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2달 전쯤 오늘동물병원이 좀 더 고급진 전기수술기를 도입했다는 소식을 전했던 것 같은데, 장비병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수술방 장비를 도입하게 되어서 소식을 전하는 포스팅을 올립니다. 이번에 도입한 장비는 전기수술기처럼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장비가 아니라 호흡마취기입니다. 말그대로 호흡 마취제를 환자한테 전달해주는 장비로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이 있었지만, 이번에 그보다 훨씬 더 좋은 GE(General Electric)사의 Carestation 620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요즘엔 동물병원에서 어떤 혈액 검사 장비를 쓰는가에 대해서도 빠삭하신 보호자분들이 꽤 있지만, 아무래도 수술방 장비로 넘어오면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어떤 장비가 더 좋은 장비인가에 대해서 보호자분들이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고요. 마취 같은 경우는 얼마나 안전하게 마취가 되는가(혹은 마취 각성이 잘 됐는가)가 중요한 문제이지, 이 병원에서 어떤 장비를 쓰는가, 그 장비가 다른 병원 장비랑 무슨 차이인가는 현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동물병원은 보호자분들이 신경쓰시지 않는 부분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병원이고, 특히나 마취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쓰던 마취기는 (이 마취기도 나쁘지 않은 좋은 마취기입니다만) 동물병원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로얄 마취기였습니다. 기본 기능에 충실한 마취기로 간단하게 인공호흡기(벤틸레이터)가 달려있고, 마취기의 기본적인 기능들을 합니다. 대부분의 모듈들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취와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별도의 모니터링 장비를 이용해서 환자의 심박수와 산소 포화도(Spo2), 호기말이산화탄소분압(EtCO2) 같은 바이탈 수치를 확인해야합니다.

이 장비도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가 달려있지만, 기본적인 기능만 하는 벤틸레이터로 호흡과 관련된 세팅을 벤틸레이터의 눈금과 호흡마취기에 달린 압력계를 보고 눈대중으로 조절해야합니다. 전신 마취를 하면 마취제에 의한 호흡억제 때문에 숨을 편하게 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전문 용어로 환기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환자들은 환기가 잘 안된다는 것을 호기말이산화탄소 분압(EtCO2)로 알 수 있습니다(호흡마취를 할 때, EtCO2가 중요한 이유입니다만, 안타깝게도 호흡마취를 하면서 EtCO2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환기가 잘 안되는 환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을 벤틸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벤틸레이션은 인위적으로 폐에 산소를 불어넣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피의 산소를 불어넣느냐와 어느 정도 압력으로 산소를 불어넣느냐가 중요합니다. 전문용어로는 부피 조절 환기(VCV, Volume Controlled Ventilation)과 압력 조절 환기(PCV, Pressure Controlled Ventilation)라고 합니다. 기존의 마취기는 이걸 모두 사람이 조절합니다. 불어넣는 산소의 양을 조절하고 싶으면 벤틸레이터의 벨로우가 얼마나 내려가는지를 보고 조절해야 하고, 폐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하고 싶으면 마취기에 달린 압력계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는지, 벤틸레이터에 표시되는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직접 보고 다이얼을 돌려가면서 조절해야합니다.

반면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마취기는 이 모든 걸 마취기에 달려있는 컴퓨터가 알아서 합니다. 수의사가 원하는 값을 입력해두면, 자동으로 이 모든 걸 해줍니다. 신경써야 하는 것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고, 훨씬 더 효율적으로 환자의 호흡을 관리할 수 있는 셈입니다. 새로운 마취기의 벤틸레이션은 다양한 모드가 있어서, 압력을 기준으로 벤틸레이션을 할지(PCV mode), 부피를 기준으로 벤틸레이션을 할지(VCV mode) 화면에서 선택할 수 있고, 환자가 스스로 숨을 쉴 때 인공호흡기와 호흡이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환자의 자발 호흡과 인공호흡기가 동기화되는 SIMV 모드도 있고, 환자의 자발 호흡을 보조만 해주는 PSV(Pressure Support mode) 모드도 있습니다. 또한 압력모드와 부피모드의 장점을 적절히 섞어둔 PCV-VG(Pressure Controlled Ventilation-Volume Guaranteed) 모드도 추가되었습니다.
이런 모드들은 약간 자동차를 구입할 때 선택하는 옵션과 같아서 처음 마취기를 구입할 때 추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오늘동물병원에서 구입한 마취기는 이런 옵션들이 모두 추가되었습니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환자든, 많이 나가는 환자든, 폐에 문제가 있는 환자든 안전하게 마취하기 위해서 다양한 모드들을 모두 추가했습니다. (환자의 폐활량을 측정하는 Spirometry도 추가되어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통틀어서 마취기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는 브랜드로는 GE(General Electric)와 드래거(Draeger)가 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GE나 드래거 마취기를 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오늘동물병원에 도입된 GE 케어스테이션은 많지 않은 GE와 드래거 제품 중에서도 상위모델에 속합니다. 그만큼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마취를 할 수 있는 거죠. 매일 마취기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체크하고, 환자에게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사람의 실수를 마취기가 막아줍니다.
물론 얼마나 세세하게 마취와 관련된 바이탈 지표들을 모니터링하는지, 얼마나 적절하게 마취 중 이벤트에 대응하는지가 안전한 마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마취기를 아무리 좋은 걸 쓴다 하더라도, 좋은 마취기보다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동물병원은 그래서 마취 중에 전담으로 마취 모니터링만 확인하는 스탭을 두고,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핍니다. 장비가 대신해주는 것들이 있지만, 그로 인해 생긴 여유를 다른 부분을 더 챙기는데 씁니다. 좋은 장비가 좋은 의료 서비스로 이어지는 건 그래서이기도 하고요.