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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이 있는 고양이의 항혈전제 투약, 꼭 해야 할까요?

소재가 없어서 최근 블로그 포스팅이 뜸해졌는데, 재밌는 논문(?)을 하나 가져와보죠(전문용어로 우라까이). JAVMA에 올라온 건데, 논문이라기보다는 오피니언에 가깝습니다. 이 오피니언의 주제는 “비대성 심근병증(HCM)이 있는 고양이에서 클로피도그렐은 얼마나 효과적인걸까요?“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심장전문의인 마크 리시니우가 썼죠.

HCM이 있는 고양이들은 병이 진행되면서 심장이 커지면, 혈전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고, 혈전이 생기면 매우 (보통 초진에도 안락사 상담을 할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에 심장이 어느 정도 커지게 되면(=ACVIM Stage B2) 혈전을 예방하기 위해 클로피도그렐이라는 약을 수의사가 추천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수의내과학회(ACVIM)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B2 단계에서는 클로피도그렐 투약을 추천한다고 적혀 있죠.

가이드라인에서는 이와 같은 클로피도그렐 투약 권고가 LOE(Level of Evidence) medium 정도라고 합니다만, 재밌게도 실제 클로피도그렐이 B2 단계의 고양이에서 어느 정도의 확률로 혈전 발생을 막아주는가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대신 혈전이 생겼던(FATE, Feline Aortic Thromboembolism) 환자에서 클로피도그렐이 혈전의 재발생을 얼마나 막아주는가에 대한 근거 정도가 있죠. 연구의 이름이 귀여워서 수의사들이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되는 FATCAT 스터디가 그 근거입니다. (또 다른 항혈전제인 리바록사반의 효과에 대해 연구한 논문의 이름이 SUPERCAT 스터디라는 건 재밌는 사족)

이 논문은 FATE가 있었던 심장병 고양이가 회복한 이후에 클로피도그렐을 먹였더니 (과거에 먹였던) 아스피린에 비해서 혈전이 재발하는 경우가 줄더라는 게 결론입니다. 한편으로 아스피린은 실제 고양이에서 혈전을 예방하는데 거의 효과가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스피린이 플라시보와 마찬가지라면, 클로피도그렐이 혈전이 안 생겼던 고양이에게서도 혈전을 예방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B2 단계에서 투약을 권고하는거죠.

리시니우는 이 권고에 딴지를 겁니다. 먹이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먹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동의하는데, 그럼 얼마나 많이 도움이 되느냐…라는 거죠. 왜 “얼마나”에 집착하느냐하면, 일반적으로 클로피도그렐이 고양이에게 먹이기 힘든 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클로피도그렐은 쓴 맛이 강하고, 고양이가 이 맛을 느끼면 (대부분의 쓴 약들이 그렇지만)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하죠. 헛구역질을 할 때도 있고, 약을 뱉어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클로피도그렐을 먹일 때는 맛을 느끼지 못하게 츄르를 듬뿍 섞어주거나, 캡슐 안에 넣어서 먹이곤 하죠)

그렇다보니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먹이고 싶지 않은 약이기도 합니다. 안그래도 약 먹이는게 힘든데, 클로피도그렐은 그 중에서도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은 편이니까요. 특히 이뇨제가 불필요한 B2 단계의 고양이들 중엔 클로피도그렐만 단독으로 먹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만약 클로피도그렐을 꼭 먹어도 되는 게 아니라면 투약 자체를 안 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리시니우는 그래서 클로피도그렐이 혈전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를 보려고 하죠. 생각보다 큰 도움이 안되면, 약을 먹이는 수고로움과 (쓴 약을 매일 먹어야 하는) 고양이의 삶의 질을 고려해서 먹이지 않는 쪽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얘깁니다. 리시니우는 이걸 알기 위해 기존 연구들을 토대로 약간의 산수 계산을 합니다.


심장병 고양이의 혈전은 좌심방의 크기가 꽤 커야 발생합니다. 혈전이 생기는 이유 자체가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기 때문인데, 그러려면 심장이 꽤나 커져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조금 있어보이게 얘기하면, moderate to severe한 정도로 심장병이 진행이 된 상태여야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논문에 따르면 건강한 고양이의 대략 10% 정도가 중등도 이상의 HCM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무증상이면서 중등도 이상의 HCM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의 다시 10% 정도에서 혈전이 생긴다고 합니다.

