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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오늘동물병원, 칼 스톨츠 복강경(=내시경) 도입

외과학의 역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총 3번의 혁명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첫번째 혁명이 마취의 도입이라면, 두번째 혁명은 무균법의 도입, 세번째 혁명은 복강경의 도입(조금 더 정확하게는 최소 침습 수술법의 도입)입니다. “보이지 않는 건, 치료할 수 없다”는 격언 아래 수술을 할 때엔 늘 가능한 크게 째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에서, “큰 절개”라는 외과학의 전통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줬던 게 복강경 수술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경우 담낭을 떼고자 하면 골드 스탠다드로 치는 게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절제술(laparoscopic cholecystetomy)인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세번째 혁명이 배경에 있습니다.

​수의학은 아직 사람에 비해 이런 최소 침습 수술이 루틴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만, 오늘동물병원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도 언젠가는 최소 침습 수술이 스탠다드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절개면을 더 작게 만들어서 환자의 통증을 줄이고, 수술 후 회복을 빠르게 하는 걸 싫어할 수의사나 보호자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늘 언젠가는 사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복강경 수술 장비였습니다.

​사람에서는 세번째 혁명이라는 복강경 수술이 동물에서는 루틴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먼저 장비가 비싸고, 소모품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수술 비용 자체가 비쌉니다. 병원에서 장비를 세팅하는 것도 어려운데, 장비를 세팅해도 비싼 수술비 때문에 보호자가 선택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죠. 게다가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하는 일반 수술(open surgery)에 비해서 수의사가 공부해야할 것들, 연습해야할 것들이 더 늘어납니다(러닝 커브가 높다고 하죠). 그렇다보니 보호자와 수의사 모두 조금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한 개복 수술(open surgery)을 선택하곤 하죠.​

오늘동물병원은 손쉬운 선택을 하기보다는 조금 어렵더라도 환자에게 나은 선택을 하고자 노력하는 병원이고,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도입하게 된 것이 복강경 수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시경 장비입니다. 내시경 카메라 헤드에 어떤 스코프(렌즈가 들어있는 길다란 금속 막대)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복강경이 되기도 하고, 비강경이 되기도, 때론 방광경이 되기도 하죠. 검이경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사실 장비 하나를 통해서 꽤 여러가지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내시경 장비로 유명한 브랜드라면 일본의 올림푸스나, 독일의 칼 스톨츠가 있습니다. 조금 좋은 내시경을 쓰는 병원은 보통 이 둘 중의 하나를 쓰죠. 이 둘 중에서 올림푸스는 동물용을 만들지 않고, 수의학 시장에서 조금 더 스탠다드하게 많이 쓰이는 것은 칼 스톨츠입니다. 칼 스톨츠는 동물용으로 쓰일 것을 계획하고 만들어진 스코프들을 팔죠. 오늘동물병원도 그래서 칼 스톨츠의 장비를 선택했고요(사람용으로 쓰이는 걸 동물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동물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조금 더 용도에 맞게 쓰기 좋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시경 장비 자체는 기본적으로 작고 긴 카메라를 통해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특정 회사의 장비가 다른 회사보다 더 좋고… 뭐 이런 것보다는 이런 내시경 장비를 통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게 이런 내시경 장비를 세팅해둔 병원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언제 쓰는가를 얘기해야 장비도 자랑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내시경 카메라 헤드에 장착하는 다양한 스코프들

복강경 및 흉강경

가장 대표적인 용도라면 복강경과 흉강경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크게 째고 눈으로 보면서 하는 수술 대신 아주 작은 0.5-1.5cm 정도 되는 구멍만 뚫어놓고 내시경으로 내부 장기를 보면서 수술을 하는 거죠. 작게 째니 통증이 덜하고, 회복도 빠릅니다. 오랜 기간 입원을 하지 않아도 괜찮죠. 구멍을 통해 들어간 내시경 카메라는 실제보다 확대된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 더 정밀한 시야 확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아주 작은 혈관도 크게 보여주니까, 조금 더 세밀한 수술을 할 수 있게 해주죠.

​어차피 대부분의 수의사들이 이미 1cm 미만으로 절개를 하는 중성화 수술(여아 중성화)에서는 큰 이점이 없을지 모르지만, 시야 확보를 위해 크게 째야 하는 담낭절제술이나 간 생검, 부신절제술 같은 수술에서는 상대적으로 꽤 큰 이득을 갖죠. 특히 간 생검의 경우 진단을 위해 필수적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수술이라는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복강경은 엄청난 이점을 갖습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간 조직을 작지 않게 떼어낼 수 있으니 환자에게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진단률을 높일 수 있죠. 실제로 만성 간염에서 어떻게 간 생검을 하는 것이 좋은가를 얘기하는 ACVIM 가이드라인에서는 간 생검 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복강경을 이용한 간 생검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만성 간염에 관한 2019년 ACVIM 가이드라인의 권고

병원에 복강경이 없다면, 이런 최선의 옵션을 보호자분들께 제공할 수 없죠(조금 야박하게 얘기하자면 환자에게 sub-standard를 제공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동물병원에서 많이 하는 방광 결석 수술도 그렇습니다. 흔히 방광은 복강경만으로 수술을 하기는 어려운 장기(소변이 뱃속으로 흐르면 안되니까, 어쨌든 몸 밖으로 꺼내서 수술을 해야합니다)라고 하지만, 아주 작게 방광의 일부만을 노출시켜 놓은 상태로 방광 내에 내시경을 밀어넣어서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PCCL(Percutaneous Cystolithotomy, 경피적 방광 결석 제거술)이라고 하는데, 절개면을 작게 만들고, 확대된 내시경 화면을 통해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를 방광 내의 결석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전통적인 방광절개술보다 더 추천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요로 결석을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2016년 ACVIM 가이드라인

2016년 발표된 요로 결석에 관한 ACVIM 가이드라인을 보면 가능한 최소 침습 방법을 이용해 결석을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인 방광절개술 대신 내시경을 이용해서 요도를 통해 접근하거나, 앞서 말한 PCCL 같은 방법을 우선시하라고 하죠(저같은 뱁새들에게 황새를 쫓아오라고 강요하는 ACVIM 가이드라인).

