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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HCM(비대성 심근병증) B1 단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임상 경력이 얼마 안됐던 저년차 때는 보호자분 앞에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라 이걸 모른다고 해도 되는 건지,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모르는 건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다른 수의사들은 명쾌하게 대답해주는 문제인데, 나만 모르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인턴 때는 사실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니,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는 게 거의 없는 수의사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달까요. 경력이 쌓이고 나서부터는 모른다는 얘기를 점점 더 편안하게 합니다. 수의학은 모르는 게 많은 학문이라는 걸 공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수의학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는 보호자분에게 솔직히 수의사들도 잘 모른다고 얘기하게 됐죠. 괜히 아는 척했다가 진료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에서 그렇지만) 그 중 하나가 고양이 심장병입니다. 고양이의 심장병(대부분 심근병증)은 강아지와 달리 무증상일 때 진단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그 중에서도 초기 심장병이라고 얘기하는 B1 단계의 심장병은 정말 진단이 어렵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proBNP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떠서 심장초음파를 보고 싶다고 오는 케이스라든가, ‘프리미엄‘ 건강 검진으로 심장초음파까지 봤는데, B1 단계(=심장이 아직 커지지 않은 단계)의 HCM이 있다고 진단 받아서 세컨 오피니언을 듣고 싶다고 오는 케이스라든가…하는 경우죠. 몹시 흔하게 볼 수 있는 케이스들입니다.

몇몇 아주 명확한 케이스들이 아니면, 저는 보통 도망갈 구멍을 열어두는 방식의 접근법을 택하는데, (저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수의사들이)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왜 잘 모르는지, 왜 수의사들이 명쾌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도망갈 구멍을 열어두는지에 대한 얘길 해볼까 합니다. 인턴 때는 정말 몰라서 (부끄러운 마음에) 모른다는 얘길 못했지만, 이젠 알만큼 알아서 (당당하게)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고양이의 심근병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조금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가장 흔한 HCM을 예로 설명해보죠. HCM은 심근이 두꺼워지는 병을 얘기합니다. 보통 좌심실을 둘러싸는 심근이 두꺼워지는 걸 얘기하죠. 정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이완기 말 심근의 두께가 5mm 미만으로 나오는 걸 정상이라고 얘기합니다. 6mm 이상이면 심근이 비대해졌다고 얘기하고, 그 사이값인 5-6mm는 애매한 그레이존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고양이 심장초음파를 볼 때는 다양한 위치에서 심근의 두께를 측정합니다. 심근이 두꺼워진 부분이 있다면, HCM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근데 문제는 심근 두께만 가지고 HCM을 진단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심근병증 때문에 이미 심장이 커진(=좌심방이 커진) B2나 C 단계에서는 진단이 직관적입니다. 정상 심장에서 좌심방이 커질 일은 없고, 심장초음파로 좌심방이 커진 걸 평가하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습니다. 경험이 많이 쌓이면 길이 측정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초음파 화면만 보고도 커졌다 아니다를 알 수 있을 정도죠. 좌심방이 커진 걸(=정상 심장이 아닌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심근 두께를 측정했는데 6mm 이상의 수치가 나온다면, HCM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좌심방이 커지지 않은 B1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정상 심장과 좌심방의 사이즈가 동일하기 때문에 심근 두께와 HCM에서 나타나는 심장의 미묘한 변화들을 토대로 진단을 내려야 합니다. 미묘한 변화라는 것이 보통은 심장의 이완능이 떨어지는 걸 얘기하는데, 이완능은 조금 복잡한 개념이 있으니, 일단 조금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심근 두께부터 얘기해보죠.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양이 심장에서 심근이 두꺼워진 부분을 측정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은데, 이게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초음파는 심장이라는 3D 구조물을 2D 화면에 띄워주는 검사 장비라서 어떤 단면을 보느냐에 따라서 실제로는 두꺼운데, 얇게 측정이 될 때가 있고, 실제로는 얇은데 두껍게 측정될 가능성이 있죠. 거기다가 갈비뼈 사이의 작은 공간(acoustic window라고 합니다)을 통해서만 심장을 초음파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뷰가 한정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잘 보이지 않는 부분(예컨대 심장의 끝인 apex)이 있고, 그 부분이 두꺼워져 있다면 진단을 놓칠 가능성이 있습니다(전체적으로 두꺼워지는게 아니라 국소적으로 두꺼워지는 HCM도 있으니까요). 이건 심장 초음파라는 검사 수단의 한계랄까요.