클로피도그렐은 혈전 발생 가능성을 얼마나 낮춰줄까요? 혈전이 한 번도 생기지 않았던 고양이에서는 관련 연구가 없으니, FATCAT 스터디(이미 혈전이 한 번 생겼던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의 자료를 가지고 옵니다. FATCAT 스터디에서는 혈전이 생긴 후 클로피도그렐을 먹은 고양이의 48%(39마리 중 19마리)에서 혈전이 재발합니다. 클로피도그렐 대신 아스피린을 먹은 고양이들은 75%(36마리 중 27마리)에서 혈전이 재발했죠. 그래서 FATCAT 스터디는 클로피도그렐이 대략 35% 정도의 상대적인 비율(relative risk reduction)로 혈전이 발생 가능성을 낮춰주는게 아니냐고 얘기합니다.

(실제 그럴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혈전 발생 가능성을 낮춰주는 클로피도그렐의 효과가 혈전이 한 번도 생기지 않은 고양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가정해보죠. (동시에 아스피린은 혈전을 막는데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추가적인 가정까지 합니다. 실제로 아스피린은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연구가 있기도 하고요.) 이 가정을 토대로, HCM이 있는 고양이에서 혈전이 터질 가능성(=대략 10%)과 클로피도그렐이 혈전 리스크를 줄여주는 정도를 가지고 계산한 게 아래 표입니다.

전체 고양이의 10% 정도가 B2 단계의 HCM이 있다고 하는데, 이 중에 다시 10%가 혈전이 생긴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동물병원에 온 고양이 100마리 중에 B2 단계의 HCM이 있는 고양이가 대략 10마리인데, 이 중에 1마리가 혈전이 생긴다는 얘기죠. HCM이 있는 10마리의 고양이 중에 어떤 고양이가 혈전이 생기는 1마리가 될지, 수의사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통 혈전을 막기 위해 수의사는 혈전이 생길 1마리가 아니라, HCM이 있는 B2 단계의 고양이 10마리 모두에게 클로피도그렐을 처방하죠. (9마리는 사실 약을 안 먹어도 되지만, 누가 9마리에 속하고, 누가 1마리에 속할지 모르니까요)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10%이고, 상대적인 리스크 감소 효과가 35%라면, 실제적인 리스크 감소 효과는 3.5%입니다. FATCAT 스터디에서 나온 1년 이내의 혈전 재발 가능성을 낮춰주는 상대 리스크 감소 효과는 44%였는데, 이 수치를 이용하면 4.4%죠. 그러면 저 표와 같은 계산이 나옵니다. 1년 이내의 리스크를 줄인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1년 이내에 혈전이 생길 고양이에게 혈전이 생기지 않게 예방하기 위해서 총 23마리의 고양이에게 클로피도그렐을 투약해야 1마리가 혈전을 피할 수 있게 되고, 1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총 29마리에게 클로피도그렐을 투약해야 1마리가 이득을 보게 되죠.

바꿔 말하면 이렇습니다. 1마리의 고양이에게서 혈전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23~29마리에게 클로피도그렐을 투약해야한다는 거죠. HCM 고양이 10마리 중에 1마리의 혈전을 예방하기 위해 나머지 (혈전이 안 생기는) 9마리에게 클로피도그렐을 투약해야한다는 것도 어쩐지 뭔가 찝찝한데, 실질적으로 약이 혈전 예방을 어느정도까지 해주냐…를 고려하면 실제는 9마리가 아니라 더 많은 수에게 불필요한 약을 투약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확률의 얘기이기 때문에 어디에 베팅할 것이냐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베팅 실패의 결과가 혈전으로 인한 고양이의 사망이라면 (혈전이 안 생길 가능성이 의외로 조금 높은 확률이더라도) 약을 안 먹이는 쪽에 베팅하고 싶지는 않아지죠. 수의사 입장에서는 1마리를 위해 불필요한 23-29마리에게 투약이라는 개념이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 1마리가 내 고양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걸 베팅의 개념이 아니라 투약의 코스트/베네핏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클로피도그렐이 B2 단계의 고양이에게 반드시 의무적인 투약 사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ACVIM이 그랬던 것처럼 권고는 가능하겠지만, 보호자가 (약 먹이는게 너무 힘들어서) 먹이지 않겠다고 했을 때, 꼭 먹이라고 강요할 약까지는 아니라는 얘기죠. 리시니우가 얘기하는 것도 딱 그 정도의 이야기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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