사에 대한 수의사들의 스탠스는 몹시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급성기 단백질을 임상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반면, 유럽은 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고, 한국은 MDB 검사에 거의 기계적으로 검사를 돌리는 수준이죠. 어떤 수의사는 무가치한 검사라고 폄하하지만, 또 다른 수의사는 급성기 단백질 검사 없는 세상에서는 임상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찬양하기도 합니다. 오늘동물병원은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없어도 별 지장은 없는 검사 정도라고 생각하죠. 이런 검사는 언제나 그렇듯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진행하게 됩니다. 급성기 단백질의 비용 편익이 올라가는 순간들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이걸 MDB 검사로 밀어넣는다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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