심장 초음파라는 검사의 한계를 넘어 심장초음파를 보는 사람의 한계도 있습니다. 2003년에 나온 논문을 하나 보죠. 심근의 두께를 측정할 때 어떻게 뷰를 잡고 측정하느냐는 사람의 손을 타는 일인데, 이게 아주 미세한 각도 차이에도 다르게 측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0-20cm짜리를 측정하는 게 아니라 5mm 근방의 아주 작은 무언가를 측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이 논문은 고양이 4마리를 두고, 각각 다른 숙련도를 가진 사람들이 심장초음파를 봐서 심장의 여러가지 지표들을 측정한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가 재밌는데,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고양이를 보는데도 매번 측정값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는 있다고 쳐도) 얼마나 달라지느냐를 보면 더 재밌습니다. 숙련도가 좋아서 측정값의 차이가 그리 달라지지 않는 경우에도 17.4%였고, 숙련도가 떨어지는 경우에는 22.6% 정도까지도 차이가 났습니다. 이 숫자가 얘기해주는 걸 있는 그대로 표로 보면 이렇습니다.

HCM 진단에서 중요하게 보는 이완기 말의 심실중격 두께(IVSD)나 좌심실 외벽의 두께(LVFWD)를 보면 됩니다. 이게 5-6mm 사이면 HCM 가능성이 있는 그레이존이고, 6mm를 넘어가면 HCM이라고 보죠. 어떤 사람은 이게 0.5mm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1.1mm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러프하게 대략 측정값이 (똑같은 초음파를 가지고 똑같은 사람이 봐도)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얘기는 5mm냐 6mm냐를 따질 때는 엄청난 문제가 됩니다. 심초에서 측정한 값을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봤다면 조금 더 신뢰할 수 있겠지만)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는 얘기죠.

여기에 이런 심근의 두께가 늘 심장병에서만 두꺼워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심근 두께를 토대로 HCM을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건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고양이의 심장은 마인쿤처럼 왕크왕귀 고양이에서는 정상적으로도 더 두껍게 보일 수 있고, 수화 상태라든가 심박수에 따라서도 다르게 측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초에서 5.8mm 혹은 6.1mm 정도로 심근 두께가 측정됐다면, 이게 HCM B1 단계라 그런건지, 탈수 상태인건지, 수의사가 잘못 측정한건지를 알 수가 없다는 얘기죠.

이걸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건 고양이의 심장이 초음파 상에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꽤 많다는 점입니다. 정말 좋은 초음파를 써도 고양이 심장은 작고 빠르게 뛰기 때문에 영상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죠. 심장 내부의 구조물들이 벽 두께 측정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두근(papillary muscle)이 두드러져서 좌심실 외벽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기도 하고, 심근 내벽의 불규칙성이 두께 측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사람에서는 초음파용 조영제를 써서 심근 두께를 측정하는 시도도 있죠)

사람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초음파를 보는 사람의 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CM 진단에 심장초음파가 아닌 심장 MRI(cardiac MR)을 진단의 골드 스탠다드로 삼지만, 고양이에서는 마취라든가 비용이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가 (논문 쓰는 게 아니라면) 거의 없습니다.

검사라는 건 어떤 검사든, 재현성이 중요한데, 심장초음파 상에서 A 수의사한테는 HCM이었던게, B 수의사한테는 그레이존이 된다면 진단이 아주 애매해질 수 밖에 없죠. 이런 한계를 고려해 ACVIM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헌들이 심근의 두께만을 가지고 HCM을 진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측정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잘 측정해도 그것만으로는 HCM 진단을 못한다는 얘기죠


뭐 어찌저찌 잘 측정한 것 같은데, 심근 두께가 6mm를 확실히 넘는다고 해보죠. 그러면 이제 이것만으로는 진단이 안된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걸 볼 차례입니다. 이 때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심장의 이완능력입니다. 심장의 이완능은 도플러 검사를 이용해 진단합니다. 심초를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라 대략적인 얘기만 하자면, 수의사들은 심장의 이완능과 좌심방에 걸리는 압력을 평가하기 위해 trans-mitral flow라는 걸 심초에서 도플러(=혈류 속도를 측정해줍니다)로 측정해서 양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평가합니다. 흔히 E peak velocity, A peak velocity라고 얘기하는 걸 얘기합니다. (아래 초음파 사진 같은 것.)