PCCL로 본 방광 결석

물론 복강경이 최선이 아닌 케이스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을 건드리는 수술들은 복강경이 하는 역할이 그리 크지 않죠. 하지만 이런 경우들에서도 복강경의 도움을 받아 절개면을 작게 만들면서 (병변이 있는 부분만 몸 밖으로 끄집어내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복강경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Laparoscopic-assisted라고 합니다).

​이런 수술은 내시경 장비가 없으면 아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현대 의학은 템빨”이라는 제 오래된 믿음을 증명(?)해주죠.

요도나 방광을 통해서도 내시경을 밀어넣을 수 있습니다. 연성 내시경(flexible endoscope)이라고 낭창거리는 길다란 관같은 내시경을 밀어넣을 수도 있고, 암컷이라면 복강경 때 쓰는 것 같은 금속 막대처럼 생긴 경성 내시경(rigid endoscope)을 밀어넣을 수도 있죠. 이렇게 들어간 내시경을 통해 방광 내의 결석을 제거할 수도 있고, 방광 내에 생긴 종양을 조금 떼어내서 조직 검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몸에 있는 구멍을 활용한다면 칼을 대지 않고도 필요한 시술을 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죠.

비강경, 기관지 내시경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비뇨기에서 쓰이는 내시경들은 호흡기 쪽에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비강경을 이용해서 코 내부의 종양을 생검한다든가, 만성 비염 환자에서 진단을 명확하게 위해 비강경을 사용할 수 있죠. 흔히 명확한 진단 검사 없이 치료하게 되는 하부 호흡기 질환(기관지염이나 폐렴)의 경우에도 내시경을 이용해서 진단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Bronchoalveolar lavage, BAL이라고 하는 걸 할 수 있죠).

​호흡기 쪽은 특히나 보이지 않으면 검사도, 치료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내시경은 보는 장비이기 때문에 그동안 위험해서 보지 않고는(=블라인드라고 합니다)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됐죠. 예컨대 비강 안에 무언가 혹이 생긴다면 주변에 뼈가 있으니 흔히 하는 세침 검사(FNA)도 할 수 없고, 종양을 직접 떼서 조직 검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비강경이 없으면 종양이 있다는 걸 알아도 종양을 볼 수 없으니 조직 검사도 할 수 없죠.

​검이경

요즘엔 검이경이 없는 병원은 없습니다만, 제대로된 검이경이 있는 병원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된 검이경이라면 워킹 채널(기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검이경은 보통 내시경 장비를 이용하게 되죠. 검이경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귀 안에 도구가 들어가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치료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만성 외이염이 있는 환자에서 귀 내부의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이 세척(deep flushing이라고 합니다)할 때도 이런 검이경이 필요하고, 귀 안에 생긴 용종(polyp)의 조직 검사나 제거가 필요할 때도 이런 검이경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단순한 외이염이 아니라 중이염 같은 질환은 이런 워킹채널이 있는 검이경이 없으면 제대로 치료하기가 어렵죠. 중이 내에 있는 농을 빼내고, 배양 검사를 위해 샘플링이 필요한데, 고막을 넘어 접근하려면 보면서 접근하는 것이 필수니까요.


의료 장비에는 할 수 있던 걸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종류가 있다면, 이처럼 그동안 할 수 없던 걸 할 수 있게 해주는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수술기 같은 경우는 그 장비가 없더라도 수술을 할 수 있죠. 느리지만 천천히 지혈해가면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조금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일 뿐입니다. 반면, 비강경이나 고막절개술(myringotomy)를 가능하게 해주는 검이경 같은 걸 감안하면 내시경은 할 수 없던 걸 할 수 있게 해주는 종류의 장비죠.

​복강경의 경우는 조금 애매합니다. 많은 수의사들이 복강경이 없어도 수술을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곤 하죠. 간생검을 하고 싶으면 크게 개복을 하면 되고, 방광 결석 수술을 할 때도 크게 열면 그만이니까요. 있으면 좋을 수 있지만, 없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외과학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첫번째 혁명이 마취의 도입인데, 마취기 없이 수술하는 병원을 상상하기란 어렵죠. 두번째 혁명인 무균법의 도입은 어떨까요. 수술을 하는 병원에서 멸균 장비(오토클레이브나 플라즈마, EO 멸균기)가 없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혁명이라는 최소 침습은 어쩐지 그게 마치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하곤 합니다. 최소 침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가 복강경용 내시경임에도 복강경은 팬시한 장비일뿐 필수적인 장비라고 얘기하진 않죠. 오늘동물병원은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가 수의학이 아직은 (사람에 비해) 조금 느리기 때문이고, 멀지 않은 시기(어쩌면 현재)에 외과학의 세번째 혁명이 수의학에서도 당연시 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황새 쫓아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뱁새지만, 그래도 조금 앞서가는 뱁새가 되고 싶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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