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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췌장염, 어떻게 치료하나요

최근에 병원에 급성 췌장염 환자가 2마리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예후가 좋았고, 다른 한 마리는 예후가 좋지 않았는데, 그만큼 췌장염은 예후가 들쑥날쑥일 수 있는 병입니다. 췌장염이 가볍게 온 경우에는 예후가 나쁘지 않은 병이지만, 심하게 온 경우에는 예후가 좋지 않죠. 논문을 보면, 강아지의 경우 33% 정도의 환자가 췌장염으로 입원 시점 기준 30일 이내에 사망했다고 하는 데이터도 있고, 고양이의 경우에는 논문에 따라 9-41% 정도의 사망률을 보인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사망률이 낮지 않은 병이기 때문에 치료에도 애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죠. 안타까운 건 췌장염은 이렇다할 치료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췌장염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건 수액과 영양 공급, 통증 관리인데, 그렇다보니 병원에 입원한 췌장염 환자들은 생각보다 뭘 딱히 안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일전에 췌장염 환자를 관리할 때, 테크니션 선생님이 “얘한테는 왜 아무것도 안해줘요?”라고 저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수액을 달고 통증 관리를 하게 되면 딱히 수의사가 무언가 처치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환자를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죠. 환자에게 들어가는 주사제도 항구토제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없고요.

그래서인지 수의사에 따라서는 이런 교과서적인 췌장염 치료 외에 추가적으로 다른 치료법을 적용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런 각양각색인 췌장염의 치료에 대해 살펴보고, 실제 어느 정도의 에비던스가 있는지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혈장 수혈

췌장염에 혈장 수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혈장은 혈액에서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 같은 것들을 제외한 액체 성분을 얘기합니다. 혈장도 혈액 제제이기 때문에 혈장 주사라고 하기보다는 혈장 수혈이라고 얘길하죠. 혈장을 췌장염 치료에 사용하는 건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혈장을 췌장염 치료에 사용하는 걸 추천하지 않습니다. 수의 내과학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내과학 교과서 에팅거에도 혈장 수혈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렸다는 얘기는 이 얘기가 나온지 꽤 오래됐다는 말과 같습니다.)

췌장염 또한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사람에서의 치료법을 많이 외삽하는 것들이 있는데, 혈장 수혈 또한 그 중 하나입니다. 사람에서는 급성 췌장염에서 혈장 수혈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고, 어떤 논문의 경우 강아지에서는 혈장 수혈 자체가 오히려 예후를 안 좋게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물론 상태가 안 좋은 환자에서만 혈장 수혈이 진행되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단서 조항이 붙지만요).

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양이의 췌장염은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에서 나온 급성 췌장염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여기서도 혈장 수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FFP(신선동결혈장, Fresh Frozen Plasma)는 현재 (사람 췌장염의) 컨센서스에서 추천되지 않고, 혹여나 잠재적인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환자에게서만 사용해야한다고 얘기합니다.

췌장염에서 혈장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어떤 환자를 얘기하는 걸까요? 췌장염이 심해지면 염증 때문에 DIC(파종성 혈관내 응고장애, 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opathy) 같은 합병증이 오는 환자가 있습니다. DIC는 치사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합병증이기 때문에 이런 환자들에서는 응고인자를 보충해주기 위해 혈장 수혈이 지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응고 장애가 오는 환자에서는 혈장 수혈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췌장염 환자에서는 혈장 수혈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죠.

반면, 혈장 수혈은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치료비용이 아주 사악합니다(혈액제제들은 보통 다 가격이 사악합니다). 보통 췌장염 때문에 입원 치료를 했는데, 입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다면, 입원비의 절반 이상을 혈장 수혈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최근 수의학 트렌드에서는 췌장염에서 덮어놓고 혈장 수혈부터하는 걸 권장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고, 심지어는 추천되지 않는 쪽에 가까운 치료인데, 의료비까지 올려버리니까요.

호의 주(Gabexate Mesylate)

호의는 가벡세이트라는 성분명을 가진 주사제의 상품명입니다. 가벡세이트는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로 췌장염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개념으로 쓰는 약입니다. 췌장 세포 내에서 단백분해효소가 활성화 되는 걸 억제해서 췌장염 자체가 악화되지 않게 한다는 개념이죠.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닌 주사제인데, 입원 기간 중에 호의 주를 이용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만 얘기하자면,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를 이용한 치료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7년 Pacific Veterinary Conference에서 있었던 췌장염에 대한 강의 프로시딩을 보면 가벡세이트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실험적으로 췌장염을 유발한 케이스에서 가벡세이트(호의)가 효과가 있었던 경우가 있긴한데, 췌장염을 유발하기 전에 주사를 해야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가 있죠. 췌장염이 이미 터진 직후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래서 자연발생하는 일반적인 췌장염 케이스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호의랑 비슷한 것으로 단백분해효소 저해제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는 내복약도 있습니다. 카모스타트라는 약으로 상품명으로는 호의판, 호이스타, 호이콜 같은 것들이 있죠. 똑같이 췌장염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의료비만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항생제

췌장염은 어쨌든 염증이니, 항생제를 써야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강아지와 고양이의 췌장염에서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췌장염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는 특히 더욱 고양이에 비해 항생제를 쓸 일이 없고, 고양이의 경우도 췌장염 자체로 항생제를 쓴다기보다는 함께 병발했을 수 있는 담관간염이 세균성인 경우 항생제를 병용하는 게 예외적으로 추천됩니다.