여기서 E peak이 높냐, A peak이 높냐, E와 A의 비율(E/A ratio)가 얼마나 나오냐 같은 걸 보고 심장의 이완능을 평가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게 이 지표만으로는 이완능을 완벽하게 평가하기가 어렵고, 이 tran-mitral flow 자체가 심장의 이완능 외에도 고양이의 흥분 상태(흥분해서 심박수가 빨라지면 E와 A가 겹쳐버립니다), 환자의 체액량, 다른 병발 질환의 존재 같은 것들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trans-mitral flow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이 하는 또다른 심장초음파 상의 검사가 조직 도플러(tissue doppler)인데, 그나마 조직 도플러는 B1 단계의 HCM을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해주는 게 아니냐는 논문이 있지만, 초음파 장비에 따라서 조직 도플러 검사가 가능하지 않은 장비도 있고, 이마저도 심근 두께가 명확하게 평가되지 않는다면, 조직 도플러만을 가지고 HCM을 진단하기는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때로는 심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어도, 이완능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집니다. 심장초음파에서 심근 두께가 6mm가 넘게 측정됐는데, 제대로 측정된 게 맞을까에서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측정됐다면 심장병 때문에 두꺼워진 게 맞을까라는 두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이완능까지 평가해서 본다면 조금 더 신뢰도 있게 병이 있는 심장과 아닌 심장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심근 두께와 이완능 평가가 상반된 결과가 나오면 진단은 조금 더 애매해지죠. 여기에 심근 두께가 두꺼워지지 않고, 이완능만 떨어지는 RCM(제한성 심근병증) 같은 병의 B1 단계까지 고려한다면, 슬슬 이런 모호한 데이터를 가지고 보호자분한테 아이가 불치병인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얘기해도 되는지 의문이 생기죠.

그러니 이제 수의사들은 심장초음파에서 본 걸 그대로 얘기하되, (심장병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 도망갈 구멍(?)을 만듭니다. 심장병이 맞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진행되고, 좌심방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할테니 6개월이나 12개월쯤 후에 한 번 더 심장 초음파 모니터링을 하자고요. B1이 맞다면 어차피 모니터링을 해야 하니 가이드라인과도 말이 달라지지 않죠. (가이드라인에서도 모호한(equivocal)한 결과가 나온다면 팔로우업을 하라고 얘기하죠)

이쯤되면 수의사와 달리 보호자분들은 심장병인지 아닌지 진단이 애매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심장병이 아닌데, 심장병이라고 진단을 받은 거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더 걱정을 하죠. 심장병인데, 심장병이 아니라고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병이 있는 걸 모르고 지내도 괜찮은가…에 대한 걱정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수의사들은 이런 경우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단이 애매할 수 있다는 건 (앞선 이유들 때문에) 인정하지만, 설사 최악의 경우 B1 단계의 심장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단계에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없으니까요.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없고, 그렇다보니 어떤 치료가 권고되지도 않습니다. 진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든, B2 단계로의 진행을 확인하기 위해서든 나중에 심장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는 것 정도만 추천이 되죠.

2017년 VCNA에 올라온 리뷰 논문을 보면, 수의사들의 관심사가 무증상 심장병 중에서도 B2에 한정지어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폐수종이나 혈전색전증의 리스크가 높은 B2 단계 환자가 아니라면 심장병을 잡아내기도 어렵고, 잡아낸다 하더라도 임상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얘기가 HCM B1단계로 진단 받은 고양이가 다 모호한 진단일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SAM(Systolic Anterior Motion)이 명확하고, 이완능을 평가했을 때 저하되어있는게 확실한데, 심근 두께도 두꺼워진 것으로 확인되는 고양이들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자신있게 심장병이 있는 게 맞고, B1단계라고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얘기하는 건, 경우에 따라서 수의사에 따라 좌심방 확장이 없는 고양이 심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는 거죠.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건 어쩐지 무책임해보이지만, 때로는 모른다는 말을 한 마디 하기 위해 이런 다양한 공부들이 필요합니다. 정말 아는 게 없어서 모른다고 해야만 했던 인턴 때와는 달리 알만큼 알아서 모른다고 얘기하게 된달까요. 잘 모르겠다는 얘기만 한다면 어쩐지 실력이 떨어지는 수의사 취급을 받을 것 같기도 해서 가끔 걱정될 때가 있긴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수의학이 잘 모르겠다고 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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