급성 췌장염은 대부분의 경우, 입원 관리를 필요로 하다보니 병원에 입원해서 예방적인 항생제 혹은 만일을 대비한 항생제라며 이런저런 항생제를 2가지, 많게는 3가지씩 맞는 경우를 볼 때가 있는데, 보통은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항생제도 경우에 따라서는 고가 약물로 분류되어 입원비를 올리는 주범이 되기 때문에 별로 바람직하지 않죠.

췌장효소

췌장효소가 췌장염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라이펙스 같은 보조제죠. 사람의 만성 췌장염에서 췌장효소제가 통증을 경감시켜주더라…는 내용이 수의학으로 외삽되면서 췌장염에 췌장효소를 쓰는 경우가 생긴건데, ACVIM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을 보면, 췌장염에서 EPI(Exocrine Pancreatic Insufficiency)가 있는게 아니라면 췌장효소제를 먹이는 걸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실제 췌장염 환자가 입원하면 딱히 할 게 없습니다. 정맥으로 수액을 주면서 관류 상태를 개선시키되, 식욕이 없으면 콧줄을 달고 강급을 합니다(옛날과 달리 최근에는 췌장염 환자를 굶기는 걸 추천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빨리 먹이는 걸 추천하죠.) 마약성 진통제를 이용해 췌장염으로 인한 통증을 관리해주고, 췌장염으로 인해 구토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항구토제를 이용해 토하지 않게 해줍니다. 그리고 췌장염의 진행이 멈추고, 환자가 자연스레 회복하길 기다리죠.

췌장염은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따라서 치료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병원마다 조금씩 수가는 다를 수 있으니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만약 정석대로 불필요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혹은 추천되지 않는) 치료를 제외한다면 수액과 강급, 진통제 정도가 치료비에 포함될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항생제를 얹거나, 혈장 수혈, 혹은 호의 주 같은 걸 치료에 포함시키면 통상적으로 2배 내지 많게는 3배에 가까운 치료가 나옵니다. 하루 입원비 기준으로 항생제에서 약 4-5만원, 호의주가 1-2만원 정도 추가될테고, 혈장 수혈을 하게 되면 20-30만원 가까운 비용이 추가됩니다. 순식간에 몇 십만원의 의료비가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거죠. 여기에 라이펙스 같은 췌장효소제를 구입해서 먹이게 된다면, 첫 입원 당일에 라이펙스 구입비 10만원 정도가 추가될 수도 있겠네요.

비싼 병원이라는 건 개별 항목의 수가가 다른 곳보다 비싼 곳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개별 항목의 수가가 다른 병원보다 저렴하더라도, 불필요한 치료를 해서 의료비의 총합이 많이 나오는 병원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수의사가 보호자분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는 건, 이런 부분입니다. 안해도 되는 걸 안해서 보호자분께 불필요한 청구를 하지 않는 걸 얘기하죠.


췌장염은 췌장염 치료제 같은 약이 없어서 수의사도 답답한 병이지만, 최근 기대되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일본에서 나온 약 중에 Fuzapladib이라고 하는 약이 있습니다. 강아지 췌장염에서 입원 기간 중에 사용시 사망률을 드라마틱하게 개선시켜주고, 입원 기간을 단축시켜준다는 데이터가 있는 약입니다. 이 약이 최근 미국 FDA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고, Panoquell-CA1이라는 이름으로 추가적인 임상 데이터를 쌓고 있습니다. 이 약이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완전히 허가를 받는다면, 강아지 췌장염에 있어서 수의사와 보호자 모두에게 또 다른 무기가 생기는 셈이죠.

일전에 췌장염은 진단도 쉽지 않다고 얘기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치료도 마땅치가 않은 병인 것 같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췌장염을 이겨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supportive care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죠. 그렇다보니 수의사 또한 지푸라기를 잡고 싶을 때가 많은 병인데, 그래서 이렇게 별 다른 근거가 많지 않은 약들에 손을 뻗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되는듯 싶습니다. 물론 수의사라면, 그 지푸라기가, 속된 말로 돈값을 할 수 있는 지푸라기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하겠지만요(지푸라기의 가성비를 고려해야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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